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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단순히 상품을 사고 팔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합니다. 품질이 엇비슷한 제품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졌거나 화제의 중심이 있는 제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산업 전반에서 스토리는 필수적인 마케팅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담긴 상품이라면 와인만한 것이 있을까요? 단적인 예로 와이너리의 역사, 테르와, 포도나무의 재배 방법과 양조, 역사적인 인물과의 관계 등등 캐면 캘수록 수없이 나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회자되면서 자연스레 돈 안들이고 와인을 홍보하는 효과도 보게 됩니다.

와인 역사가 긴 구대륙에서는 와인과 얽힌 이야기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부샤 페르 에 피스(Bouchard Pere & Fils)는 부르고뉴 본에 있는 유서깊은 네고시앙입니다. ‘아기예수 와인’으로 알려진 빈 드 랑팡 제쥐(Vigne de L'Enfant Jesus)는 부샤의 대표적인 와인입니다. 1791년에 약 4ha의 포도밭을 인수해 현재까지 독점 생산하고 있는데요.

17세기 원래 이 포도밭은 자갈이 많아서 레 그레브(Les Grèves)로 불렸다고 합니다. 당시 포도밭을 소유하던 카르멜파 수도회가 불임이었던 앤 여왕에게 곧 아기를 출산할 것이라 고 했던 예언이 적중한 것을 두고(그 아기가 태양왕 루이 14세입니다.) “l'Enfant Jésus”라는 새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레이블에도 아기 예수가 그려져 있어 출산을 축하할 때 선물하면 안성맞춤이지요.

이렇게 와인을 둘러싼 인문학적인 배경은 이야기로 써먹기 좋습니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와인의 가치를 더 높여주는 듯 하며 값비싼 이유를 납득하게 해줍니다. 또 하나 유명한 이야기가 담긴 와인을 알아볼까요?

세계에서 가장 귀하고 비싸다는 DRC의 로마네 꽁티(Romanée Conti). 원래 라 로마네(La Romanée)의 일부 밭을 부르봉 왕가의 꽁티 왕자가 사면서 ‘로마네 꽁티’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보아 대단히 자신만만한 사람인 것 같네요.

구입 과정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꽁티 왕자의 경쟁자는 다름아닌 루이 15세의 정부, 퐁파두르 후작부인이었습니다. 퐁파두르 후작부인이야 검색 창에 이름을 넣기만 하면 관련 정보가 주르르 뜰 정도로 유명하지요. 당시 문학, 예술 분야를 적극후원하며 큰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이 경합에서 패배의 쓴 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최종 구입자가 된 꽁티 왕자는 금화 8,000 리브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불했지요.

여기서 여러분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18세기에도 로마네 꽁티가 정말 진귀하고 탁월한 와인이었음을 알게 될 겁니다. 듣고 보니 로마네 꽁티를 꼭 한번 마셔야겠다는 로망이 생겼나요? 아님 오를 수 없는 산이라고 포기하게 되었나요? 둘 중 어떤 마음이던지 여러분은 로마네 꽁티의 가치를 인정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지요.

일찍이 이야기의 힘을 알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로 샴페인 생산자들이었고 특히 모에 에 샹동(Moët et Chandon)의 활약이 놀랍습니다. 모엣 집안의 장 레미 모엣(Jean Rémy Moët)은 프랑스 왕실 및 귀족들 같은 권력층과 연줄을 만들어 소위 VVIP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군사학교에 만난 나폴레옹과도 친한 사이를 유지했고 훗날 황제가 되었을 때, 자신의 집이 있는 에페르네로 초대해 극진히 환대했습니다.

모에 에 샹동은 대표 샴페인의 이름을 나폴레옹 황제를 의미하는 브뤼 임페리얼(Brut Imperial)으로 지어서 1869년에 정식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샴페인엔 이런 이야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모에 에 샹동은 샴페인 역사상 첫 번째 퀴베 프레스티지 샴페인 동 페리뇽(Dom Pérignon)을 1936년에 출시합니다. 모두들 알다시피 동 페리뇽은 에페르네 인근 오빌레 수도원의 수도사로 튼튼한 영국산 유리병 도입, 코르크 마개 최초 사용, 가지치기와 블렌딩 등 샹퍄뉴 와인의 생산 역사에 큰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19세기 샴페인 업계는 동 페리뇽을 ‘샴페인의 아버지’로 홍보하며 그의 이야기를 퍼트렸습니다. 샴페인을 맛 본 순간 ‘별을 마시는 기분이다.’라고 감탄했다는 얘기도 함께요. 사실 동 페리뇽은 샴페인을 발명한 인물이 아니었지만, 당시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모에 에 샹동은 발 빠르게 자사의 최고 샴페인을 동 페리뇽으로 이름 지었고 수많은 이야기까지 덤으로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문학적인 배경을 가진 구대륙의 와인에 비해 신대륙 와인의 이야기는 상당히 약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제 미국 와인 역사의 전설이 된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와 그의 와인 이야기는 곧 미국 이민 역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태리 빈민으로 미국에 이주해온 로버트 몬다비는 와인에 대한 열정으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구대륙의 어떤 와인 이야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지 않습니까? 현재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는 다국적 기업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에 소속되어 실제로 몬다비 가문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로버트 몬다비 와인을 고를 때 그의 열정과 자신감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야기 만들기는 비단 외국에만 있지 않습니다. 국내에서 ‘18홀을 65타에 치라’란 의미로 마케팅을 펼친 산 페드로(San Pedro)의 1865 와인은 해마다 골프장에서 최고 판매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말 목표집단과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 아닌가요?

원래 1865는 산 페드로사의 설립 년도인데, 수입사에서 국내에 마케팅할 때 골프와 관련 지어 이야기를 만들었지요. 창립 년도의 의미로만 마케팅 했다면, 지금처럼 성공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의 힘은 매우 강합니다. 골치 아픈 품종이름이나 양조방법 등보다는 와인에 얽힌 독특한 이야기에 끌리는 법입니다. 이야기는 와인을 특별하게 만들기도 하고 친근하게 느끼게도 합니다.

지금 와인을 장바구니에 넣을까 말까 고민하는 소비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독창적이며 흥미로운 이야기, 이 세상에서 단 하나의 와인으로 만들어줄 이야기만이 소비자의 지갑까지도 열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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