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드리유의 가장 유명한 최상급 와인생산자로는조르주 베르네가 있다. 그 밖에 우수한 생산자로는 이 기갈, 르네 로스탱, 이브 퀴에롱...(중략)이 있다.”
([더 와인바이블], 캐런 맥닐, 2010)


18-19세기 즈음 북부 론은 보르도의 정상급 와인과 겨룰만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고급 와인산지였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프랑스 전체 포도밭을 황폐화시킨 필록세라(포도나무뿌리진디)가 창궐했고 이 때 북부 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욱 불행한 사실은, 필록세라 이후 이 지역이 과거의 명성을 되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황폐해진 포도밭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투자가 뒤따라야 했지만, 사람들은 애써 포도 농사를 지으려고 하지 않았다. 넓은 땅은 휴가용 별장을 짓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팔렸고 가파른 경사의 포도밭은 다른 식물들로 덮인 채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이브 뀌에롱의 귀환과 북부 론의 재건’ 중)

이와 함께, 재배가 까다롭고 수확량이 얼마 되지 않는 비오니에 품종은 멸종 직전에 다다랐다. 비오니에가 자라던 콩드리유 마을의 포도밭은 유기되었고, 1960대 이르러 이 품종을 재배하는 포도밭 면적은 12헥타르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소수의 와인생산자들이 비오니에의 부활을 꿈꾸며 헌신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조르주 베르네(Georges Vernay)다. 조르주 베르네는 오늘날 “콩드리유의 교황(The Pope of Condrieu)”이라 불리며 와인생산자들 사이에서 존경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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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멘 조르주 베르네가 콩드리유에서 생산하는 세 가지 화이트 와인. 왼쪽부터코트 드 베르농 Coteau du Vernon, 셰이에 드 앙페 Les Chaillees de l’Enfer, 테라스 드 앙피르 Terrasses de l'Empire.부르고뉴의 몽라셰 다음으로, 콩드리유는 프랑스에서 가장 희귀한 화이트 와인이다.오일 같은 질감, 흰꽃 향과 더불어 살구와 복숭아의 풍미를 지녀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콩드리유의 와인은, 종종 백묵을 연상시키는 미네랄 풍미와 함께 온화한 여운을 남긴다.


코트 드 베르농 Coteau du Vernon

도멘 조르주 베르네가 2헥타르 남짓 소유한 '코토 드 베르농’ 포도원은 콩드리유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코트 드 베르농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토양을 구성하는 흑운모질 화강암인데, 와인에 짭짤한 맛(또는 미네랄 풍미)을 부여함으로써 비오니에 특유의 낮은 산도를 보완하고 신선하고 우아한 스타일을 띄게 한다(‘An elegant, new balance for Condrieu’, The New York Times). 이곳의 포도나무 수령은 50~80년 사이로, 조르주 베르네는 헥타르당 25헥토리터의 포도를 수확하여 매년 8천 병 가량되는 극소량의 코토 드 베르농 와인을 만든다. 발효를 마친 와인은 12~18개월 정도 오크 숙성을 거치는데, 이 때 새 오크통 사용 비율을 25%로 낮춤으로써 우아함이 강조된 와인이 만들어진다(새 오크통 비율이 높으면 근육질 와인이 되기 쉽다). 코토 드 베르농 같은 최고의 포도밭에서 수확한 비오니에 와인은 10~15년까지도 숙성이 가능한데, 5년 정도 지나면 꿀이나 진저브레드 등의 풍미가 더해져 더욱 복합적으로 발전한다(‘Viognier‘, Decanter).

셰이에 드 앙페 Les Chaillees de l'Enfer

불어로 '개울가’를 의미하는 coin de ruisseau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콩드리유는, 론 강의 만곡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코트 로티에서 남쪽으로 10km 정도 떨어져 있다. 자갈 토양으로 덮인 콩드리유의 포도밭은 강 위로 급격한 경사를 이룬 채 펼쳐지는데, (좁고 가파른 경사 때문에 트랙터를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그야말로 고된 노동의 산물이다. 특히 푹푹 찌는 여름날이면 남쪽을 향해 경사진 포도밭에서 일하는 인부들 사이에서 “여기는 지옥”이라는 말이 종종 들려온다. “지옥의 돌계단”을 뜻하는 '셰이에 드 앙페(les Chailles de l'Enfer)’ 와인은 바로 여기서 탄생했다. 2헥타르의 경사진 포도밭에는 1957년부터 심기 시작한 오래된 포도나무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수확량은 헥타르당 30헥토리터, 매년 생산하는 와인의 양은 8천 병 정도다. 출시 후 5~10년 사이에 마시면 가장 좋다.

테라스 드 앙피르 Terrasses de l'Empire

‘테라스 드 앙피르’라는 이름은, 한때 콩드리유의 경사진 포도밭이 갈리아(Gaul)와 로마 제국 사이의 자연적인 경계를 형성했다는 사실에서 기원한다. 위에서 살펴본 두 와인에 비해 생산량은 2만 병으로 훨씬 많으며, 오크 숙성 기간은 8개월로 짧다. 와인은 비교적 가볍고 신선하며 과일 풍미가 도드라지는데, 출시된 직후부터 7년 사이에 마시면 좋다. 수입사 비노쿠스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고 있는 2010년 빈티지 테라스 드 앙피르의 경우, 비오니에의 전형적인 풍미에 생기발랄한 미네랄 풍미와 맑은 녹차를 연상시키는 쌉쌀한 여운이 더해져 일품이다(93pts, Wine Spectator). 한편, 비오니에 와인은 알코올 농도가 높은 화이트 와인에 속하기 때문에 10-12도의 시원한 온도로 마시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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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드리유의 오래되고 깊이가 얕은 화강암과 점판암 토질은 척박하다. 이곳에서 침식작용은 언제나 위협이 되는 요소다. 만일 손으로 일일이 만들어 단단히 고정해놓은 돌벽과 언덕이 없었다면 포도나무들은 언덕 비탈을 타고 쓸려 내려갔을 것이다. 비바람에 토양이 쓸려 내려가면 양조자들은 작은 양동이에 귀한 흙을 담아 운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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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드리유의 포도밭은 남쪽(또는 남동쪽)을 향하며 급격한 경사를 이룬다. 콩드리유 와인의 전형적인 특징을 형성하며 와인에 미네랄 풍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곳의 토양을 덮고 있는 화강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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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베르네의 딸 크리스틴 베르네(Christine Vernay)와 그녀의 남편 폴 암셀렘(Paul Amsellem). 최근 한국 방문 당시 북촌 한옥 마을에서 찍은 사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크리스틴 베르네가 도멘 조르주 베르네를 운영하게 된 것에 대해 나는 대단한 안도감을 느낀다. 콩드리유의 안녕은 도멘 조르주 베르네의 안녕과 깊이 연관되기 때문이다.”
([The Wines of the Northern Rhone], John Livingstone-Learmonth, 2005)


조르주 베르네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도멘을 물려받은 것은 그의 딸 크리스틴 베르네다. 원래 대학에서 언어를 가르치던 그녀는 1996년 38세의 나이에 뒤늦게 가문의 와인사업에 합류했고, 현재 남편과 함께 도멘을 운영하고 있다. “콩드리유의 교황”이라 불리던 아버지의 명색에 뒤쳐지지 않게 그녀는 프랑스의 권위 있는 와인평론가 미셸 베탄과 티에리 드소브로부터 “2012년 올해의 와인 명사”라는 타이틀을 획득했고, “2012 프랑스 와인 가이드”는 도멘 조르주 베르네에 가장 많은 별 다섯 개를 부여하였다(로마네 콩티, 오존, 라투르, 마고, 라피트 로칠드, 이켐을 포함한 프랑스의 30개 와인생산자들이 별 다섯 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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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르주 베르네가 콩드리유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면, 크리스틴 베르네는 시라 품종을 기반으로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 코트 로티(Cote-Rotie)와 생 조셉(St. Joseph) 지역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90년대 후반 북부 론에서조차 평론가 로버트 파커의 입맛에 맞는 “과일 폭탄” 같은 레드 와인이 만들어지는 것을 목격한 그녀는, 우아하고 섬세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르고뉴 스타일”의 레드 와인을 만들기 위해 전념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가 쌓은 콩드리유 와인의 명성을 고스란히 유지하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레드 와인에 있어서도 급격한 품질 향상을 이루어냈다”는 찬사를 The Wine Advocate으로부터 듣게 된다(The Wine Advocate이 로버트 파커의 발행물이라는 점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도멘 조르주 베르네는, 라 블롱드 뒤 세뇨(La Blonde du Seigneur)와 메종 후즈(Maison Rouge)의 두 가지 레드 와인에서도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두 와인은 코트 로티를 가장 멋지게 드러낸다!”([Le Grand Guide des Vins de France 2012], Bettane and Desseauve)


‘라 블롱드 뒤 세뇨’(사진 왼쪽)와 '메종 후즈’(사진 오른쪽) 모두 코트 로티의 남쪽에 위치한 화강암 토양에서 자란 시라 품종으로 만든다.‘라 블롱드 뒤 세뇨’의 경우 7~8% 정도 비오니에를 블렌딩해서 만들며 산딸기와 블랙베리의 달콤함과 송로버섯의 뉘앙스를 드러내고 정교하게 잘 다듬어진 타닌과 균형감, 부드럽고 길게 지속되는 여운을 지닌다(연간 1만5천 병 생산). 한편, 비오니에를 전혀 섞지 않고 시라 품종만 사용해서 만드는 '메종 후즈’는 좀더 짙은 타닌, 검붉은 과일과 함께 정향과 감초를 연상시키는 향신료의 풍미를 지니며, 20년에 가까운 숙성 잠재력을 자랑한다(연간 8천 병 생산).

문의 _ 비노쿠스(02 45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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