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인기 만화책, <신의 물방울>을 보면 주인공이 섬세하고 능수능란하게 디켄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디켄팅 솜씨도 그렇지만, 곡선이 아름다운 디켄터에 먼저 눈길이 갑니다.
디켄터는 로마인의 와인 서빙용 병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와인을 병이 아닌 항아리에 담아 판매했기 때문인데, 요즘과 달리 유리가 아닌 은을 사용했습니다. 16세기 유리 공예기술이 발달했던 베니스에서 유리로 플라스크, 병, 물 주전자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본적인 디자인의 디켄터]
이후 이 유리 공예기술은 전 유럽으로 퍼지는데 특히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원산지와는 차별되게 고품질의 유리 제품들이 생산되었습니다. 17세기에 들어서야 디켄터다운 외형을 가진 와인 주전자(wine jug)가 등장했지요.
당시 디켄터는 넓은 원통형에 둥근 어깨와 좁은 목 그리고 손잡이와 마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후 손잡이가 없는 호리병 비슷한 디켄터가 등장하면서 디자인의 혁신을 겪게 되었습니다.
요즘 디켄터는 와인의 종류, 용량 등에 따라 기능적으로 디자인이 조금씩 다른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올드 와인용과 일반 와인용입니다. 공기 접촉이 적어야 하는 올드 와인용 디켄터는 밑바닥이 작은 편이고(일반적으로 호리병 형태가 많아요.) 공기 접촉이 필요한 어린 와인용은 반대로 밑바닥이 넓은 편입니다.
용량에 따라서는 매그넘(magnums/1.5l) 와인용으로, 일반형보다 두 배 정도 큰 디켄터도 있습니다. 최근 예술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디켄터들이 선보이고 있는데, 이런 디켄터에 와인을 담아두면 시각적인 만족감이 훨씬 커지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와인 글래스 왕국인 리델(Riedel)에서 생산되는 디켄터들은 저절로 입이 벌어질 만큼 아름답고 놀랍습니다. 리델은 ‘이브’(Eve)라고 하는 멋진 디켄터를 내놓았는데요. 20인치 정도 되는 높이에 언뜻 보면 코브라가 또아리를 뜰고 몸을 치켜 세우고 있는 듯합니다.
[◀리델의 신제품, 이브]
그리고 새를 모티브로 한 시리즈, 백조(Swan), 비둘기(Paloma), 홍학(Flamingo) 세 가지 디켄터에는 각각의 특징과 이미지가 잘 녹아 있습니다. 스완은 우아하고 팔로마는 날렵한 곡선이 아름다운데, 두 디켄터는 넓은 입구로 와인을 넣어 관처럼 길게 좁아지는 목으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플라밍고는 긴 다리와 긴 목을 가진 홍학을 꼭 닮은 길고 좁은 목이 매력적입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신들이 켜던 하프 모양을 한 아마데오(Amadeo)는 리델 250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디켄터는 예술품 같이 아름답습니다.
[스완(좌)과 팔로마(우)]
[플라밍고(좌)와 아마데오(우)]
모던한 디자인으로 사랑받는 슈피겔라우의 디켄터는 전통적이고 익숙한 디자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심플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어필합니다. 언뜻 보면 와인 글래스처럼 보이는 그랄(Graal)은 1L 용 디켄터입니다. 뾰쪽한 부분만 없으면 큰 글래스 같지요.
리바(Riva)와 시에나(Siena)는 귀엽고도 독특한 디자인입니다. 목이 거의 없는 리바는 플라스크 형태와 비슷하지만 좀더 우아한 면을 살렸습니다. 반면 시에나는 미쉐린맨 같이 둥근 굴곡이 있어 생소하면서도 다시 보면 유머스러운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 굴곡 때문에 공기접촉이 완벽해진다고 하니, 디자인의 당위성을 깨닫게 됩니다.
[모던한 디자인의 오센티스 디켄터(좌)와 글래스 모양의 그랄(우)]
[귀여운 디자인의 리바(좌)와 시에나(우)]
디켄터를 사용하고 나면 미지근한 물로 깨끗이 씻은 후 물기를 모두 말려서 보관하면 됩니다. 오래 사용하다 보면 디켄터 안쪽 표면에 레드 와인의 얼룩이나 묵은 때가 생기는데, 이것은 굵은 소금을 바닥을 덮을 만큼 부은 다음 소금이 젖을 만큼 식초를 넣어 한 시간 정도 지나 흔들어주면 쉽게 없앨 수 있습니다.
디켄터는 와인을 즐기는데 있어서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품목은 아닙니다. 그러나 와인을 최상의 상태에서 마시고픈 욕심이 있다면 하나 정도 마련해두면 요긴하게 쓰입니다. 위에서 봤듯 작품 같은 디켄터가 아니더라도요.
사진: www.riedel.com / www.spiegela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