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와인에 익숙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 두 가지는, 같은 포도 품종으로 만든 다른 와인을 비교하는 것과 서로 다른 포도 품종의 와인을 비교하는 것이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맛이 비슷한 것 같아도 약간씩 차이가 느껴지는데, 이는 원산지, 기후, 포도 재배 방식의 차이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양조라는 또 다른 측면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와인 맛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기본적으로 포도 품종이다. 훌륭한 와인은 언제나 그 와인의 원료가 되는 품종 고유의 풍미를 드러낸다. 와인의 매력이나 좋은 맛을 내는 성분의 일부는 품종 고유의 순수한 풍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적포도 품종들의 특징을 설명함으로써 각 품종으로 만들어진 와인이 어떤 특징을 갖는지 알아보도록 한다.
 

레드 와인과 건강의 관계

육류 등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데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이 심장질환에 걸리는 확률이 낮은 현상을 두고 ‘프렌치 패러독스’라고 한다. 최근의 연구결과들을 보면 프랑스의 심장질환 발병률이 낮은 이유를 레드 와인에서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바로 레드 와인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정확히 말하자면, 폴리페놀의 일종인 프로시아니딘)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프로시아니딘은 혈관벽과 내피세포를 튼튼하게 해주고 혈전을 막아줌으로써 고혈압 및 심장질환 요인을 제거해준다. 즉 프로시아니딘이 많이 들어있을수록 건강에 좋다는 얘기다.

프로시아니딘은 포도껍질에 들어있으며 떫은 맛을 내는데, 적포도의 경우 그 함유량이 청포도의 20배에 가깝다. 프로시아니딘 함량은 포도의 품종과 재배지역, 와인 양조 방식에 따라 현저히 다른데, 특히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에 월등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마디랑 와인이 특히 더 많은 프로시아니딘을 함유하고 있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카베르네 소비뇽은 색상, 타닌, 산도가 풍부하고 전세계 대부분의 와인산지에서 재배되는 품종이다. 특히 향과 풍미가 무척 매력적인데, 블랙베리, 블랙커런트, 카시스, 민트, 유칼립투스, 삼나무, 가죽, 자두 등의 향과 풍미가 와인에 스며든다. 또한 이런 요소들은 오크통 숙성과 병 숙성을 통해 더욱 복합적으로 발전하는데, 이는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이 장기 숙성에 적합한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카베르네 소비뇽은 프랑스 보르도의 메독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보르도의 고급 와인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근래에는 신세계 지역에서도 아주 광범위하게 재배하고 있으며 특히 캘리포니아와 호주에서 성공적이다.


피노 누아(Pinot Noir)

피노 누아의 이름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솔방울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 것에서 비롯되었다. 피노 누아는 껍질이 얇고 색상이 부드러우며 타닌이 낮고 산도가 높다. 피노 누아로 만든 와인은 색이 연하고 알코올은 중-상 정도이며 비교적 섬세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또한 가볍고 과일 맛이 많으며 실크 같은 질감과 더불어 밝은 빛깔에 풍부한 향기를 발산한다. 만약 과도하게 익었거나 신선함이 없는 피노 누아로 만든다면 와인은 부드럽긴 하지만 잼 같이 느껴질 것이다. 피노 누아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잘 숙성되며 블랙체리, 가죽, 향신료, 바닐라, 버섯 등 상당히 다양한 풍미를 보여준다.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역에서는 보졸레를 제외하고 모든 레드 와인을 피노 누아로 만드는데, 이 지역은 이 품종에 관한 한 가장 전설적인 곳이다. 프랑스 샹파뉴, 뉴질랜드, 미국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에서도 피노 누아를 주로 재배한다.


시라(Syrah) / 쉬라즈(Shiraz)

영국 학자이자 와인 작가인 조지 세인트베리는 시라 품종으로 만들어진 프랑스 론 와인 에르미타쥬(Hermitage)에 대해 ‘내가 마셔본 와인 중 가장 남성적인 와인’이라고 표현하였다. 프랑스 론 지역의 시라는 포도알이 작으며 원숙하고 부드러운 와인을 만드는데, 견고한 타닌과 산도, 조화로운 알코올, 우수한 숙성 잠재력을 보인다. 또한 가죽, 젖은 흙, 후추, 향신료의 향과 풍미가 화려하고 강렬한 것이 특징이다.


17세기에 프랑스 위그노 교도들이 프랑스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으로 시라를 가지고 왔는데, 여기서 쉬라즈라고 새로 이름을 붙였고, 이것은 다시 호주로 전해졌으며 여기서도 쉬라즈라고 불리게 되었다. 호주와 남아공의 쉬라즈 와인은 일반적으로 강렬하고 잼같이 느껴지는 진하고 풍성한 특징을 보인다.


메를로(Merlot)

‘작은 검은 새’라는 뜻의 메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에 비해 복합적인 면은 덜하지만 풍미가 매우 비슷해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쉽게 혼동을 일으킨다. 메를로의 향과 풍미는 블랙베리, 구운 체리, 자두, 초콜릿, 모카, 때로는 가죽 향도 나타낸다. 메를로로 만든 와인은 좋은 빛깔을 띠며 부드럽고 순하며 잘 익은 과일 맛이 풍부하고 입 안에서는 벨벳 같은 질감이 느껴지며, 일찍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와인을 새 오크통에 숙성시킬 경우 기존의 진한 과일 향에 버터나 크림향이 가미된다.

카베르네 소비뇽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메를로 생산지는 프랑스의 보르도 지역으로(보르도에서 재배되는 적포도의 절반 이상을 차지), 생산량은 카베르네 소비뇽의 두 배나 된다. 이 외에 칠레, 미국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주 등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네비올로(Nebbiolo)

네비올로는 아주 늦게 익는 품종으로, 수확할 때가 되는 늦은 10월 정도가 되면 피에몬테의 구릉 지대를 뒤덮는 가을 안개(nebbia)가 발생하는데, 품종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형적인 네비올로 와인은 매우 높은 알코올과 높은 산도, 풍부하고 섬세한 결이 있는 그러나 매우 드라이한 타닌을 가지고 있으며, 색상은 진하지 않아서 몇 년만 지나면 곧 벽돌 색을 띠기 시작한다. 또한 풍부한 과일 풍미가 특징이며, 훌륭한 부케를 표현해 내기까지는 병 속에서 오랜 시간 숙성시켜야 한다.

아르헨티나와 캘리포니아에서도 소량 재배하고 있지만, 네비올로 재배는 주로 이탈리아의 북서부에 위치한 피에몬테(Piemonte) 지방에 한정되어 있다. 특히 피에몬테의 알바(alba) 지역 북쪽과 남쪽에 각각 위치한 바르바레스코(Barbaresco)와 바롤로(Barolo) 마을에서 이 포도를 사용한다.

산지오베제(Sangiovese)


이탈리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포도 품종이며, 토스카나(그 중에서도 키안티), 움브리아, 마르케 등 중부 이탈리아가 본거지이다. 일반적으로 온화한 색감을 가지며, 미디엄 바디로서 높은 산도와 타닌을 지닌다. 산지오베제로 만든 키안티와 브루넬로 같은 이탈리아 와인이 유명한데, 향기가 부드러우며 장미꽃잎, 품질 좋은 차, 희미한 오일의 향이 배어 있다.


말벡(Malbec)

이 품종은 프랑스의 카오르와 아르헨티나에서 빛을 발한다. 카오르 와인은 한때 ‘검은 와인’이라 불릴 만큼 짙고 강하며 힘차고 씹히는 듯한 느낌의 와인이었으나, 최근 그러한 거친 특징들이 다듬어져 세련된 스타일을 보여준다. 아르헨티나의 말벡은 좀더 색다르다. 안데스 산맥의 800-1000 미터 고지대에서 생산되는 말벡은 걸쭉한 와인으로, 건포도처럼 잘 익은 잼의 향기, 타르와 가죽, 부드러운 블랙베리와 씁쓸한 초콜릿 열매의 느낌을 지닌다.


템프라니요(Tempranillo)

템프라니요는 스페인 중북부를 비롯해 포르투갈에서도 와인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품종이다. 전형적으로 부드러운 산도와 타닌에 짙은 색상을 지닌다. 고급 피노 누아에서 느끼는 맛을 내기도 하며, 신선하고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향기롭고 비교적 섬세하다. 가장 유명한 와인은 리오하(Rioja)에서 생산되며 이 지역에서는 가르나차(Garnacha)라는 품종과 블렌딩되는데, 전통적으로 부드럽게 잘 익은 체리 풍미와 미국산 오크의 바닐라 풍미가 강하게 결합된 향을 갖는다.


진판델(Zinfandel)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재배되는 진판델은 호주, 칠레, 남아공에서도 소량 재배된다. 발그레한 엷은 로제에서 진하고 감미로운 포트 같은 와인까지 모든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진판델 와인의 표준형은 개성이 강하고 드라이한 레드 와인 스타일이다. 스타일은 다양하지만 진판델에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은 생기 있는 산도, 잘 익었을 경우 나타나는 산딸기와 블랙베리의 풍미 그리고 장미 향 등이다.

 

[참고문헌]

와인 테이스팅의 이해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슈스터(Michael Schuster)는 전업 와인 교육가이자 와인 작가로서, 베스트셀러인 ‘Understanding Wine’(Michell Beazley, 1989)의 저자이며 ‘Oxford Companion of Wine’의 저작에도 참여했다. 또한 와인전문매체인 디캔터와 와인인터내셔널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더 와인 바이블 (The Wine Bible)

30여 년 넘게 와인작가, 컨설턴트,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캐런 맥닐의 저서로, 미국 내 베스트셀러이자 수상작이다. 출간된 후 45만부 이상 팔렸다. 집필하는데 무려 십 년이 걸린 이 책은 와인을 주제로 쓴 가장 포괄적이고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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