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프로세코 신드롬은 로제가  이어간다"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1918년 6월, 이탈리아 국민 영웅 프란체스코 바라카(Francesco Baracca)가 조정하던  전투기가  몬텔로 언덕에 추락한다. 그로부터  5년 후  바라카의  부모는 사비오 카레이스에서 막 우승을 거머쥔  엔조 페라리에게  흑마 문양을 기증한다. 아들의  흑마를 탄 엔조 페라리가  자동차 경주에서 챔피언을 휩쓸라는 염원을 담아. 
공중을 향해 박차 오르는 흑마는 바라카가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동체에  부착하고 다녔을 정도로 자신의 분신처럼 아꼈다. 얼마 뒤 엔조 페라리는 흑마의 꼬리를 끌어올리고  배경을 노란색으로 바꾼 다음  맨 위 테두리를 이탈리아 삼색기로 두른 뒤  페라리의 엠블럼으로 사용한다.
             

 

     

<1929년에 채택된  페라리의  공식 엠블럼. 이미지Wikipedia>

 

페라리 엠블럼은 포르셰 자동차의 엠블럼과  흡사해  무성한 루머를 낳았다. 루머 중에는 흑마가 독일로부터 온 거라는  설이 있다. 이는  바라카가  현역일 때  전투조종사의 관례와 무관하지 않은데 다섯 번째로 적군기를 격파한 조종사는 이탈리아 최고의 조종사란  영예가 주어졌다. 추락시킨 기체의 문양을 전리품으로 취한 승리자는  자신의 전투기에 계급장  마냥  붙이고 다녔다. 바라카의 다섯 번째  비행기는 독일 전투기였고 우연히 흑마가 그려져 있었다. 조정사는  말 사육으로  유명한  슈투트가르트  출신이었고  고향을  상징하는 동물을  자신의 전투기에 붙이고 다녔을 뿐이다.

또한 포르셰  본사가 슈투트가르트에  있다는 사실도 루머를 부추겼다. 그러나 포르셰  엠블렘은  페라리 엠블럼보다 20년 후에나  등장했다. 포르셰 창립자가  미국의 한 식당에서  즉흥적으로  냅킨 위에 그린 그림이 엠블렘의 시작인데  그 안에  말도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 흑마 독일 원조설은 말 그대로 루머로 남게 된다.

바라카가 추락한  몬텔로 언덕은 이탈리아 베네토주 트레비조 군에 있다. 북쪽은 돌로미티 알프스 산맥의 가파른 산줄기가  솟아 있고 남쪽으로는 바다 수증기를  머금은  베네치아가 희미하게 보인다. 현재 몬텔로 언덕은  포도밭이 언덕 허리까지 올라오지만 바라카  참사 때만 해도 그의 시신을 찾는데 이틀이나 걸릴 정도로 숲이  무성했다고 한다. 몬텔로 숲에서 벌목한 목재는 선박 건조에 최상목으로 여겨져 베네치아 상인들은 비싼 값을 치르고 사갔다. 트레비소군은  프로세코 와인의 메카이며  프리미엄 프로세코의  양대  산맥인 코넬리아노 발도비아데네와 아솔로를  좌우에 두고 있다. 

1970년, 이탈리아 피노 그리조  와인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90년대 들어서면서  피노 그리조의 인기는 주춤했고  바통은  프로세코로  넘어간다.  프로세코 신드롬이란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프로세코가 거둔  쾌거를  두고 , 경제 불황과  겹쳤다 혹은 가벼움의 로망,  또는 버블과 과실 향의 절묘한 결합이라고들  했다. 그렇다면   2013년  샴페인 판매량   3억 4백만 병을  추월한  3억  3천 만병  달성,  10년 만에  4억  8천 5백만 병으로  판매량이 3배  껑충 뛴 것은  단지 앞의 이유로 다 설명될 수 있을까.

흔히 2009년을  프로세코의  원년이라 한다. 처음 생산한 시점이 아니라  도약한 시기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거다.  2009년 프로세코  인기가  글로벌로 번질 조짐이 보이자  베네토주 정부 당국은 포석을 둔다. 대중적인 프로세코 지역 DOC과  프리미엄  프로세코 DOCG지역을 나누었다.  리베(Rive) 크뤼 밭 조항을 도입해 내실도 다졌다.  또한  앞의  지역 밖에서 생산된  프로세코는 국적을  불문하고  프로세코란 단어를  붙이지 못하게 했다. 즉 품종명칭인  프로세코를  원산지로 못 박았고, 그 대신  품종명을 글레라로 불렀다. 황야의 무법자가 아닌 이상,  프로세코 밖에서  만든 글레라 와인을  프로세코로 속여 팔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프로세코는 품종명이 되었다가  원산지 명도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에  주스티 사장은(우)  양조  컨설팅 분야의  일인자인  그라지아나. G (좌)와  콜라보를  전격 발효했다. 그녀는 테누타 산귀도의  전설적  와인메이커인  자코모  타키스의  수제자이기도 했다>
 

아솔로 프로세코 수페리오레와 주스티Giusti 와이너리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주스티 와이너리의  오너인 에르메네질도 주스티(Ermenegildo Giusti)에 딱  들어맞는 속담이다. 주스티는 대물림  농부 가족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포도밭에서 가꾼 글레라와  샤르도네  와인을 인근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가  19살이 되었을 때  부자가 되겠다는 대망을 품고 캐나다로 이민 간다.  캐나다의 건축 호황을 타고 건설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비록 몸은  타국에 벌여 놓은 사업에  잡혀 있었지만  마음은 고향 산촌을  떠다녔다고  주스티 사장은 회고한다. 이탈리아를 제대로 알기 전에 고향과 작별했다는 미안함과  조촐하게 거둔 성공을  이탈리아와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2000년에 기회가 왔다. 

마음의 고향인  가족 포도밭을  본거지로 삼고 주변에  버려지거나 황폐해진 포도밭  1백 헥타르를  사들였다. 포도를 심기  전에 대대적으로 토질 개량 작업을 벌인다. 녹색 국가인  캐나다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그는 친환경 영농법만이  미래의 지속적인  와인 생산을  보장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품종은 병충해에 강한  클론을  선택해서  화학제품이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밭에는 가축을 풀고 천적을 이용해  해충을 줄이는  자연적인 농법을 적용했다. 멸종위기에 처한  레칸티나(recantina) 토착품종을  복원하는 등 농부  유전자의 끼를 발휘한다. 
 

 

<최근에 개장한 주스티 와이너리 건물. 지붕은 몬텔로 언덕의  능선을 본떠 만들었다>

 

올해 개장한 와이너리 건물은 자연과  친환경 기술의  총아다. 총건설비가 1천 5백만 유로, 설계도면 3백 장, 건축 승인을  받는데만  2년,  건축기간은  3년이 걸렸다. 설계의  콘셉트는  몬텔로  자연 풍광에 순응하는 것. 건축소재가  환경가스를  유발한다면  설계도를  변경하면서까지 초심을 지켜냈다. 총 5층으로 된 건물은  출입구이자  쇼룸인  1층만  밖으로 드러내고  전부 지하로  숨겼다. 와이너리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 언덕 능선을  본뜬 지붕이 시선을 붙잡는다.  몬텔로  언덕의  능선에서 착상을 얻었다고 하는데  지붕 위에 심은  포도는 진짜 글레라다.

모든 포도밭은  10군데로  나누어  관리한다. 피아베  강 줄기와  만나는 몬텔로 언덕의  동편에  밭이 몰려 있다. 경사가  급하고  토질이 석회석과 점토질인 밭에서는 주력 와인인  아솔로 프로세코 수페리오레와  보르도  스타일의  몬텔로  콜리 아솔라니 와인이 나온다. 경사가 완만하고  충적토인 밭은  칵테일 파티나 아페리티프에  어울리는 프로세코에  배정했다.  
     

                          

<아솔로 프로세코 수페리오레 Extra Brut>

 

 

아솔로 프로세코 수페리오레

Aolo Prosecco Superiore  Extra Brut DOCG

단맛이 적당히 나는  Brut풍미에  익숙한  입맛에  신선한  버블이  일고  있다.  2014년에 아솔로 프로세코 생산자들이  선보인 맛으로,  프로세코가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존의 프로세코가 버블에  실려오는  과실 향에  중점을  두었다면  아솔로 프로세코는  토양의  미네랄을  버블이 어느 정도  끄집어내는가에  있다. 미네랄 성분이 와인에  녹아 있으면  무게감이 다르다. 레드 와인을  오물거리면  입안에 묵직함이 차오르는데 바로 고형성분 때문이다. 아솔로 프로세코는 고형성분 중 염분 비율이 높은데  풍미를 도드라지게 하며  맛에  깊이를 준다.

달콤한 이탈리안 배, 청사과 향이  레몬향과 섞이면서 경쾌한 뉘앙스를 풍긴다. 소비뇽 블랑을 닮은  허브향과  잔디 아로마가 퍼진다. 레몬맛이  맴돌다가 걷히면서  쌉쌀함이 번진다. 연속적이며  흐트러지지 않는 버블 구슬이  와인잔을 유영한다.   
                       

 

< 몬텔로 로쏘 레칸티나 와인. 메를로 계열의 친숙한 풍미를 낸다.  전체적으로 둥글고 풍만한  맛을  지녀  금방 바닥을 드러내는  와인이다>

 

몬텔로 로쏘 레칸티나

Montello Rosso Recantina  DOC 2017

 

19세기 초  북이탈리아가 프랑스 군의 수중에 넘어갔을 때  그들의  입맛에  맞게  밭작물이  프랑스 품종으로 바뀐 적이 있다.  이때 사라진  품종 가운데 레칸티나가 있었다. 2천 년  초반에  주스티 사장과  몇 명의 생산자가 복원운동을 벌여 소생시켰다.

 king of the winery란  뜻의 레칸티나는  자체로  맛이 뛰어나 블랜딩이 필요 없고  오래 둘수록  마시기 좋아져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복원되자 마자 몬텔로 로쏘  등급에  채택되어 보호를  받지만  생산자가  다섯 명을 넘지 않는 희귀 와인이다. 적당한 경사에  철분이 많은  사암토 지질의 포도밭에서  주스티의  레칸티나가 나온다.

전반적으로 검붉은 색이  돌지만  잔을  기울이면  잔 벽과 닿는  와인은  보라색을 띤다. 체리, 알코올 발효향, 바이올렛, 블랙베리, 석류향이 짙다. 좀 더 놔두면  타바코, 초콜릿, 바닐라 향이 뒤따르며  후추와  파프리카 향을 오래 피운다. 향기가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로  봐서  알코올  도수가  14도 일거라  예감했으나  13도에 그쳤다. 타닌은 적당하게 입안을 조이며 식감이 좋고  산도, 쌉쌀함이 잘 어우러져  균형 잡힌  맛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