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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 랑게와인 앰버서더(Langhe Wines Ambassador)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The International Wine Award Mundus Vini, International Wine City Challenge,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l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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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로 데이스가 열린 갈레리아 그란데 홀. 원래 왕과 왕자의 침실을 연결하는 복도였다. 어두침침하고  비좁은 복도를 떠올렸다면  당장 그 생각을 떨처버리길. 44개의 유리문과  천장의 타원형 창문을 통해 햇빛이 하루 종일 쏟아져 들어온다>

 


2014년 로에로 데이스(Roero Days)란 시음회가 열린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작은 거인 로에로, 너를 지켜볼게”라는 글로  행사의 이모저모를 스케치했다. 로에로 데이스는  로에로 와인과 자연경관 및 음식문화를 이탈리아 전역에 홍보할 목적으로 탄생한 이래  로에로 와인 앰배서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첫 회를 유치했던 장소는 레자 디 베나리아 레알레란 궁으로  사보이 왕가가  황금기를 누리던  17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피에몬테(북이탈리아) 주에  거느리고  있던  12개의  궁전 중 하나다. 궁의 위치를  연결하면  왕관 모양을 이루는데 이를 두고  ‘왕의  환희’란  뜻의  코로나 델레 델리지에 (Corona Delle Delizie)라 불렀다. 개별 궁마다  크고 작은 사냥터를 둬  왕족이 말을 타고 한 걸음에  달려갈 수 있도록  정궁이 있는 토리노 주변에 지었다. 이들은 사냥터에서 잡은 포획물로   성대한 만찬을 즐기곤 했다.  


레자 디 베나리아 레알레는 사보이의  사냥 열정을 예술로 승화시킨 수렵문화의 꽃이다. 궁 건물, 정원, 사냥터를 아우르는 궁전은 건물만 8만 제곱미터, 궁을 둘러싼 정원이 60헥타르, 사냥터가 3천 헥타르인  초호화 사냥터다. 정원은 계절마다 바뀌는 꽃으로 넘쳐났고  장미 정원 한가운데 자리 잡은 호수에서는 모의 해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에 헌정하는 홀, 미로 정원, 에르콜 수로가 어우러진  원근감이  마치  프랑스의 베르사유 정원과  흡사해 ‘이탈리아 베르사유’란 별명을 얻었다.  


궁전의 웅대한 규모는 후보지 선택부터 건축 설계까지 지휘한  까를로 에마누엘레 2세 공작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세기 중반, 사보이 영토 북쪽에서 세력을 키워가던 부르봉 왕조는  알프스 이남에  있는 작은 공국인 사보이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하여, 군주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정궁이 있는 토리노에서 가깝고  프랑스로 가는 길목에  놓여있던 베나리아 레알레가 선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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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자 디 베나리에 레알레  궁전. 궁전과  마을 모습은 동시대에 드러났다. 성의 정문을 나서면 바로 베나리아 레알레 도심과 연결되는데  중심부에는  주랑 열이  서로 마주 보는  둥그런 광장이 있다.  광장은 사보이 기사들의 상징인 목걸이 Supreme Order of the Most Holy Annunciation 형태를 본 따 지었다고 한다>

 


로에로 데이스의  메인 행사는 시음회인데  첫 회가 열린 곳은  아담한 카시나 델 바셸로( Cascina Medici  Del Vascello) 건물이다. 사보이 왕족이 머무르는  동안 식탁에  오를 야채와 과일을 가꾸던  농가와 농지로 이루어졌다. 이번 회는 궁의 랜드마크로 추앙받는  갈레리아 그란데 홀과 치트로네리아 왕실 식물원으로 업그레이드했다. 필자의 칼럼에서 예상한 대로, 작은 거인이 쑥쑥 자라 성인 거인 단계로 진입한 것 같아 기분이 흡족했다.
로에로 데이스 당일, 갈레리아 그란데 홀은 두 줄로 늘어선   72군데  와이너리 테이블이  와인 애호가들을  맞이했다. 3천여 명의 와인 애호가들이 방문했으며  4백 여종의 와인이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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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리아 그란데는 원래 왕과 왕자의 침실을 연결하는 복도였다. 어두침침하고  비좁은 복도를 떠올렸다면  당장 그 생각을 떨처버리 길.  길이  80미터, 폭 12미터, 높이가  15미터로  웬만한 연회장 규모다.  18세기 초  왕실 소유  건축물의  내외 장식을 도맡아 하던  왕실 건축가 필리포 유바라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공간 어디에도  샹들리에나 벽에 걸린 촛대가 보이지 않는다. 44개의 유리문과  천장의 타원형 창문을 통해 햇빛이 하루 종일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빛의 각도에 따라 내부는 흰색이었다가 크림색으로 빛난다. 벽은 스투코 양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햇빛이 비치는 순간 그늘 밑에 숨어있던 디테일이 드러난다. 바닥에 깔린  대담한 흑백색의 대리석과 대조를 이뤄 흰색이 더욱 청초한 분위기를 낸다.

 

 

 

로에로 와인의 전령사, 로에로 아르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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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로 와인은  주품종인  네비올로의 블렌딩 비율이 95% 이상이어야 하며  안나타와 리제르바 타입으로 나뉜다.  안나타 숙성기간은  최소 20개월,  리제르바는 32개월이며 둘 다 오크 숙성을  최소 6개월 거쳐야  한다>

 


로에로 와인은 양손에 저울을 든 바커스 신을 연상하면 된다. 신의 왼손에는 로에로 아르네이스 화이트가, 오른손에는  로에로 레드가 들려있다. 로에로는 알바 북쪽에 이어져 있는 구릉지대에  솟아오른19군데 마을을 일컫는 지역명칭이다. 와인 라벨을 예로 들면, 화이트는 로에로 뒤에 아르네이스가 붙고 레드는 로에로만 표기한다.
 

로에로 아르네이스는 로에로 와인을 전 세계에 퍼트린  전령사다. 로에로 언덕에 가꾼 포도밭이 1,199헥타르인데, 이 중  76%인  909헥타르가 아르네이스 밭이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고문서에 따르면  15세기 초에 아르네이스가 심어진 후, 때로는 과일로 때로는 미사주나 버무스의 원료로 로에로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오후 5시경  로에로나 알바 도심의 바에 가면 아르네이스의  일상성이 보인다. 차가운 아르네이스 한 잔에  노촐레나 살라메 조각으로 해피 아워를 즐기는  현지인들로 노상 카페가 붐빈다. 보디가 가벼우면서도  상쾌한 산도와 짭짤한 맛이 잘 어우러져 있어 밝은 분위기에 어울린다. 


최근  아르네이스의 숙성 잠재력이  알려지면서 생산자들은 숙성 기한과  이에 따른 풍미의 진화를 주의 깊게 지켜보는 중이다.  2014년에 리제르바 타입이 도입되었으며  일반 아르네이스에  비해  숙성기간을  2년으로 늘려 맛과 향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싱글빈야드 아르네이스만 선별해  품질도 끌어올리는 추세다. 또한 산미 보전을 위해 젖산 발효는 자제하며  산뜻한 아로마와 기품을 주기 위해  효모 앙금 숙성이 일반화 되고있다. 

 


로에로 아르네이스 DOCG  Sarun  빈티지 2018 
(생산자: 니노 코스타  와이너리)

 
밝은 노란색이 청량감을 준다. 노란 들꽃, 아카시아, 인동초, 바다내음, 아몬드 향이 경쾌하다. 미네랄의 염분이 내는  감칠맛과 산뜻한 산미가 즐거움을 선사한다.


로에로 아르네이스  DOCG  4 Luglio  빈티지 2016
(생산자: 필리포 갈리노 와이너리)


4 Luglio는  오너의 조카가 태어난 날이며 그날 심은 아르네이스가  30년 수령을 맞이한 해에 거둬들인 열매로 만들었다. 허브, 잔디, 헤이즐넛, 청사과, 자몽 향이 상큼하다. 적당한 산미와 어우러진 감귤류 여운이 감각적이다.


로에로 아르네이스 DOCG 비냐 레네시오 빈티지 2013
(생산자: 말비라 와이너리) 


후에 아르네이스란 품종명을 낳은 전통있는  레네시오 크뤼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었다.  흰꽃, 아카시아, 재스민, 바나나,  헤이즐넛, 진저 향이 상큼하다. 미네랄과 페트롤 향의 우아한 결합, 여기에 유연한 질감과  구조가 조화를 이룬다.


로에로 아르네이스 DOCG  빈티지 2012
(생산자: 파체 와이너리)


오너인 네그리 형제는 초창기부터 아르네이스 숙성력에 확신을 가졌고 무조건  10년 병 숙성 원칙을 고수해 왔다. 아카시아, 꿀,  페트롤, 이스트, 송진, 사루비아 같은 아로마와 허브향이 지중해 감성을 낸다. 촘촘한 구조는 섬세함을 지니며 상큼한 산미에  감귤류 여운이 감돈다.

 

 

 

로에로의 히든카드

 


로에로는 히든카드다. 아르네이스의 국제적  인지도가 높다 보니  상대적으로  진가가 덜  알려졌다. 로에로는 네비올로를 재배하는 언덕의 토양 구성이 와인의 개성을 명징하게  가르는 자연 밀착 와인이다. 모래 함량이 점토와 석회석 비율을 추월하면 과일과 꽃 아로마를 숨김없이 펼쳐 보인다. 숙성 초기일수록 진가가 드러나는데  떫은맛이 순하며 산미와 결합력이 좋고 탄탄한 골격을 지닌다. 반면 석회토에서 자란 경우는 아로마를 발산하는 속도가 다소 느리고  향기로움 보다는 우아함이 돋보인다. 보디가  좀 더 묵직하고 타닌에 긴장감이 서려있다. 네비올로의 장미, 바이올렛, 라즈베리 아로마에 타임, 송진, 향신료 같은 이국적 캐릭터가 포개진다. 최고의 강점은  타닌 숙성이 빠르다는 것이며 원숙한 부케를 낼 만큼 숙성했어도 산도가 또렷해  신선함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로에로  리제르바 DOCG  브라야  빈티지 2013
(생산자:  델테토 와이너리)


체리, 유칼립투스, 타임, 자두, 블랙베리, 흑연 향이 매혹적이다. 타닌이 부드럽게 입안을 감싸며 미네랄 풍미가 담백한 맛을 낸다.


로에로 리제르바 DOCG 브릭  파라디소 빈티지  2011
(생산자: 테누타 카레타 와이너리)


감초, 블랙베리, 체리, 후추, 정향, 말린 꽃 향기가 그윽하다. 경쾌한 산미와  풀 보디의  파워, 유려한 질감이 돋보인다. 


로에로 리제르바 DOCG  프린티  빈티지  2008
(생산자: 몬키에로 카르보네 와이너리)


타바코, 부싯돌 ,해조류, 타르, 블랙베리, 흑자두, 가죽 향기의 향연을 펼친다. 타닌 구조가 견고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을 지니며 놀라운 집중도를 보인다.


로에로 리제르바 DOCG  발마조레 빈티지 2006
(생산자:  카시나 키꼬 와이너리)


감초, 말린 오렌지, 타바코, 트러플, 정향, 노간주 등 농익은 향이 풍성하다. 딸기와 체리 시럽 향기를  은은히 피운다. 풀보디의 힘과 잘 익은 타닌이 대조를 이루며  오크 달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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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로 와인은  원산지에서 나는 식재료와  매칭 하기에  제격이다. 위 사진은 코스와 매칭힌 와인들. 안젤로 네그로  와이너리의  로에로 아르네이스  조반니 도사쥬 제로 2016 스푸만테. 탈리아노 미켈레 와이너리의 로에로 아르네이스 세르니 2021.  파체 와이너리의 로에로 아르네이스  주안 다 파스  2012,  끼에사  와이너리의  로에로 몬프리조 2016, 말비라 와이너리의  로에로 수페리오레 트리니타  2001>

 


로에로 와인의 실용성은 음식과의  매칭에서 드러난다. 미네랄의 쌉쌀함이 식욕을 돋우고 와인 맛이 세지 않아 원재료의 맛을 살려준다. 이번 로에로 데이스에도 지역 농산물이 주가 된 메뉴와  와인  조합이 선보였다. 특히 로에로 지역에서  몸값을 올리고 있는  4명의 스타 셰프가 창의성을 발휘한 메뉴라 관심을 모았다.


푸드와 와인 매칭은  자연 채광이 은은한 치트로니에라 에서 열렸다. 원래 왕실 식물원이었던 곳인데 겨울철에는 레몬, 오렌지, 석류나무들이 이곳에 옮겨져 겨울을 났다. 길이가 148미터에  폭이 14미터의 공간은  벽 쪽에 낸 대형 창문 사이로 장미 정원과 마주하고 있다. 식물원 북쪽에는  왕립 마구간인 스쿠데리아 그란데(Scuderia Grande)를 배치했다.한번에 2백 마리 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인데  말의  체온이  실내온도를 높여 식물원의 실온을 덥히는 데 일조했다.


메뉴는 로에로의  5대 특산물인 아스파라거스, 노촐라(헤이즐넛),  파소네 토종소, 블랙 트러플, 로비올라 로카베라노 치즈를 주재료로 코스 메뉴를 구성했다. 먼저 웰컴 아르네이스는  네 종류의 핑거푸드가 곁들여졌다. 핑거푸드는 네 명의 셰프가 준비해 조화로운 맛을 살렸다. 이어 전채요리는 스테파노 파가니니(Alla Corte degli Alfieri레스토랑) 셰프가  아스파라거스에 노촐라,  로비올라 로카베라노 치즈 소스에 곁들여 담백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완성했다. 안드레아 스페로네 Belvedere Roero레스토랑) 셰프는 면 사이를  토끼고기 라구로 채운 라자나를 선보였다. 코스의 마지막은 안드레아 페루치(마르체린 레스토랑)셰프가 만든  돼지의 뺨 부위를  로에로에 익힌 고기를 블랙 트러플로 장식한 요리로 마무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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