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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Stephane SON (sonwine@daum.net)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의 매력에 빠져 1999년 귀국 이후 중앙대학교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 한국 와인 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 와인연구소>를 설립,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와인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로서 그리고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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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와인 백화점, 루아르 밸리

 


프랑스 루아르 와인 산지(Val de Loire, Loire Valley)의 포도밭은 루아르 강가를 따라 형성되어 있다. 루아르 강은 길이가 1,000km나 되는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이다. 중남부 마시프-쌍트랄(Massif Central) 산괴지대에서 발원하여 12개 도에 걸쳐 흐르는 큰 강이니 만큼, 그 주변에 오래된 도시와 아름다운 고성, 그림 같은 시골 마을을 끼고 있다. 그래서 루아르 지방 별칭이 '프랑스의 정원(Jardin de la France)'이다.

 

루아르 와인 산지의 핵심 지역은 루아르 강을 끼고 북위도 48도선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4개 대도시를 기준으로 4등분되며 기후, 토양, 품종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양한 와인이 생산된다. 그 긴 지역의 양쪽 끝에서는 산뜻한 드라이 화이트 와인을, 그 중간 지대에서는 모든 타입과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한다. 온갖 종류의 생선과 해산물 요리에 어울리는 드라이 화이트에서부터 디저트에 곁들이는 스위트 화이트, 육류의 맛을 한층 높여주는 섬세한 레드, 다채로운 샐러드와 즐길 수 있는 로제, 축제 때 마시는 스파클링 와인까지,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와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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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루아르 와인 산지 지도 >

 

 

유네스코에서 세계 유산으로 지정한 이 지역에서 포도주를 양조하기 시작한 것은 5세기부터다. 중세 프랑스 왕과 귀족들은 불온한 시민들과 개신교들이 많았던 파리보다는 풍광이 아름답고 사냥터가 많았던 루아르 강 유역을 선호해서 르네상스 스타일의 화려한 성과 대저택을 건설해서 머물렀다. 루아르 지역은 자연스럽게 프랑스 왕실의 사교 중심지가 되었으며, 매일 밤 파티에서 그 지역의 와인을 마셨다. 15세기를 풍미했던 인문주의 학자 프랑수와 하블레(François Rabelais, 1494~1553)는 루아르의 중부 지역인 쉬농 근교에서 태어났는데, 이 지역 와인을 마시며 다양한 풍자 문학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바로 그 지역, 백년전쟁 당시 잔다르크가 샤를르 7세를 알현한 곳으로도 유명한 쉬농에서 이 달의 와인 명가 라포 양조장(Domaine Jean-Maurice Raffault)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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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maine Jean-Maurice Raffault >

 

 

쉬농 AOC 와 라포 Raffault 가문

 


쉬농 AOC 와인 영역은 19개 마을에 걸쳐 2,400ha의 면적인데, 루아르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인 비엔느(Vienne) 강의 양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기후와 토질이 특히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재배에 최적이라고 알려진 이 곳에서 이 달의 명가 Raffault 가문의 선조가 쉬농에서 첫 포도밭을 구입한 기록이 1693년이니, 14대째 가문의 직업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회사 이름에 있는 '장 모리스 라포(Jean-Maurice Raffault)'는 현 경영주이자 와인메이커인 로돌프(Rodolphe)의 부친이다. 장 모리스는 1973년 가족 사업을 물려 받으면서 지역 관행을 타파하고 혁명적인 여러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의 행적은 향후 이 지역에서 본보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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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경영주이자 와인메이커 Rodolphe Raffault >

 

 

우선 그는 다른 작물 혼작 관행을 버리고 오직 포도나무만 재배했다. 그의 부친 모리스(Maurice)로부터 상속받은 4.5 ha로부터 시작해 쉬농의 명품 밭들을 구입하거나 식재하여 50 ha로 확장했다. 그는 각개 단위 포도밭의 환경적 특성(Terroir)을 살리기 위하여 각각 분리하여 양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 포도밭의 토질과 미세 기후에 따른 각 와인의 고유한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각 와인의 이름에 개별 포도밭의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쉬농에서 포도밭 이름을 와인명으로 사용한 것은 장 모리스가 처음이었다. 지금은 밭의 이름을 붙여 와인을 출시하는 것이 아주 흔하지만 그 시작은 장 모리스 라포의 혁신적인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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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일 밭 이름을 명시한 와인 레이블 >

 

 

디종대학교 양조학과를 마친 현 경영주 로돌프가 부친을 승계한 것은 1997년이니, 올해로 23년째 회사 경영과 와인 생산을 책임지고 있다. 그는 부친의 업적을 이어 각 와인을 별도로 양조하고 숙성시킨다. 토착 효모로 발효시키며 15~28일간 침용시킨다. 숙성시킬 때는 10년 이상된 중고 오크통을 사용하여 6~18개월간 숙성한다. 숙성실은 비엔느 강변의 천연 석회석(Tuffeau) 절벽을 파서 만든 옛 채석장 동굴 3개를 사용한다. 빛으로부터 차단되고 연중 온도 12°C, 습도 85%가 유지되니 숙성에는 최고다. 이 안에 900여 개의 오크통이 놓여져 있는데 이는 쉬농 최대 규모다. 로돌프는 또한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부르고뉴에서 학습한 경험을 살려, 그의 최고 아이콘 와인들의 유산 발효를 100% 새 오크통에서 시도하고 있다. 쉬농 지역에서는 드문 방법인데 벌써 와인에서 다채로운 표현이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장 모리스 라포 농장은 7개 마을에 걸쳐 50ha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까베르네 프랑 품종의 평균 수령은 35년 가량인데 그 중 10ha 정도는 50년 이상 수령이다. 아울러 화이트를 생산하는 슈냉 블랑 품종의 평균 수령은 약 20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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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느 강변의 옛 석회석 채석장을 활용한 천연 셀러 >

 

 

로돌프 라포의 유기영농과 내츄럴한 와인 양조

 

 

라포 농장은 오래전부터 친환경 영농법(sustainable viticulture, lutte raisonnée)을 실행해 왔으며 2016년부터는 '유기(Biologique) 농법'을 시작했다. 그러나 'Les Galuches', 'Les Picasses', 'Clos d’Isoré', 'Le Puy', 'Clos de l’Hospice' 같은 단일 밭들은 이미 그 이전부터도 유기농법으로 재배되어 왔다. 라포 농장의 포도밭은 풀로 덮여 있으며 노새가 끄는 쟁기로 간다. 때로는 염소들을 밭에 몰아넣어 풀을 뜯어먹게 한다. 이렇게 하면 제초제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2019년 빈티지 레이블부터는 EU의 'AB(Agirculture Biologique) 인증'을 획득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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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새를 이용한 쟁기질 >

 

 

포도밭을 재생할 때는 손쉽고 간단한 구입 클론 식재(Clonal Selection)보다 전통적인 자체 가지 식목을 통한 마쌀레 셀렉션(Massale Seletion)을 선호한다. 훌륭한 와인 생산에 최적화된 클론만 재배하는 것도 좋지만, 와인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자체 고목의 재생산을 통하여 유전적 다양성을 획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도태되지 않고 오랜 기간 특정 떼루아에서 살아남은 포도나무들은 그 떼루아에 최적화된 클론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 떼루아의 한 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 로돌프의 생각이다. 


와인 양조에 있어서도 그만의 철학이 돋보인다. 발효를 막 끝낸 새내기 와인에는 죽은 효모와 미세한 포도 고형질 잔해물이 남아 있다. 이것을 '앙금(lies, lees)'이라고 하는데, 대개는 여과 과정이나 첫번째 통갈이(Racking)에서 제거되지만, 상태가 좋은 앙금(Fne lees)은 와인의 볼륨감과 풍미를 가미하기 위해 함께 숙성시킨다. 앙금과 함께 와인을 숙성시키는 기법을 '앙금 숙성법(Elevage sur lies)'이라고 부르는데, 부르고뉴에서 시작되어 보르도와 루아르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이는 와인을 풍요롭게 하고 충만한 질감을 선사하며 부케향을 증진시킨다. 라포 양조장에서는 전통적으로 고급 뀌베 와인들에 이 숙성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정제 작업 역시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배럴에서 배럴로 이루어지며, 라포의 와인들은 별도의 기계적 여과 작업을 거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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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세한 앙금을 활용한 숙성법 >

 

 

이산화황(SO2)의 사용에 있어서도 매우 특별한 기법으로 대처하고 있다. 로돌프는 소위 '내츄럴 와인'이라고 하는 최근의 특정 경향을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SO2의 사용을 최소한도로 한다는 의미에서 '내츄럴하게' 와인을 양조하는 기술을 실행하고 있다. 핵심은 발효 중에 자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2)를 산화방지제로 활용하는 것이다. 발효 중에 발생하는 CO2는 산화로부터 와인을 보호한다. 유산 발효를 오크통에서 진행함으로써 숙성 과정에서도 SO2를 사용하지 않는다. 더불어, 질소가스 등 비활성 가스를 주입하여 와인 내의 지나친 CO2의 양을 조절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연의 순리대로 재배되고 양조된 라포 농장의 쉬농 와인들은 다양한 음식군과 조화를 이룬다. 그의 와인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과일 산미는 프랑스 음식은 물론 매콤한 아시아 음식, 다채로운 한국 요리와도 매칭이 좋다. 이렇듯 깊이있고 복합적인 매력을 담뿍 담은 장 모리스 라포의 와인은 와인 스펙테이터를 비롯한 세계적 잡지의 호평을 받고 있다. 생산량도 많지 않은 라포 양조장 와인을 이제 한국 시장에서도 접할 수 있게 된 것을 반가워하며 그의 와인을 테이스팅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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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aurice Raffault 국내 수입 와인 7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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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농 블랑, 루즈 그리고 로제>

 

     
쉬농, 블랑 Chinon, Blanc


쉬농의 화이트 와인은 쉬농 AOC 전체 생산량의 2%에 불과한 매우 귀한 와인이다. 슈냉 블랑 품종 100%이며, 대부분 리그레(Ligré) 마을에서 재배되고 있는데 이 지역의 토양은 백악질의 석회 점토가 특징이다. 자연 효모만으로 저온 발효 후, 5개월간 스테인레스 탱크에서 앙금과 함께 저온에서 숙성되었다. 이러한 저온 양조 기법은 유산 발효를 방지하고 잔존 CO2 수준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게 하여, 생동감을 갖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알코올은 13%vol이며, 16,000여병 소량 생산되었다. 싱그런 사과향과 향긋한 복숭아, 귤향이 좋고, 짭쪼름한 미네랄에 품종 특유의 강한 산미가 식욕을 자극한다. 새우 등 갑각류나 조개 요리와 참 잘 아울린다. (구입가 4만원대 중반) 

 


쉬농, 루즈 Chinon, Rouge


쉬농 기본 레드 와인은 10ha 크기의 비엔느 강 인근의 충적 사토질 밭의 까베르네 프랑 포도 100%로부터 생산된다. 수확된 포도는 야생 효모로 발효되고, 매일 펌프로 포도주를 순환시키는 2주간의 껍질 침용을 거쳐, 스테인레스조에서 앙금과 함께 6개월간 숙성되며, 유산 발효를 진행했다. 알코올은 13.5%vol이며, 60,000여병 생산되었다. 가볍고 과일향이 좋아 출시 직후 바로 음용해도 좋은 레드 와인이다. 피노 누아처럼 13~14°C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마실 것을 권한다. 산딸기향과 야생 체리향이 밝게 올라오며, 산뜻한 타닌과 높은 산미가 입안을 자극시킨다. 간단한 닭고기 요리, 소시지, 치즈, 참치 구이, 버섯 샐러드 등이 생각나는 와인이다. 가격이 매우 매력적이다. (구입가 3만원대)

 


쉬농, 로제 Chinon, Rosé


쉬농 로제 와인은 루아르 밸리의 드라이 로제 와인 중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라포의 로제는  배수가 잘되는 모래 자갈밭에서 재배된 까베르네 프랑 100% 포도로 생산되었다. 압착 주스 2/3 과 침용 주스(jus de saignée) 1/3을 블렌딩하여, 자연 효모로 저온 발효시켰다. 오랜 숙성 없이 바로 병입되어 생동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신선한 로제다. 그래도 알코올 함량은 13%vol이나 되며, 드라이하여 힘이 있다. 레드 커런트향과 흰 후추향이 특징적이며, 맛은 깨끗하며 싱그럽다. 더운 여름 밤, 간단 버섯 샐러드나 자몽과 치커리 등 과일 채소 샐러드와 함께라면 더없이 행복할 듯 하다. 유쾌, 상쾌, 통쾌~! (구입가 3만원대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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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농 '끌로 디조레'

Chinon 'Clos d'Isoré'


쉬농 '끌로 디조레' 밭은 17세기에 건립된 샤또 디조레(Chateau d'Isoré) 성의 내부에 담으로 둘러쌓인 포도밭으로서 오랜 와인 생산 역사를 가졌다. 면적은 약 3ha로서 석회 점토질 성분의 북서향 경사지 밭이다. 1938년에 자체 가지 삽목(Massale selection) 방식으로 식재되었는데,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성 이름 이조레(Isoré)는 12세기 유명한 시문학인 '롤랑의 노래(Chanson de Rolland)'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자연 효모 발효와 4주간의 긴 침용 과정을 거쳐 중고 오크조에서 유산 발효를 진행하였다. 이후 앙금과 함께 중고 오크 배럴에서 18개월 정도 숙성시켰다. 알코올은 13.5%vol이며, 연간 12,000병 정도 소량 생산된다. 이 특별한 와인에 대한 한국 수입사의 배려는 더욱 특별하다. 햇 와인의 신선함과 숙성된 와인의 원숙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13년 차이가 나는 두 형제를 동시에 수입해 왔다. 필자는 이 두 와인을 비교 시음해 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기에 참으로 행복했다. 이런 부분은 다른 수입사들도 본받아야 할 좋은 철학이라고 본다.

 

먼저 2017년 빈티지는 알코올 13.5%vol으로 2004년 빈티지와는 1%vol의 차이가 있다. 지구 온난화의 결과이니 당연하다. 밝고 진한 루비 색상에 상큼한 블랙 커런트향, 민트향, 피망향 등 허브 계열향이 특징적이며, 맛에서는 산미와 매콤한 쓴맛이 공존한다. 타닌은 두툼하며 빳빳한데, 알코올이 어루만지며 유려한 질감을 완성한다. 2004년 빈티지 끌로 디조레는 벽돌색 뉘앙스에 갸닛 색상으로 변해서, 훨씬 더 음습한 산속으로 들어간 느낌을 준다. 달큰한 감초와 나무 껍질과 이끼 내음, 버섯향, 부엽토 내음, 담뱃잎, 가죽향과 향신료향이 번갈아 나타나는 복합미를 보인다. 산미가 약간 강조되고 있지만, 16년을 숙성했으니 당연한 결과고, 음식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정답이다. 아체또 발사미코 소스로 만든 등심 스테이크나 초리소를 얹은 핏자를 추천한다. (구입가 5만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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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농 '르 쀠'

Chinon 'Le Puy'


쉬농 '르 쀠' 포도밭은 1.2ha의 크기인데, 비엔느 강과 루아르 강을 내려다보는 '쀠 뒤 쉬노네(Puys du Chinonais)' 언덕 중 한 언덕에 있다. 점토와 석회토가 잘 배합된 토질이며, 남향의 완벽한 채광을 가졌다. 8월 중순께 열매 솎기까지 하여 최대한 잘 익은 포도를 수확하여 자연 효모로 발효하고 4주간의 침용 기간을 거친다. 450L들이 새 오크조에서 유산 발효를 마친 후, 지하 채석장 셀러에서 약 18개월간 앙금과 함께 천천히 숙성된다. 이 과정 중의 자연스러운 통갈이를 실시하여 와인을 정제하고 기계적 여과는 하지 않는다. 알코올 13.5%vol으로 6,000여병 생산된다.

 

그런데 레이블 디자인이 이 회사의 다른 와인들과 분위기가 좀 다르다. 로돌프가 설명하기를, 2000년 밀레니엄 빈티지를 기념하기 위하여 1900년 빈티지 와인을 오픈한 이벤트가 있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1900년대 당시에 유행했던 '아르누보(Art Nouveau)' 스타일로 우아한 디자인과 여인을 레이블에 그려 넣었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로 현재도 계속 이 레이블을 사용하고 있다.

 

2017년 빈티지 '르쀠'는 짙은 적자색에 커런트와 피망, 고추, 민트와 후추 등 품종의 개성이 담뿍 담겨 있으며, 삼나무와 볶은 커피, 토스트 향이 묵직하게 저변을 감싸고 있다. 매우 세련되고 섬세한 부께를 뿜어 내는지라 5분 정도를 마시지 못하고 있다가, 겨우 마시니, 입안에서도 산뜻한 산미를 동반한 과일과 베리 풍미가 있고, 견고한 타닌감이 구조를 형성하고 최적의 알코올이 힘을 받쳐 주는 균형감이 근사하다. 미디엄 템포로 구운 채끝 등심 스테이크와 함께 한 병을 다 비웠다. (구입가 7만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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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농 '르 쀠, 리미티드 에디션'

Chinon 'Le Puy', Série Limitée


앞서 설명한 쉬농 '르 쀠'의 스페셜 뀌베다. 매우 품질이 좋은 특별한 해에만 생산되는 리미티드 에디션~! 길죽한 병 디자인은 동일하고, 코르크를 마감한 병 입구를 왁스로 패킹한 것이 다르다. 장기 숙성형이라는 것이지~! 여타 양조 과정과 비법은 동일한데, 새 오크통 숙성 시간을 36개월로 거의 두 배 늘렸다. 그만큼 포도의 품질이 좋다는 뜻이다. 다만, 알코올이 13%vol으로 기본 '르 쀠' 보다 낮았는데, 빈티지의 영향인지, 양조 방식의 결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실제로 시음해 보면 그 차이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와인의 힘은 알코올보다는 내용 물질의 충일함에서 오기 때문이다.

 

필자는 5년 숙성된 2015년 빈티지를 시음했다. 잔에서 느껴지는 부께는 '어마어마했다~!' 기본 '르 쀠' 뀌베보다 진하고 깊고 농축되어 있다. 심원한 루비 칼라에 진한 검은 베리향과 함께 느껴지는 향신료 풍미가 인상적이다. 얄밉지만 매우 매력있는 후추 톤이 저변에 깔려 있어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부께가 일품이다. 더 오래 숙성된 후에는 매우 큰 거물이 될 것 같은 기대감을 키워 본다. 블랙 베리, 익은 자두, 사향과 후추의 이국적인 동방의 풍광을 내 글라스 안에 풀어 놓았다. 아직은 활짝 열리지 못한 송로버섯과 가죽 내음도 은근 슬쩍 껴들고 있다. 아마도 10여년 이상의 숙성 기간이 지나면 제대로 등장할 듯 하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타닌감과 입안 가득한 볼륨감, 긴 여운을 선사한다. 이 모든 것을 갖추고도, 알코올이 13%vol 이니 얼마나 섬세한가~!! 한번 마셔 본 사람은 이 탁월한 개성과 야생미를 잊어 버릴 수 없을 듯 하다. 불현듯 필자의 머릿속에는 보르도의 샤또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을 접했던 그 어느 날 밤이 떠올랐다... (구입가 2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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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농 '끌로 드 로스피스'

Chinon 'Clos de l'Hospice'


'끌로 드 로스피스'는 역사적인 쉬농 성을 마주보고 비엔느 강을 향해 경사로 달리는 1ha의 작은 밭이다. 고대 극장식 계단형으로 경사지에 자연스럽게 조성된 남향의 이 멋진 포도밭은 '호스피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7~18세기에 수녀원이 운영하는 구호 병원(Sœurs Augustines Hospitalières)에 소속된 밭이었다. 당시에는 이 밭의 포도로 와인을 생산하여 서민을 진료하는 구호 병원의 재정을 마련하였다. 작황이 안 좋으면 환자들이 마셨고, 작황이 좋으면 시중에 팔아 경영에 보탰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필록세라 포도 전염병 사태로 포도밭은 괴멸되고 100여년 가까이 땅은 방치되었다.

 

현대에 와서, 1980년에 병원이 옮겨지면서 땅은 시에 팔렸는데, 2008년 로돌프 라포는 쉬농 시 당국과 쉬농 성 복원에 참가한 재무적 투자자와 합동으로 이 역사적 포도밭을 복원할 계획을 마련하였다. 드디어 로돌프는 2008년 여름에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까베르네 프랑 원목의 가지를 구해서 마쌀레 방식으로 0.65ha를 복원했다. 2014년 6월에는 밭의 나머지 빈 구역을 재 식재하여 원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로돌프는 석회석 토질의 이 밭을 유기 영농 방식으로 심혈을 기울여 경작했고, 재생된 '끌로 드 로스피스' 포도의 첫 수확은 2011년에 이루어졌다. 첫 빈티지로 2000병 정도를 얻을 수 있었다.

 

필자가 시음한 2016년 빈티지는 다른 모든 싱글 빈야드를 다 수확하고, 10월 중순까지 기다려 완벽하게 익은 끌로 드 로스피스 포도로 생산되었다. 발효된 와인은 450L들이 새 오크통에서 16개월간 숙성하였다. 유산 발효시 발생한 CO2 가스에 의해 자연스럽게 산화가 예방되는 효과를 노렸으며, 블렌딩 과정에서는 비활성 가스를 사용하는 등 SO2의 사용을 완전히 배제하였다. 와인은 2017년 12월에 병입되었고 총 6,000병에 못 미쳤다. 필자가 시음한 전체 라포 와인 중 가장 화려하고도 세련된 와인이었다. 블랙커런트와 후추, 파프리카 내음이 품종의 DNA를 명확히 나타낸다면, 익은 체리와 장미향과 이국적 제비꽃 향은 테루아의 우월성을 보여 준다. 감초와 바닐라, 고소한 견과향과 토스트 풍미가 세련된 오크 숙성미를 표현한다면, 올리브와 버섯, 흙내음과 흑연향은 테루아를 살짝 드러내고 있다. 높은 산도와 절제된 13.5%vol의 알코올, 타이트한 타닌과 볼륨감있는 바디가 풍성한 입맛을 만든다. 까베르네 프랑의 지고지순한 향연이다. 오렌지 소스를 곁들인 오리 콩피나 통후추와 버섯을 곁들인 채끝 등심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끌로 드 로스피스는 브리딩해 놓고, 아페리티프 스파클링을 주문하여 한 잔 한 후에 천천히 본 게임에 들어갈 것을 권한다. (구입가 9만원대 중반)

 


 구입 정보 : 솔트와인 (02-3491-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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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손진호 (중앙대학교 다빈치교양대학 와인&미식학 교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과 미식의 매력에 빠져, 와인의 길에 들어섰다. 1999년 이후 중앙대학교에서 와인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하고, 이후 20여년간 한국와인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와인연구소>를 설립, 와인 교육과 인문학 콘텐츠를 생산하며,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sonwin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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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손진호의 와인 명가] 두르뜨 Dourthe

    전세계 레드 와인 생산자들의 모범이 되는 곳, 전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동경과 관심을 받는 곳, 자연과 빈티지의 끊임없는 도전과 평가를 받는 곳, 바로 프랑스 보르도 Bordeaux다. 그 위대한 와인 산업 공간에 발을 디딘 한 메종 Maison을 이 달의 와인 명가...
    Date2019.05.09 글쓴이손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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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손진호의 와인 명가] 마르께스 데 리스칼

    와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어야 할까? 유럽 귀족의 위계 질서 정도는 꿰차고 있어야 하겠지? 황제 다음이 왕이고, 왕 밑에 귀족이 있다. 서열로는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이다. 이 중에서 와인 생산자 이름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
    Date2019.05.03 글쓴이손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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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손진호의 와인 명가] 마쩨이 Mazzei

    삼한사진. 일기예보에 종종 나오는 말인데, 일주일 중 3일은 몹시 춥고 4일은 미세먼지가 심한 우리나라 겨울 날씨의 새로운 패턴을 의미한다. 하지만, 견디다 보니 봄도 멀지 않았다. 따뜻한 지중해의 온기와 태양이 그립다. 그래서 이번 달은 이탈리아 토스...
    Date2019.02.18 글쓴이손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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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손진호의 와인 명가] 샴페인 명가, 떼땅져 Taittinger

    <Chateau de La Marquetterie> 2018년은 지금껏 북한 관련 소식을 가장 많이 접한 해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세계가 한반도의 평화적 미래를 함께 기원했던 2018년은 한반도 통일 운동의 원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평화...
    Date2019.01.07 글쓴이손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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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손진호의 와인이야기] 제라르 베르트랑 Gérard Bertrand

    북위 43도, 프랑스 최남단.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 바람은 부드럽고, 봄의 습기는 포도나무의 수액을 오르게 한다. 여름의 복더위와 뜨거운 열기는 포도의 색깔을 검게 하고 포도알 안에 당분을 가득 채워 준다. 내륙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
    Date2018.11.21 글쓴이손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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