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S

은광표

1. '백조의 호수' 는 부르고뉴 와인과 함께?

요즘 제 주변 사람들에게는 와인 붐이 불었습니다. 전에는 생전 와인에는 관심 없을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까지 가끔씩 제게 전화를 걸어서는 "응~ 나 지금 와인 사러(혹은 마시러) 왔는데에~ 뭐가 뭔지 모르겠거든? 뭐가 좋아?" 라는 아주 광범위한 질문을 하곤 하니까요.

이렇게 와인을 처음 알기 시작하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은 대개 한 가지 주제의 변주곡들입니다. "나, 와인 좋거든? 근데 너무 어려워~ 알아야 할 게 너무 많고, 복잡해서 와인이 싫어지려고 해~ 대충 아무 거나 괜찮은 거 하나 찍어줘 봐. 뭐가 맛있어?"

이 "와인과의 대화"를 꾸준히 읽어오신 분이라면, 이미 웬만한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자랑하시겠지만, 읽어도 무슨 소린지~ 도통 감도 안 오고, 기억에도 안 남아 속만 상하셨던 분들, 그래서 '내가 이러고도 와인을 좋아해도 되는 걸까..' 고민해오신 분들을 위해, 이번 "와인과의 대화"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풀어가 볼까 합니다.

무엇보다도 와인은 날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친구여야지 내 속 상하게 하는 '웬수'가 되어선 안 되거든요!

와인을 좋아하시나요? (물론 좋아하니까 이 곳까지 와서 글을 읽고 계시겠습니다만. ^^) 그럼 춤은요? 음악은요? 노래는요? 맛있는 음식은요...?

저는 '보러 다니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춤, 콘서트, 영화, 미술 등등 눈으로 보는 건 뭐든지 좋아요. ^^ 지난 달에는 아주 특별한 발레 공연을 보고 왔는데요, 보고 느낀 게 너무 많아 여러분이랑 와인 한잔 앞에 놓고 같이 즐기려고 하는데, 어떠세요?

오늘 '와인과의 대화'는 '백조의 호수'와 함께 합니다.

▶ 오리지날 백조 여성군무

발레의 고전 '백조의 호수' 입니다. 마법에 걸린 공주를 구해내는 왕자님 얘기에 백조만큼 잘 맞 는 설정도 없습니다. 가느다랗고 우아하게 길쭉한 목, 끄트머리가 뾰족하게 위로 살짝 쳐들린 날개, 자맥질할 때 푸르륵~ 떨어주는 그 통통하고도 섬세한 궁둥이. (백조한테는 엉덩이보다 왠지 궁둥이가 더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

그러면서도 그 위엄과 무게감을 잃지 않은 자태때문에 백조는 이렇게 표현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백조의 호수를 듣던(음악), 혹은 보던(발레), 부르고뉴 레드 와인을 떠올리게 됩니다. 부르고뉴 레드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 피노 누와에 대한 설명을 보시면 여러분도 공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향, 섬세함 그리고 미묘함이 매력적이다. 까베르네 쏘비뇽이나 시라에 비해 포도 껍질이 얇아 색이 더 연하고, 바디가 (상대적으로)약하며, 강건하고, 힘 있게 압도하는 탄닌은 없지만, 와인의 중후함이나 깊이, 복합적인 맛은 그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이 훌륭하다.

어린 피노 누와는 알맞게 달콤하고, 상큼하게 씹히며, 부드럽게 입 안에 맴도는 여름 과일 맛이다. 실크처럼 매끄러운 촉감이 혀 위를 감싸고, 다양하게 느껴지는 섬세하고 우아한 맛은 라스베리, 딸기, 체리, 산딸기등 붉은 과일들의 다채로운 변주곡이다. 농축된 부르고뉴의 갓 빚은 와인들은 찰나의 커피 향이 난다. 오크 통에서 숙성되어 바닐라 향이나 모카, 시가 박스의 향도 느낄 수 있다.

피노 누와의 아로마 특성은 잡아내기가 어렵고, 설령 알아냈다 하더라도 코끝에서 금방 사라져 버린다." [COTE D'OR-A celebration of the great wines of Burgundy, Clive Coates M.W.]

어떠세요, 부르고뉴 와인이 갖는 그 떨리는 여성스러움이 조금 느껴지시나요?

부르고뉴 와인의 병 모양을 보시면 더 공감하실 겁니다. 부르고뉴 와인 병의 특징은 부드럽게 둥글게, 완만하게 떨어지는 곡선에 있지요.

어느 한 군데도 막힘 없이, 그러면서도 통통하게 흘러내리는 곡선이야말로 "백조 궁둥이" 같지 않나요? ^^ "호오, 부르고뉴 와인이 '백조의 호수'랑 그렇게 잘 어울린단 말이에요? 그럼 여성스럽고 무게감도 있는 부르고뉴 와인이 최고급 와인인가요?'

이렇게 생각하실 몇몇 여러분들도 있으시겠죠. 그러나 또 어떤 분들은 이러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와인에는 힘이 있어야죠.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와인도 좋지만, 와인 잔 안에 코를 박았을 때 (전 개인적으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 훅~ 하고 끼치는 후추향, 강건함, 입 안에 떱떠름하게 남는 탄닌, 이런 게 진정 매력 아니겠어요? '백조의 호수'와 안 어울린다고 해도 말이죠, 와인은 그런 맛이 있어야 해요."

맞습니다. 그러나 '백조의 호수'와 어울리지 않을 '남성적 와인'이라는 평가는 잠시 보류해두셔야 할 것 같네요. 저희에겐 매튜 본이라는 뛰어난 안무가가 있거든요.

"오, 그렇다면 '백조의 호수'에도 남성적인 와인이 어울릴 수 있단 말인가요?" 물론입니다. 계속해서 저만 따라오시면 알게 되실 거에요.


- 저작권자ⓒ WineOK.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1. Tango! Gotan Project! - 2

    [아르헨티나는 남아메리카 대륙 안데스 산맥 동쪽에 위치한 프랑스의 4배 크기에 달하는 나라다. 안데스 산맥 기슭을 따라 펼쳐진 계곡들은 와인 생산에 이상적인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포도원들은 남위 22-42도에 위치하여 사막 기후로 ...
    Date2003.12.02
    Read More
  2. 와인에 관한 '솔직한' 대화 (3)

    "솔직해진다는 것." 과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표현한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과연 이뿐일까요? 다른 사람들도 "아, 저 사람은 참 솔직해!"하고 인정할 때만 정말로 솔직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상대방이 이해...
    Date2003.12.01
    Read More
  3. 행복하게 와인 마시기! - 1

    1. '백조의 호수' 는 부르고뉴 와인과 함께? 요즘 제 주변 사람들에게는 와인 붐이 불었습니다. 전에는 생전 와인에는 관심 없을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까지 가끔씩 제게 전화를 걸어서는 "응~ 나 지금 와인 사러(혹은 마시러) 왔는데에~ 뭐가 뭔지 모르겠거든?...
    Date2003.12.01
    Read More
  4. 행복하게 와인 마시기! - 2

    2. '백조의 호수'는 보르도 와인과 함께? 매튜 본 이라는 영국의 현대 안무가는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왜 백조는 여자여야 할까? 남자 백조 이야기라면, 여자 백조가 표현해 낼 수 없었던 힘과 역동성을 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탄생한 것이 [매튜 본의...
    Date2003.12.01
    Read More
  5. 우리에겐 '서울 와인 엑스포'가 있다!

    세계에는 와인과 관련한 행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대의 와인관련 행사들이 종교적인 축제의 성향이 강했다면 근래의 와인 행사들은 와인을 홍보하기 위한 와인 마케팅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향이 큰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와인 행사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
    Date2003.12.01
    Read More
  6. 와인글라스는 과학입니다.

    와인글라스 없는 와인, 생각해 보신적 있으세요? 안고 없는 찐빵같다 고나 할까, 웬지 허전한 느낌이죠? 와인을 마시는 일이 가끔 불편하고 귀찮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함께 갖추어 할 몇 가지 소품들 때문일 것입니다. 코르크를 따야 하는 스크류도 있어야 ...
    Date2003.12.01
    Read More
  7. 와인의 가격이 궁금하다

    와인을 구매할 때 와인 병 앞에 놓여 있는 가격표를 100% 신임하십니까? '비싼 와인이 품질도 좋더라!' 라는 이 말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와인은 다른 주류와 달리 종류가 다양하여 코르크를 열기 전엔 결코 그 맛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와인에 대해 공...
    Date2003.12.0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69 70 71 72 73 ... 107 Next
/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