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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스페인 와인의 급부상!

6. 스페인이 세계 와인시장의 스타로 부상할 것이다.

오늘날 스페인은 전통의 탁월한 요소들과 현대적이며 진취적인 와인생산의 철학을 결합시킴으로써 와인의 뛰어난 품질과 창의성을 갖춘 새로운 리더로 떠오르고 있다. 스페인은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된 와인의 질보다는 양을 중시하는 협동조합 방식의 와인생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수령이 오래된 포도원의 존재를 재평가하게 되었다. 또한 스페인의 와이너리들은 현재 역사적 유산에 대한 집착과 현상유지에 급급한 프랑스 와인업계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다. 2015년경이면 그동안 전통적으로 뛰어난 와인을 생산해 온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와 리오하(Rioja) 지역이 뒷전으로 밀리고 또로(Toro), 후미야(Jumilla), 쁘리오라뜨(Priorat) 지역이 새로 유망한 와인산지로 크게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포도 재배면적으로 따진다면 세계 1위이며 와인생산량으로도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스페인은 한동안 ‘잠자는 거인’으로 불려왔다. 파커도 지적하고 있듯이 스페인은 질보다는 양을 중시한 협동조합 방식의 와인생산으로 저가의 와인 또는 벌크 와인의 수출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이후 리베라 델 두에로가 새로운 스타일의 현대적 와인을 생산하는 산지로 부각되기 시작하고 전통적 와인산지 리오하가 현대화되면서 스페인 와인산업의 현대적 르네상스에 핵심적 동력을 제공했다. 베가 씨실리아 우니코(Vega Sicilia Unico)를 만든 빠블로 알바레스(Pablo Alvarez)는 전통과 현대를 지혜롭게 껴안으면서 스페인 와인 르네상스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만드는 베가 씨실리아 와인은 ‘전통’의 엘리건스를 보여주고 있는데 반해 1991년 빈티지(1995년 출시)로 선보이기 시작한 알리온(Alion)은 100% 프렌치 새 오크통을 사용한 보다 화려한 인터내셔널 스타일의 ‘모던’ 와인이다.

▶ 베가 씨실리아의 Alion

파커는 이 글에서 앞으로 10년 후면 리오하와 리베라 델 두에로라는 기존의 두 클래식한 와인 산지들이 2선으로 후퇴하고 또로, 후미야, 쁘리오라뜨라는 새로운 와인산지가 전면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으나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필자는 쁘리오라뜨(‘쁘리오라또’라고도 표기하며 ‘쁘리오라뜨’는 현지 카탈로니아어로 표기한 것임)를 리오하, 리베라 델 두에로와 함께 기존의 클래식 와인산지에 포함시키고 새로 떠오르는 와인산지에서 쁘리오라뜨를 빼고 대신에 비에르소(Bierzo)를 포함시키고 싶다. 왜냐하면 쁘리오라뜨는 1990년대 후반 이후 Clos Mogador, Clos Figueres, L'Ermita, Tirant, Clos Erasmus, Clos de L'Obac, Clos Martinet, Finca Dofi 등 15개 안팎의 월드 클래스 와인들을 생산해내며 일급 와인산지로 이미 확실한 위치를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에르소는 또로와 함께 파커가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수령이 오래된 포도원의 존재를 재평가”하는데 안성맞춤인 와인산지라고 볼 수 있다. 또한 10년 뒤에 어느 산지가 전면에 부각될 것인가의 문제도 기존의 3대 클래식 와인산지와 또로, 후미야, 비에르소 등 유망한 신흥 와인 산지들이 ‘함께’ 어울려 스페인의 세계적 와인산지 그룹을 형성할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리라 생각한다.

스페인 북서쪽의 후미진 오지에 위치한 서늘한 기후지역인 비에르소는 아직 일반 와인 애호가들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도미니오 데 따레스(Dominio de Tares)에서 내놓은 ‘Pago No. 3’, ‘Bem bi Bre’ 등의 와인들은 탁월한 품질을 과시하고 있다.

▶ Dominio de Tares의 Bem bi Bre

와인산지로서 비에르소라는 이름을 한층 더 부각시킨 것은 쁘리오라뜨의 레르미따(L'Ermita)로 유명한 알바로 빨라씨오스(Alvaro Palacios)와 그의 조카 리까르도 뻬레스(Ricardo Perez)의 와인들이었다. 알바로 빨라씨오스는 일찍이 1980년대 말에 비에르소를 방문한 후 그곳에 오래 방치되어 온 수령이 60년에서 100년에 이르는 멘씨아(Mencia) 품종의 포도원에 주목했다. 그는 조카인 리까르도가 프랑스에서 양조학 공부를 마치고 샤또 마르고 등 보르도의 일급 와이너리에서 수련을 쌓은 후 돌아 온 1998년에 비에르소의 꼬루용(Corullon) 마을을 중심으로 포도원을 사들였다. 이어서 기후가 매우 뛰어났던 1999년에 가꾼 100% 멘씨아 품종의 포도나무로부터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멘씨아 품종은 보르도의 까베르네 프랑과 유사하다는 설이 있지만 아직 포도품종의 정확한 유전자적 기원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해서 1999년 빈티지로 선보인 ‘꼬루용’(Corullon)과 ‘비에르소’(Bierzo)는 와인 저널리즘과 스페인 와인 전문수입상으로부터 격찬을 받았다.(*1999년 첫 빈티지와 2000년 빈티지의 ‘꼬루용’은 <와인 스펙테이터>로부터 93점을 받음) 수령이 오랜 나무의 멘씨아 품종이 탁월한 와인메이커의 손을 거쳐 비에르소의 떼루아를 새롭게 반영한 걸출한 와인으로 탄생한 것이었다. 알바로 빨라씨오스는 와인을 2000년 3월 타계한 부친(Jose Palacios)에게 바치는 헌정와인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와인 이름을 호세 빨라씨오스의 자손들이 만들었다는 의미로 ‘Descendientes de Jose Palacios’라고 지었다. 이들은 2001년부터 기존의 ‘꼬루용’ 외에 단일 포도원 및 그에 준하는 떼루아를 표현하기 위해 새로 4가지 와인들을 추가로 생산하고 있다. 각각 200 케이스 이하일 정도로 소량 생산되는 이 와인들은 ‘산 마르띤’(San Martin), ‘몬쎄르발’(Moncerbal), ‘라스 라마스’(Las Lamas), ‘라 파라오나’(La Faraona)인데 모두 해발 고도 400m에서 900m에 이르는 고지대 경사진 포도밭에서 100% 멘씨아 포도로 만들어지고 있다. 소량 생산되기 때문에 가격도 미화 70불에서 100불 넘게 거래되며 ‘라 파라오나’는 110불이 넘는 고가의 와인이다.

비에르소가 새로운 와인산지로 각광을 받는 이유 가운데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대목은 도미니오 데 따레스, 빨라씨오스 가문 등 탁월한 와인 생산자들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스페인의 오래된 포도품종으로 비에르소라는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전통 품종의 현대화 및 떼루아의 정교한 반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스페인 와인의 현대적 르네상스를 열어나가는 에너지가 이와 같은 창의성과 도전정신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이탈리아의 볼게리(Bolgheri)라는 ‘비전통적’ 와인산지에서 ‘비전통적’ 까베르네 포도품종과 ‘비전통적’ 양조방식에 의해 싸씨까이야(Sassicaia)라는 혁신적 와인이 탄생하면서 촉발된 ‘수퍼 터스칸 와인혁명’과 흥미로운 비교가 된다. 비에르소는 최근에 ‘빠익싸르’(Paixar)라는 100% 멘씨아 품종의 새로운 명품와인이 2001년 빈티지로 출현함으로써 뜨고 있는 와인산지로서 그 성가를 더하고 있다. 스페인의 저명한 와인메이커인 마리아노 가르씨아(Mariano Garcia)가 주도하여 만든 와인으로 고지대의 수령 50년에서 80년 된 포도나무로 만든 와인인데 시음을 한 일부 전문가들은 빨라씨오스의 톱 와인들을 능가할 정도의 품질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스페인의 주목받는 신흥 와인산지는 비에르소 뿐만이 아니다. 또 하나의 장래가 촉망되는 와인산지의 대표적인 사례로 또로를 살펴보기로 하자. 또로는 까스띠야 레온(Castilla-Leon) 지방에 속한 원산지명칭(D.O.)의 하나인데 마드리드의 북서쪽 방향으로 포르투갈의 북단과 맞닿아 있다. 일반 와인 애호가들에겐 그다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 곳이 뻬스께라(Pesquera), 베가 씨실리아 등 스페인의 대표적 와인 명가들로부터 와인산지의 ‘엘 도라도’로 주목을 받고 집중적 투자대상이 된 것은 대략 1990년대 말부터였다.

▶ 베가 씨실리아의 Pintia

베가 씨실리아 가문의 ‘또로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어 시장에 선보인 첫 와인은 ‘삔띠아’(Pintia)인데 2001년 빈티지의 경우 파커로부터 95점, <와인 스펙테이터>로부터 91점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와인이다.

그러나 또로의 명성을 더욱 빛내고 있는 것은 에구렌(Eguren) 형제가 만들어내고 있는 스페인판 ‘가라쥬’ 와인들이다. 리오하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던 에구렌 형제(Miguel Angel Eguren, Marcos Eguren)가 또로에 발을 들여놓은 때는 1998년으로 이들은 포도나무 수령이 140년이 넘는 조그만 포도원을 싯가의 4배나 되는 비싼 값을 주고 매입했다. 이 포도원은 19세기 후반 필록세라가 스페인을 휩쓸 때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다. 이들은 또 포도나무의 평균 수령이 70년이 되는 포도원을 추가로 매입했다. 또로의 고유품종인 ‘띤따 데 또로’(Tinta de Toro)는 뗌쁘라니요(Tempranillo) 품종의 일종으로 포도알이 조금 더 검은 색을 띠고 있다. 마치 토스카나 끼안티에서 산지오베제로 불리지만 몬탈치노에선 브루넬로인 것과 같은 이치다. 에구렌 형제가 100% 띤따 데 또로 품종으로 만든 첫 번째 와인은 ‘누멘씨아’(Numenthia)로 포도나무 평균 수령이 70년인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프렌치 새 오크통을 사용해서 양조했다. 1998년 첫 빈티지 와인은 파커로부터 95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Numenthia’라는 이름은 ‘Numancia’ 의 옛 이베리아어 표기인데 지금으로부터 약 2100년 전에 누만씨아 지방 사람들은 로마군단의 침략에 맞서 20년에 걸쳐 영웅적인 항쟁을 전개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띤따 데 또로 포도나무도 100년 전 필록세라가 침투했을 때 끈질긴 항쟁(?)을 벌여 이겨냈고 에구렌 형제는 이를 기리기 위해 이름을 ‘누만씨아’로 정했다는 이야기다. 에구렌 형제의 최고 와인은 2000년 첫 빈티지로 생산된 ‘떼르만씨아’(Termanthia)인데 수령 140년이 넘는 띤따 데 또로 포도나무에서 극히 적은 양(350 케이스)만 생산되는 ‘가라쥬’ 와인이다. 파커로부터 98점(*와인 스펙테이터는 94점)을 받은 이 와인의 가격은 미화 145불이지만 소량 생산되어 실제로 구하기는 어렵다. 에구렌 형제는 더 저렴한 가격의 와인(미화 20불 조금 넘는 수준)으로 ‘떼르메스’(Termes)를 1999년 빈티지부터 내놓고 있는데 1000 케이스가 생산된 1999년 빈티지는 <와인 스펙테이터>로부터 92점을 받았다. 2002년 빈티지 떼르메스는 <와인 스펙테이터> 2004년 100대 와인 리스트에서 93점(미화 24불)을 받아 3위에 랭크되었다. 에구렌 형제가 열정적인 장인정신으로 빚어낸 ‘띤따 데 또로’ 와인들은 왜 또로가 각광받는 와인산지로 부상하고 있는지 잘 말해주는 전형적 사례다. [_마침표_]

▲ 왼쪽이 Numenthia, 오른쪽이 Termes

- 와인평론가 이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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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말벡 품종의 품질 상승과 미국와인 생산지역의 변화
6. 떠오르는 와인산지 이탈리아 남부
7. 품질대비 가치있는 와인 선택과 와인의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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