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미타쥬 정상에서
엠.샤푸티에를 둘러보고 테이스팅을 마치고 나니까 적당히 취한데다가 날씨가 너무 좋아 에르미타쥬 정상에 올라보기로 했다.
포도밭은 어른 주먹만한 하얀 조약돌이 있는 자갈밭이었고 경사가 급한 곳은 70도나 되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농사를 짓고 포도를 수확하는지 새삼 론 지방의 농부들이 존경스러워 보였고 와인에 대한 경외심 마저 느끼게 되었다. 나중에는 가방과 두터운 옷가지들을 다 벗어서 포도밭에 던져버리고 사진기 하나만 들고 헉헉대며 올라갔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고, 올라가는 길이 힘들기는 했지만 에르미타쥬 정상에서 내려다 본 론은 정말 아름다웠다. 굽이쳐 흐르는 론 강이 한눈에 보이고 평화로운 시골마을과 끝없이 펼쳐진 정돈된 포도밭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천천히 석양이 론 강 너머로부터 물들어오고 있었고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는 서늘한 바람... 이 모든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
신은 인간이 기뻐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와인을 선물했다고 한다.
단순히 내가 마시던 와인의 생산지역을 둘러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이번 여행에서 나는 그 속에 배여 있는 농부들의 땀과 와인 메이커들의 철학을 배웠다. 그들의 수고에 감사를 보내며 이제는 분석과 탐구의 대상으로서의 와인이 아닌 함께 숨쉬고 기쁨을 나누는 친구로서의 와인을 만나게 된 것에 행복하다.
- 조 희 정 -
1. 축제의 와인, 보졸레
2. 에르미타쥬 농부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3. 엠.샤푸티에(M.Chapoutier)
4. 에르미타쥬 정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