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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종 (yoo@wineok.com)
온라인 와인 미디어 WineOK.com 대표, 와인 전문 출판사 WineBooks 발행인, WineBookCafe 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국내 유명 매거진의 와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같은 와인이라도 더 맛있게 마시는 방법 - 디캔팅
 

 

글 유경종

웬만한 와인애호가라면 디캔팅, 브리딩, 심지어 에어레이션 등 와인을 맛있게 요리하는 기술적인 용어 한두 개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와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의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남자 주인공이 보여준, 명주실을 뽑듯 가느다랗게 투명한 유리병에 와인을 옮겨 담는 신공이 이른 바, ‘디캔팅 Decanting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부분의 업장에서 소믈리에들은 고객에게 그처럼 멋지게 디캔팅 신공을 보여주려 노력할 것이다. 이번호에는 그와 같은 신기를 통해서 같은 와인이라도 더욱 맛있는 와인으로 바뀌는 마법 같은 방법-디캔팅의 개념과 원리를 알아보자.

와인을 소재로 한 만화인 ‘신의 물방울’은 현재까지 약 20여 권의 시리즈를 합해서 약 200만 권의 판매부수를 올리며, 우리나라의 와인 대중화를 앞당기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의 물방울이 많은 와인애호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의 남자 주인공이 사람들에게 디캔팅하는 모습을 멋지게 펼쳐 보이며, 난처한 상황에 빠진 여자 소믈리에를 위기에서 구원하는 장면이 있었다. ‘와인이 상했다’, ‘와인이 변질되었다’, ‘와인이 코르키 되었다’ 등등 주문한 사람의 호스트 시음 테이스팅 후 불만이 극한 상황으로 전개될 때, 주인공의 멋진 ‘디캔팅 신공’은 맛이 없어 호스트의 맘에 들지 않았던 와인이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갑자기 와인 호스트를 향기의 바다 속으로 안내한다. 물론, 지나친 만화적 상황의 극적 묘사이지만, 과연 디캔팅은 그 어떤 마술을 보여주듯 할 수 있는 것인가??

Decanting의 사전적인 의미는 ‘<용액의> 웃물을 가만히 따르다’라는 영어의 ‘decant’ 에서 왔다. 와인을 디캔팅 한다는 것은 백과사전에서의 설명대로라고 할 수 있다. ‘병에 든 포도주를 유리용기에 따르는 것. 즉, 포도주를 먹기 전에 흔히 이런 디캔팅을 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병속에서 생긴 침전물이나 부서진 코르크 조각을 분리할 수 있다. 2) 와인을 공기와 닿게 하여 플레이버를 좋게 할 수 있다. 3) 친구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 디캔팅이 필요한 와인은 숙성 기간이 오래된 레드 와인인데, 너무 오래 디캔팅을 하면 오히려 플레이버가 감소할 수 있다. 디캔팅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 전에 병을 세워 침전물을 바닥으로 가라앉힌다. <출처 : 롯데주류BG 와인사업부>


그렇다면, 모든 와인은 디캔팅이 필요한 것일까? 모든 와인에 디캔팅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모든 와인에 적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 오래 숙성된 좋은 와인은 이미 아로마가 다 열려 있기 때문에 약간의 병 브리딩breathing만으로도 오랜 시간의 악취나 불순물의 냄새를 날려 보내기 때문에 바로 서빙을 하는 편이 더 좋다. 또 피노 누아 같이 섬세한 품종의 와인은 어린 빈티지에도 와인이 금세 열리기 때문에 오래 디캔팅을 하면 오히려 맛있는 향기가 다 날아가 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바디가 탄탄한 화이트 와인이나, 샴페인도 디캔팅을 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있다.

디캔팅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침전물 또는 부유물의 분리가 목적이다. 최근의 호주 쉬라즈 와인들은 자연스러운 맛을 얻기 위해 오크통의 와인 찌꺼기를 필터링하지 않고 병입한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침전물들이 와인 병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실제 음용의 순간에는 디캔팅을 통해서 침전물이나 부유물들을 여과하기 위해 디캔팅을 한다. 대부분의 와인 레스토랑의 테이블위에 촛불이 비치되어 있는 이유도 디캔팅 시 부유물이나 침전물을 식별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와인 디캔터를 탁자에 세팅한 후 촛불에 와인 병을 비추며 따라보면 병 목에서 찌꺼기를 식별할 수 있다.

두 번째, 와인은 시간이 좀 지나면서 산소와 만나 숨을 쉬며, 잠재되어있던 풍미와 아로마를 발산하기 시작한다. 와인은 오크통에서 숙성한 후 유리병에 병입되면 오랜 시간동안 코르크 마개에 갇혀 있게 되므로 코르크를 오픈하면서 비로소 숨 쉬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때 와인의 품종과 숙성에 따른 플레이버를 발산하게 된다. 이것을 ‘깨어난다’고 표현하며, 와인마다 음용하기 좋은 시기가 따로 있다는 이해가 필요하다. 신의 물방울‘에서는 아직 익지도 않은 young한 빈티지의 아주 비싼 프랑스 보르도의 특급와인을 마시는 행위를 ’영아살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직 숙성되지 않은 와인을 마시는 건 만행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오크통에서 병으로 옮겨져 오랜 시간동안 코르크를 통해서만 숨을 쉬던 와인이므로 공기 중에 숨을 쉬면서 그 속에 잠복되어 있던 플레이버와 아로마가 발산하게 되기 때문에 산소와 접촉할 약간의 시간도 필요한 것이다.

디캔팅의 원리는 ‘와인은 산화한다’는 화학적인 원리와 같다. 와인은 발효주이며 코르크마개를 열어 30분만 지나면 산소와 결합하여 산화가 진행된다. 그리고 2-3일이 지나면 산화된 와인은 변질되고 만다. 그러므로 산화가 되면서 오랜 시간 병속에 갇혀있던 와인의 잠재적 potential들-포도품종의 특징, 숙성의 정도, 오크통 숙성으로 인한 아로마의 특징-이 발산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마시기에 아직 이른 와인은 오히려 산화되면서 와인의 본색을 느낄 수 있도록 발현되는 장점이 있고, 너무 어린 와인을 몇 시간정도 디캔팅하면 와인 속 타닌 성분의 질감을 잘 느낄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너무 잘 익은 상태의 와인은 오히려 디캔팅을 함으로써 과도한 산화로 와인을 변질시킬 수 있으므로 장기 숙성용 와인인지, 이지 드링킹(Easy Drinking)을 위한 데일리 와인인지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장기 숙성용 와인은 양조기법과 농축도, 장기 숙성에 강한 포도 품종 등과 관련이 있으며,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품종이 대표적이다. 또한 같은 재배면적에서도 그린 하베스트 등을 통해 농축미를 잘 살려 양조한 와인은 더 오랫동안 숙성시켜야 하므로 이런 와인이 어릴 경우 디캔팅이 필요한 것이다.

로버트 파커 등 와인평론가의 테이스팅 노트를 보면, 전문가의 시음 적기 등이 표기되어 있다. 프랑스 보르도의 고급 와인의 바이블로 평가받는 ‘로버트 파커의 보르도 와인’을 예로 들면, ‘2001년 사토 라투르는 R.P 92~94 Point의 높은 평가를 받은 와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 79%, 메를로 18%, 프티 베르도 2%, 카베르네 프랑 1%의 블렌딩, 시음 적기는 2008년부터 2025년‘으로 적혀있다. 우리나라까지 와인이 유통되면서 보관 등의 문제로 프랑스 현지의 시음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약 10~20% 적게 쳐서 2-3년 정도 당겨보면 지금부터 적어도 15년 정도는 너끈히 숙성을 진행할 수 있는 좋은 와인이라는 정보를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된다.

 

필자의 경험상으로는 와인마다 디캔팅이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의 기준이 상당히 감각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한 후 경험치를 더하여 판단 할 수밖에 없다. 디캔팅을 한 효과가 마법처럼 바로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실제상황에서는 몇십 분에서 몇 시간씩 브리딩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쓴이 _ 유경종
(주)바롬웍스ㅣ와인북스ㅣ와인북카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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