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숨막히게 달려왔던 한 해의 장면들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처럼 지나간다. 올 한 해를 정리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연말연시가 다가오면 평소와 다른 좀더 특별한 와인과 음식을 즐기고 싶어진다. 더구나 코로나 19 때문에 두 발이 묶인 지금 눈 덮인 알프스 산맥 아래 화이트 트러플의 고장, 피에몬테로 우리를 데려다 줄 네비올로 와인을 추천해본다. 

 


알프스의 선물, 피에몬테 와인과 음식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피에몬테는 훌륭한 와인 산지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뛰어나고 힘 있는 레드 와인,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가 생산된다. ‘안개’를 뜻하는 네비아 nebia에서 유래한 토착품종 네비올로가 이 두 와인을 만드는 주역이다. 네비올로 와인은 유전적으로 타닌 성분이 많아서 어느 정도 숙성시간이 필요하고 강건한 느낌이다. 피노 누아처럼 맑은 가넷색을 띠고 네비올로 고유의 장미향은 좀처럼 와인 잔에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고도 매력적이다. 이 밖에도 타르, 체리, 라스베리의 향도 어린 네비올로에서 느낄 수 있다. 숙성되면 진짜 커다란 꽃다발처럼 향들이 풍성해진다. 제비꽃, 허브, 트러플, 담배, 정향, 말린 과일, 가죽 등 여러 향들이 유혹한다. 네비올로는 타닌만큼이나 높은 산도를 가지고 있어 오랜 숙성 잠재력을 자랑한다. 


이렇게 타닌이 풍부한 네비올로 와인은 무거운 스타일의 피에몬테 음식과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알프스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강한 레드 와인과 푸짐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으로 진화했던 것. 피에몬테 위치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프랑스와 스위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이탈리아 다른 지역보다도(에밀리아 로마냐는 제외) 버터, 크림, 달걀을 많이 사용한다. 피에몬테에선 고기 요리의 양도 남달라 사냥고기, 소고기, 양고기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내놓는다. 고기 요리들은 타닌이 풍부한 네비올로 와인과 절묘하게 잘 어울린다. 


이탈리아 식문화는 크게 쌀과 파스타로 나눠진다. 피에몬테 중심의 이탈리아 북부는 옥수수와 쌀 곡창지대로 쌀 문화권, 시칠리아 중심의 이탈리아 남부는 파스타 문화권이다. 피에몬테에선 다양한 종류의 쌀을 생산되어 색다른 리조토를 맛볼 수 있다. 타야린 Tajarin과 아뇰로티 Agnolotti는 피에몬테의 유명한 파스타 요리다. 타야린은 달걀 노른자를 듬뿍 넣고 반죽한 얇고 긴 수제 파스타로 에밀리아 로마냐의 탈리아텔레 Tagliatelle를 많이 닮았다. 아뇰로티는 포르치니 버섯과 소고기, 시금치 같은 채소로 속을 채워 작은 반달 모양으로 빚는 라비올리의 일종이다.

 

지역마다 고유의 전통이 있어서 파스타 스타일에 따라 와인의 선택도 달라진다. 보통 파스타와 키안티 와인을 찰떡으로 알고 있으나 피에몬테에선 많은 파스타에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같은 네비올로 와인을 함께 마신다. 앞서 언급했듯이 버터를 많이 사용하는 피에몬테식 파스타는 단순하지만 맛이 진해서 묵직한 네비올로 와인과 잘 어우러져 감탄하게 된다. 

 

피에몬테 음식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화이트 트러플 white truffle이다. 세계 3대 진미 중 하나로 향과 풍미는 저세상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감각을 사로잡는다. 특히 화이트 트러플은 70여 종의 트러플 중에서도 가장 귀하고 인공재배가 불가능하다. 화이트 트러플은 오크나무, 밤나무, 너도밤나무가 자라는 부근의 지하 30센티미터 이상 내려간, 발견하기 어려운 땅 속에서 자란다. 피에몬테의 화이트 트러플은 토스카나, 움브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등 다른 지역에서 채취한 것보다 휠씬 더 탁월한데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도저히 버섯이라 볼 수 없이 기괴한 모양의 화이트 트러플은 크기가 클수록 천문학적으로 비싸다. 외신에 따르면 2021 알바 트러플 박람회에서 850g의 화이트 트러플이 1억 4천만원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정말 ‘억’ 소리나는 버섯이다. 피에몬테에선 화이트 트러플을 파스타, 리조토, 옥수수 가루로 만든 폴렌타 polenta, 스크램블 에그, 송아지 카르파초 등 다양한 요리에 종잇장처럼 얇게 깎아 넣는다. 화이트 트러플의 자극적인 흙 내음은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의 어시(earthy)라고 표현하는 향을 더욱 강렬하게 살려준다. 환상의 짝이 아닐 수 없다. 

 


네비올로 와인의 실전 페어링

 


아이콜리로시 이스테이트는 Icollrossi Estate는 1895년부터 현재까지 5대 째 와인 양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유서 깊은 베르가 Verga 가문이 소유한 와이너리이다. 피에몬테에서 직접 관리한 네 비올로 품종으로 다양한 와인을 만들고 있다. 바롤로의 주니어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랑게 네비올로와 바롤로 몬포르테 달바 두 가지 와인과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근사한 연말연시 식탁을 완성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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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디스 랑게 네비올로

Heredis Langhe D.O.C Nebbiolo


생산지: 피에몬테 > 랑게
품종: 네비올로 100%
등급: DOC
알코올: 14%


랑게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의 생산지를 둘러싼 넓은 지역을 지칭한다.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에 비해 랑게 네비올로는 장기 숙성을 하지 않아도 바로 마시기에 좋다. 에레디스 랑게 네비올로는 잘 숙성된 검은 체리, 베리, 바이올렛, 유칼립투스, 타르, 미네랄의 향미가 조화롭게 풍긴다. 살짝 높은 산도와 입 안을 강하게 조이는 타닌이 느껴지지만 곧 부드럽게 마무리된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에 비해 풍미와 가격 모두 가벼워서 일상 와인으로 활용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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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올로 와인과 잘 어울리는 햄과 소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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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 소스 파스타>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듯이 이탈리아에선 돼지고기를 먹어야 한 해가 풍요롭다는 속설이 있다. 빠지지 않고 새해 식탁에 오르는 코테키노 콘 렌티키 Cotechino con Lenticchie는 삶은 렌틸콩과 돼지 족발로 만든 소시지 요리로 조리하면 2-3배 커지는 렌틸콩은 늘어나는 재산을 상징한다. 이탈리아 소시지를 어렵게 공수하지 않더라고 요샌 수제 소시지의 종류가 많아 굽거나 데쳐서 준비하면 에레디스 랑게 네비올로와 딱 맞는 안주가 된다. 크림 소스에 여러 버섯들을 올린 피자도 크리미한 맛과 버섯의 맛이 랑게 네비올로의 어시한 풍미와 미끄러지듯 어우러진다. 이 밖에도 특별한 시즌 음식인 오븐에 구워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로스트 치킨과 라구 소스로 만든 파스타(위 사진)도 맛있는 궁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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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콜리로시 몬포르테 달바 바롤로

ICOLLROSSI Monforte D’Alba Barolo


생산지: 피에몬테 > 바롤로 
품종: 네비올로 100%
등급: DOCG
알코올: 14%


아이콜리로시 이스테이트는 바롤로를 생산하는 11개 마을 중 하나인 몬포르테 달바에 위치하고 있다. 바롤로 2015 빈티지는 매우 뛰어나다. 과일의 향은 호화로울 정도이며 향후 10년은 끄덕 없을 정도로 견고한 구조를 가졌다. 아이콜리로시 이스테이트는 엄격하게 선별한 포도를 스테인리스 스틸 배트에서 9일동안 발효한 후 오크통에서 숙성을 마쳤다. 


아름다운 보석, 루비의 붉은 빛을 띤다. 잘 익은 붉은 과일 향이 지배적이고 네비올로 특유의 장미 아로마가 잔을 채운다. 어시(earthy)한 요소가 많고 블랙 트러플, 바닐라의 향미도 난다. 신선한 산도와 탄탄한 타닌 그리고 긴 여운을 가지고 있다. 생일이나 승진, 성탄절, 연말연시처럼 특별한 날을 위한 와인으로 손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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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플을 올린 오일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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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롤로의 단짝, 등심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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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소고기 찜>

 

 

앞서 언급한 듯이 화이트 트러플 덕분에 향미가 증폭된 파스타, 타야린이나 탈리아텔레는 아이콜리로시 몬포르테 달바 바롤로와 함께 최상의 맛을 선사할 수 있다. 서로 비슷한 풍미들을 맞춰 완벽한 궁합을 보여준 예다. 버섯은 네비올로와 진정한 합을 이루는 식재료로 파스타뿐만 아니라 리조토 혹은 단순하게 팬에 기름 없이 볶아도 바롤로를 돋보이게 하는 안주가 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돼지고기를 새해음식으로 먹듯이 새해 복을 빌며 여러 향신채를 넣고 삶은 족발과 좋은 매치을 기대할 수 있다. 복합적인 향미가 미묘하게 바롤로와 잘 맞아 떨어진다고 느낄 것이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집에서 연말연시를 맞이해야 할 때 두툼한 굵기의 소고기 등심이나 안심, 양갈비를 준비해 스테이크를 만들어보자. 여기에 아이콜리로시 바롤로를 매칭하면 미슐랭 레스토랑도 부럽지 않다. 이 밖에도 소의 정강이 살을 뼈와 함께 소스에 졸여 만든 오소부코 Ossobuco 같은 무게감 있는 고기 요리와 잘 어울린다. 


 

수입) 제이와인 (02-419-7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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