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는 곧 창조”라는 말이 어울리는 와인 양조자들이 있다. 기존의 규칙이나 제도(그리고 그에 따른 특혜)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성공시킨 수퍼 투스칸 와인의 창시자들이 그 좋은 사례다. 20세기 후반 이탈리아 정부가 DOC 와인 규정을 발표하자, 혁신적인 양조자들은 와인의 품질이 독창성, 혁신, 새로운 기술 도입 등을 통해 개선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규정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들은 DOC 규정에 반하는 와인을 만들어 선보였으며, 이탈리아 와인 등급에서 최하위 단계인 비노 다 타볼라(테이블 와인)에 속한 그들의 와인은 세련되고 국제적인 스타일로 출시와 함께 세간의 주목을 끌고 언론의 각광을 받았다. 사시카이아Sassicaia, 티냐넬로Tignanello 같은 수퍼 투스칸 와인은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최초의 테이블 와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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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그도크의 부상
 

 

오늘날 ‘와인의 용광로’라 불리며 새롭고도 흥미로운 와인 생산지로 주목받는 랑그도크(Languedoc, 위 사진)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변방의 와인 산지에 불과했다. 생산량(프랑스 전체 생산량의 40%)과 재배면적(현재 23만 5천헥타르)에서 프랑스 제일의 규모를 자랑했지만 이름 없고 지극히 평범한 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랑그도크의 이미지는 자연스레 ‘값싼 와인산지’로 굳어지게 되었다(“랑그도크의 위대한 이름, 마스 드 도마스 가삭” 참조).


하지만 프랑스의 몇몇 정상급 와인생산자들은 랑그도크라는 땅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알아보고 투자를 시작했다. 보르도의 일등급 와인인 샤토 무통 로칠드를 소유한 바롱 필립 드 로칠드(BPR), 샤토 랭쉬 바주Ch. Lynch Bages, 부르고뉴의 유명한 여성 와인메이커 안 그로Anne Gros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미국 와인 산업의 대부,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도 이 전선에 뛰어들었으나 랑그도크 와인생산자들의 강력한 반발로 물러서야 했다.


20세기 말, 미국 와인 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로버트 몬다비는 프랑스의 랑그도크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레드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고, 랑그도크의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인 ‘마스 드 도마스 가삭Mas de Daumas Gassac(이하 도마스 가삭)’을 인수하고 싶어했다. 도마스 가삭의 설립자인 에메 기베르는 몬다비의 끈질긴 구애에 완강하게 버텼고, 이후 몬다비가 랑그도크의 공유지인 아르부사스로 눈을 돌렸을 때에도 그에 저항하는 세력의 중심에 섰다. 그는 공유지를 개간하고 삼림을 파괴하려는 이방인의 프로젝트에 동조한다는 이유로 당시의 시장을 고소할 만큼 몬다비에 강력하게 저항했다(“남프랑스의 그랑크뤼, 도마스 가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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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그도크의 수호자, 도마스 가삭

 


앞서 언급한 도마스 가삭의 설립자, 에메 기베르는 일찍부터 랑그도크에 변혁의 원동력을 가져온 일등공신이자 랑그도크 와인의 혁명가로 불린다. 1970년대, 랑그도크에 매혹되었던 그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땅을 구입했고 친분이 있던 유명한 지질학자에게 어떤 작물을 길러야 할지 조언을 구했다. 돌아온 답변은 이러하다.

 


“이곳을 덮고 있는 돌들은 빙하기 때 형성된 것이네. 부르고뉴의 가장 좋은 포도밭에서나 볼 수 있는 돌이지. 자네가 사들인 이 땅에서 그랑크뤼급 레드 와인이 탄생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네. 문제는, 자네의 그 뛰어난 와인을 세상이 알아주기까지 200년은 걸릴 거라는 점이야. 이 지방에서 만드는 와인의 명성이 그리 높지 않거든.”

 


그랑크뤼급 레드 와인을 만들 수 있는 땅이라는 말에 고무된 기베르는 보르도 메독에서 카베르네 소비뇽 묘목을 가져와 재배했고, 저명한 보르도 대학교수이자 양조학자인 에밀 페노Émile Peynaud의 컨설팅을 받는 등 심혈을 기울여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978년에 첫 번째 와인, 마스 드 도마스 가삭 레드를 출시했다. 와인이 출시되자 마자 도마스 가삭은 세계 유수의 평론가와 와인수집가들로부터 “랑그도크의 그랑크뤼”, “수퍼 랑그도크”라는 찬사를 얻으며 명성을 쌓아 나갔다. 현재 도마스 가삭의 와인 중에는 최고급 보르도 와인만큼 비싼 것도 있다. 랑그도크의 뛰어난 와인을 세상이 알아주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릴 거라던 지질학자의 답변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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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에메 기베르가 타계했을 때 전 세계 와인 매체들이 그의 부고를 전하며 안타까워했다. “획일성은 품질의 가장 나쁜 적”이라고 믿었던 그는 자유로운 정신이야 말로 위대한 와인을 탄생시키는 바탕이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았다. 저렴한 와인을 대량생산하는 그저 그런 와인 산지로 알려져 있던 랑그도크에서 도마스 가삭이라는 세계적인 와인을 만들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조의 자유를 지향하는 그의 철학은 다음의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1979년 프랑스에서는, 랑그도크를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 뱅드페이vin de pays라고 레이블에 명시하는 조건 아래 원하는 스타일의 와인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품종, 수확량, 레이블 기재 사항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정해 놓은 기존의 보수적인 ‘원산지 통제 제도(AOC)’와는 거리가 매우 먼 것이었다. 평소 AOC 하의 온갖 규제가 못마땅했던 기베르는 뱅드페이의 도입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원하는 품종으로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와인생산자들의 자유재량을 늘리는 뱅드페이 제도의 도입은 와인의 품질과 시장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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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스 가삭은 한마디로, 평범함을 거부하고 색다른 스타일과 개성을 지닌 와인을 경험하고 싶은 모험가들을 위한 와인이다. 현재 국내에는 인터와인(02-419-7443)을 통해 도마스 가삭의 와인이 수입, 유통되고 있다. ‘마스 드 도마스 가삭 루즈 MAS DE DAUMAS GASSAC Rouge’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위주로 한 블렌딩 와인으로, 부드럽고 섬세한 타닌과 생기 있는 잘 익은 검은 과일 풍미가 드러난다. 또한 10년 이상의 숙성 잠재력을 자랑한다. 샤도네이, 프티 망상, 비오니에, 슈냉 블랑 품종을 블렌딩한 ‘마스 드 도마스 가삭 블랑 MAS DE DAUMAS GASSAC Blanc’은 복숭아, 망고, 청사과 등 신선한 과일 풍미가 풍성하고 밸런스가 뛰어나며 비단결 같은 질감이 일품이다. 또한 최소 4~5년 이상 숙성이 가능할 만큼 힘과 구조감을 갖추었다(가격은 십만원대). 이외에도 ‘물랑 드 가삭 피노누아 MOULIN de GASSAC Pinot Noir’, ‘물랑 드 가삭 비오니에 MOULIN de GASSAC Viognier’, ‘물랑 드 가삭 샤도네이 MOULIN de GASSAC Chardonnay’ 같은 와인을 통해 도마스 가삭의 명성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경험할 수 있다. 


 

 

수입) 인터와인(02-419-7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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