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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순

봄, 상큼한 화이트 와인과 함께 !



글 이인순

봄을 맞아 화사한 분위기에 맞는 화이트 와인 원고를 쓰기로 약속하고 계속 날씨 투정만 하며 글쓰기를 미루었다. 황사비, 진눈개비, 다시 누런 모래와 함께 불어 오는 차가운 바람…3월을 그렇게 보내고 봄이 온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4월의 첫날, 소담스럽게 하얀 꽃 봉우리가 맺힌 목련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반가운 맘에 주위를 돌아 보니 나무들은 옅은 푸른 빛으로 혹은 화사한 색의 꽃망울로 봄 단장을 하고 있었다. 변덕 심한 날씨에 투덜거리기만 했지, 막상 나 자신은 내 주변에서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던 봄의 도착에 무심했나 보다.

짧기만 한 봄이 내 앞에 도착하여 2주를 보내는 사이, 꽃들은 서로 앞다투어 정신 없이 꽃망울을 터뜨리더니 목련은 바람에 하얀 꽃잎을 날리며 이미 지고 있고 그 옆으로는 벚꽃이 연한 분홍빛 자태를 자랑하며 만개하기 시작했다.소리 없이 와서 어느 날 불현듯 사라질 이 짧은 봄을 난 어떻게 즐길까?

어느 날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두꺼운 겨울 코트 대신 가벼운 옷을 입고, 뭉뚝한 부츠 대신 날렵한 콧날의 산뜻한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서듯이, 음식도 진하고 강한 양념에 묵직한 것은 옆으로 제쳐놓고 추운 겨울 날씨를 견디느라, 그리고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느라 지치고 나른한 우리 몸에 활약과 에너지를 불어 넣어줄 수 있는 가볍고 상큼한 것을 즐기고 싶다. 와인 역시, 추운 겨울 내내 우리에게 에너지와 든든함을 줬던 진하고 강한 묵직한 레드 와인보다는 가볍고 톡톡 튀는 상큼한 화이트 와인 쪽으로 자꾸만 시선이 간다.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리슬링만큼 유명하지 않아도 우리 주변엔 상큼한 음식과 더불어 개나리꽃처럼 산뜻하고 목련처럼 우아하며 화사한, 봄에 잘 어울리는 다른 화이트 와인들이 많다. 그럼 이 봄에 우리에게 생기를 선사해줄 Less Well known, but Good value, Good Quality White Wine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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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브르츠트라미너 Gewurztraminer

친한 친구의 다급한 SOS 전화가 걸려온다. 오늘 저녁 손님들을 모시고 식사하는데 코스별로 적절한 와인을 추천해달란다. “네가 추천해준 화이트 와인 이름이 뭐지? 저번에 마셨던 거 있잖니…리치 같은 과일 향 많이 나고 별로 시지 않던 와인… 게부…라고 시작하는 이름의 와인 있잖아..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주문하는데 이름을 잊어버려서 앞부분만 얘기하는데 잘 모르더라. 도대체 와인은 품종이름도 왜 이렇게 어렵니?”

와인은 아무리 마셔도 잘 취하지 않아서 술 같지 않다며 오로지 높은 알코올 도수의 술만 마시던 친구가, 병원에서 경고를 받은 후 주종을 바꾸어 와인을 마시며 투덜거린 이야기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싱그러운 과일 향에 톡톡 튀는 신맛이 받쳐줘야 화이트 와인이 레드 와인과는 다른 상큼한 풍미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그 톡톡 튀는 신맛 때문에 화이트 와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주로 남성들)도 있다.

그래서 강한 산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화이트 와인의 매력을 소개하고 싶을 때 자주 추천하는 와인이 바로 게부르츠트라미너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다. 이 품종은 독일과 프랑스의 알자스가 주요 산지인데 생산량도 많지 않고 샤르도네나 소비뇽 블랑만큼 유명하지도 않아서 전세계에 널리 생산되는 품종도 아니다. 발음도 까다로워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지 않은데 이 품종 이름의 앞부분 즉 Gewurz 는 스파이시하다는 의미로, 실제로 흰 후추나 정향, 팔각, 육두구 같은 향신료 향에, 꽃 향기 그리고 중식당에 디저트로 잘 나오는 리치 등을 비롯한 다양한 열대 과일이나 잘 익은 과일 향기 등을 품고 있어 향기만으로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와인이다.

특히 리치나 장미 향 등이 두드러지게 강해서 향기만 맡아도 그 품종을 짐작할 수 있고 입 안에서는 신맛이 두드러지기보다는 부드러워서 적당히 과일 풍미와 조화를 이룬다. 또한 마시기 편하며, 드라이한 스타일부터 스위트한 스타일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향신료와 같은 스파이시한 향을 비롯한 다채로운 풍미 덕분에, 향신료 맛이 강한 동남아시아 음식이나 중국 음식과도 아주 잘 어울리고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도 권해드리면 대부분 좋아하시는 무난한 와인이다.

피노 그리지오 Pinot Grigio

우리 나라엔 많이 들어 와 있거나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탈리아 북부의 트렌티노-알토 아디제 Trentino-Alto Adige와 프리울리 –베네치아 쥴리아 Friuli-Venezia Giulia 지방은 국제 품종과 토착 품종으로 상큼하고 풍부한 과일 맛에 균형 잡힌 풍미를 지닌 가격 대비 아주 좋은 품질의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 중 피노 그리지오(알자스의 피노 그리와 같은 품종이다)로 만든 화이트 와인은 이탈리아 자국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가 있다. 가벼운 풍미에 적절한 신맛과 미네랄, 과일 맛이 조화를 이루는데 구운 치킨 샐러드나 가벼운 생선 요리, 샌드위치와 같은 가벼운 점심이나 봄 나들이에 곁들이기 좋은 와인이다. 특별히 음식 없이도 집에서 편한 분위기에서 가볍게 한잔하기에도 적당하다. 일반적으로 가벼운 스타일로 인식되는 이 와인이 최근에는 미네랄과 과일 향이 진하면서도 산미와 균형이 잘 맞고 복합미가 있는 고급스러운 스타일로 나오기도 한다.

프랑스 알자스의 피노 그리 Pinot Gris는 피노 그리지오에 비해 좀 더 스파이시하고 스모키한 향을 발산하며 전반적으로 풍미가 더 강한 스타일이다. 게뷔르츠트라미너처럼 잘 익은 과일 향이 풍부하며, 특히 노블 롯(Noble Rot, 귀부균) 영향을 받거나 늦게 수학하여 잘 숙성된 피노 그리는 부드러운 질감에 농밀하면서 자두나 살구와 같은 말린 과일 향과 미네랄, 그리고 여러 가지 맛들이 조화를 이루어, 어느 프리미엄 화이트 와인 못지않게 훌륭한 풍미를 보여준다.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주로 스위트한 스타일로 만들어지는 뮈스까 Muscat 는 알자스에서는 드라이하며 산뜻하고 우아한 스타일의 화이트 와인으로 생산되는데, 식전 음료로 적당하다.

소아베Soave 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화이트 와인

로미오와 쥴리엣의 무대가 되는 유명한 관광지 베네토 근처에서 생산되는 이 와인은, 누구나 마시기 편한 무난한 스타일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이며 Soave Classico는 좀 더 복합적인 향과 풍미를 지니고 있다. 사실 소아베는 마을 이름이고 품종은 가르가네가 라는 다소 생소한 품종인데 가금류 요리나 생선회 종류, 조개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방의 아주 오래된 마을 오르비에또 Orvieto 도 비슷한 스타일의 또 하나 마시기 편한 부담 없는 가격대의 와인이다.

남쪽에 있는 시칠리아Sicilia 섬은 이탈리아의 와인 산지 중 가장 면적이 넓고 생산량도 많으며 다양한 품질의 와인이 생산된다. 이 지방에서는 많은 와인들이 IGT 등급으로 생산되지만 그 품질은 상당히 좋은 편으로, 화이트 와인의 경우 샤르도네와 같은 국제 품종과 토착 품종을 섞어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시칠리아 와인은 주로 여러 품종이 블렌딩된 아주 저가의 대량 생산되는 와인을 떠올리게 했지만, 최근에는 국제적으로 견주어도 손색없는 품질에 가격대도 높은 고급 와인들이 생산되고 전세계적으로도 인기가 있다.

리아스 바이싸스 Rias Baixas

스페인 와인하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레드 와인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품질 좋은 화이트 와인도 생산된다.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 산지는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의 리아스 바이싸스이다. 특히 알베리뇨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미네랄과 산도가 감귤류의 상큼한 과일 향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깔끔한 와인으로, 꼬치 구이나 닭고기와 버섯, 야채를 넣고 볶다가 굴 소스를 넣어서 간단히 만드는 볶음 요리에도 잘 어울린다.

스페인의 화이트 와인은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 수입하는 곳도 많지 않고 와인 매장에서 찾기도 쉽지 않지만, 지중해의 뜨거운 열기를 간직한 스페인에 이렇게 상큼하고 담백한 화이트 와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필자도 처음엔 스페인 화이트 와인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스페인을 여행하는 동안 지중해의 뜨거운 열기에 지쳐있던 오후마다 상큼한 산도와 과일 향을 지닌 깔끔한 스페인의 화이트 와인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청량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알리고떼 Aligote

흔히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하면 샤르도네를 떠올리지만 알리고떼라는 품종으로 만든 맛있는 화이트 와인도 있다. 이 와인은 적당히 산도가 높고 가벼운 과일 향기에 꽃 향기와 미네랄이 살짝 감돌며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아, 집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간단히 요리해 먹을 때나 야외 바비큐, 피크닉 등에 가볍게 마실 수 있는 편한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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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보다 white!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냐고 물으면 레드 와인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더 많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상 우리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에는 화이트 와인이 무난하게 어울릴 때가 더 많다. 화이트 와인의 상큼함은 기름기 있는 부침 요리를 보완해주고, 약간 단맛이 나는 화이트 와인의 경우 우리가 즐겨먹는 매운 음식의 맛을 어느 정도 상쇄시켜준다. 특히 일 때문에 지치고 피곤하고 힘들 때 상큼하면서도 살짝 단맛이 나는 화이트 와인 한잔을 마시면, 술을 마신다는 부담 없이 어느 정도 피로감도 풀 수 있다.

또한 화이트 와인은 미각을 상큼하게 해줄 수 있는 가벼운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 싱싱한 상추, 브로콜리 등 여러 가지 봄 채소 샐러드에 술이나, 생강, 허브 등을 넣어 비린내를 없앤다. 여기에 잘 삶은 닭 가슴살을 잘게 찢어 얹고 발사믹 소스나 올리브 오일&식초 드레싱 같은 가벼운 드레싱을 뿌려서 피노 그리지오나 소아베를 곁들이면, 만사 귀찮은 나른한 주말 오후, 가볍지만 영양가 있고 담백한 점심이 될 수 있다.

▶ 고추 가루나 고추장, 식초, 설탕을 이용하여 새콤달콤한 양념장을 만들어 맛깔스럽고 깔끔하게 버무린 봄 나물이나, 전복, 소라, 새우, 미역으로 싱싱한 해산물 모듬 초회를 만들 때는 매운 맛을 보완해줄 수 있도록 약간 단맛이 도는 독일산 리슬링을 준비하면 좋다.

▶ 노릇노릇, 바삭바삭 구운 가자미 같은 생선 요리는 알자스에서 생산되는 약간 바다감이 있고 스모키한 풍미의 피노 그리, 혹은 세미용과 샤르도네가 블랜딩된 풍부한 맛의 호주산 화이트 와인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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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동안 머리 속에서 우리 집 봄맞이 주말 프로젝트의 가상 시나리오를 준비해본다. 평소에는 주말이 되면 모든 일에 무기력하고 의욕 상실 증세를 보이며, 간신히 끼니만 때우고 소파를 벗삼아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하지만 이번 주말은 창문을 활짝 열고 봄맞이 대청소라도 해야겠다. 겨울의 묵은 먼지를 훌훌 털어버리고 봄 기운을 집 안 가득 맞아 들이자.

그리고 주말 저녁 메뉴로는 냉이국을 준비해야겠다. 깔끔하게 우려낸 멸치 다시 국물에 된장을 풀고, 팔팔 끓을 때 다듬어 놓은 냉이를 넣고 가볍게 끓이면 향긋한 냉이 향기가 구수한 된장국 냄새와 어우러져 집안 가득 봄 내음이 퍼져나간다. 살짝 데친 오징어와 두릅 나물을 보기 좋게 담고, 싱싱한 병어는 무와 청고추, 홍고추를 넣고 간장 양념으로 삼삼하게 조려낸다. 싱싱한 토마토, 상추, 가벼운 드레싱으로 샐러드를 준비하고 부추와 조갯살, 새우, 양파, 깻잎 등 갖은 야채를 넣고 전을 부쳐 접시에 담아내면 어느 봄날 일요일 우리 집 저녁 식사 준비가 완료된다.

TV 대신 오디오에 비발디의 사계 1악장 ‘봄’을 틀어 놓고 집안 전체를 밝고 화사한 선율로 채워보자. 봄의 향긋한 음악 소리가 식탁 주변을 감싸고 돈다. 음~~뭐가 빠졌지? 그렇지, 와인!! 무슨 와인을 마실까? 사실 어떤 와인들 무슨 상관이랴. 이 봄의 느낌을 밝고 화사하게 전달해줄 수만 있다면!

차게 식혀놓았던 이탈리아 산 피노 그리지오를 꺼내서 아담한 화이트 와인 글라스에 따른다. 밝은 레몬 골드 색상이 봄의 푸르름을 담아낸 식탁 위에서 한층 더 반짝거린다. ‘쨍’하며 청아하게 울리는 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우리 가족의 소박한 만찬이 시작된다.



글쓴이 _ 이인순
WSA pdp (Wine & Spirits Academy) 교육부장 및 대표강사
<사진제공 _ 독일와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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