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졸레의 큰 별이 지다
“막셀 라삐에르(Marcel Lapierre)는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
글, 사진제공 _최신덕
지난 10월초 일요일 저녁 와인계의 큰 별이 졌다. 보졸레 모르공(Morgon)의 위대한 생산자인 막셀 라삐에르가 타계한 것이다. 그는 흑색종의 병마와 오랜 사투 끝에 결국 6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 2009년 보졸레(Beaujolais)만 남겨둔 지금, 전세계의 블로거들과 애호가들 사이에서 애도의 물결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한 그는 와인을 만드는 와인생산자들에게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상업성에 연연하지 않고 순수하고 진정한 와인을 만들려 했던 그의 철학과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막셀 라삐에르가 보졸레의 수많은 와인 생산자들 가운데 유난히 돋보였던 이유는 무엇보다 와인을 대하는 진실한 태도다. 과거 보졸레 지방은 위기를 겪고 있었고 많은 생산자들이 보졸레 누보를 비롯한 매스 마켓(Mass-Market)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라삐에르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명품 와인을 만들겠다는 신념 하에 아주 적은 량의 최고급 와인을 만드는데 집중하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가 만든 와인은 곧 보졸레의 로마네 꽁티라는 명성을 쌓게 되었고 전설의 100대 와인에 당당하게 등장했다. 이는 가메(Gamay) 품종은 싸구려 와인을 만든다는 상식을 뒤엎는 이변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그의 와인들은 가메 품종으로 만든 보졸레의 모르공 와인으로 팔리는 게 아니라, ‘막셀 라삐에르’라는 위대한 브랜드의 이름으로 파리의 최고급 샵과 레스토랑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와인이다.
도멘 막셀 라삐에르는 3대에 걸쳐 운영되어 온 가족경영 도멘으로 1973년에 설립되었다. 설립자 라삐에르는 이미 인근 도멘인 “Domaine des Chenes”에서 셀러 마스터로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2차대전이 끝난 후 그의 아들 까미유 라삐에르(Camille Lapierre)가 도멘(7헥타르)을 상속받게 되면서 인근 포도원을 매입하고 시세를 확장하였다. 그리고 50년대 후반부터 그의 와인을 직접 병입한 후 판매하기 시작한다.
막셀 라삐에르는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유기농(Organic) 농법과 바이오 다이나믹(Biodynamic) 농법을 채택하여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평균 수령이 45년 정도인 11헥타르의 포도밭(1헥타르의 Cote de Py 포함 - Morgon 비공식적 그랑크뤼 포도밭임)에는 화학비료, 제초제, 살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100% 유기농 및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한다. 또한 토양이 살아 숨쉬게끔 하기 위해 자연퇴비를 사용하며 사람이 직접 말을 이용하여 토양을 개간한다.
와인 양조 또한 바이오 다이나믹 방식을 사용하는데 특히 인위적으로 배양한 이스트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순전히 자연효모만 사용하는데 이는 보졸레 지방에서는 아주 드문 경우다. 또한 보당 작업도 하지 않으며 SO2(무수아황산)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100% 순수하고 내추럴한 와인을 만든다.
오크통에서 와인을 숙성시킬 때에도 SO2를 사용하지 않는다. 보통 3년에서 13년 정도 사용한 중고 오크통(228리터)을 사용하는데, 오크통은 부르고뉴 본 로마네(Vosne-Romanee)에 위치한 Domaine Prieure-Roche로부터 구입한다. 숙성은 보통 9개월 정도 진행하며, 숙성이 끝나면 바로 병입한다.
가메는 자신의 본고장인 부르고뉴에서조차 대접을 받지 못했던 이를 테면 천대받는 품종이었다. 막셀 라삐에르가 없었다면 아직도 가메는 그저 그런 와인을 만드는 품종이라는 선입견을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가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으며 보졸레의 명성을 지켜내고, 명품 와인은 만드는 이의 열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증명해낸 라삐에르는 진정한 장인이고 신화다.
사실 필자는 그의 사망소식을 접하기 열흘 전에 그곳을 방문하였기에, 그의 부고를 듣고 더욱 안타깝기 그지 없다. 방문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라삐에르가 작고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당시 그는 병중이라 그의 아들 마튜 라삐에르가 우리를 맞이했었다. 이제 마튜는 후계자가 되어 아버지의 정신과 철학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글쓴이 _ 최신덕
(현) (주)비노쿠스 대표, 경희대 마스터 소믈리에 과정 출강
(전) 수석무역 마케팅 팀장, 롯데주류BG 부장
`더 와인 바이블(캐런 멕닐, 2010)`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