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1990, 1997, 2015년도에 필적할 만한 최우수 빈티지로 기록될 것이다. 피에몬테 지역 포도 재배자 협회(Vignaioli Piemontesi)가 ‘2018년 피에몬테 포도작황’이란 주제로 연 브리핑의 결론이다. 실제로 2018년은 기상이변이 없었으며 적시적소에 비와 햇빛의 축복이 내렸다. 포도농사의 작황을 결정짓는 시기인 8~9월에 비가 간헐적으로 내렸고 일교차가 커, 포도는 건강하게 익으면서 아로마 성분과 산도, 포도당을 적정수위로 농축할 수 있었다.
작년에 가뭄과 폭서로 예년보다 포도를 20~30% 적게 거둔 악몽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생산자들은 올해는 안도의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한 생산자의 말마따나 자연은 제 할 일을 다했으니 와인의 품질은 인간이 포도밭에 정성을 쏟아 부은 시간에 달렸다.
보통 포도가 풍년이면 트러플은 흉년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는 두 작물의 작황이 모두 좋아 보기 드문 동반 풍년을 맞이했다. 닮은 데가 없는 두 열매가 빈부의 희비쌍곡선을 그리는 이유는 뭘까? 두 열매가 한참 익어가는 한여름에 비가 내리면 포도에는 해로울 수 있지만 트러플에는 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여름에 비가 내린 때는 8월 중순에서 9월 초와 10월 말이었는데 8월, 9월에는 비 오는 날과 더운 날이 번갈아 왔으며 10월 말에 내린 비는 포도 수확이 끝난 뒤라 피해를 주지 않았다. 포도와 트러플 성숙기가 겹치는 달에 더위와 비가 시기적절하게 치고 빠지는 묘미를 발휘한 해였다.
알바 근교에서 2대째 알바산 트러플 판매와 트러플 2차 가공 식품제조사를 운영하고 있는 에밀리아노 이나우디(Emiliano Inaudi) 사장에게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트러플 지도를 보면 알바 화이트 트러플 산지와 포도밭은 서로 근접하며 어떤 트러플 밭은 포도밭과 중첩된다. 그렇다면 화이트 트러플 자생지는 와인용 포도 재배에도 적당한지 궁금해졌다.
<알바산 화이트 트러플 지도(이미지 제공: Regione Piemont 주정부 웹사이트). 이탈리아의 주요 레드와인산지인 랑게, 로에로와 몬페라토 일부지역은 알바산 화이트 트러플 산지와도 일치한다>
이나우디 씨의 답변은 ‘아니다’ 다. 통계적으로 화이트 트러플(Tuber Magnatum)이 자주 발견되는 장소와 포도재배가 흔한 곳은 대륙성 기후권에 토양의 산도가 중성에서 중상의 알칼리성(pH지수가 6.7~8.5 사이의 석회토)권에 드는 토양이다. 하지만 그것은 최소 필수요건일 뿐, 여기에 복잡한 자연요소가 끼어든다. 포도는 언덕 경사면에서 자라지만 트러플이 자라는 곳은 비와 바람이 운반해온 흙이 쌓이는 언덕 하부 퇴적토에서 발견된다. 즉 표토와 심토가 섞이면서 영양분의 교환이 빈번히 일어나는 젊은 토양이 트러플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포도는 태양광선에 노출되는 걸 좋아하지만 트러플은 직사광선을 싫어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숲에서 자란다. 나무뿌리에 달라붙어 나무로부터 영양분을 취하면서 자라는 트러플의 특성상 트러플 친화성 수종인 포플러, 로부르 참나무(Quercus robur), 버드나무(Salix), 피나무(tilia platphyllos Scop.)가 무성한 숲이 최적지다. 트러플은 비가 조금씩 자주 내려야 번성하지만 그렇다고 주변에 연못이나 호수 등의 고여있는 물이 있으면 좋지 않다.
< INAUDI가족은 1929년 부터 알바산 화이트 트러플 판매와 트러플 2차 가공 식품제조에 선두주자 위치를 지켜오고 있다>
트러플이 대풍작임은 가격이 말해주고 있다. 알바산 화이트 트러플 공식 가격 사이트에 따르면 20그람 기준으로 300유로인데, 흉작이던 작년의 450유로에 비하면 44% 내린 가격이다. 블랙트러플(Tuber Melanosporum) 20그람의 가격도 7유로선으로 하락률이 비슷하다. 반면, 포도 작황이 좋다고 하지만 실정을 들여다보면 2016년 수확량 수준을 회복한 것뿐이다. 수확이 포도농사 달력 대로 착착 진행되자 와인 규정이 정해 놓은 포도 생산량 제한 감시망이 재빨리 작동했고, 풍년이 와인 과잉생산과 와인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거라는 루머를 잠재웠다.
한창 물이 올라 제맛인 트러플은 가격도 적당해 식욕을 강하게 자극한다. 트러플이 겨울에 나는 건 추울 때가 가장 맛있는 이유와 무관치 않다. 창문 밖의 어둠 속으로 겨울은 깊어가고, 얇게 저민 트러플을 말은 파스타를 한 입 가득 문 양쪽 볼은 볼록하다. 바롤로가 필요한 순간이다.
Barolo Aleste DOCG 2014
그리고 Sandrone 와이너리
1981년 빈이태리VINITALY 와인축제, 한 미국 네고시앙이 루차노 산드로네 와인을 시음한 후 그의 와인을 전량 구매하겠다고 제의한다. 4년 전 루차노 산드로네가 와인업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첫 번째로 만든 1500병의 바롤로였다. 이후 1989년산 칸누비 보스키스(Cannubi Boschis) 바롤로는 로버트 파커로부터 97점, 1990년 산은 100점을 받으면서 바롤로의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현재 루차노 산드로네 와이너리는 바롤로의 다섯 군데 마을과 베짜달바 마을에 위치한 27여 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이 규모의 포도밭이면 다양한 품종을 심어 와인 구색을 늘릴 만도 한데 산드로네 씨는 바롤로 , 바르베라 달바, 네비올로 달바, 돌체토 달바 와인의 4종류로 포트폴리오를 좁혔다. 산드로네 가족이 현 양조장 규모로 심혈을 기울여 와인을 만들 때 품질과 감동이 일체가 되는 능력대비 효율극대화 숫자다.
2013년 루차노 씨는 바롤로 칸누비 보스키스 와인을 외손주들에게 헌정하기로 한다. 40년이 넘는 포도 수확 경험과 바롤로 노하우를 외손주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결정이다. 먼저 와인 이름을 칸누비 보스키스에서 ALESTE(아레스테)로 바꾼다. 두 손주의 이름인 알레시오(ALEssia)와 스테파노 (STEfano) 의 첫소리의 결합으로 외손주들이 성년이 되는 2013년에 첫 빈티지가 나왔다.
시음 노트: 어린 네비올로의 청아한 루비색이 감돈다. 12~15년 후가 시음 적기라는 ALESTE는 2014년 산을 잔에 막 따랐을 때는 잠시 침묵한다. 잠시 후 장미, 제비꽃 향기 등의 아로마와 타바코, 시트론, 감초의 매력적인 숙성 향을 조화롭게 피운다. 모든 향 뒤에는 경쾌한 후추향이 뒤따른다. 약에서 강으로 느리게 변주하는 타닌의 힘이 느껴지며 체리와 라즈베리로 끝맺는 뒷 맛이 우아하다.
Barolo Monvigliero 2014
그리고 Paolo Scavino 와이너리
파올로 스카비노 와이너리는 3년 후면 창립 백 주년을 맞는다. 현재 스카비노의 와인 양조를 도맡아 하는 엔리코 스카비노 씨는 한군데 포도밭에서 재배한 네비올로만으로 크뤼 바롤로 와인을 만들자고 부친에게 제의한다. 이때가 1970년 초반이었고 바롤로의 크뤼 제도가 공식적으로 도입된 때가 2010년임을 고려할 때 엔리코의 아이디어는 무려 40년을 앞선 것이었다
바롤로 생산자 중 스카비노 와이너리만큼 크뤼 밭 부자는 흔치 않을 거다. 엔리코 씨는 평상시 눈여겨 보던 밭을 조금씩 사들였고 현재는 일곱 군데 바롤로 마을에 20게 크뤼 밭을 소유하고 있다. 1991년 라모라 마을에 있는 Roche delle Annuziata 밭 1헥타르를 단돈3만 유로에 구입한 이야기는 잘 알려진 일화다. 참고로 이 밭의 최근 시세는 166배 오른 5백만 유로다.
<엔리코 스카비노 씨와 WineOK의 이상철 칼럼니스트>
몬빌리에로(Monvigliero)는 베르두노 마을에 소재하는 바롤로의 전설적 크뤼 밭으로, 임대해서 경작하던 이 밭을 엔리코씨가 2007년에 인수했다. 이 밭의 주인이 되자 마자, 한군데에서 재배한 네비올로는 크뤼 바롤로에 담는 스카비노의 원칙대로 몬빌리에로 바롤로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시음 노트: 몬빌리에로 포도밭의 명성대로 벨벳같은 식감의 타닌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정향, 감초의 향신료 향과 숲, 비 온 뒤 흙에서 나는 향이 은은히 번진다. 잘 익은 비올라, 체리, 자두의 달콤한 향이 겹쳐지면서 향미가 깊어지고 증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