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11월 24일,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에서 소펙사(SOPEXA, 프랑스 농식품 진흥공사)와 프랑스 보르도 그랑 크뤼 연맹(UGCB, Union des Grands Crus de Bordeaux)은 65명의 회원 샤또들과 대규모 그랑 크뤼 시음회를 개최했다. 이 시음회는 2004년에 이은 두 번째 행사로 2002년 보르도 빈티지를 소개하는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열렸다.
2001년 빈티지가 소개되었던 2004년 시음회에서 국내 수입업체, 호텔, 레스토랑, 와인 샵 등 수많은 와인 전문인들의 뜨거운 관심에 화답하듯이 이번 시음회에는 65개로 작년보다 숫자가 늘었으며 작년보다 전문인들의 관심 또한 대단했다.
보르도 그랑크뤼 연맹의 샤또 회원들은 각기 다른 스타일로 와인을 생산하지만 홍보활동은 함께 함으로써 그 시너지를 배로 높이고 있다. 대규모 투어를 통해 세계 와인 관계자들과 언론들을 만날 수 있으며 새로운 시장의 잠재성을 테스트하는 장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일반 보르도 와인의 60%가 내수시장에서 판매되는 것과 달리 그랑 크뤼 와인은 80%가 해외시장에서 판매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대규모 세계 투어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신흥시장에서 시음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현재 중국, 러시아, 이태리 등을 테스트 마켓으로 삼고 있다. 이번 투어가 동경, 서울을 거쳐 북경, 상하이로 이어지는 것만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보르도 그랑크뤼 연맹(Union des Grands Crus de Bordeaux)은 1973년에 보르도 와인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프랑스 국내와 해외 시음 홍보를 시작했다. 이 연맹은 지난 30년간 지속되어 왔고 현재 130개 그랑크뤼 샤또들이 회원으로 메독(Médoc), 그라브(Graves), 뻬싹 레오낭(Pessac Léognan), 소테른(Sauternes), 바르삭(Barsac), 셍떼밀리옹(Saint Emilion), 뽀므롤(Pomerol) 등의 그랑 크뤼급 와인들이 속해있다.
작년에 이어 시음회에서 소개된 빈티지는 로버트 파커가 ‘인내심 있는 전문가들을 위한’ 빈티지라 평했던 2002 빈티지이다. 지난 2004년 1월자 디캔터(Decanter)에서 밝혔듯이 2002 빈티지의 와인들은 시간의 혜택을 받아야 그 매력을 드러낼 것이라고 했지만, 보관보다는 지금 사서 마시고자 하는 소비자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 빈티지였다. 몇몇 우수한 품질을 보증하는 와인들을 빼면 전반적으로 셍떼밀리옹보다 뽀이약과 쌩쥘리앙 와인들이 돋보였다. 단단한 타닌의 구조와 밀도, 강렬한 과실의 향과 우아함을 겸비하여 훌륭했다. 이는 자료나 비평에서 알 수 있듯이 2002년은 메를로보다 까베르네 소비뇽이 성공적인 해였기 때문이다.
2002년 보르도가 연중 기후의 급격한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까베르네 소비뇽은 성숙기 후반에 좋은 날씨의 수혜를 받았다. 좋은 날씨는 까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장점을 모두 갖출 수 있도록 도왔고 그 결과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은 맛이 풍부하고 강하며 우아한 풍미를 갖게 되었다. 반대로 메를로의 경우, 좋은 날씨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당도는 높지만 메를로 와인에는 특유의 빛깔과 풍부한 맛이 부족해서 지나치게 성숙시키고 수확을 너무 늦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소비뇽 블랑 또한 성공적이어서 2002 보르도 드라이 화이트 와인은 짙은 과일향과 신선한 구조감을 갖췄다. 스위트 화이트 와인의 경우, 2001 빈티지에 이어 훌륭한 빈티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귀부 현상이 초기에 발견되어 복합적이며 아로마의 특성이 농축되어 소테른과 바르삭 모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작년에 이은 시음회로 인해 한국 내 보르도 와인의 위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올해도 공격적인 칠레 와인의 추격을 받았지만, 아직 프랑스 와인은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수치로 본다면 작년에 이어 계속 점유율은 떨어지고 있다. 프랑스 와인의 중심은 보르도 와인이다.
그 위기를 짐작하듯이 보르도 와인의 체계적인 마케팅과 홍보 활동이야말로 1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보르도 와인만이 가진 ‘섬세함과 우아함’은 다른 지역의 와인에서 찾아보기 힘든 차별점이다. 이것이야말로 보르도 와인의 강점이자 기대를 갖고 보르도 와인을 찾는 이유이며, 이를 어떻게 널리 알리느냐가 떨어지는 앞으로 시장 확대의 최대 관건일 것이다.
해를 거듭하여 보르도의 주요 그랑 크뤼 와인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국내 시장의 중요함이 점점 드러나는 증거다. 내적으로는 와인 시장의 확대를 촉진시키고 외적으로는 시장의 중요성을 다시 검토하게 하는 시음회가 되었기를 기대해본다.
*자료 및 사진제공 : 소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