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관의 만찬
만리장성에 밤이 왔다. 라이트가 켜지고, 만리장성의 자태는 깊은 적막에 쌓여 있는데, 수 천년간 불어온 그 바람은 Concha y Toro 의 악마의 깃발을 그리도 불어대고 파닥인다.
아~ 여러분. 이 장면을 연상해 보시라. 아마 여러분은 이 글 옆에 있는 사진을 보시고 계시겠지만, 그 적막, 그 장관, 그 열기, 그 바람소리를 느끼실 수 있을까??
이 순간 나는 진시황의 식탁에 초대된 만다린이련가. 진시황을 위해 불로초를 따러 한반도로 떠난 시동의 후손이기에 다시 이곳을 찾게 되었는가.
이제 흥분은 그만. 진정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함께 식탁에 앉은 사람들은 일본인이었다. 아마 일본에서도 한 끝하는 와인전문가들이겠지? 이것을 눈치챈 유사장님은 나에게 와인을 멋드러지게 테이스팅해 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것을 눈짓으로 요청했다. 앗뿔싸! 감기에 걸려있는 나의 처지를 아실까? 허나, 명장은 무기를 탓하지 않는 법…
드디어 첫번 째 메뉴… 에피타이저는 "태평양의 頌詩, Ode of the Pacific Sea" 라고 멋드러지게 명명된 "해산물 모듬접시" ! 내가 좋아하는 새우며 가재, 우렁과 소라, 굴 등이 잔뜩나왔다. 오매~ 행복한거.. 역시 Casablanca 의 신선한 Casillero Chardonnay 가 황금의 궁합을 이루기 위해 나왔다. 역시 이 산도는 칠레에서는 Casablanca 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어서 송로버섯(Truffle) 이 헤엄쳐 지나간 버섯 수프…
본식으로는 칠레 스타일의 필레 미뇽이 합당하게(?) 나왔다. 하긴 160여명의 식사를 만리장성까지 캐터링 서비스하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여기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Don Melchor 가 두 병이나 나왔다. 95년과 98년을 동시에 맛볼 수 있도록… 98년은 민트향이 특징적이었으며, 95년은 크리미한 느낌의 파파야 텃치가 독특했다. 맛의 복합미와 농축도는 Casillero 씨리즈 보다 훨씬 뛰어났다.
디저트는 거의 환상적이었다. 달걀의 흰자와 설탕을 섞어서 살짝 구운 매렝게(Meringue)에 일글리쉬 크림을 얹어, 카라멜을 입힌 호도와 함께 내었다. 음~ 달콤하고 구수한 거…
그런데 디저트와 함께 나온 와인은 처음 마셔보는 칠레산 "Vendange Tardive" 즉 늦수확한 스위트 와인이다. 그러나 테이스팅 결과, 이 와인의 농축미는 거의 SGN 급이다. 살구와 무화과의 당도를 레몬과 망고 샤베트의 신선한 느낌이 받쳐주는 산도가 일품이며, 계피향이 곁들이는 이국적 풍미도 이 스위트 와인의 복합미를 키워주었다. 가격이 적당하다면 한국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둘만하다.
맛난 음식과 Don Melchor 의 깊이와 Vendange Tardive 의 현란함에 취한 ?痢??식사가 다 끝날 무렵에야 우리 옆에 있는 한 기념석에 눈길을 줄 수 있었다. 무엇이라고 한자로 갈겨썼는데 주용관 옥상의 가장 정 중앙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것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중국의 한자는 20세기 이후 백화운동을 통하여 간결한 백화문자를 자주 사용하므로 정식 한자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중국 한자를 읽는데 좀 불편함이 있다. 그래서 서빙하는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뜻!!
"不到大城非如男"
"장성을 보고 밟지 않으면, 어찌 사내라 하리오" 라고 하는 모택동의 명구를 새겨놓았던 것! 호연지기를 강조한 우리의 사상과도 통하는 면이 있는 말이다.
우리 일행은 참으로 감명깊은 장소에서 멋진 저녁시간을 보냈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음식과 와인…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함께한 시간들이었다. 이번 중국 와인여행은 이것으로 공식일정이 끝났다. Concha y Toro 라고 하는 세계적 브랜드의 힘과 능력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며, 중국이라고 하는 잠재 시장에 대한 세계의 기대를 느낄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이제 세계 와인시장에서 점점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도 늘고 있고, VINEXPO 등 세계적 행사도 아시아에서 개최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와인시장은 아시아 각국중에서는 미미한 편인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증가하고 있는 한국의 와인산업과 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이냐는 전적으로 우리 와인애호가들의 역량에 달려 있다.
- 중앙대 소믈리에과정 교수 손진호 -
1. 내가 중국을…?
2. 출발!!
3. 북경의 첫 모습
4. 짐을 풀며...
5. 미국 째즈풍 장식의 중국 식당에서 전통 칠레요리를 먹다
6. 북경, 제국의 붉은 수도
7. 아낌없이 주는 오리…
8. 칠레 와인산업의 기수, Concha y Toro
9. 악마와 함께 만리장성을 넘다!!
10. Casillero des Diablo, 악마의셀러
11. 주용관의 만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