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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한국만의 와인 소비 성향일까? 와인 양조자들의 기술의 변화일까? 전에는 수년 간의 숙성 기간이 지나지 않고는 시음할 생각도 안 했던 와인들이 시장에 나오기 무섭게 소비되고 있다.

한 와인의 오랜 전통과 역사를 신뢰하고 그 맛의 발전에 기대를 걸고 기다리기보다는 잘못 보관되는 것을 예방한다며, 미리 맛을 봐야 한다며 일찍 개봉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제대로 숙성된 와인들은 너무 가격이 비싸 그 맛을 알려면 조금이라도 가격이 저렴할 때 마셔야 한다는 다소 일리가 있어 보이는 이유를 대기도 한다.

와인 생산자들 또한 쉽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과일 향이 중심이 되는 와인들을 많이 시장에 내놓는데도 변화의 이유가 있다. 그래서 오랜 숙성을 통해서 얻어지게 되는 2차적인 향이나 맛을 기대하기 보다는 와인의 과일 향이 보다 힘있게 드러낼 때 와인을 마시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와 같이 와인을 즐기는 이들의 성향 변화에도 불구하고 맛의 조화로운 발전을 즐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인내해야 되는 샤또 그루오 라로즈(Chateau Gruard Larose)는 실로 배짱 있는 와인이다. 이 샤또의 주인들이 그랬고 이들이 고집한 와인 스타일도 그렇다.

당시 주위 상황과 타협하고 쉽게 와인을 만들고 팔기 보다는 와인을 최고로 인정해주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최고로 인정 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은 샤또 그루오 라로즈의 오랜 역사와 오늘날의 모습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샤또 그루오 - 라로즈는 처음부터 배짱 있는 와인이었다. 1757년 그루오家의 두 아들들이 집안 소유였던 살테냑(Sartaignac), 뒤 데르(Du Derle) 포도원을 도멩 드 트낙(Domaine de Tenac) 포도원과 하나로 만든 후, “퐁 브도(Fond bedeau)”라는 인근 명소의 이름을 따서 와인에 붙였다.

이는 명소 만큼이나 자신들의 와인이 유명해지기를 또는 그에 버금가는 인지도를 얻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작명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해지는 에피소드를 보면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에 동의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루오家의 두 아들 중 하나는 판사였는데 쎙 쥘리앙은 물론 보르도 전체 와인상들이 다 알아주는 괴짜였다고 한다.

한 해는 와인 경매에 와인을 가져와 1토너당 200프랑이라는 높은 가격을 부르더라는 것이다. 이에 아무도 호응을 하지 않자 그루오는 그들의 취향과 평가에 문제가 있고 엉터리라며 화를 내고 경매장을 요란스럽게 나가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몇 달 안에 다시 와서 50프랑을 더 올린 가격을 제시하는 배짱을 부렸다고 한다. 그의 배짱이 비단 이번 한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 사지 않으면 분명 몇 달 안에 또 300프랑으로 가격을 올려서 와인을 팔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하고 그 자리에서 한해 와인을 다 사버렸다는 후설도 있으니 대략 그의 성격이 상상이 될 것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 뒤에는 자신의 와인에 대한 자신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기도 한다.

여하튼 그의 이와 같은 배짱 두둑한 행동은 1778년 그의 뒤를 이어 이 샤또의 주인이 된 죠셉 세바스챤 드 라로즈(Joseph Sebatian de la Rose)에게서도 나타난다.

드 라로즈는 결혼을 통해 그루오 샤또의 소유권을 얻게 되자 자신의 이름을 와인에 더해 샤또 그루오 라로즈를 만든다.

그러나 그가 와인에 붙인 것은 비단 이름 뿐만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와인 레이블을 장식하고 있는 모토 “ 와인의 왕, 왕들의 와인(Les Rois de Vins, le Vins des Rois)”도 드 라로즈가 와인에 붙인 것이다.

귀족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매우 사교성이 좋은 그는 자신의 와인을 궁정과 귀족 사이에 유통시켰으며, 이내 귀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1795년 그가 사망했을 당시에는 프랑스 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 심지어 미국에까지 이 와인을 수출했다고 하니, 자신의 와인에 대한 자부심과 이를 판매하는데 보인 배짱은 장인 그루오 못지 않았던 것 같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포도원과 샤또가 나눠지고 합쳐지고 하다가 1867년에는 싸제(Sarget)와 포르(Faure)가 샤또 그루오 라로즈를 나눠 갖게 된다. 1855년 파리 국제 박람회를 위해 보르도 일부 지역의 와인에 등급을 메긴 결과 2등급 크뤼 와인으로 선정된 샤또 그루오 라로즈.

Cocks and Feret 와인 평가지에서 Sarget의 와인이 더 좋다고 하기는 했지만 이 둘을 어찌 구분했는지 궁금했다. 이유는 한번 배짱 있는 샤또 그루오 라로즈면 평생 이름에 자신이 있는 것인지 두 소유자들은 한 레이블, 즉 샤또 그루오 라로즈의 이름으로 와인을 만들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해 제 아무리 소유자가 나뉘어도, 와인은 모두 좋을 수 밖에 없고, 생산자의 구분 없이 파는 것이 싫으면 그만두라는 식이었다. 이 정도면 상당한 배짱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는가?

물론 그저 관심이 없어서 전에 가지고 있던 샤또의 이름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 싸제와 포르가 그들의 와인에 대해서 정확히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기록하는 문건들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샤또 그루오 라로즈 와인이 심한 품질의 저하나 스타일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소유주들이 아주 무관심했거나 ‘왕들의 와인, 와인의 왕’을 생산한다는 데에 대해 전혀 자부심을 느끼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샤또 그루오 라로즈는 양조에 있어서 뿐 아니라 판매에 있어서도 자신감을 보여줬다. 싸제의 소유분과 포르의 소유분을 1917년과 1935년 두 번에 걸쳐 매입할 수 있었던 보르도의 와인상 Cordier는 와인의 유통을 전담하는 용기를 보였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보르도의 샤또들은 와인이 출시되기 전부터 와인 중개상들과 가격을 결정하고 판매량을 정한다. 하지만 코르디에 社는 별도의 중개인 없이 자신들이 샤또 그루오 라로즈의 와인을 전담하여 판매했다.

이와 같은 판매 방법은 여러 가지 위험이 따른다. 이런 독점적 판매 방식은 소비자들에 의해서 가격이 정해지지 않으므로 결국에는 가격 조정이나 재고로 이어지게 되므로 판매하는 사람의 입장에는 상당한 부담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1993년 프랑스 대기업 Alcatel Alsthom에 매각한 이후에도 Cordier社는 샤또 그루오 라로즈의 와인을 독점하여 판매했으며, 오래 전 그루오 판사가 했던 것과 같이 시장이 결정해 주는 가격이 아니라 자신들이 평가하여 책정하는 가격으로 와인을 판매하는 것을 고집해왔다.

아마도 코르디에社가 이와 같은 판매 방식을 고집한 이유와 사또 그루오 라로즈는 1997년 다시 Groupe Taillan이라는 보르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와인너리를 소유하고 있는 회사의 관심을 끌게 되어 매입으로 이어지게 한 것은 배짱 있는 와인 양조자 조지 파울리(George Pauli)가 있었기 때문이다.

30여 년간 샤또 그루오 라로즈의 와인 양조를 전담하고 있는 Technical Director인 Pauli는 쉽게 와인을 만들기 보다는 포도에 최대한 많은 것을 제공하고 와인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유출해 내는 것이 옳다고 보는 와인 양조자이며 소유주가 여러 번 바뀌는 중에도 한결 같은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해 내는 샤또 그루오 라로즈의 포도원을 제일로 잘 아는 심지 굳은 사람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코를 잡고 인상을 찌뿌려도 소의 배설물을 비료로 사용하는 것이 좋은 와인을 만드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샤또의 한 켠에는 소 80마리가 사육되며 매년 샤또 그루오 라로즈의 202 에이커 포도밭에 천 톤이 넘는 소 배설물과 양조에 사용되고 남은 포도 찌꺼기를 비료로 밭에 주고 있다.

Pauli에 의하면 이와 같은 작업은 자갈과 이회토가 대부분인 샤또 그루오 라로즈에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하고 여기서 재배된 포도들로 하여금 복합적이고 진한 맛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Pauli는 와인을 양조함에 있어 발효 전 침용과정(pre-fermention maceration/ cold-soak)을 잊지 않고 거치며, 매년 와인의 1/3은 감산발효/유산 발효를 한다. 발효 전에 침용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포도 껍질 등에서 더 많은 맛과 색의 요소를 유출하겠다는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이 과정을 모든 와이너리에서 쓸 수 없는 방법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면 어머니의 모피 코트를 입은 어린이 같은 와인이 나오기 때문이다. 즉,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맛의 뼈대가 탄닌과 색소 등의 요소들에 의해서 눌리고 버겁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샤또 그루오 라로즈의 와인도 출시된 직후에 시음했을 때는 이처럼 탄닌이 압도적으로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다른 좋지 않은 와인들과 달리 사또 그루오 라로즈의 와인은 숙성 기간을 통해 충분히 ‘모피 코트’에 맞게 몸이 자란다. 향과 맛이 부드러워짐과 동시에 깊이 있고 다양한 면모를 보이게 된다. 그래서 Pauli의 이와 같은 와인 양조법은 양조자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자신 넘치는 선택이며, 샤또 그루오 라로즈의 배짱 넘치는 전통과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까베르네 소비뇽 57%, 메를로 30%, 까베르네 프랑 7%, 쁘디 베르도 4% 그리고 말벡 2%의 포도 품종의 배합으로 만들어내는 샤또 그루오 라로즈는 같은 셍쥘리엥의 4등급 크뤼 와인인 샤또 딸보와 1993년까지는 코르디에社의 소유여서 많이 비교가 된다. 이 둘은 그 토양이나 배합 비율에 있어서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사실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는 조건에서 샤또 딸보가 까베르네 소비뇽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봐서는 맛이 훨씬 강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샤또 딸보의 맛은 샤또 그루오 라로즈가 지닌 맛의 깊이와 오랜 숙성 가능성 그리고 맛의 신선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때 배짱 부리면서 가격을 인상하던 그루오의 배짱의 근원이며 2등급 와인의 특권인 것이다.

1997년 이 샤또를 인수한 Groupe Taillan의 CEO Jean Merlaut는 이 샤또가 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여러 다른 와이너리들 중 가장 빛나는 보석이라고 했다. 그리고 소더비 와인 백과사전(The New Sotherby’s Wine Encyclopedia)의 저자 Stevenson은 다음과 같이 샤또 그루오 라로즈를 평가한다:

“ [샤또 그루오 라로즈는] 셍 쥘리엥의 어느 다른 와인보다는 더 단단한 맛의 구조와 일정한 품질을 가진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다. 그래서 작황이 별로 좋지 않았던 해라고 하는 1980년대의 이 샤또의 세컨드 와인(그랑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외된 와인으로 만든) Sarget de Gruaud-Larose만 마셔보아도, 샤또 그루오 라로즈가 지니고 있을 진정한 잠재력을 깨닫게 된다. ”

입안 가득 매우는 진한 맛과 향 그리고 오랜 숙성을 통해서 잘 조화를 이루면서 드러나는 향기와 탄닌의 맛. 이것이 이 샤또 그루오 라로즈의 배짱에 대한 근거이고 40년까지도 기다렸다 마시게 하는 이 와인의 멋이다. 그리고 우리가 참고 기다려서 더한 설레임으로 와인을 만나는 이유이다.

[_이석기_]


1. This large property produces consistently great wines of a far more solid structure than most St.-Julien wines. Anyone one who has tasted the supposedly mediocre 1980 Sarget de Gruard-Larose(made from the wines rejectedf from the grand vin), will realized the true potential of Chateau Gruard-Larose in any year. Stevenson,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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