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월드 두 대륙을 이은 웅대한 비전, 세냐 SENA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 하나만을 깊이 파서 대가를 이룰 수도 있으나, 21세기에 우리는 지난 수 세기 동안 인류가 몸담았던, 인문, 종교, 전통 학문적인 세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과학 학문과 자연계를 살고 있다. 이른바 인공지능(AI), 빅테이터, 양자역학 등이 신재생, 친환경 테마와 맞물려 22세기를 향한 새로운 지구 생태계를 대비하고 있다. 와인계도 마찬가지다. 자연 환경과 조건에 순응하며 그 표현을 존중해왔던 전통적 생산 방식과 개별 품종의 특성과 자질을 최대한 발휘하며 첨단 과학의 도움으로 고품질 와인을 만들어내는 현대적 생산 방식이 토네이도처럼 만나 융복합의 큰 시너지를 이뤄내고 있다. 포도밭에서는 동식물이 공존 서식하며 친환경 생태계를 이루고 하늘과 땅의 기운으로 비료를 만들어 지력을 회복한다. 양조장에서는 신재생 에너지를 적극 활용하며 중력을 따라 시스템이 이송된다. 이러한 비전을 창출한 북미 대륙의 선구자와 남미 대륙의 완성자가 만났으니, 이번에 필자가 시음한 2022년 세냐(Sena) 와인이 그 결과물이다.
북미와 남미, 두 대륙의 최강자가 만나다
2008년 94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로버트 몬다비는 미국 와인 산업의 대부와 같은 생산자였다. 1966년 자신만의 와이너리를 설립한 이래, 포도 선택, 재배 그리고 양조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한 와이너리에서 고품질 와인을 만들기 위해 행하는 많은 관행을 만들어 실천해왔으니, 첨단 과학을 도입한 포도 재배 및 와인 양조에서부터, 미식과 예술에 대한 애정과 존중으로 미국 와인 산업의 지평을 두 단계 높여놓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의 명성은 미국을 넘어 유럽에 까지 이르렀고, 1978년 프랑스의 와인 명가 무똥 롯칠드와의 합작으로 와인 세계의 첫 국제적 합작품인 오퍼스원을 자국내에서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과 식견을 가진 그가 남반구에 있는 남미 대륙으로 관심의 눈길을 돌리면서, 자신의 삶의 궤적을 똑같이 밟고 있는 칠레의 한 야심찬 젋은 양조가에 눈길이 끌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그 젋은이가 바로 현재 칠레 고품질 와인 생산의 본좌인 비냐 에라수리츠(Viña Errázuriz) 그룹의 회장인 에두아르도 채드윅(Eduardo Chadwick)이었다. 1983년 부친과 함께 가족 와인 사업인 비냐 에라수리츠 양조장에 합류한 에두아르도는 전 세계 와인 산지를 여행하면서 칠레의 땅과 기후가 고급 와인 생산에 특히 적합하고 잠재력이 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즈음, 1990년대 초 칠레는 이제 막 국제적인 와인 생산국으로 부상하고 있었으며, 세계 각국 양조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1991년 가족 친구이자 와인 양조자인 아구스틴 후니우스(Agustín Huneeus, 현 '후니어스 빈트너 Huneeus Vintners 그룹 회장)가 미국의 로버트 몬다비와 그의 아내 마그리트에게 칠레 와인 산지를 좀 보여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기꺼이 기회를 잡았다. 로버트 몬다비는 젊은 에두아르도 채드윅에게서 동질감을 느꼈고, 일주일 동안 칠레 중부를 둘러보면서 함께 했다. 그들은 아콩카과, 마이포, 콜차과 계곡에 있는 여러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두 사람은 칠레가 20년 전에 캘리포니아가 보여준 모든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함께라면 칠레의 세계적인 잠재력을 증명할 수 있는 뛰어난 와인, 즉 진정한 아이콘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제껏 없었던 독립된 새로운 테루아를 찾아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협약과 함께 실무 팀을 구성했고, 로버트 몬다비의 아들 팀 몬다비(Tim Mondavi)와 에두아르도 채드윅은 새로운 포도밭을 조성하기 위한 완벽한 테루아를 찾기 위해 4년에 걸쳐 계곡 전체를 광범위하게 조사했다. 이상적인 테루아를 찾는 것이 이 프로젝트에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당시 1990년대 중반의 표준 와인 스타일보다 더 신선하고 우아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더 시원한 부지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시대를 앞서 나갔다. 또한 두 사람은 처음부터 지속 가능한 관행(sustainable practices)을 사용하는 것이 핵심 요소라는 데 동의했기 때문에, 환경 보호 철학을 실천하고, 기존 농업 관행대로 재배하는 이웃으로부터의 교차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독립된 부지를 찾아야 했다. 4년 동안 아콩카과 계곡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수색하듯 수백 개의 토양 적합도와 기온 조건을 확인한 끝에 태평양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밸리 중간 지점인 오코아(Ocoa) 지구에서 이상적인 땅을 발견했다.
오코아가 위치한 아콩카과 밸리 지역은 포도가 좋아하는 따뜻하고 건조한 여름, 밝고 화창한 낮 그리고 서늘한 밤과 겨울이 있는 지중해성 기후 지역이다. 태평양의 차가운 훔볼트(Humboldt) 해류와 안데스 산맥으로부터 불어 내려오는 바람의 냉각 효과로 인해, 한낮의 시원한 미풍, 서늘한 밤 기운, 그리고 넓은 일교차로 독특한 기후 조건을 만들어 포도의 성숙 기간을 연장하여 포도의 강렬한 과일 풍미와 잘 익은 타닌, 깊은 색과 산뜻한 산도를 만들어 낸다. 강수량은 겨울철에 한정되어 있으며, 성장기의 건조한 날씨는 식물의 활력과 열매 크기를 조절하여 포도 재배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우뚝 솟은 안데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미네랄 풍부한 물이 아콩카과 강으로 흘러들어 포도밭에 깨끗한 관개용수를 공급하는 축복받은 곳이기도 하다.
친환경, 바이오다이나믹으로 자연을 온전히 담다
이러한 모든 환경적 조건 덕분에 아콩카과 밸리는 지속 가능한 유기농 및 바이오 다이내믹 포도 재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자연과 현지 동식물을 존중하도록 설계된 세냐 포도원은 가파른 두 산 사이의 계곡과 천연 숲으로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다. 처음부터 세냐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자연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자연 자원을 보존하여 원산지가 분명한 최고급 와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계획 단계와 세냐 포도밭 개발 초기부터 지속 가능성 관행과 유기 농업을 구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또한 바이오다이나믹 철학의 정통 기술과 방법을 채택함으로써 자연의 순환, 우주의 리듬, 바이오다이나믹 처방의 과학적 물리학적 신비에 대해 주의 깊게 관찰하고 배워왔다. 세냐에서는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의 필수 처방을 포도밭에서 사용하기 위해 지하에 저장하고 있다. 퇴비는 포도밭에 뿌려져 겨울 동안 땅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이는 포도밭 토양을 활성화하고 영양을 공급하여 이듬해 봄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게 한다. 세냐의 바이오다이나믹 가든에는 카모마일, 쐐기풀, 민들레, 발레리안 등의 다채로운 꽃과 식물이 있으며, 이를 재료로 처방을 만든다. 양을 비롯한 야생동물은 포도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잡초를 방제하고 토양에 비료를 주는 자연적인 수단을 제공한다. 풍요로운 생물 다양성과 식물군을 보존하고 동식물의 상호 작용이 세나 포도밭 전체에 미치는 혜택을 체험할 수 있는 이 곳 오코아에서 자율 규제 생태계의 매직 서클이 완성된 것이다.
세냐의 42헥타르에 달하는 아콩카과 밸리 산비탈 포도밭에는 1998년에 주요 레드 보르도 품종과 까르므네르를 식재했다. 보르도 스타일을 모델로 한 세냐는 바이오다이나믹 농업 원칙에 따라 재배한 칠레 대표 품종 까르므네르를 추가함으로써 칠레의 영혼을 불어넣은 블렌딩 와인이다.
보르도 품종, 대목 및 클론의 선택, 줄 간격, 방향 및 격자 설계는 많은 고민 끝에 이루어졌다. 태평양과 가까워 평균 기온은 낮지만, 바다를 등진 해안 산맥의 동편에 있는 포도원의 절묘한 위치 덕분에 바다의 강하고 차가운 바람의 직접적인 영향으로부터 포도나무를 보호하면서도 서늘한 기후 조건을 조성하여 균형 잡힌 산도와 뛰어난 우아함과 정교함을 제공하는 뛰어난 수준의 숙성도를 가진 적포도를 생산하기에 완벽하다. 계곡 경사면의 화산암과 충적토는 다양한 재질에 적절한 비율의 돌을 함유하고 있어 배수가 잘 되는 자갈과 양토, 점토 성분도 보르도 품종을 맞이하기에 최적이었다.
칠레 최초, 최고의 보르도 블렌딩 초아이콘 와인, 세냐
세냐는 칠레 최초의 아이콘 와인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꿈과 노력을 함께한 두 전통 와인 가문이 공유한 비전의 결정체다.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칠레의 포도, 기후, 토양을 보고, 1995년 미국 나파 밸리 와인 산업의 리더인 로버트 몬다비와 비냐 에라주리즈의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은 칠레에서 최초의 국제 합작 투자 회사를 설립했다. 같은 열정과 헌신을 공유한 이들은 포도의 본질과 대지의 정신을 담은 독특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칠레의 첫 번째 상징적인 와인이자 칠레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와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와인이었다. 칠레 와인의 새로운 역사를 쓴 그들은 칠레가 진정으로 훌륭한 세계적 수준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세냐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냐(Seña)는 스페인어로 ‘신호(sign), 징후' 혹은 특정인의 ‘서명(signature)’을 의미한다. 1995년 첫 빈티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으며 매 년 프리미엄 와인을 만들고 있다. 이 아이콘 와인은 칠레 와인 역사의 이정표이며, 칠레에서 다른 초프리미엄 와인이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칠레가 세계적인 와인 산지로 인정받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세냐에 대한 세계적 인정은 평론가들의 평점과 유수 평가회에서의 높은 점수로 드러나고 있으니, 최근 세 개의 빈티지(2015, 2018, 2021)가 제임스 서클링 평론가로부터 100점 만점을 기록했고, 영국 '디캔터' 매거진에서는 ’와인 레전드(Wine Legend)’에 '세냐 1997' 빈티지를 선정했으며, 2004년에 시작된 '베를린 테이스팅' 블라인드 평가회에서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들과 이탈리아 슈퍼터스칸 와인들을 제치고 최상위에 랭키되면서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도전과 명예를 담은 와인, 품격있는 삶에 어울리는 와인, 매년 칠레의 자연과 영혼을 담은 세냐 와인을 시음하는 호사는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기회이기에 올해도 필자는 2022년 빈티지 와인을 시음해 보았다.
2022년 빈티지, 세냐 SENA
칠레의 2022년 빈티지는 성장기 동안 이상적인 조건의 혜택을 받았다. 시즌은 다소 낮은 소출과 건조한 조건, 숙성 기간 동안의 평균 기온 등이 과거 표준 기록과 거의 일치했다. 봄은 겨울 동안 평년보다 적은 강우량으로 인해 약간 일찍 싹이 트기 시작했고, 그 후 적당한 기온 덕분에 포도나무는 전체 시즌 동안 규칙적인 생리적 일정을 소화하며, 포도가 점진적이고 균일하게 익을 수 있니다. 2022년의 특별함은 성장기 75mm에 불과한 강수량이었는데, 뿌리가 깊은 오래된 포도나무인데다 작물팀의 관개 전략, 바이오다이나믹 관행 덕분에 성장기를 순조롭게 보낼 수 있었다. 이 부분은 테이스팅에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수확은 3월 중순 말벡을 시작으로 3월 마지막 주와 4월 초에 까베르네 소비뇽, 3월 마지막 날에 쁘띠 베르도, 4월 둘째 주에 까르므네르로 마무리됐다. 수확량은 약간 낮았지만 포도는 균형 잡힌 성분과 높은 품질을 보였으며 농도와 산도 및 색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와인은 강렬하고 깊은 색, 신선한 붉은 과일의 풍부한 향, 우아하고 잘 익은 타닌, 좋은 농도, 활기찬 산도 등 태평양의 시원한 바람의 영향을 받는 온화한 기온의 독특한 위치 덕분에 세냐의 조화롭고 우아한 스타일의 특징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 까베르네 소비뇽 60%, 말벡 25%, 까르므네르 9%, 쁘띠 베르도 6%로 블렌딩된 2022 세냐는 새 프랑스 오크통(85%)과 약간의 중형 오크통(Foudre 15%)에서 18개월 숙성시켰다. 이 어려운 블렌딩 비율로 우아하면서도 미묘한 뉘앙스를 가진 와인으로 거듭 태어났다.
필자가 시음한 2022 세냐는 단 2년의 준비 과정을 마치고 이제 명품으로서의 긴 삶의 여정을 시작하는 초입의 와인이었다. 짙은 흑적색에 선명한 보랏빛 뉘앙스가 생동감을 주며, 첫 눈에 와인의 농축미와 품질을 보여 준다. 글라스에서는 붉은 체리, 블랙커런트 잎의 풍미, 감귤류와 향긋한 꽃집의 화사함, 블루베리가 받쳐주는 미묘한 아시아 향신료와 말린 허브 향이 신비스런 첫 문을 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나무 숲속의 피톤치드 향과 발사믹 향이 등장하고, 10년 뒤에나 보여줄 3차향은 과묵하게 시작해 조용히 열리면서 흙내음, 삼나무, 감초, 흑연이 깔리며 묵직한 미래를 보여준다.
미각은 밝은 고음 톤으로 활기차고 경쾌하며 자연스러운 산미가 농축된 타닌, 여유롭게 부드러운 질감과 균형을 이루어 조화롭게 느껴진다. 이는 앞서 설명했듯이, 매우 건조한 빈티지임에도 불구하고 조기 수확으로 대처하고 쁘띠 베르도를 6%까지 블렌딩함으로써 산미를 보강한 결과인 듯 하다. 생각보다 강한 타닌감이 초반에 느껴지나 그 결은 매끄럽고, 농축미를 내재하면서도 조화롭고 온화하고 우아한 미디엄-풀 바디 와인이다. 피니쉬는 단단하며 긴장감이 느껴졌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처럼 밀당하며 잘 짜여진 근사한 레드 와인이다. 칠레와 미국, 그 중간에 완벽히 자리잡은 뛰어난 품질과 정밀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우아한 캐릭터는 세냐의 전매특허다. 뛰어난 숙성 잠재력을 가진 이 와인은 15~30년까지 보관해도 좋겠지만, 글라스 안에서 끊임없이 확장되고 변모하는 지금의 이 와인은 화려하고 활기차며 선명하게 표현되어 청춘의 기쁨을 보는 듯 하다. 일찍 열어 미안하고 아쉽지만 이미 매혹적인 와인임을 어찌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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