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뉴스 플로우를 살펴보면 인플레이션, 물가폭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짙다. 특히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폭염, 무더위 등)로 인해 곡물 재배량이 감소하고 가격이 폭등하면서 물가가 오르는, 이른바 '에그플레이션 (agflation)'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현재 지구의 평균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약 1,01도 상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10년 내에 온도가 1.5도 상승하면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 아래, 현재 전 세계는 탄소 저감과 에너지 전환 등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정책 도입과 실행에 집중하고 있다. 이와 함께, 와인산업 내에서도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이 활발히 논의 중이며 와인생산자들 역시 지속가능한 환경 조성을 위한 활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샹파뉴, 탄소 저감 규제 도입한 최초의 와인 산지"
<20세기 말부터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는 기후변화의 위협이 이미 감지되고 있었다. 30년에 걸쳐 샹파뉴 지방의 기온은 1.2도 상승했고 포도의 개화와 수확 시기는 2주일이나 앞당겨졌다. 2019년에는 역사상 유례없는 최고 온도(42.9도)를 기록했고 산불로 인해 수확량이 급감했다. >
2003년, 프랑스 샹파뉴는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함으로써 “탄소 저감을 위한 규제를 도입한 최초의 와인 산지”가 되었다. 샴페인 생산자들은 샴페인 병의 무게를 줄이고 폐기물을 재활용하고 바이오매스를 에너지로 전환하는 등,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75% 줄인다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규제 도입 15년 후에는 샴페인 한 병당 배출하는 탄소의 양을 20% 감소시켰다.
샴페인 생산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탄소 저감을 실천하고 있을까? 4년만에 한국을 찾은 샴페인 명가, 떼땅져 Taittinger 가문의 Clovis Taittinger를 만나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샴페인은 다이어트 중”
병 속의 이산화탄소로 인한 높은 기압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샴페인 생산자들은 무게가 900g에 달하는 두껍고 무거운 병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2010년부터는 병 무게를 7%(65g) 줄임으로써 연간 8천톤의 탄소 배출량 감축 효과를 가져왔다(이는 자동차 4천대가 내뿜는 양이다).
규정에 따라서, 샴페인 생산자들은 물을 포함해 샴페인 양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산물을 재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샹파뉴의 포도밭에서는 연간 12만톤의 부산물(나뭇가지 등)이 나오는데 이 중 80%는 갈아서 비료로, 20%는 태워서 연료로 사용한다. 양조장에서 나오는 부산물(포도껍질 등)은 다른 산업에 재료로 제공된다. 발효를 마치고 걸러낸 포도찌꺼기를 헬스케어 제품의 원료로 사용하거나, 에탄올을 추출하여 버스 연료로 사용하는 등이 좋은 사례다.
현재 샴페인 양조 과정에서 나오는 전체 폐기물의 재활용 비율은 90%에 이른다. 한편, 샴페인 하우스 떼땅져는 유리, 상자, 종이, 스테인리스 등의 재료도 재활용한다. 유리의 경우 94%를 재활용 자원에서 얻는데 이는 샹파뉴 지역 평균인 80%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떼땅져는 샹파뉴 지역에서는 드물게 넓은 면적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288헥타르).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포도밭 3헥타르당 한 명의 전문 재배자를 고용, 오래 전부터 지속가능한 농법으로 관리해 왔다. 제초제, 살충제 등 화학약품 사용량을 다른 샴페인 생산자들의 절반 정도로 줄였고, 포도밭의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례로, 포도밭에 풀을 심고 울타리를 놓아 해충의 천적인 벌레가 서식하도록 하고 토양의 침식을 막는 환경을 조성했다. 건강한 토양을 만들기 위해 말로 쟁기를 끌어 밭을 경작하는데 이는 오늘날 보기 드문 광경이다. 생물 다양성의 보호와 보존을 위한 이와 같은 노력은, 농업 분야에서 기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떼땅져는 수자원을 비롯한 에너지 사용, 폐기물 처리 관련하여 정부기관이 제시하는 공식적인 정책을 넘어서 더 다양한 친환경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결과 2017년에 지속가능 농법을 인증하는 두 개의 인증서, ‘Haute Valeur Environnementale’과 ‘Viticulture Durable en Champagne’를 획득했다. 전자는 2012년에 출범한 농업 인증 제도로 농업 전반에 걸쳐 적용되며, 후자는 2015년 프랑스 농림부가 승인한 ‘지속가능한 샴페인 양조 인증제도’다. 샴페인 생산자 협회에 따르면, 현재 샹파뉴 지역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포도밭 면적은 41%이며 2030년까지 10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샴페인 생산자들이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온 것은 비단 그들의 생업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미래 세대가 이어받을 샹파뉴의 경제적, 환경적 유산을 최대한 가꾸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2015년에 샹파뉴의 포도원과 역사적 명소들이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대거 등재된 것은 샴페인 생산자들에게 환경 보존에 대한 더 많은 의욕과 동기를 부여했다.
위 사진은 떼땅져의 지하 와인 셀러. 떼땅져 가문은 샹파뉴 랭스(Reims)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생 니캐즈 수도원(Saint-Nicaise Abbey)에 백색 석회암으로 만든 지하 와인 셀러를 소유하고 있다. 길이가 무려 4km에 달하는 이 지하 셀러는 수 세기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샹파뉴의 명소로써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하 셀러를 증축하던 중 과거 베네딕틴 수도사들이 만들었던 독특한 모양의 유리병을 발견했는데, 이는 오늘날 떼땅져가 사용하는 샴페인 병의 디자인에 영감을 주었다.
위 사진은 독특한 병 모양의 ‘꽁뜨 드 샹파뉴 Comte de Champagne’ 샴페인. 떼땅져의 플래그십 샴페인이며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샴페인으로 꼽힌다. [죽기 전에 꼭 마셔봐야 할 와인 1001]에도 등장한다. 꽁뜨 드 샹파뉴는 포도 작황이 좋은 해에만, 그랑크뤼 포도밭에서 선별한 포도로 만들며 떼땅져의 역사적인 지하 와인 셀러에서 10년의 숙성을 거친 후에 출시된다.
이름의 Comtes는 ‘백작’을 의미하는데 떼땅져 로고에 그려진 티보 4세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십자군 원정을 갔다가 귀환하면서 샤르도네 품종 묘목을 가져올 정도로 와인 산업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떼땅져 가문은 1932년에 렝스 시내에 있는 백작의 저택을 매입하게 되는데(아래 사진), 이로써 그들의 최상급 샴페인에 '샹파뉴 백작 Comtes de Champagne'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샴페인 하우스 떼땅져는 국제적인 명성의 럭셔리 샴페인 브랜드로, 4세대에 걸쳐 독자적인 가족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샴페인 떼땅져의 역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떼땅져 가문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후 파리로 이주하여 와인중개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군 먀샬 죠프르 장군의 지휘 본부가 프랑스 북동부 샹파뉴 지역의 한 건물 '샤또 마께트리 Chateau de La Marquetterie'에 설치되었다. 그의 부관으로 이 곳에 주둔하고 있던 군 장교 삐에르 테땅져 대위는 샤또와 주변 풍광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다. 전쟁이 끝나고, 샹파뉴 지방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멋진 포도밭을 다시 마주한 그는 1932년에 마침내 포도밭과 성을 구입하였다. 이후 1934년 떼땅져로 사명을 바꾸고 샹파뉴 발전의 새로운 초석을 놓았다(출처_ “[손진호의 와인 명가] 샴페인 명가, 떼땅져 Taittinger”)
샴페인 하우스 떼땅져는 현재 140 여 개국에 연간 5,500만병의 샴페인을 수출하며 국내에는 하이트진로를 통해 수입, 유통되고 있다.
※ 참고자료
“지속가능한 샴페인 제조법으로 막는 기후변화” (뉴스토마토, 2016-03-15)
기후변화에 '와인 명가' 佛·伊 직격탄... 올해 생산량 10~30% 줄어든다 (한국일보, 2021.08.10)
“Climate Change Is Affecting Champagne Now, Too”
COMTE CHAMPAGNE(샴페인 생산자 협회)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