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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카베르네 프랑의 진실을 느끼다

주인공이 빛날 수 있는 것은 뛰어난 조연이 있기에 가능한 것처럼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은 카베르네 소비뇽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보조적인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조연으로 살란 법은 없는 것… 제56차 와인 아카데미에서는 당당히 주인공으로 등극한 카베르네 프랑 와인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카베르네 프랑은 레드 와인을 만드는 검은 포도 품종 중 하나이다. 1997년 카베르네 프랑의 DNA 분석 결과, 백포도인 소비뇽 블랑과 함께 카베르네 소비뇽의 부모가 되는 품종이라고 밝혀졌다. ‘형 만한 아우가 없다’고 하지만 와인의 세계에까지 통하는 건 아닌 듯 하다. 18세기 말 쌩떼밀리옹의 리부르네(Liboutnais), 뽀므롤, 프롱삭에서 카베르네 프랑으로 질 높은 와인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카베르네 프랑은 이보다 훨씬 전, 프랑스의 남서쪽, 르와르의 쌩 니꼴라 드 부르게이(St-Nicolas-de-Bourgueil) 에서 재배되었다고 전하고 있어 상당히 오래된 품종임을 알 수 있다.

서늘한 날씨와 잘 맞는 카베르네 프랑은 작고 껍질이 얇으며 카베르네 소비뇽에 비해 싹이 트고 익는 것이 빠른 편이다. 이는 서리가 잦은 봄철에 낙과 현상(열매가 채 익기 전에 떨어지는 현상, coulue: 끌루) 을 일으키기 쉽지만 수확철 날씨가 나빠지기 전에 충분히 익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보르도의 메독과 그라브에서는 전통적으로 카베르네 프랑을 15% 정도 재배하고 다른 품종들과 블랜딩하는데,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가 날씨의 피해를 입는 것을 대비하는 보험의 일종이나 마찬가지다.

카베르네 프랑으로 만든 와인들은 색깔과 타닌이 진하지 않은 편이고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에 비해 숙성이 빠른 편이다. 보통 카베르네 프랑 와인은 라이트(light) 에서 미디엄 바디(medium body)를 가지며 과일의 맛이 많이 난다. 높은 산도와 독특한 미네랄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풀 같은 아로마를 느끼게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보르도의 메독과 그라브에서는 블랜딩을 위해 재배하지만 쌩떼밀리옹에서는 블랜딩을 하되 주품종으로 삼기 위해 재배한다. 카베르네 프랑의 내구력을 보여준 세계적인 명주, 샤토 슈발 블랑(Ch. Cheval blanc) 또한 쌩떼밀리옹 출신이다. 그 다음 주목할 곳은 프랑스 서쪽의 르와르(Loire) 이다. 특히 부르게이(Bourguril), 쉬농(Chinon) 에서 100% 카베르네 프랑으로 레드 와인을 생산하고 카베르네 당주(Cabernet d’Anjou) 에서는 카베르네 프랑 로제 와인을 생산하는 등 남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고 있다. 이태리의 경우, 오래 전부터 북동부 프리올리(Friuli) 에서 재배했고 수퍼 투스칸 와인을 생산하는 토스카나의 와인 메이커들은 카베르네 소비뇽에 이어 카베르네 프랑을 선택해 실험을 거듭했다.

바다 건너 신대륙에서는 단일 품종 와인에 반대하며 보르도 블랜딩을 따르는 와인 메이커들 대부분이 카베르네 프랑을 받아들였다. 서늘한 기후를 가진 서호주 남부, 뉴질랜드에서 재배되고 있고 캘리포니아도 빼놓을 수 없다. 초기엔 메를로와 혼란을 일으켰던 캘리포니아의 와인 메이커들은 1980년대부터 재배에 열을 올렸고 대부분 대중적인 와인을 생산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보다 서늘한 북미의 북부와 동부 즉 워싱턴 주, 뉴욕 주, 버지니아 주 등에서는 주로 블랜딩용으로 재배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아르헨티나의 멘도자(Mendoza), 칠레에서도 재배하고 있다.

그저 블랜딩 품종 중 하나로 알려졌던 카베르네 프랑은 샤토 슈발 블랑(Ch. Cheval Blanc) 을 통해 당당히 그 내구력을 증명받았다. 또한 이태리의 컬트 와인, 테누타 디 트리노로 (Tenuta di Trinoro) 에서도 완숙미를 갖춘 카베르네 프랑의 맛을 보여줘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다시 한번 테루아르와 와인 메이커에 따라 같은 품종일지라도 전혀 다른 와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것이다.

시음와인 소개

과일의 아로마와 감초 향 등이 어울려 편하게 마실 수 있는
Domaine de La Butte, Bourgueil 2000

미네랄의 향과 맛이 매우 독특했던 Ch. De La Grille 1998, Chinon


구운 오크향과 달콤한 베리류의 느낌이 강했던
Valdivieso, Single Vineyard Cabernet Franc Reserve 2003


자두쨈과 블루베리의 맛이 많이 느껴지고 다소 무거웠던
Orzada Cabernet Franc 2003


강했던 아로마에 비해 다소 가벼운 맛을 느끼게 한
Vignamaggio Cabernet Franc 1999

참석자들 대부분에게 좋은 평을 받았고 실키한 텍스춰와 신선한 피니시가 돋보였던
Le Cupole 2003, Tenuta di Trinoro

부드러운 타닌과 과일맛이 서로 어우러져 풍부한 느낌의
Paleo 2000, Le Macchiole


베리류와 제비꽃의 느낌이 진하게 나며 한없이 부드러운 느낌의
Ch. Ausone 1997


검은 과실과 감초, 초코렛 등의 아로마가 잘 어울려
우아하고 모나지 않은 타닌과 긴 피니시를 느낄 수 있는 Ch. Cheval Blanc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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