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라디오의 클래식 음악 방송부터 튼다. 잔잔한 선율에 맞춰 하루를 준비하다 보면 모든 행위가 일종의 명상이 된다. 하다못해 커피를 내리는 몇 초의 기다림조차도 말이다. 최근에 만난 한 와인도 그랬다. 마치 오전의 클래식 음악처럼 은은하고 달콤한 무엇이 나를 감싸더니 주문을 걸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Crazy American”이라 불리던 남자
20세기 초 이탈리아는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이 심화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삶을 찾기 위해 타국으로 떠났다. 파트리아크 마리오 비에티도 그 중 하나였는데, 미국으로 건너간 뒤 엔지니어로 자리잡아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몇 년 뒤, 그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다시 고향으로 향하는 배를 탔다. 가족과 가업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몰락해 가는 고향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Crazy American”이라고 불렀다.
피에몬테로 돌아온 그는 바롤로를 생산하는 여러 마을의 포도재배자들과 장기 계약을 맺고 포도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굳이 다른 마을의 포도까지 사서 와인을 만드느냐고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자기집 앞마당의 포도로만 와인을 만들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포도밭을 확장해서 와인생산량을 늘려 나갔고, 이내 ‘비에티 Viettii’라는 이름으로 만든 와인을 이탈리아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Cru의 탄생
1950년대에 들어 비에티는 피에몬테의 정상급 와인생산자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미국으로도 와인을 수출하는 당시의 몇 안되는 와인 생산자 중 하나가 되었다. 마리오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그의 사위, 알프레도 큐라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와인의 품질을 한단계 더 높이는 획기적인 개념을 도입했는데, 특정 포도밭의 포도만으로 양조한 크뤼 cru 와인을 만들어 선보인 것이다.
국내에서도 2015년 빈티지의 ‘비에티 바롤로 크뤼 라베라 Vietti Barolo Cru Ravera’와 ‘비에티 바르바레스코 크뤼 마세리아 Vietti Barbaresco Cru Masseria’ 같은 비에티의 크뤼 와인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 와인은 잘 익은 과일 풍미와 부드럽고 풍만하면서도 강건한 타닌을 드러내며 십 수년은 거뜬한 숙성잠재력을 지녔다. 숙성 초기의 이 와인을 지금 열어야 한다면, 잔에 따른 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실 것을 권한다.
사실 비에티의 크뤼 와인들은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네비올로 와인 애호가들은 비에티의 와인이 그만큼의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네비올로 품종 특유의 선명하고 향기로운 아로마, 옅은 색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찌를 듯한 타닌이 주는 반전,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우아함이 이들을 매료시키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십만 원대 이하의 가격으로 비에티의 스타일을 충분히 보여주는 와인들도 있다. 피에몬테의 대중적인 품종인 아르네이스, 바르베라 그리고 모스카토로 만든 와인들이 그것이다(위 사진). 특히 은은한 향과 짭조름한 풍미를 지닌 ‘비에티 로에로 아르네이스 Vietti Roero Arneis’, 풍성한 과일 풍미와 부드러운 타닌, 신선한 산미가 돋보이는 ‘비에티 바르베라 다스티 Vietti Barbera d'Asti’, 이 두 와인은 음식에 곁들일 때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수입_나라셀라 (02 405 4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