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의 후보작에는 매우 흥미로운 다큐멘타리가 올랐습니다. 와인 산업과 그 이면을 다룬 ‘몬도비노’(Mondovino)가 그것이죠. 이 영화의 감독 조나단 노시테르는 해외 특파원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시절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그리스, 인도에서 자라면서 유럽문화에 익숙한 미국인입니다.
어쩜 그에게 이 와인이란 주제는 어떤 것보다도 가장 친숙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는 1997년 선댄스(Sun Dance) 국제 영화제에서 장편 극영화 데뷔작인 ‘선데이’(Sunday)로 심사위원 대상과 각본상을 수상하며 미국 독립영화의 주목 받는 감독으로 떠올랐죠.
노시테르 감독은 Mondavi사가 세계 진출이란 명목 아래 유럽과 남미의 전통적인 와인산업을 통째로 흡수하는 과정을 정치적으로 풀어냈습니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오가며 세계 와인산업의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말입니다.
영화는 프랑스 남부 랑그독 지방에서 시작합니다. 미국의 억만장자 와이너리 Mondavi사는 캘리포니아, 칠레, 호주, 이태리 투스카나의 명문 와이너리와 손잡고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으로 변신하여 와인산업의 현대화를 꾀하고 있던 와중에, 프랑스 랑그독에서 뜻하지 않는 난관에 부닥쳤습니다.
그 지역 주민들(거의 포도재배와 소규모 와인산업에 종사하고 있는)이 Mondavi사의 진출을 거세게 반대했고 결국 이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Mondavi사의 입성을 두 손 들고 환영했던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가 될 정도였고 Mondavi 자신도 매우 실망한 듯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영화 속에서 우리는 미셸 롤랑과 로버트 파커의 인터뷰도 볼 수 있습니다. 미셸 롤랑은 보르도 뿐만 아니라 세계 12개국 100개 이상의 와이너리에 와인 메이킹 컨설팅을 하는 와인계의 중요인사로 Mondavi사의 랑그독 진출을 옹호했던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로버트 파커는 보르도 와인을 대중적인 와인으로 세계에 전파했고 그 결과 와인 시장의 판도를 결정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전통적인 방법으로 와인을 만드는 프랑스 남부의 고집스러워 보이는 와인 생산업자들은 오늘날 보르도 와인업계가 돈만을 숭배한다고 비판하며 그 뒤엔 미셸 롤랑과 로버트 파커가 한 몫 한다고 폭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2시간 40분 동안 이 영화를 보면서 역사와 문명적인 배경 속에서 이어져가야 할 와인산업에까지 ‘돈과 규모’가 점점 침범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미국의 글로벌리즘은 맥도날드 식으로 누구나 좋아할 만한 평균적인 맛과 향을 만들어 내고 또 대량생산을 통해 세계에 그 와인을 다시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
노시테르 감독 또한 이런 점을 꼬집고 있었죠. 와인 애호가로서 와인산업의 현대화와 자본화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개성과 특색을 가진 와인은 점차 만나기 힘들어 질 것이며, 소규모의 와이너리들은 흡수 합병되어 균일화된 품질의 와인들을 생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은 애써 만든 고집스러운 와인에 등을 돌리겠죠… 패스트 푸드에 익숙해진 것 처럼 말입니다.
이런 모든 생각이 한낱 저만의 상상으로 끝나길 바라며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와인을 만드는 건 사랑과 겸손, 영적인 것과의 교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Mas de Doumas Gassac의 에메 귀베르 노인의 말이 머리 속에 오래오래 남았습니다.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 안티노리(Antinori), 프레스코발디(Frescobaldi), 그리고 부르고뉴의 작은 도메인인 몽티유(Montille) 가문과 같은 유명 와이너리들의 소유주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 사진출처 : nk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