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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 랑게와인 앰버서더(Langhe Wines Ambassador)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The International Wine Award Mundus Vini, International Wine City Challenge,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l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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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는 직감으로 감지한 트랜드를  패션쇼로 선보인다. 그의 예측이 소비자 심리와 맞아떨어지면 유행을 타고 이윤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가 엮어진다.  와인과 미식 여행이 패션의 속도를  추월하기는 힘들겠지만 여행 준비기간을  앞당긴다면 그만큼 득 볼 확률은 높아질 거다.  올 가을, 겨울에  미식과 와인을 꽉 잡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의 세련된 서비스를 받으며 황홀감에 빠진 나를 꿈꾸는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는 건 어떨까.


미식과 와인, 서로 뗄 레야 뗄 수 없는 바늘과 실 같은 사이지만  한 곳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그리 녹녹지 않다. 음식이 주인공인 레스토랑에서  와인은 보조 아니면 거드는 역할에  머물기 쉽기 때문에 와인 리스트가 빈약하면  꿈꾸던 상상의 날개를 접어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여기 상상의 날개가  미식의 기류를 타고 꿈을 향해 순항할 수 있게 도와줄 만한 친절한 레스토랑이 있어 소개한다.

 

알바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토레이소 마을은 우아하며 실크 같은 타닌을 지닌 바르바레스코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마을에  ‘라차우 델토르나벤토La Ciau del Tornavento’ 레스토랑이 등장하기 전까지 여행안내서에 소개된 표현들이 그랬다. 요리  다음으로  와인을 좋아하던 마우리리오 가로라(Maurilio Garola, 이하 가로라 셰프)가 이 레스토랑을   1997년에 개업하면서 트레이소는 일순간 꼭 들러야 할  미식 여행지로 부상한다. 레스토랑은  개업 후 현재까지 22년째 미슐랭 가이드 원 스타를 한 번도 놓친 적 없는 미슐랭 개근 기록도 가지고 있다.


가로라 셰프가 레스토랑을 트레이소에 개업하게 된 건  순전히 와인 덕분이다. 랑게 지역을 틈틈이 여행하던 그에게 평소 친분 있던 한 와인 생산자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고 나서다. 목이 좋은 레스토랑이 나왔으니 랑게에 정착하는 건 어떻겠냐는 충고 섞인 제안이었다. 알바의 화이트 트러플과  와인이 맛있는 레스토랑을 꿈꾸던 그가 이 두 요소를  충족하는 트레이소 마을을 놓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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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rd of Excellence 를 배경으로 서있는 마우리리오 가로라 셰프>

 


셰프는 먼저 포도밭 전망을 가리는 돌벽을 허물고  통유리로  갈아 끼워  랑게의 절경을 식(食) 공간에 들여놓았다. 그리고 그 밑에는 지구 상의 어떤 요리도 감당해 낼 만한 든든한  주( 酒)의 공간을 구축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빙산의 일각 구조라 할까. 잠수한 수 천 만병의  와인 구조물이  물 위에  뾰족이 솟아있는  음식 세계를 지탱하는 그런 형상이다.


현재는 랑게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지만  셀러의 처음은 취미로 몇 개씩 구입하던  아마추어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다  셰프가 도메니코 클레리코와 엘리오 알타레와 친분이 생기면서  테이스팅 실력이 늘어나자 이탈리아와  세계 유명 와인을 넘나들게 된다. 현재 셀러 규모는 7만 병에 달하며  13개 나라의 4백여 생산자로 종류가 다양해졌다.  매년 2만 5천 병이 새로 입고되며  그중 2만 병은  판매되고 남는 와인은  숙성 상태 관찰과 투자 목적으로 한 켠에서 잠들고 있다.


셀러 컬랙션의  50%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와인이 차지하며  셰프가 최고로 치는  두 와인의 빈티지는 1990년이다. 가격대로 보면  15 유로에서 시작해서 한 병에 1만 8천 유로 시가의  로마네 콩티까지 다양하다. 셀러는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희귀 와인도 상당히 보유하고 있어  먼 데서 일부러 수입사나 와인 마니아들이  찾아올 정도라고 소믈리에가 귀띔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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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정문에 들어서면  현관 벽을  차지하고 있는 상장들이 손님을 반긴다. WINE SPECTATOR AWARD OF EXCELLENCE.  한마디로 와인 스펙테이터가 한 레스토랑의 와인 컬랙션의 품질을 보증하는 ‘와인계의 미슐랭’으로  보면 된다. 와인 셀러의 규모 및  품질,  레스토랑의 메뉴에 맞는 와인 리스트 구성 항목이  와인 스펙테이터 심사기준을 통과해야만  주어진다.  라차우 델토르나벤토는  2002년 첫 Award of Excellence를 받은 이후  2013년에는 본 상의 백미라 할 수 있는 Grand Award를 획득했다.  Award of  Excellence 기준 외에   와인 보유량이 최소 1천 병,  유명 와인메이커의  와인과 올드 빈티지 소유 여부,  다양한 병 사이즈 등의 추가 기준을 만족했기 때문이다.  2018년에는 전 세계의  91군데  레스토랑이  Grand Award를 수상했으며  그중 5군데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돌아갔다. 참고로 셰프의 셀러는 와인 재고량에서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탄탄한  보유량을 과시한다.
 

 

4.jpg<좌우방향 ,  퐁듀에 익힌 아스파라거스, 호박꽃 튀김, 육회, 오징어 먹물 베샤멜 소스 라자냐, 아뇰로티 델 플린, 파소네 송아지 안심구이>

 


라차우 델토르나벤토에서 열리는  와인행사는 가로라 셰프의  요리 솜씨가 물 만난 고기처럼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지난 4월 29일에 열린 바르바레스코 나이트가 그러했다.  알프스의 무공해 공기를 호흡하고 자란  천연 식재료에 셰프의  창의성이 보태어져  피에몬테 전통 요리가 한층  맛깔스러움을 뽐냈다.  치즈 퐁듀에 살짝 데친  녹색의 아스파라거스,  호박꽃  튀김의  싱그러운 노란색이 식탁에 봄을 불러왔다. 남향인 네이베 언덕에서 재배한 피노 누아를  샴페인 방식으로 양조한 스파클링 와인의  버블에 실려오는  시트론과 흰 꽃 내음이 봄철 야채의 청초함과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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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텔로 디네이베 와이너리는 Cortini 포도밭에서 자란 피노 누아로 Metodo Classico Pinot Nero 스푸만테를 만든다. 와이너리 지하 5미터에 파인 인페르놋에서 30개월 숙성했다. 와이너리 오너 가족은  피에몬테의 주요 레드와인인 바르바레스코와 바르베라, 돌체토 와인에 심혈을 기울여 왔으며 80년대부터 샴페인 방식으로 양조한 스파클링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계란 노른자, 레몬즙 몇 방울, 올리브 오일로 만든 수제 마요네즈의  고소한 맛과  야채의  담백한 맛이 어우러진 인살라타 루싸 샐러드,  송아지고기를 다져 만든 육회의 달콤한 풍미가 입안 가득 차오른다. 오징어 먹물 소스와 베샤멜 소스로  맛을 낸 라자냐에서는 바다내음이 전해온다. 이 모든 요리는 어린 바르바레스코가 보여주는 산뜻한 향기와 고운 질감과 잘 어우러졌다.


고기육수와 레드와인으로 끓인 아로스토 소스에 버무린 아뇰로티 델 풀린이  구수한 향을 사방에 풍기며 등장했다. 앙증맞은 리본을 닮은 피에몬테식 라비올리가 품고 있는 삼색 고기의  맛은 이제 막 어린 티를 벗고 성년에 들어선 바르바레스코의  가죽, 감초, 오렌지향을 만나 정점을 찍는다. 아무리 꽉 찬 위장이라도 한 모퉁이를  내 줄만큼 파소네 송아지 안심구이는 식탐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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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에서 우로, Castello di Neive의  Santo Stefano 바르바레스코, Rizzi의 Boito , Vite Colte의 바르바레스코, Massimo Rivetti의 Froi,  Pelissero의 Vanotù, Cascina delle Rose의 Rio Sordo , Cascina Bruciata의 Barbaresco Riserva, Giuseppe Cortese의 Rabajà Riserva,  Nada의 Barbaresco Riserva, Marchesi di Gresy의 Martinenga>

 


한 레스토랑의 메뉴 수준은  치즈 웨곤을 보면 알 수 있다. 보통, 숙성치즈로 구성되는 치즈 웨곤은 코스 끝에 놓이기 때문에  정말 맛있는 치즈가 아니면  식욕을 이끌어 내기 힘들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바로 가로라 셰프의  치즈 웨곤이 감탄을 부르는 이유다. 13개월 숙성한 알싸한 고르곤졸라, 한 여름에만 나는 알프스 목장  카스텔마뇨 치즈, 셰프의 부탁을 받고 산골 치즈 장인이 만든 염소 블루치즈가 웨곤 안에  빼꼭히 들어앉아 있다. 와인 선별 능력만큼  훈련된 후각, 미각 수준이 아니면  도달하기 힘든 치즈 셀랙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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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차우 델 토르나벤토 레스토랑은 화이트 트러플 철이 가장 바쁘다. 레스토랑의 주특기인 아뇰로티 델플린 라비올리와  화이트 트러플을 흩뿌린  계란프라이를 맛보러 온 미식가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때  와인 판매량이 2만 병에 이른다고 한다. 한 해에 입고되는 양이 2만 5천 병이므로 80% 의 와인 소비가 이때 몰리는 셈이다.


지하 셀러를 다녀온 후 필자는 이런 후회가 들었다. 안내차 동행한 소믈리에의 눈을 피해 셀러 깊숙한 곳에 몰래 남아서 와인을  질리도록 구경했어야 했다고. 아마도 이미 다녀간 사람은 필자의 그런 허망한 상상을 이해할 거다. 가로라 셰프가 인생의  4분의 1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지하왕국,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다.


웹사이트:  
https://www.laciaudeltornavento.it/en/

주소:   Piazza Baracco,7  Treiso(Cuneo),  Italia    
전화: +39- 0173 638 333 (셀러 방문은 예약한 손님에 한 해 가능하다. 영업시간이 종료될 즈음 셀러 담당 소믈리에가 동반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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