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 바롤로 생산자


로베르토 보에르치오Roberto Voerzio




‘바롤로’라는 단어만으로 이미 경외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컬트 바롤로’는 과장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딱 한 병의 와인을 만든다는, 다시 말해 포도나무 한 그루에 네다섯 개 포도송이만 남겨둔 채 솎아내 버릴 정도로 엄격하게 와인을 만든다는 로베르토 보에르치오에게 '컬트’라는 단어는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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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보에르치오는 1헥타르당 8천 그루 정도로 빽빽하게 포도나무를 심는다. 하지만 그루당 오직 4-5송이만 남겨놓기 때문에 수확량은 매우 적다. 수확량이 적으므로 수확기간이 단축되고, 덕분에 수확기의 급작스런 날씨 변동으로 인한 피해를 거의 받지 않는다. 이로써 매년 포도의 품질을 최고로 유지하는 것이다. 만약 포도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가 만든 와인을 시장에 출시하지 않고 개인에게 팔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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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로베르토 보에르치오의 한국 방문소식과, 더불어 개최되는 시음회 및 세미나 소식은 수많은 와인애호가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컬트급 바롤로 와인뿐만 아니라, 바롤로를 능가하는 바르베라 와인을 만드는 양조가로도 알려진 보에르치오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일생에 몇 차례나 오겠는가. 운이 좋게도 기자는, 지난 7일 신사동 아카데미 듀 뱅에서 열린 로베르토 보에르치오 와인 세미나에 참가하여, 그와 함께 총 세 종류의 바롤로와 바르베라 와인을 시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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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빈티지 바롤로 체레키오(Barolo Cerequio) DOCG 그리고
2003 빈티지 바롤로 포사티/카세 네레 리제르바
(Barolo Fossati/Case Nere Riserva) DOCG

바롤로 DOCG 북서부에 위치한 라 모라에는 아르보리나, 마르체나스코, 몬팔레토, 체레퀴오, 브루나테 포도원이 있다. 이 포도원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아로마와 향이 풍부한 바롤로가 생산된다. 엘리오 알타레, 레나토 라티, 잔프란코 보비오, 마르카리니, 미켈레 키아를로의 와인이 그러한데, 오늘날 라 모라에서 가장 유명한 생산자를 꼽으라면 바로 로베르토 보에르치오다. 그는 이 지역에서 가장 거침없는 근대주의자 중 한 명으로, 그가 만드는 와인에는 특히 더 힘이 있다. 브루나테 크뤼에서 만드는 그의 와인이 가장 명백한 증거다.(‘이탈리아 와인가이드’, 조 바스티아니치, 2010)

보에르치오는 라 모라(La Morra, 바롤로를 만드는 대표적인 마을) 내에서도 최상급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다. 2008 빈티지 바롤로 체레키오는 체레키오 포도원에서 수확한 네비올로로 만들어지는데, 장미꽃잎, 후추, 계피 등의 아로마가 매우 풍성하고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며, 신선하지만 입 안을 조이는 듯한 타닌이 숙성 초기임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연간 생산량은 5-6천 병 정도. 2003 빈티지 바롤로 포사티/카세 네레 리제르바 와인은 포사티와 카세 네레 두 포도원의 네비올로를 블렌딩해서 만들었다. 중요한 점은, 오크 캐스크 숙성에 6년 정도의 병숙성 기간까지 더해져 십 년 후인 올해에서야 출시되었다는 점이다. 부드럽지만 견고한 타닌, 와인이 숙성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부케, 은은하게 남아있는 잘 익은 과일의 향과 붉은 잎 꽃 향 등은 말로 할 수 없이 매력적이다.


2008 빈티지 바르베라 달바 리제르바 비네토 포조 델 아눈지아타DOC
(Barbera d’Alba Riserva Vigneto Pozzo dell’Annuziata 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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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바르베라가 갖는 특징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혀끝에서 감지되는 진한 과즙의 무게감일 것이다. 과거에 바르베라는 양을 늘리기 위해 첨가한 혼합물에 불과했으나, 양조업자들은 바르베라가 남향의 양지바른 곳에서 재배되기만 한다면 밀도 높은 와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바르베라는 과거의 바르베라보다 훨씬 중요한 대우를 받고 있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생산자들은 대부분 한 가지 버전 이상의 바르베라 달바 또는 바르베라 다스티를 생산하는데, 그들 중 많은 수가 구조감(그리고 가격) 면에서 바롤로와 맞설 만한 단일 포도원 와인이다.(‘이탈리아 와인가이드’, 조 바스티아니치, 2010)

보에르치오의 바르베라 달바(Barbera d’Alba)는, 바롤로 사르마사(Barolo Sarmassa) 그리고 바롤로 브루나테(Barolo Brunate)와 함께 항상 매그넘 사이즈로 만들어진다(매그넘 사이즈의 로베르토 보에르치오 바르베라 달바의 경우 가격이 백만 원을 호가한다).

보에르치오는 이 짙고 영롱한 루비색의 바르베라 와인을 제대로 마시는 방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르베라는 산도가 높은 품종이기 때문에 약간 시원하게 해서 마시는 편이 좋다 와인 잔에 최소량만 따라서 온도 변화를 최소화시키면 풍미가 변화하는 것을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다 와인 한 병을 모두 마셔버리지 말고 약간 남겨두어 다음날 마셔보라. 그 때에도 맛이 좋다면 정말 좋은 와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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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에르치오의 와인은 레이블마다 포도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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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에르치오는 20여 년 전부터 유기농법으로 포도밭을 관리해 왔으며, 큰 변화라고는 말 대신 트랙터로 밭을 가는 정도이다. 또한 계절마다 오르내리는 온도 차이를 이용해 와인의 침전물을 걸러내고 계란 흰자로 한 차례 정제할 뿐이며 여과 과정은 거치지 않는다. 로베르토 보에르치오의 아들, 다비드는 과거 “세계적인 품질의 비싼 와인을 만들어봤자 과연 누가 사겠느냐”며 아버지의 포도 재배 및 양조 방식에 회의적이었으나, 이제는 “아버지 방식만 그대로 따라 하면 좋은 와인 만들기 쉽다”며 그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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