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가 중요한 와인 산지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피에몬테의 와인을 더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업적인 면에서 본다면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 피에몬테는 토스카나에 비교도 되지 않는다. 피에몬테가 토스카나보다 뛰어난 부분은 양조의 복잡성뿐이다. 하지만 만일 광대한 종류의 슈퍼 토스카나를 하나의 문학적인 이름으로 통틀어 취급한다면 토스카나는 아마도 ‘가장 복잡한 지역’ 상을 탈 것이다.”

_ <이탈리아 와인 가이드>(조셉 바스티아니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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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토스카나가 있게 한 보르도 품종,

카베르네와 메를로

 


이탈리아의 순수주의자들은 카베르네와 메를로를 여전히 외국 품종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1800년대 초반 두 품종은 이미 이탈리아 북부에서 주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피에몬테나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처럼 프랑스나 오스트리아가 지배하던 곳에서 더욱 그랬다. 다음 세기로 넘어가면서 필록세라가 유럽 포도원 대부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난 후 이 두 품종은 더욱 명성을 얻었다. 이탈리아 전역의 와인생산자들은 황폐화된 그들의 포도원에 새로 심을 포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탈리아 내에서 카베르네와 메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토스카나에서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는 산조베제 만큼이나 중요하게 취급된다. 슈퍼 토스카나에 대한 열풍이 번져 나가면서 카베르네와 메를로는 토스카나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구성요소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슈퍼 토스카나 와인들에는 세계 다른 곳에서 만드는 카베르네나 메를로의 맛이 나지 않고 오히려 타르, 나무 향과 같은 토스카나 와인의 특징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보르도 특급 와인 겨냥한 슈퍼 토스카나,

아카넘 Arcanum

 


피렌체에서 차로 두 시간 남짓, 끼안티 클라시코 남동쪽에 위치한 테누타 디 아르체노(Tenuta di Arceno)는 미국의 명성 높은 와인 명가 잭슨(Jackson) 가문의 소유다. 와이너리는 피렌체로 흐르는 암브라 강과 지중해로 흐르는 옴브론 강의 분기점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고대 에트루리아 문명의 접점이었다. 참고로, 와이너리 이름으로 쓰인 아르체노 라는 단어는 ‘원점(point of origin)’을 뜻하는 에트루리아어 archè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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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누타 디 아르체노는 단독으로 소유한 포도밭에서 산조베제의 끼안티 클라시코 DOCG, 그리고 보르도 블렌드의 토스카나 IGT 라는 두 가지 카테고리의 와인을 만든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와인은 보르도 블렌드의 IGT 와인 ‘아카넘(Arcanum)’으로, 잭슨 가문이 보르도 특급 와인에 견줄 만한 토스카나 와인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슈퍼 토스카나 와인이다. 이 때 아카넘은 ‘비밀, 비약, 영약 또는 (연금술사가 발견하려고 노력했던) 자연계의 신비'를 뜻하는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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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왼쪽)은 아카넘의 와인메이커, 피에르 세이양(Pierre Seillan). 50년 전 보르도 남동부 아르마냑의 가족 양조장에서 처음으로 카베르네 프랑을 다루며 양조에 입문했다. 이후 루아르 밸리와 보르도에 20년간 머물며 프랑스 와인 세계에 속해 있던 그는 1997년, 캘리포니아의 매력에 이끌려 신세계 와인 산지로 이주했다.


양 대륙을 오가며 보르도, 소노마, 토스카나 등지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와인들을 탄생시킨 그는 독특한 양조 철학으로도 유명하다. 피에르 세이양은 포도밭을 매우 세밀한 구획으로 구분하여 ‘마이크로 크뤼(micro cru)’라는 개념을 정립했는데, 미세 기후와 다양한 토양 타입을 기준으로 포도밭을 더 작은 단위로 나눈 후 각 구획을 개별적 특성을 지닌 독립적인 테루아로 관리하는 것이다.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마이크로 크뤼는 최종적으로 블렌딩을 통해 밸런스의 정점을 보여주는 와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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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와인 모두 구조감과 밸런스가 무척 뛰어나고, 시시각각 변하는 풍미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_ 강무석 소믈리에(와인북카페 소속)

 


국내에는 나라셀라를 통해 아카넘 3종이 수입, 유통되고 있는데 각 와인의 특징을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와인에 대한 코멘트는, 2017년 이후 꾸준히 Wine Spectator로부터 ‘2글라스’를 획득하며 서울의 대표적인 와인 명소로 자리잡은 와인북카페(강남구 논현동 소재) 강무석 소믈리에의 테이스팅 노트를 참고하였다.

 

 

 

 

 

아카넘 2013
Arcanum 2013

(품종: 카베르네 프랑 73%, 메를로 17%, 카베르네 소비뇽 10%) 

 


처음엔 보르도 와인의 느낌이 나다가 서서히 루아르 밸리의 카베르네 프랑 풍미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보르도 와인 특유의 정제된 스타일보다는 루아르 밸리의 자연적이고 야생적인 스타일에 가깝다. 딸기, 허니서클, 달콤한 향신료, 장미와 아카시아 꽃향이 드러나며 과실미의 집중도 역시 뛰어나다. 감탄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풍미가 복합적이다. 풀바디(full bodied)이면서 생동감이 잘 살아있고 산도와 알코올이 부담스럽지 않아 마시기가 편하다. 타닌이 촘촘하고 강건한 편이지만 부드럽고, 여운이 정말 길다. 와인이 변화하는 모습이 시시각각 명확하게 관찰된다. 처음엔 과일, 중간엔 견과류나 바닐라, 마지막엔 나무와 허브, 다크 초콜릿 등으로 이어진다. 나머지 두 와인이 프랑스 와인의 뉘앙스를 보여준다면 이 와인은 이탈리아 와인의 뉘앙스를 보여준다. 아카넘 2013 빈티지는 20년 정도 장기 보관이 가능할 정도로 구조감이 대단하며, 와인평론가 Robert Parker로부터 96+를 획득했다.

 

 

아카넘 발라도르나 2013
Arcanum Valadorna 2013

(품종: 메를로 74%, 카베르네 프랑 13%, 카베르네 소비뇽 12%, 프티 베르도 1%)

 


테누타 디 아르체노의 마이크로 크뤼 중 가장 복합미가 뛰어나고 미네랄의 표현이 좋은 크뤼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다. 2013년은 비교적 온화했던 해로, 메를로의 표현력이 특히 우수하다. 첫인상이 강렬한 이 와인은 메를로 특유의 자두, 검붉은 과일류 풍미가 짙고 침엽수, 아스파라거스, 피망의 풍미도 은은하게 드러난다. 아카넘 3종 중 가장 향기롭고, 알코올과 산도의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적당한 산미가 꾸준히 이어진다. 진하고 묵직한 와인을 좋아한다면 마개를 연 후 바로 마셔도 좋지만, 2-4시간 정도 마개 열어놓으면 좀더 풍부하고 다양한 풍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obert Parker는 이 와인에 95점을 주었다.

 

 

아카넘 일 파우노 2017
Arcanum Il Fauno 2017

(품종: 메를로 54%, 카베르네 프랑 32%, 카베르네 소비뇽 12%, 프티 베르도 2%)

 


테누타 디 아르테노와 아카넘의 전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와인이다. 아카넘 3종 중 가장 기본급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구조감과 견고하고 단단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오랜 시간 천천히 음미해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으며, 다양한 풍미가 서로 어우러지며 번갈아 모습을 드러낸다. 입 안에서의 여운도 무척 길다. 마개를 열고 바로 마셔도 좋지만, 2시간 정도 마개를 열어놓고 산소와 충분히 접촉시킨 후 마시면 더욱 풍부한 풍미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와인은 <WINE & SPIRITS RESTAURANT POLL 2016>에서 'MOST POPULAR MERLOT’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수입_ 나라셀라 (02 405 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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