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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와인이 테루아(terroir, 포도가 자라는 환경적 특징)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나파 밸리는 와인을 만드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파 밸리 와인산업의 정점에 있는 여러 인물들 중에서도 컬트 와인(cult wine)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며,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 만점을 다섯 차례나 받은 신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인물이 있으니, 빌 할란(Bill Harlan)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84년에 할란 에스테이트(Halran Estate)를 설립하여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그는 6년이 흐른 뒤에야 첫 빈티지를 내놓을 만큼 와인 양조에 신중을 기했고, 1996년까지 약 12년간 그가 만든 와인을 단 한 병도 팔지 않을 정도로 품질 관리에 엄격했다. 명품 와인을 만들고자 하는 열정과 노력 끝에 탄생한 할란은 지금도 한해 평균 생산량이 2만여 병에 불과해, 전세계적으로 와인 평론가와 애호가, 와인 수집가들 사이에서 구하기 쉽지 않은 최고의 희귀 와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빌 할란의 와인에 대한 넘치는 열정과 집념이 처음부터 할란 에스테이트만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할란 에스테이트를 설립하기 10여년 전, 빌 할란은 이미 다른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나파 밸리 전역의 60개 이상의 고급 포도원으로부터 포도를 매입하여 와인을 양조했는데, 그 과정에서 몇몇 포도원이 놀랍도록 뛰어난 품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후 시간이 흘러 할란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고 난 뒤, 그는 포도밭의 테루아를 그대로 담은 와인을 만들겠다는 결심 아래 뛰어난 테루아를 지닌 다섯 군데의 포도원으로부터 고품질의 포도를 매입했고, 할란을 만든 와인 양조팀을 끌어들였다.
 
본드 에스테이트의 다섯 가지 와인은 이렇게 탄생했다. ‘본드(Bond)’는 ‘유대’를 뜻하는 단어로, 와인을 통한 자연과 인간의 화합뿐만 아니라 포도 재배자와 와인 양조팀을 잇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개별 포도밭 소유주들과 빌 할란이 공유하는 비전과 정신적 유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본드라는 이름에는 경제 용어인'채권’의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는 것인데, 실제로 본드 와인 레이블은 오래 전 지폐를 만들던 방식으로 만들어져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국내에 본드 에스테이트의 와인을 수입하고 있는 나라셀라의 신성호 이사는 이 와인을 두고 “보르도 품종(까베르네 소비뇽)에 부르고뉴 정서를 담은 와인”이라고 설명한다. 본드의 다섯 가지 와인은 모두 100% 까베르네 소비뇽 단일 품종으로 양조되지만, 포도밭이 위치한 지역에 따라 그 스타일과 맛의 차이가 확연히 달라서 나파 밸리가 가진 다양한 테루아를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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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더포드 지역에서 생산된 가장 섬세하고 여린 스타일을 지닌 멜버리(Melbury)에서, 나파 밸리의 심장이라 불리는 세인트 헬레나에서 만들어져 뛰어난 복합미를 자랑하는 켈라(Quella), 오크빌의 평지에서 생산되어 농축미와 풍부한 미네랄이 돋보이는 세인트 이든(St. Eden), 할란 에스테이트와 이웃하고 있어 “또 다른 할란”으로 불리는 베씨나(Vecina), 스프링 마운틴 지역의 가파른 언덕의 화산토양에서 만들어져 단단하고 풍부하며 응축된 캐릭터를 보여주는 플러리버스(Pluribus)까지, 이 모든 와인들은 4년간의 숙성을 거친 뒤 비로소 시장에 출시된다.
 
최근 기자는 본드 에스테이트의 켈라와 베씨나 두 가지 와인을 시음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 두 와인을 시음한 후 본드 에스테이트의 와인이 캘리포니아의 5대 그랑 크뤼 와인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켈라는 숙성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타닌과 블랙베리, 제비꽃, 타바코 등의 풍부한 풍미와 섬세함이 돋보였다. 베씨나는 켈라와는 달리 힘차고 응집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서늘한 숲의 기운 사이로 느껴지는 흙냄새와 미네랄 풍미 그리고 초콜릿과 커피로 이어지는 풍미가 매력적인, 우아함과 파워를 모두 갖춘 와인이었다.
 
마지막으로 희소식을 하나 전하자면, 본드 에스테이트의 와인이 다섯 가지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특별한 테루아를 가진 지역을 발견하게 되면 언제든 새로운 와인을 선보일 준비가 되어 있는 빌 할란의 열정 덕분에, 본드 에스테이트의 와인 리스트에는 곧 여섯 번째 와인이 합류할 계획이다. 와인을 좋아하는 평범한 애호가에게 있어서 할란이라는 거대한 컬트 와인을 만나는 것도 큰 기쁨이지만, 본드처럼 그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긴 놀라운 품질의 와인을 만나는 것은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본드의 여섯 번째 와인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문의 _ 나라셀라 (02 405 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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