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풀며...
우리 일행이 도착한 곳은 북경 힐튼 호텔. 호텔 역시 중국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색상과 디자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미리 준비되어 있는 Conch y Toro 직원들과의 간단한 수속절차를 마치고 방으로 가려는데, 엘리베이터 주변의 장식이 눈에 띈다. 화이트 와인을 칠링시키는 아이스버킷에 포도나무를 분재처럼 심었는데, 위의 흙부분에 코르크 마개를 잔뜩 올려 놓아 운치를 더한 것이었다. 아이디어도 훌륭하고 포도나무가 잘 살아 있는게 신기했다.
방에 도착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샤워!! 5월 31일 인데, 북경의 더위는 거의 30도를 육박하는 폭염이었다. 훈훈한 열기가 공항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를 압도했던 것이다. 아마도 점점 사막화되고 있는 중북부 중국의 기후는 조만간 북경을 집어 삼킬지도 모르겠다.
샤워 후, 잠시 쉬고 있는데, Concha y Toro 의 중국 수입업체인 Summergate 회사에서 보내온 Casillero del Diablo 의 Cabernet Sauvignon 이 배달되어 왔다. 혼자 딱 먹기 알맞은 반 병짜리 였다. 사실 반 병짜리는 와인의 숙성에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렇게 오래 보관될 와인이 아닌 바에는 혼자 마시기에 적덩한 분량의 반 병짜리가 많이 상품화되어도 괜쟎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까지 건너온 이 칠레의 레드와인은 선명하고 짙은 검게 익은 체리빛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색상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엔 "왜 화이트를 안보내고 레드를 보냈지?" 했는데, 나름대로 함께 곁들인 치즈와 잘 어울렸고, 사큼한 과일향이 살아있는 좋은 선택이었다. 한 병을 기분좋게 다 마신 나는 곧 ?燒?들었다.
얼마를 잔 지 모르다가 깜짝놀라 벌떡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저녁 리셉션 약속까지 10분밖에 안 남은 것이다. 우왁!! 비명과 함께 고양이 세수 한 번 더하고, 서둘러 리셉션이 있을 식당으로 나가니, 웬걸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다 장소를 잘못 알았나? 하고 확인해 보니, 시간과 장소는 맞는데…단지 내 시계만 잘 못 된 것이었다.
맞다! 게보린!! 중국과 한국의 시차는 한 시간. 우~~ 시계를 돌리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
어쨌거나 한 시간을 벌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잃을 한 시간이지만!
참 신기하다. 인간은 어떻게 '시차' 라는 개념을 생각해 내었을까? 자연적인 것이었을까? 고안해 낸 것일까? 우리나라처럼 좁은 곳에서는 시간이 모두 다 똑같으니깐 좋다. 미국 같은 곳에서는 동부와 서부의 시차가 4시간이나 되니, 불편하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그 기다림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왜냐구여?
호텔 로비에서 일상적인 볼거리인지, 특별히 Concha y Toro 미팅을 위한 건지는 몰라도, 중국 전통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음악인들은 중국 전통 의상인 파오를 입고 있었는데, 그 색감과 무늬가 너무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일종의 긴 롱드레스 스타일인데, 옆이 엉덩이까지 파여져 있는 상당히 섹시한 옷이었다. 하얀색과 은색, 청색과 홍색등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색상의 비단으로 짠 것이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나를 꿈에서 깨우는 사람은 다름아닌 유사장님과 그 일행. 나는 괜히 민망해 하면서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리셉션에서는 Concha y Toro 의 아시아 담당팀들이 모두 모였다. 칠레에서 온 직원들과 아시아 각국의 현지 수입업체 직원들, 그리고 각국의 요리 와인 담당 저널리스트들이 모두 모였다. 사실 내가 그 자리에 있은 것은 한국의 '와인 전문가' 의 자격으로 초청받는 것이었다.
- 중앙대 소믈리에과정 교수 손진호 -
1. 내가 중국을…?
2. 출발!!
3. 북경의 첫 모습
4. 짐을 풀며...
5. 미국 째즈풍 장식의 중국 식당에서 전통 칠레요리를 먹다
6. 북경, 제국의 붉은 수도
7. 아낌없이 주는 오리…
8. 칠레 와인산업의 기수, Concha y Toro
9. 악마와 함께 만리장성을 넘다!!
10. Casillero des Diablo, 악마의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