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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Berlin Wine Trophy, Asian Wine Trophy, Selezione Del Sincaco,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이탈리아는 미신의 나라다. 베로나에 소재하는 줄리엣의 집 안뜰에 황금빛의 반들반들한 가슴을 드러낸 줄리엣의 청동상, 그리고 밀라노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의 바닥에 난 음부 부위가 푹 꺼진 황소상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건 필자만이 아닐 거다. 특정 신체부위를 만지면 개인의 소망이 이루어진다거나 행운이 온다는 미신은 비록 신성한 곳일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베르가모 르네상스 건축의 최고봉으로 사랑받는 콜레오니 예배당 철창살 문은 그런 관점에서 좀더 노골적이다. 다름 아닌 예배당 안의  묘지 주인의 고환이 새겨진 문장이 철창살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공공장소에 있다는 것도 낯 뜨거운데 무려 그 부위가 세 개다. 예배당을 짓게 한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는 선천적으로 남보다 고환이 한 개 더 있었으며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 그는 가문 문장에 새겨 넣는 스캔들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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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_ Trip Advisor, 콜레오니 예배당 정문에 걸린 콜레오니 가문의 문장 일부>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는 15세기 중반 베네치아 공화국의 장수로서 용맹을 날렸다. 이 시절은 북이탈리아 주도권을 두고 베네치아 공화국과 밀라노 공화국이 전투를 끝없이 일으키던 때였다. 장군은 롬바르디아주 동북부 일대를 밀라노로부터 점령해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를 확장하는 한편 공화국 극서 국경의 경비를 확고히 했다.


그의 기마상이 북이탈리아 곳곳에 세워질 정도로 장군의 업적은 대단했지만 그의 사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여럿 있었으나 아들이 없어 다수의 여자와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혼외관계에서도 아들을 얻지 못했고 결국 딸만 여덟 명을 두게 되었다. 장군은 15살에 타계한 딸 메데아를 무척 총애했다. 그 정도가 과해 자신의 시신을 안장하려고 지은 개인 예배당에  그녀의 관을 묻게 했다. 보통 부인과 나란히 묻히는 게 관습이지만 딸에게만 무덤의 일부를 허락한 독선적  부성애를 지녔다. 콜레오니 예배당 정문에 들어서면 좌측 벽을 장식하고 있는 카라라 대리석 조각과 그 밑에 놓인 관이 메데아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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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오니 예배당. 콜레오니 장군은 자신의 묘가 묻힐 장소를 산타 마조레 성당 교구에 요구했는데 시간이 흘러도 허락을 받지 못하자 본인 멋대로 성당의 일부를 허물고 예배당을 짓게 했다.>

 


이탈리아 와인 이름은 포도 품종이나 지명, 또는 이 둘을 혼합한 것이 대부분이다. 간혹 성인이나 실존인물의 이름이 와인명으로 등장할 때가 있는데, 콜레오니 장군의 성을 딴 테레 델 콜레오니(Terre del Colleoni 또는 Colleoni만 사용)가 그 예다. 발음하기 어려운 품종이나 딱딱한 지명보다는 에피소드나 스캔들에 연루된 인물이 특정 와인에 아이덴티티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콜레오니의 영토’란 뜻의 이 와인은 DOC 등급에 등록되어 있으며, 와인 생산지역이 장군이 밀라노 공화국의 침입으로부터 지켜내려고 고군분투하며 그의 정력을 과시하던 장소와 일치한다.


콜레오니의 영토는 코모 호수(Como)의 동쪽 강변에서 이제오 호수(Lago d’Iseo) 서쪽 사이에 위치한 파다노 평원과 낮은 언덕이다. 북부의 낮은 언덕은 콜레오니 와인의 집중 생산지로 그 뒤에 솟은 산들은 오로비에 알프스의 준봉들이다.


1970년대 이탈리아에 국제품종 와인이 주목 받기 시작할 즈음 테레디 콜레오니 지역에 국제품종이 재배되기 시작했다.  2천 년 초반에 국제품종의 인기에 밀려 멸종위기까지 간 토착품종을 구하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후부터는 국제품종과 토착품종 와인이 나란히 생산되고 있다. 병 라벨에는 Terre del Colleoni다음에 품종이름이 표시되어 있어 비교적 알아보기 쉽다. 


재배품종은 카베르네 계열, 메를로, 피노 계열, 샤르도네, 프랑코니아 등의 국제품종과 스키아바, 인크로초 만조니, 마르제미노, 인크로초 테르찌, 모스카토 잘로 등의 토착품종이다. 위의 품종들로 14 가지 타입의 와인이 만들어지며 로쏘와 비앙코의 블랜딩 와인을 제외하면 라벨에 표시된 품종을 85% 이상 양조해 만든 단일품종 와인이다. 품종에 따라 드라이, 약발포성, 스푸만테, 노벨로(햇와인) 스타일로 만들어져 선택의 폭이 넓다.


스키아바(schiava) 품종은 북동 이탈리아에서 주로 재배되는 레드 품종이다. 스키아바 그로싸와 유전자가 비슷하며 이곳에서 재배하는 스키아바를 따로 구분해 ‘스키아바 롬바르다’라 한다. 껍질이 얇고 양지에서 잘 자라며 붉은 과일, 후추, 허브 향이 매력적이며 산미와 타닌이 적당해서 가볍게 마시기에 좋다. 생산 후 2~3년 내에, 스키아바의 신선함이 절정일 때 마신다. 마르제미노는 오페라 <돈 조반니>의 결혼식에서 “와인을 잔에 부어라! 위대한 마르제미노”의 대사로 유명한 와인이다. 양조장의 발효향, 체리, 비올라, 숲, 베리 향기와 중간 보디감의 묵직함과 그 안에 산미와 타닌이 조화롭게 녹아 있는 원만한 느낌의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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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오니 와인. 왼쪽부터 인크로초 만조니, 인크로초 테르지, 스키아바>
 

 

최근 몇 년간 저명한 영농 학자가 여러 품종을 교배해서 얻은 품종이 상품화에 성공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그 지역을 대표하는 와인으로 자리 잡았다. 인크로초 테르지(Incrocio Terzi No.1)는 영농 학자 리까르도 테르지가 카베르네 프랑과 바르베라를 교배해서 얻은 품종이다. 카베르네의 허브향, 색소, 타닌, 보디감과 바르베라의 과일, 꽃, 산미가 조화롭게 결합했다. 인크로초 만조니(Incrocio Manzoni)는 루이지 만조니가 리슬링과 피노블랑을 교배한 화이트 품종이다. 양조장 숙성이 막 끝났을 때는 엷은 노란색이 돌다가 병 숙성이 진행되면서 짙은 노란색으로 변한다. 흰 꽃, 열대과일, 시트론, 아몬드 향이 현란하며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산미가 강하지만 목넘김이 부드럽다. 

 


베르가모, 하프 데이 여행의 천국


테레델 콜레오니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은 롬바리디아주 행정구역상 베르가모 군에 속하며 이곳의 수도는 베르가모다. 베르가모는 신시가지인 치타바싸(Città Bassa)와 고시가지인 치타알타(Città Alta)로 나뉜다. 다시 말하면, 높은 곳에 위치한 치타알타의 도시기능이 한계에 다다르자 저지대에 있는 치타바싸가 수도의 역할을 분담한 형상이다. 일반적으로 베르가모는 고상한 매력덩어리인 옛 도심지 치타알타를 의미하며, 그 매력은 직관적이며 이걸 누리는데 역사 지식이나 예술적 안목이 필요치 않다.


2003년 유럽 저가 항공의 선구자인 라이안 에어가 ‘베르가모 오리오 알 세리오(Bergamo Orio al Serio, 이하 베르가모 공항)’에 취항하면서 이곳의 승객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2017년 통계, 천 2백 5십만 명). 이후 유럽 다수의 저가 항공사가 베르가모 공항에 노선을 개설하면서 이곳은 저가 항공의 거점으로 떠올랐다. 승객들은 저비용 항공의 특징인 비선호 시간대(늦은 밤~새벽시간) 운항으로 생기는 자투리 시간의 무료함을 베르가모 단시간 투어로 풀어냈다. 15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공항 시내버스가 30분 내에 치타알타의 4대 성문 앞에 데려다 주고 한끼 식사와 도심을 도보 여행하는데 5시간이면 충분하다.  베르가모가 하프 데이 여행의 총아가 아니라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1561년 축성된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치타알타는 성벽의 둘레만 6,200미터에 달한다. 형태가 완벽하게 보존된 성벽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정원과 산책길이 나있으며 여기서 내려다보는 롬바르디아 평원은 평화롭다. 베네치아의 흔적인 사자조각이 양각된 4대 성문을 통해 치타알타에 들어가면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좁은 길 양쪽에 빽빽이 들어서 있다. 건물의 1층에 늘어선 아티산 선물가게 안에는 앙증맞은 수제품들이 행인들의 시선을 독차지하려 애쓴다. 가스트로노미에서 흘러나오는 치즈 숙성 향과 살라미의 훈제 향기는 관광객들의 발목을 붙든다. 


치타 알타의 모든 길은 베끼아 광장(Piazza Vecchia)으로 통한다. 아무리 배가 부르고 다이어트 중이라도 먹거리에 항복하고 마는 유혹의 길이기도 하다. 광장 입구에 서있는 광장 역사만큼 오래된 베이커리에서 파는 ‘폴렌타 에 오세이’ 케이크를 두고 하는 말이다. 폭신한 카스테라 식감과 입 안 가득 퍼지는 아몬드 맛 초코크림이 고소하기 이를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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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wikipedia: 폴렌타 에 오세이 케이크>
 

 

베끼아 광장은 베네치아 예술과 베르가모의 고상한 감성이 잘 융합된 결정체다. 콘타리 분수를 지키고 있는 여덟 개의 동상들은 제각기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갖추었다. 콜레오니 예배당 정면의 대리석 조각은 섬세함과 장식미가 돋보이며 우측의 산타 마조레 성당의 단순함과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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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베끼오 광장과 콘타리 분수>

 


베르가모는 롬바르디아 평원과 오로비에 알프스의 전통적인 맛이 모이는 미식의 허브다. 온화한 기후, 풍부한 목초지, 알프스 천연동굴의 근접성은 풍미가 탁월한 치즈제조의 자연요소이며 베르가모 주변의 마을은 최상의 테루아를 갖추었다. 무려 9개의 원산지 마크에 등록된 DOP치즈가 베르가모군에 속한 낙농장에서 나오며 그 중 고르곤졸라, 그라나 파다노, 탈레지오, 비토는 베르가모 치즈의 덕후들이다.


탈레조 치즈는 고릿한 향이 타 치즈의 추종을 불허하며 모양이 마치 두부처럼 반듯해 한국인에게도 친근한 모습이다. 발탈레조 계곡에 위치한 탈레조 마을이 원조라 탈레조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외피는 투박하며 녹색빛이 살짝 감도는 오렌지 빛이다. 특유의 빛깔과 향기는 치즈장인의 노련한 경험에서 오는 고귀한 고린내다.  장인은 치즈의 앞뒤면을 소금으로 씻는 작업을 반복하는데, 35일이 지나면 소금이 독특한 향미를 내는 효소의 숙성 활동을 촉진시켜 치즈 안팎에 독특한 향미가 퍼지게 된다. 탈레조의 외피에 가까운 속살은 탄력이 있으며 중심으로 갈수록 크림처럼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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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Arrigoni Battista S.p.A 치즈 제조사>

 


외피는 먹어도 되며 소금 맛이 나지만 중심에 가까울수록 담백하므로 자를 때 겉부터 중앙까지 모든 부분을 자르면 간이 맞는다. 트러플, 익은 야채의 구수한 풍미, 견과류 향을 풍기며 포근한 식감과 조화롭게 어울려 꿈결 같은 맛이 난다. 상온에도 잘 녹는 특성을 십분 활용해 브루스케타 조각에 얹으면 빵 전체가 흰 눈으로 덮인 들 같아 탈레조 치즈는 겨울과 어울리는 맛이다. 노릇하게 익은 탈레조 그라탕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훈기, 뜨거운 폴레타 열에 녹은 탈레조는 보는 것만으로도 체온의 수은주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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