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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Berlin Wine Trophy, Asian Wine Trophy, Selezione Del Sincaco,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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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커브를 돌자  아시시  남문이 자태를 드러냈다. 주차장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웬 떡이냐 싶어 재빨리 차 앞머리를 흰색 선 안으로 들이민 다음, 몇 번의 후진 전진을 반복한 후 주차선 안에 차를 댔다. 주위에 주차금지 표시가 없는지 재차 확인한 후 아시시 탐험의 발을 내디뎠다. 블랙홀이 주위 물질을 빨아들이듯 내 눈은 아시시의 경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눈이 경치에 젖어 ‘그만’을 외칠 때까지 구경한 후 차로 향했다. 다행히 차가 찌그러지거나 긁힌 자국은 없었다. 시내에, 그것도 다섯 시간을 무료주차 했다는 뿌듯함에 도취되어 시동을 거는 순간, 앞 유리와 와이퍼 틈에 끼여 봄바람에 나풀나풀 춤을 추고 있는 흰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크기는 개미지만 공포의 효력은 호랑이 만한, Ai Sensi della Legge(관련법을 위법하였으므로) 글자가 빨간등을 깜박대는 벌금 고지서였다.


한국에는 청춘의 덫, 이탈리아에는 흰색의 덫이 있음을 또 깜빡했던 것이다. 주차장 바닥에 그어 놓은 흰 선의 유혹에 넘어가 주차장 경고문에 쓰인 “주민전용 주차장” 경고문을 놓쳤다.


 자동차를 렌트해서 이탈리아를 관광할 계획이라면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푸른색 선이 그어진 실외 유료주차장이나 실내주차장에 차를 놔두도록 하시라. 주차비가 벌금에 비해 훨씬 작다는 경제적 실리 외에 외국에서 딱지를 뗄 때 오는 불쾌감 예방차원에서 도움이 된다. 참, 벌금사건은 불행 중 다행으로 막을 내렸다. 내가 마치 이탈리아에 천하의 몹쓸 죄를 저질렀음을 언도하는 벌금고지서 뒷장에는 ’ 5일 이내에 벌금을 내면  벌금 30% 감면’이란 자비의 글이 있었다. 이탈리아는 병 주고 약 주는 나라다.


아시시는 벌금딱지로 자동차 창문을 도배할지언정 꼭 가볼 만한 도시다. 성 프란체스코를 추모하는 성당의 상하부 벽화들은 13~14세기에 그려진 것들로, 당시 잘 나가는 예술가들의 벽화 전시회 같다. 조토, 치마부에, 피에로 로렌제티 등 중세 종교적 화풍의 대세 흐름을 꺾어 르네상스 예술의 물꼬를 튼 거장들이 참여했다. 성화를 보면서 한국 문화재 전문위원이 벽화의 소감을 쓴 글이  떠올랐다. 특히 미켈란젤로와 조토의 화풍을 비교한 부분은 그림 감상에 도움이 되었으므로 칼럼에 옮겨본다.


미켈란젤로는 조토의 회화를 계승했지만 두 예술가의 인물 표현방식은 매우 달랐다. 조토가 그린 프란체스코 성인 벽화는 순수하고 순박하며 사람들에게 친근함을 준다. 조토는 모든 이가 바라던 성인을 구현했다. 만일 미켈란젤로가 성인을 그렸다면 시스틴 벽화처럼 성인의 누드를 낱낱이 표현해 근육질의 영웅을 창조했을 거다. 프란체스코 성인은 벽안에 갇힌 차가운 정물이 아니라 성당 관람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따뜻한 이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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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디CANTINA FRATELLI PARDI 와이너리의 잉꼬부부. 부인이 한국사람이다.>

 


아시시는 타닌 양으로는 세계 제일인 사그란티노(Sagratino) 와인을 자랑한다. 오죽하면 ‘떫은맛을 각오하고 마셔라’ 또는 ‘참는 자만이 자격이 있다’는 이탈리안 시쳇말이 있을 정도다. 아디제 산미켈레 연구소(Fondazione Mach di San Michele all’Adige)의 사그란티노 품종 전문가인 풀비오 맛티비(Fulvio Mattivi) 연구원은 사그란티노의 까칠함을 이렇게 말한다. “사그란티노는 타닌 자체다. 껍질에 타닌을 축적하는 능력을 유전적으로 타고났다. 사그란티노의 타닌은 용해력이 뛰어나 침용 시 신속하게 알코올에 녹아든다. 어떤 와인 1리터에 4그램의 폴리페놀이 녹아있다고 가정하자. 일반 레드와인은 이 양을 감당하지 못해, 마치 물과 기름처럼 타닌과 다른 맛이 겉돌아 떫고 쓰다. 그러나 사그란티노의 구조와 성분은 타닌과 융합해 타닌의 야성을 순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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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지아데 안타나 FATTORIA DI MILZIADE ANTANA 와이너리의 사그란티노와 몬테팔코 로쏘 와인>

 


사그란티노 품종이 움브리아(아시시의 관할 주) 지역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15세기경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도사들이 가톨릭교 성지순례차 중동지방(시리아라는 설이 있음)에 간다. 귀향길에 수도사들은 이 품종을 들여왔고 가꾸어서 양조한 와인을 미사에 썼다. 가톨릭교의 여러 쓰임새에 적합해 ‘신성함(sacra)’의 어근을 가진 사그란티노(Sagrantino)로 불리게 되었다. 한편, 성탄절과 부활절의 성스런 종교 축제 때 이 와인을 가까이하던 풍습도 어원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신성함의 맥은 다른 품종과 혼합 불가한 양조 전통을 신봉하는 생산자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


사그란티노는 남이탈리아의 아마로네다.  움브리아 땅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30년 전까지만 해도 사그란티노 와인은 달게 마셔왔다. 이 달콤한 풍습은 부활절 특별식인 양고기 구이와 디저트에 궁합의 초점을 맞춘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어린 양고기 구이와 단맛 나는 와인을 엮는 괴상한 음식 조합은 두 음식의 신성함과 연결된 점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다 1990년 일부 생산자들이 드라이한 맛을 실험했고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새로 탄생한 드라이한 맛(Montefalco Sagrantino)의 와인과 차별을 두기 위해 파시토(passito, 정식 와인명은Montefalco Sagrantino Passito)라 불렀다.


드라이한 맛은 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원래 맛인 파시토는 잊힌 맛이 된다. 타지인에게 드라이한 맛이 원래의 맛으로 비치는 오해가 비롯되었다. 아마로네의 원조인 레초토도 원래는 단 맛이 아니었던가! 다만 레초토는 농부가 단맛을 얻으려고 놔둔 와인 단지를 깜빡 잊어버려 효모한테 당을  빼앗긴 게 다른 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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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디CANTINA FRATELLI PARDI 와이너리의 주력 와인들>

 


네 군데의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두 군데는 몬테팔코(Montefalco) 마을에, 다른 곳은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위성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몬테팔코는 사그란티노 도입 초기부터 향미 높고 품질이 우수한 생산지로 명성이 자자했다. 와인 라벨에  몬테팔코 지명과 사그란티노가  나란히 놓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몬테팔코는 주변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광 좋은 곳이며 성곽 안팎에 우수한 생산자들이 자리 잡고 있어 관광과 와인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넉넉한 곳이다.


네 명의 생산자의 네 가지 색깔의 사그란티노는 타닌을 다각도로 들여다볼 수 있는 꿀 찬스였다. 결국 노련한 생산자는 야생마처럼 펄펄 끓는 피를 가진 사그란티노의 타닌을 잘 다스려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적토마로 길들일 줄 알아야 한다. 품종의 아로마와 부케의 변화를 섬세히 파악해 고유의 향이 특정한 향기에 의해 굴복당하거나 뒤섞이는 일이 없어야 함은 물론이다. 타닌의 고삐를 단단히 잡고 산도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골격을 쌓아야 한다. 어떠한  외부 간섭에도 무너지지 않는 보디감은 절벽과 같아야 한다. 오크통의 적절한 사용, 수확 전 폴리페놀 농도의 세심한 모니터링, 포도밭 수령 관리는 타닌을 길들이는 마부의 기본기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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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날도 카프라이Arnaldo Caprai를 세계에 알린 와인들>

 


ARNALDO CAPRAI (아르날도 카프라이) 와이너리


바롤로에 ‘바롤로 보이스’가 있다면 ‘사그란티노 보이스’는 아르날도 카프라이라 하겠다. 1970년대  가업인 방직업을 접고 아르날도는 사그란티노 와인에 투신한다. 사그란티노의 등장, 급성장, 품질 개선, 국제 인지도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는 사그란티노의 랜드마크다. 숙성실을 채우고 있는 2천 2백 여 개의  프랑스산 배럴이 압권이다.


Montefalco Sagrantino  Val di Maggio 2015 _ 한마디로 국제 감각의 사그란티노다.  초콜릿, 향신료, 바닐라, 젖은 나뭇잎, 타바코, 감초 향이 마치 선약속 한 것처럼 비슷한 속도와 뉘앙스로 올라온다. 섬유제조 경험이 정제되고 세련된 타닌으로 부활한 느낌이다. 알코올의 열기가 타닌의 부드러움을 증폭시킨다.

 


FATTORIA DI MILZIADE ANTANA (밀지아데 안타나) 와이너리


15년 전 몬테팔코 와인 컨소시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로버트 파커가 방문할 테니, 달라는 와인만 주고 물음에 답변만 하면 된다는 주의와 함께. 프란체스코는 자신의 와인이 로버트 파커로 부터  95점을 받았다는 사실도 그제야 알게 된다. 그가 아는 영어는 오직 Thank you, 잠시 머물 줄 알았던 로버트 파커는 두 시간이나 머물렀다. 프란체스코는 고품질 사그란티노를 얻기 위해서라면 나태와 어떤 타협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다.


Montefalco Sagrantino Colleallodole 2015_ 첫 잔에서 네비올로 와인의 느낌을 받았다.  감초, 풋풋한  붉은색 과일, 아니스 향이 화사하다. 산미는 상큼함과 원만함이 적절히 결합했다. 타닌은 견고하고 야무진 인상을 주며 소량의  떫은맛은 입안에 깔끔한 매력을 남긴다.

 


CANTINA FRATELLI PARDI(파르디)와이너리


사그란티노의  매력은 생산자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와인에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오너 겸 양조가인  알베르토 파르디는  프로세코 와인의  본산지인 코르넬리아노 대학교에서 양조학을 공부한 재원이다. 무겁고 근육질인 사그란티노의 거추장스러움을 벗겨내고 기품과 그윽함을 입혔다는 평가를 듣는다.


Montefalco Sagrantino 2014_ 블랙베리, 라즈베리, 후추, 커피, 카카오, 허브 계열 향이 은은하다. 소량의 바다 향기가 이국적 느낌을 더한다. 둥근 산미와 기분 좋은 쓴 맛의 여운이 혀에 감긴다. 매끄러운 질감의 타닌이 인상적이다.

 

 

MONTIONI(몬티오니)와이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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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티오니 Montioni 와이너리의 파올로 몬티오니 사장>

 


Montefalco Sagrantino 2015_ 블랙베리, 체리, 초콜릿, 가죽, 한방재를 연상시키는 향의 응집력과 힘이 놀랍다. 입안을 천천히 조여 오는 타닌,  질감이  곱고 매끄럽기 짝이없다. 기품 있는 보디감과 산미의 밸런스, 아몬드의 뒷맛이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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