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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입사 와이넬 주최로 '로저 구라트(Roger Goulart)’ 와인 메이커스 디너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로저 구라트의 다비드 피에라 페레스(David Piera Felez) 수출 담당 매니저가 참석했고, 그로부터 까바(Cava, 샴페인과 같은 방식으로 양조하는 스페인의 스파클링 와인) 생산지와 로저 구라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까바와 프로세코(Prosecco, 이탈리아의 스파클링 와인) 같은 스파클링 와인의 인기가 샴페인을 앞지를 정도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는, 경기 침체로 인해 고급 소비재에 대한 지출이 감소하면서, 샴페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품질 면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는 스파클링 와인에 대한 요구와 관심이 커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스페인의 까바가 있다.
 
스페인의 까바 생산지는 바르셀로나에서 약 45km 떨어진 카탈루냐(Catalunya) 지방의 페네데스(Penedes)로, 이곳에서 까바의 95%를 생산하고 있다. 페네데스는 크게 지중해 연안(Penedes Maritime), 중부 계곡(Penedes Central) 그리고 북부 슈페리어 지역(Penedes Superior) 등 세 군데로 나눌 수 있다. 바다와 가까운 연안 지역은 주로 비발포성 와인 생산지로, 마카베오(Macabeu), 모나스트렐(Monastrell) 같은 품종을 재배한다. 중부 계곡 지역은 까바 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품종인 차렐로(Xarel-lo)와 파렐라다(Parellada)의 주요 생산지이다. 북부 슈페리어 지역에서는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 같은 국제 품종들을 재배한다.
 
전통적인 까바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렐로, 파렐라다, 마카베오 세 가지 품종이 필요하다. 리오하에서 비우라(Viura)라고 불리는 마카베오는 중성적인 느낌의 품종으로, 와인에 풍미보다는 무게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파렐라다는 높은 산도와 레몬, 시트러스 계열의 풍미로 신선함을 준다. 차렐로는 샴페인을 만들 때 쓰이는 샤르도네 같은 역할을 하는데, 풍부한 아로마가 특징이며, 꽃, 서양배, 멜론의 향을 제공하고 까바의 캐릭터를 결정하는데 한 몫을 한다. 어떤 까바 생산자들은 샤르도네를 추가하여 새로운 조합의 까바를 만들기도 한다.
 
 
오직 최상의 품질을 원해
 
로저 구라트의 역사는, 1882년 조셉 카날(Josep Canal)이 샴페인과 동일한 양조방식으로 까바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스파클링 와인의 탄산가스를 만들기 위해 병에서 2차 발효를 하는 이러한 전통방식은, 복합적인 풍미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간과 비용, 기술력과 경험 등이 필요하다. 로저 구라트는 최고 수준의 까바를 만들기 위해 고집스럽게 이러한 양조방식을 지켜왔으며, 1919년 품질 관리와 유지를 위해 지하 30m 깊이에 1km나 되는 와인저장고를 만들었다. 이곳은 자연적으로 365일 내내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므로 까바의 완벽한 숙성과 저장이 가능하다. 이렇듯 샴페인 양조방식 고수와 거대한 와인저장고 증축은, 로저 구라트의 품질에 대한 집념을 엿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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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구라트는 페네데스 여러 지역에서 우수한 품질의 포도만을 선별하여 구입한다(이 때 핵심은, 품종과 테루아의 궁합이 잘 맞는 지역에서 재배된 포도를 선택하는 것이다). 또한 포도재배자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여 품질 높은 포도의 지속적인 생산을 유도하고 포도의 산화방지를 위해 새벽에 수확한다. 수확한 포도는 선별한 효모와 함께 14-16도를 유지하는 발효조에서 1차 알코올 발효를 거친다. 1차 발효를 끝낸 와인은 효모 및 당분이 첨가되어 병 속에서 3개월 이상 천천히 2차 발효를 거친다. 한편, 효모와 장기간 접촉함으로써 더해지는 “샴페인 같은” 풍미가 중요하기 때문에, 2차 발효에 쓰이는 효모는 1차 발효 때 쓰이는 효모와 사뭇 다르다.
 
로저 구라트는 와인의 신선함과 숙성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엄선한 효모를 사용한다. 발효 후 와인은 효모 앙금과 함께 장기간 숙성되는데(종류에 따라 2-7년 정도), 활동을 마친 효모는 이 기간 동안 천천히 자가분해되면서 와인의 풍미가 진해지고 복합적인 까바로 발전하게 된다. 더구나 14~16도의 온도가 유지되고 다른 유해 요소들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안전한 지하 저장고에서, 마치 깊은 잠을 자듯 장시간 숙성된다. 출시 전 효모 앙금을 제거하는 데고르주망(Degorgement) 작업은 주문이 들어오면 실시하기 때문에 품질에 대한 안정성도 지킬 수 있다. 로저 구라트는 샴페인과 동일한 양조방식은 물론, 양조시설까지도 샴페인 생산자들처럼 완벽하게 갖춤으로써 또 다른 까바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스파클링 와인만으로 디너 코스를 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품질 좋은 샴페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이라면 코스 요리와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로저 구라트 또한 음식과 즐기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춘 스파클링 와인으로, 로저 구라트의 4가지 까바는 이날 디너에서 다음과 같은 매칭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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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구라트 브뤼 2010
Roger Goulart Brut 2010
품종_ 40% Xarel-lo, 30% Macabeu, 30% Parellada
 
로저 구라트는 매해 수확한 포도로 만드는 빈티지 까바로 알려져 있는데(여러 해의 포도로 만든 와인을 섞는 NV가 아니라), 기본적인 브뤼 또한 마찬가지다. 로저 구라트 브뤼는, 출시 전 24개월의 숙성을 거치며 투명하게 빛나는 노란색을 띤다. 사과와 배의 풍미가 좋고 무엇보다 잘 정돈된 듯한 균형 잡힌 산도가 인상적이다. 가볍게 올라오는 미세한 탄산은, 벨루가 캐비어를 곁들인 광어 사시미의 부드러운 육질과 훌륭한 매칭을 보여주었다.
 
 
로저 구라트 데미 섹 2009
Roger Goulart Demi-Sec 2009
품종) 40% Xarel-lo, 30% Macabeu, 30% Parellada
 
수확한 포도에서 가장 먼저 흘러나온 포도즙으로 만들며, 도자주(Dosage) 양은 35g/l으로 중간 정도의 달콤함을 선사한다. 출시 전 24개월 숙성을 거치는 이 와인은, 옅은 금빛에 효모의 향이 은은하고 조린 배와 꿀 향도 난다. 질감이 부드럽고, 산미가 살짝 느껴져 단 맛이 그대로 남지 않아 입 안이 개운하다. 화이트 와인 소스를 곁들인 완도 산 전복구이와 마셔보니, 고소하고 향긋한 전복의 맛과 와인의 부드러운 과일 풍미가 잘 어울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인의 단 맛이 강하지 않아서 디저트 말고도 일반적인 요리와 매칭을 시도해 볼만하다.
 
 
로저 구라트 브뤼 로제 2009
Roger Goulart Brut Rose 2009
품종 _ 40% Garnacha, 55% Monastrell, 5% Pinot Noir
 
가르나차와 모나스트렐, 피노 누아는 까바 로제를 만들 때 사용하는 포도 삼총사이다. 체리 빛깔이 날 때까지 아주 조심스럽게 포도를 압착하며, 앞서 시음한 까바들처럼 출시 전에 24개월간 숙성한다. 레드 계열의 과실 향이 물씬 나고 타닌은 강하지 않지만, 날카로운 여운을 남긴다. 스파클링 와인보다는 레드 와인에 가까운 풍미를 지닌다. 로저 구라트 브뤼 로제가 유명해진 것은, 일본의 TV 프로그램에서 동 페리뇽 로제 샴페인과 로저 구라트 로제를 비교 시음한 결과 5인의 패널 중 3인이 로저 구라트에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와인은 레드 와인 소스를 곁들인 부드러운 호주 산 안심 스테이크와 잘 맞았는데, 스테이크를 덮은 살짝 달콤한 레드 와인 소스가 브뤼 로제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러한 달콤함 덕분에 스테이크는 로저 구라트 데미 섹과도 잘 어울렸다.
 
 
로저 구라트 그랑 퀴베 2008
Roger Goulart Grand Cuvee 2008
품종 _ 38% Chardonnay, 25% Xarel-lo, 20% Macabeu, 17% Parellada
 
고급 샴페인 같은 풍미를 선보이는 로저 구라트 그랑 퀴베는, 각종 와인대회에서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온 만큼 명성이 높다. 빈티지가 좋은 해에만 만들며, 샤르도네 품종을 추가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 카바는 엑스트라 브뤼(대단히 드라이한)로, 무려 4년이란 긴 숙성 기간을 거쳐 출시된다. 섬세한 거품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사과, 배, 브리오슈, 구운 견과류의 향이 난다. 입 안에서 지속시키는 힘과 부드러운 감촉, 탄산의 신선함,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디저트보다는 오히려 스테이크나 돼지고기 요리와 잘 어울릴 것 같다.
 
 
현재 스페인에서 까바 생산자는 200명 가까이 되는데, 대부분 과일 풍미가 가득하고 식전주로 적당한 까바를 생산한다. 반면, 로저 구라트처럼 샴페인에서 느낄 수 있는 복합적이고 견과류 향 가득하며 크림 같은 질감을 선보이는 까바를 만드는 생산자는 극소수이다. 우아하고 복합적인 풍미의 로저 구라트 까바는, 상쾌하고 발랄한 느낌의 까바를 잠시 잊게 만든다. 샴페인에 비해 저렴하다는 가격적인 장점도, 와인애호가들이 로저 구라트를 선택하는 이유다.
 
페레스 씨는 “로저 구라트가, 양조방식 그리고 지하 와인저장고 같은 양조시설까지 샴페인 생산자들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 최고의 까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기 위함이다”라고 말하며, 로저 구라트가 까바 품질의 기준점이 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지금까지 '샴페인의 똑똑한 대안’이 되어준 로저 구라트는, 이제 '까바의 새로운 클래식’이라고 불려도 무방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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