호주는 세계 5위의 와인 생산국으로 미국과 함께 신대륙 와인을 이끌고 있다. 호주 와인의 특징은 거대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앞다퉈 다양한 브랜드 와인을 내놓으면서 대중성을 확보했고 신대륙 와인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다. 그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167년 동안 가족 경영 와이너리로 자존심을 지켜 온 얄룸바Yalumba의 성공은 남다르다.
지난 21일 오랫동안 얄룸바 와인을 수입해 온 나라셀라가 주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얄룸바의 수출 담당자 팀 하먼Tim Herrmann을 만나 얄룸바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아울러 한식과 얄룸바 와인의 조화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호주 최고最古의 가족 경영 와이너리
1849년 영국인 양조가 사무엘 스미스Samuel Smith는 남호주에서 인생을 건 도전을 시작했다. 그는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 동쪽, 앵거스톤Angerston에 12헥타르의 땅을 구입해 첫 포도나무를 심고 ‘이 모든 땅’이란 뜻의 얄룸바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현재 5대손 로버트 힐 스미스Robert Hill Smith가 와이너리를 잇고 있다. 얄룸바는 바로사 밸리, 에덴 밸리, 쿠나와라 등 남호주의 핵심지역에서 쉬라즈,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뿐만 아니라 그르나슈, 리슬링, 비오니에 등 특화된 품종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얄룸바는 여느 와이너리와 달리 자체적으로 모종과 묘목을 기르고 오크통을 제작한다(이 부분은 뒤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도록 한다). 와인 생산의 전 과정에서 가능한 모든 요소들을 직접 통제함으로써 더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와인을 만들면서 자연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지만, 사람의 몫으로 남겨진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얄룸바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
선구적인 종묘장과 고목 관리
얄룸바의 설립자는 건강한 포도나무와 과실, 포도 재배의 미래를 위해 종묘장을 만들었다. 현재 다양한 품종과 클론을 연구, 실험재배를 통해 우수한 묘목들을 재배하여 새 포도밭을 조성하거나 포도나무를 다시 심을 때 사용하고 다른 와이너리에도 공급한다. 특히 ‘호주 최초의 비오니에’라는 왕관을 쓴 얄룸바의 비오니에는 종묘장에서 오랜 연구 끝에 얻은 쾌거다.
“업계 리더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얄룸바는 나름의 기준과 정의를 가지고 올드 바인 헌장old vine charter”을 만들었다고 팀 하먼은 말한다. 오늘날 와인 마케팅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올드 바인, 즉 고목이다. 사실 올드 바인에 관해 통용되는 세계적인 규정이나 기준이 없다 보니, 포도나무의 수령이 10년만 넘으면 올드 바인으로 홍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얄룸바는 이런 경향을 정면으로 꼬집은 것이다.
올드 바인 헌장은 4단계로 나뉜다. An Old Vine(수령 35년 이상), An Antique Vine(수령 70년 이상), A Centenarian(수령 100년 이상), A Tri-Centenary Vine(3세기)으로 기준점을 잡았다. 얄룸바는 2007 빈티지부터 이 기준을 적용해 레이블과 와인 설명서에 기재함으로써 소비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위험요소를 관리하는 또 다른 준비, 쿠퍼리지
전세계에 와이너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오크통을 직접 제작하는 쿠퍼리지까지 갖춘 와이너리는 흔치 않다. 오크통이 와인 양조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은 얄룸바는 오트통 제작에 나섰다. 연간 300개를 만드는데 프랑스, 미국, 헝가리산 오크를 사용한다. 이렇게 직접 오크통을 제작하면서 쌓인 노하우 덕분에 빈티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얄룸바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한 양보 없는 완벽주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래를 향한 지속 가능한 농법
얄룸바는 1990년대 중반부터 자체적으로 지속 가능한 농법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포도밭뿐만 아니라 와인 양조의 전 과정에 적용했다. 각종 화학 물질의 사용을 줄이고 해충 관리 시스템을 통해 포도원의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다. 얄룸바는 와인 회사 최초로 2007년에 미국 환경 보호국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에서 ‘기후 보호 어워드’를 수상한 바 있다. 또한 2011년에 얄룸바의 모든 와인을 채식주의자와 완전 채식주의자vegan도 즐길 수 있다고 발표했다(와인 양조 과정에서 동물성 물질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것). 얄룸바는 와인 생산과 환경 보호의 두 가지를 절대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얄룸바는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와인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 중 얄룸바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세 가지 와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버질리우스 비오니에 2013
The Virgilius Viognier 2013
(품종: 비오니에, 원산지: 에덴 밸리Eden Valley)
유명한 와인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은 비오니에를 두고 ‘진실로 쾌락주의자를 위한 청포도 품종’이라고 할 정도로 감각적이며 우아하다. 얄룸바는 호주 최초로 비오니에를 재배해 성공한 비오니에 개척자이자 전문가다. 1970년대부터 연구하여 1998 첫 빈티지로 버질리오스를 선보였다.
꽃, 복숭아, 생강의 향이 풍부하고 살구와 복숭아의 향긋한 맛이 나서 첫 인상부터 좋다. 뒤이어 견과류의 향이 나고 미네랄 느낌과 함께 산뜻한 산미가 당도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다. 비오니에는 산도가 낮은 품종으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데, 이 와인은 걱정할 필요 없다. 100% 오크 숙성을 거쳤지만 그 느낌이 은은하고 질감은 섬세하며 매끄럽다. 성숙한 느낌의 와인으로 5-10년도 숙성 가능하다. 탕평채, 구절판 같은 한식의 전채요리와 잘 어울렸는데 팀 하먼은 호주에서 비오니에를 아시아 요리와 자주 매칭한다고 한다.
<탕평채와 잘 어울리는 버질리우스 비오니에>
▲ 에덴 밸리 쉬라즈-비오니에 2013
Eden Valley Shiraz-Viognier 2013
(품종: 쉬라즈와 소량의 비오니에, 원산지: 에덴 밸리Eden Valley)
쉬라즈와 비오니에의 블렌딩은 북부 론 꼬뜨 로띠Côte Rôtie의 전통적인 블렌딩이다. 얄룸바는 수령이 30~50년 된 포도 나무에서 수확한 쉬라즈에 비오니에를 블렌딩해서 농축된 맛과 풍미를 더한다. 에덴 밸리는 서늘한 지역으로 이곳의 쉬라즈는 우아하고 미묘한 스타일을 띠는데, 구조감이 좋은 비오니에를 만나 최고의 궁합을 자랑한다. 새로운 프랑스, 헝가리 오크통에서 15%를 숙성하고 나머지를 중고 프랑스, 헝가리, 미국 오크통에서 숙성한다.
정향, 후추, 검은 자두의 향이 풍부하게 올라온다. 비오니에 영향으로 화사한 향이 나면서 잘 어우러진다. 풍족한 과일 풍미와 부드러운 타닌 감촉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우아하게 발전한다. 서늘한 지역에서 자란 포도답게 신선한 산미가 마지막까지 잘 살아있다. 적당한 무게감으로 떡갈비, 불고기와도 잘 어울렸다. 5-7년 정도 보관 가능하다.
<떡갈비와 잘 어울리는 에덴 밸리 쉬라즈 비오니에>
▲시그니처 카베르네-쉬라즈 2013
The Signature Cabernet-Shiraz 2013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과 쉬라즈, 원산지: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
얄룸바는 호주 최초로 카베르네 소비뇽과 쉬라즈 블렌딩을 시도해 성공을 거두면서 호주 와인의 뿌리와 전통이 되는 블렌딩으로 정착시켰다. 얄룸바의 혁신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팀 하먼은 “한마디로 얄룸바의 모든 정수를 담은 와인이다. 1962년 첫 빈티지 와인부터 얄룸바의 오늘을 만드는데 공헌한 사람에게 헌정하고 있다.”고 시그니처의 배경을 설명했다. 매 빈티지마다 와인 메이커, 영업, 경영진, 포도밭 매니저, 셀러 관리자 등 어떤 분야든 얄룸바에 기여한 사람을 선정해 그 사람의 서명과 이야기를 빼곡히 레이블에 넣는다. 위대한 와인은 자연과 사람의 합작품임을 얄룸바는 잘 알고 있다. 167년 동안 쌓은 의지, 성실, 우정과 헌신을 시그니처에 투영하고 있다.
최고 빈티지일 때만 시그니처를 만든다. 열기가 과도했던 2007, 2011년엔 만들지 않았다. 1995년부터 100% 바로사 밸리의 포도를 이용하는데, 카베르네 소비뇽을 중심에 두고 쉬라즈를 블렌딩하는 것이 얄룸바의 스타일이다.
짙은 붉은 색상이 띠고 붉은 과일, 담배잎, 차잎, 후추, 삼나무, 모카의 풍미가 코를 찌른다. 카베르네 소비뇽의 탄탄한 타닌과 쉬라즈의 진한 과일의 풍미가 잘 어우러져 복합적이고 깊이 있게 느껴진다. 산미가 끝까지 잘 유지되고 향신료의 느낌도 지속된다. 스케일이 크다는 표현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붉은 육류의 스테이크 정도 되어야 균형이 맞을 것 같다. 앞으로 15년 이상 보관 가능하다.
치열한 대기업의 각축전 속에서도 얄룸바는 초심을 잃지 않고 본인들의 기준을 만들면서 167년을 걸어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포도밭과 양조장뿐만 아니라 종묘장과 쿠퍼리지까지 갖춤으로써 얄룸바는 와인 생산의 모든 과정을 통제하려 한다. 이는 와인을 둘러싼 모든 환경까지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위대한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것과 통한다. 그리고 얄룸바는 사람을 잊지 않았다. 사람이 두 팔 벌려 있는 듯한 얄룸바의 Y가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입_ 나라셀라 (02 405 4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