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와인 소비자들의 한결같은 불만 중 하나는 한국의 와인 가격이 외국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마트에서 10달러도 안 하는 평범한 와인이 우리나라에 수입되면 몇 배 높은 가격으로 판매된다고도 하며, 이 주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 근거가 미약한 수치가 사용된 기사로 인해 와인 산업이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한다.

와인 가격은 크게 3단계를 거쳐 결정되는데, 수입원가+세금(관세, 주세 등)+유통마진이 그것이다.

각 단계별로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와인의 수입원가는 생산자나 국제 도매상 같은 공급자의 가격정책에 영향을 받고, 세금은 정부 정책에 의해 결정되며, 유통마진은 각 국가의 유통구조와 유통경쟁에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형성된 와인 가격은 와인 시장의 규모에 영향을 미친다. 즉 와인 가격이 낮아지면 수요가 늘어나 와인 시장 규모가 커지고, 와인 가격이 높아지면 수요가 하락해 와인시장 규모가 작아진다.

동시에 와인 시장 규모는 와인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작용하여 와인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수입사와 공급자의 거래관계를 예로 들어 살펴보면, 와인 시장 규모가 클 경우 공급자는 판매를 늘리기 위해 공급 가격을 인하하기도 하며, 더 많은 물량을 주문하는 수입사에게 할인혜택을 제공하여 소량 주문하는 수입사보다 원가 경쟁력을 갖게 하기도 한다. 유통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와인 시장 규모가 클 경우 더 많은 수입사와 도소매상이 산업에 참여하여 유통 경쟁이 심화되고 가격 하락을 야기한다. 이처럼, 와인 가격과 와인 시장 규모는 서로 영향을 미치며 상호작용한다.

세 가지 와인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상관관계와 우리나라 와인 가격의 수준을 비교해 보자. 먼저 비교 국가는 와인 수입량 상위 국가 중 자료 분석이 가능한 상위 13개 국가다. 각 국가의 시장 규모는, 와인 생산국인 경우 자국 생산량을 제외하고 해외 수입량만 고려하였다.

세 가지 와인은, 세계 시장에서 범용적으로 거래되는 와인 중 보르도 그랑크뤼 1개, 보르도 AOC급 와인 1개 그리고 칠레 와인 1개를 선정하였다. 각 와인의 판매 가격은 국가별 평균 판매 가격(부가가치세 제외)이며 자료는 와인서처닷컴 (www.wine-searcher.com)의 수치를 사용하였다. 시장 규모와 와인 가격은 국가별 비교 분석을 위해 13개 국가의 가중 평균 대비 수치로 환원한 상대적 지수를 이용하였다.

^(주) 우리 나라에서는 온라인 와인 판매가 불가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격의 성격이 상이한 측면이 있으나, 자료의 출처를 한 가지로 통일하기 위해 온라인 자료를 사용하였다. 우리 나라의 오프라인 판매 가격은 권장 소비자 가격의 성격이 강한 온라인 판매 가격보다 낮다는 점을 감안해도 전체적인 맥락에는 큰 변화가 없다.

보르도 그랑크뤼 A 와인의 사례 

수입 와인의 시장 규모가 13개 국가 평균의 10% 수준인 우리 나라에서, 보르도 그랑크뤼 A 와인은 13개 국가 평균 가격인 12만원의 약 2.7배인 33만원이며 시장 규모가 우리 나라보다 22배 큰 영국의 가격인 8만7천원보다 3.7배 높다.

 
칠레 와인의 사례 

칠레 와인의 소비 비중이 높은 우리 나라는 13개 국가 평균 가격인 1만9천원 대비 1.5배 높은 2만9천원 수준이며 1만5천원인 영국에 비하면 1.9배 높다.

보르도 AOC급 와인의 사례 

한국에서의 와인 가격은 3만원으로, 13개 국가 평균 가격인 1만5천원보다 2배 높은 수준이며 영국의 1만4천원에 비하면 2.2배 높다.

 
요 약

종합해보면, 시장 규모와 와인 가격 간의 상관관계는 53%로 한국의 와인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이유의 53%는 한국의 와인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된다. 즉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 경제 시스템에 기반한 한국의 와인 시장에서, 와인 가격이 한국의 시장 규모보다 큰 나라의 그것보다 높은 것은 합리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우리 나라보다 와인 수입량이 31배 큰 미국이나, 22배 큰 영국, 그리고 8배 큰 일본이나 홍콩의 와인 가격과 비교하여 그 나라의 와인 가격과 같은 수준의 와인 가격을 기대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지나친 요구이다.

와인 시장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와인 가격이 높다는 말은 와인 가격이 높기 때문에 와인 시장시장 규모가 작다는 것과 동일하다. 그리고 이 둘의 관계는 장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시장을 변화시킨다.

소비자와 산업 관계자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은, 와인 가격의 수준보다는 위 그림에서 화살표의 길이로 표현된 와인 가격의 편차이다. 수입사는 국제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와인생산자와 직접 거래하여 와인 상품을 개발하고 수입원가를 낮추는 노력을 기울이고, 소비자는 이런 와인을 알아봐 주는 현명한 소비를 한다면 한국 시장이 비효율적이라는 점에 편승하여 높은 마진을 추구하는 공급자가 줄어들면서 와인 가격의 편차 역시 줄어들 것이다.

더불어, 와인 시장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 – 예를 들면 와인의 종가세를 종량세로 바꾸어 다른 나라에 비해 고가 와인 시장이 왜곡되는 현상과 이로 인해 레스토랑 같은 업소 시장(On Premise)의 성장을 저해하는 문제를 해소하고, 온라인 유통 시장을 개방하여 도소매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정책 – 을 실시하여 와인 시장의 역동성을 높인다면, ‘가격 인하 ▶ 소비 증가 ▶ 시장 규모 확대’가 반복되는 선순환 과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