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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부터 놈코어(normcore)가 패션 트렌드로 떠올랐다. 노멀(normal)과 하드코어(hardcore)의 합성어로 평범함을 추구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패션을 뜻한다. 샴페인 필리조 앤 피스 누메로 3 NV(Philizot & Fils Numero 3 NV)을 마신 후 받은 느낌은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멋으로 바로 놈코어의 핵심을 연상시켰다.
 
필리조 앤 피스 누메로 3 NV샴페인2016년 대한민국 주류 대상에서 스파클링 와인 부분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선정되었다. 최근 수입사 비노 파라다이스 초청으로 한국을 첫 방문한 필리조 부부를 만나 그들이 만드는 샴페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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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과 비르지니 필리조 부부는 에페르네에 있는 샴페인 하우스를 인수하여 2002년에 필라조 앤 피스를 설립했다. 그들은 발레 드 라 마른(Vallée de la Marne)에 소유한 4헥타르의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와 네고시앙을 통해 구입한 포도를 사용해 샴페인을 생산한다. 총 생산량은 2백만병으로 수출 비율이 높고 프랑스에서는 주로 레스토랑에 유통하고 있다. 총 세 종류의 샴페인을 생산하는데 샤르도네, 피노 누아, 피노 므니에를 블렌딩해서 만드는 누메로 3, 피노 누아와 피노 므니에를 사용하는 누메로 2, 샤르도네로만으로 만드는 누메로 1이 그것이다. 이 중 국내에 유통되는 샴페인은 누메로 3 다.
 
신생 샴페인 하우스인 동시에 필리조 부부 모두 와인 양조는 처음이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샴페인 하우스 랑송(Lanson)에서 40년 동안 양조를 맡았던 사촌이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그들은 블렌딩이나 숙성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거듭했고,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면서 대중이 선호하는 샴페인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각종 와인 대회에 참가했다. 이는 필리조 앤 피스의 다양한 수상 경력으로 이어지는데 2010년부터 국제 와인 앤 스피릿 대회, 국제 와인 챌린지, 국제 스파클링 와인 대회 그리고 대한민국 주류 대상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답을 찾았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하며 “지금까지 모은 정보들을 분석해보면 대중들은 섬세한 버블과 긴 여운을 가진 샴페인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때 버블의 섬세함은 샴페인의 신선함과 직결되며 긴 여운은 숙성과 관련된다. 기자가 시음한 누메로 3 샴페인은 신선하면서도 크리미한 질감이 좋았는데, 이는 산도를 낮추는 젖산 발효보다는 오랜 숙성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실제로 이 샴페인은 30개월의 숙성을 거치며, 와인과 당분을 섞어 첨가하는 도사주(dosage)를 후 추가로 5-6개월의 안정화를 거쳐 출시된다. 덕분에 산도가 무척 부드러워지는데, 여타의 NV(넌 빈티지) 샴페인에서 보기 힘들게 라운드하며 부드럽다.
 
요즘처럼 샴페인 가격이 고공행진할 때, 필리조 앤 피스 누메로 3 NV은 좋은 대안이다. 샴페인은 여타 스파클링 와인에서 찾기 힘든 섬세함과 우아함이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면서 아쉬울 때가 종종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누메로 3 NV라면 기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샴페인 소비국 영국에서 와인 전문지 Decanter가 강력하게 추천하는(high recommended) 샴페인으로 선정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필리조 앤 피스는,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놈코어처럼, 대중의 취향을 향해 다가가지만 그 여정은 평범하지 않다.
 
보통 샴페인은 식전주로 인기 높지만, 샴페인이 얼마나 음식 친화적인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푸른 잎 채소, 콩류와 과일은 물론 거의 모든 치즈, 생선(흰 살 생선과 연어), 해산물(조개, 굴, 새우, 바다가재) 그리고 가금류와 베이컨, 햄 종류까지 그 스펙트럼이 생각보다 넓다. 샴페인에서 느껴질 수 있는 풍미가 다양하기 때문인데, 꽃과 시트러스, 딸기 같은 붉은 과실, 미네랄, 오크, 토스트, 견과류 등 열거한 것만 봐도 대단하다. 이런 샴페인의 복잡 다양한 풍미는 음식을 만났을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그래서 코스 요리가 아닌 뷔페에서 식사할 때 좋은 와인 0순위는 누가 뭐래도 샴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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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브 유에 볶은 아스파라거스와 새우
 
꽃가루가 날리고 일교차도 심하지만 완연한 봄이다. 누메로 3 샴페인과 어울리는 제철 요리를 찾아보았다. 4-5월은 아스파라거스가 제철이다. 이 때 프랑스를 여행하면 약속이나 한 것 마냥 많은 식당에서 준비한 아스파라거스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남유럽이 원산지인 아스파라거스는 아삭한 식감과 씹을수록 감칠맛이 나서 미식가들이 사랑하는 채소이며 다른 식재료와 궁합도 좋아 다양한 요리에 활용한다. 넉넉하게 올리브 유를 팬에 두르고 다진 마늘, 아스파라거스, 새우를 넣은 후 살짝 볶은 요리는 누메로 3 샴페인의 신선하고 크리스피한 느낌과 잘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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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조개 파스타
 
2-4월 제철음식으로 바지락을 빼놓을 수 없다. 세수대야 같이 큰 대접에 담은 바지락 칼국수가 먼저 생각나는데, 파스타로 만들어도 담백하고 시원하다. 바지락이든 모시조개로 만들던 조개 파스타에는 누메로 3 샴페인을 잊지 말고 매칭시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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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와 엔다이브 샐러드
 
한 가지 더 소개한다면 연어다. 누메로 3 샴페인을 소개하는 자리에도 나와 눈길을 끌었지만 연어를 이용한 요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신선한 누메로 3 샴페인 맛과도 잘 어울렸다. 축하하는 자리에 빠지지 않는 샴페인, 그래서인지 샴페인을 마시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샴페인은 기쁨을 맛보기 위한 음료”라는 스테판 필리조의 정의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누메로 3 샴페인이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주는 샴페인이 되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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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조 앤 피스 누메로 3 NV
 
품종: 샤르도네 55%, 피노 므니에 25%, 피노 누아 20%
 
섬세한 거품이 힘차게 끊이지 않고 솟아오른다. 청사과, 감귤, 자몽의 향이 풍부하고 고소한 너트류 향과 잘 어우러진다. 부드러운 질감, 중간 정도의 산미, 달콤한 느낌이 여운으로 남는다.
 
 
 
수입_ 비노파라다이스 (02.02280.0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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