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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2. '백조의 호수'는 보르도 와인과 함께?

매튜 본 이라는 영국의 현대 안무가는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왜 백조는 여자여야 할까? 남자 백조 이야기라면, 여자 백조가 표현해 낼 수 없었던 힘과 역동성을 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탄생한 것이 [매튜 본의 스완 레이크] 입니다. 제가 지난 달에 보고 온 것도 이 공연이었지요.

매튜 본의 스완 레이크는 남자 백조들의 세계입니다. 남자 무용수들이 백조를 연상시키는 털로 뒤덮인 하의만 입고 '힘차게' 날개 짓을 하죠. 음악은 여전히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이지만 보이는 모든 것은 파격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남자 백조도 충분히 섬세할 수 있으며, 또한 섹시할 수 있음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공연이었습니다.

보이시나요? 사진 속 백조들의 강건함이요. 저는 남자 백조가 저렇게 우아하고 감미로우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답니다. 공연이 계속 될수록 땀에 미끄러지던 작은 근육들의 움직임, 백조를 연기하면서 '하~'하고 토해내던 한숨들, 그리고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던 등과 배, 나에게까지 백조들의 땀 냄새, 몸 냄새가 풍겨오는 듯 했던 그 설레임.

그것뿐인가요, 쭈욱 내뻗은 손 끝에 서린 유연함, 힘차게 달아나면서도 부드럽게 끌고 가던 발 끝, 어느 순간 스르륵 공중으로 비상하던 남자 백조들을 보면서 그 순간 저는 보르도 메독 와인들을 떠올렸습니다.

"쌩떼스테프는 탄닌 함량이 풍부하고, 오랜 기간동안 숙성하는 와인으로 보르도의 가장 전통적인 스타일을 반영한다. 힘차고 깊게 표현되는 와인 컬러에 풍부하게 들어찬 탄닌과 산도야말로 힘있고 강건한 보르도 와인의 남성성을 대변하는 대명사이다." [French Wines - Robert Joseph]

"꺄베르네 쏘비뇽을 주 품종으로 하는 뽀이약 와인은 메독의 가장 유명한 와인 중 하나이다. 전통 뽀이약 와인은 일반적으로 풍미가 강하고 짜임새가 있으며 카시스와 씨트롱향을 지닌 장기 보관용 와인이다. 바디가 있고, 기품이 있으며, 햇 와인일 때는 풍기는 생기 있는 붉은색 과일, 장미, 제비꽃, 산딸기 향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미묘한 부케를 만드는 복합적인 와인으로 장기숙성에 제격이다." [보르도 와인 - 한관규, 그랑벵 코리아]

보르도 메독 지역에서도 쌩떼스테프와 뽀이약 와인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이었습니다.


바디가 있고, 풍미가 강하며, 짜임새가 있는 남성적 와인 쌩떼스테프와 뽀이약. 남자 백조의 튼튼함에서 오는 설레임을 이 와인들처럼 잘 표현할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쌩 쥘리앙 명칭의 와인은 색깔과 골격, 짜임새, 농도의 진함이 훌륭한 와인이다. 시가 박스와 신선한 블랙 커런트의 맛이 조화를 이루어 쌩 쥘리앙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쌩 쥘리앙은 뽀이약만큼 강건한 맛은 없으나 마르고 와인보다 구조가 훨씬 짜임새 있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촉감이 특징이며 좋은 빈티지는 10년도 숙성이 가능하다." [French Wines - Robert Joseph]

쌩 쥘리앙은 뽀이약과 토양을 맞대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런데도 와인의 특색은 뽀이약보다 좀 더 유연하죠. 남자도 백조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을 하기 시작한 단계의 와인이라고 하면 될까요?

여기에서 한 단 계 더 나아가면 마르고를 만나게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와인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는 마르고 와인은 아름다운 루비색을 띠고 있으며, 섬세하고 특징적인 과일향의 부케를 발산한다. 마르고 와인은 우아하고 부드러우며 과일향이 섬세하여 메독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와인으로 일컬어진다. 미디엄에서 풀 바디까지 다양한 레드 와인은 색조 있는 부케와 함께 강직한 탄닌을 지니고 있다." [French Wines - Robert Joseph]

어떠세요, 위의 설명만 가지고는 물론 빈약하지만 -특히나 보르도를 저렇게 간단하게 설명하기란 절대 불가능이죠.- 뽀이약에서 쌩 쥘리앙을 거쳐 마르고로 오기까지, 미묘하게 여성적으로 변하고 있는 특징들이 보이나요? 정말 너무나도 딱 맞는 '남자 백조의 호수 와인들' 아닌가요?

저는 그랬답니다.남자 백조들의 끝없이 여성스러운 푸드덕거림을 보면서, '아~ 여기에 와인 한 잔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는걸?' 하며 입맛을 다셨더랬죠. 조금만 더 바라자면, 두툼한 스테이크를 센 불에 앞뒤로 치익~치익 살짝 구워서 쏘스는 최대한 간단하게 곁들여, 보르도 와인 한 잔 준비하는 거죠.

스테이크를 썰었을 때, 살짜기 피를 머금은 속살을 한 점 입에 넣고 벨벳 같은 와인도 한 모금.그리고 음악 들으면서 잠시 아무 것도 생각 안하고 눈 감고 있기. 음~

어떠세요. 저는 와인에 대해 아는 건 아무 것도 없어도, 이렇게 행복해지다보면, '흠.. 좀 더 알아봐야겠는 걸?'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처음 소개 받은 이성에게 관심이 생기면 그 사람을 마구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요.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와인을 드십니까. 와인을 좋아하는 마음만 있으면, 또 행복하게 와인을 마시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여러분 모두 100점입니다. 다음 번에는 또 어떤 공연을 보고 와서 와인이랑 행복하게 대화를 나눠 볼까요? 기다리고 계시면, 같이 또 행복할 이야기를 들려 드릴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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