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토스카나 와인 대회는 스팅Sting으로 시작해서 스팅으로 끝났다. 적어도 흥행면에서는 그렇다. 목청 한번 시원한 스팅이 기타 튕기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메시지 인 어 보틀’. 와인세계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노래를 찾을 수 있을까. 스팅의 한 소절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지하기만 하던 와인 저널리스트들이 고개를 조금씩 흔들며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잔을 연신 흔들어대고 킁킁거리며 코를 들이밀며 냄새맡기에 급급한 저널리스트들이, 특유의 굳은 표정을 조금씩 풀면서 노래가락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매년 토스카나에 속한 여러 명산지 와인들이 피렌체에 모인다. 품질은 곳에 따라 높낮이가 다르며 전년에 비해 들쭉날쭉 하다. 하지만 스팅 이벤트로 인한 언론의 노출 덕분에 기획자들은 행사가 잘 되었다고 자평하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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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토스카나 안테프리마’는 늘 그랬듯이, 피렌체에서 시작해 몬탈치노에서 마친다.  이벤트가 주요 도시에서 행해지면 일장일단이 있다. 하지만 토스카나 와인 행사가 피렌체에서 이뤄지는 것은 장점으로 가득하다. 양조장에게는 큰 기회이자 행운이다. 왜냐하면 도시가 주는 예술적 아우라와 역사적 기반이 와인을 오롯이 조명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유산이 떠받치는 와인 행사는 흔하지 않다. 와인을 물과 에탄올의 비율 정도로만 해석하는 이, 혹은 와인을 오로지 가성비로만 인식하는 이들은 생각이 어떤지 몰라도, 와인이란 것은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것으로, 인류 문화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무척 깊다. 시대를 막론하고 양조에 한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많고 꾸준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토스카나의 와인 유산은 비단 피렌체나 몬탈치노에 국한되지 않는다. 강렬한 검은색 수탉 로고를 통해 이미지 제고와 품질 향상을 성공적으로 이룩한 키안티 클라시코는 무려 1716년에 마땅히 구분되어야 할 품질 와인으로 공식 천명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의 토스카나 와인 맹주는 다른 데 있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세 지역이다. 발다르노 디 소프라에서 독특한 품종으로 유명한 양조장 카르나쉬알레(‘카베르롯’이란 품종으로 와인을 만드는 지구상 유일한 곳)에서 일하는 마르코 마페이는 “메디치 시대에는 루피나, 카르미냐노, 그리고 발다르노 디 소프라, 이 세 지역이 고품질 와인으로 인정받았다”고 말한다.  세가지 원산지 중에서 그나마 유통 시장에서 친숙한 건 루피나 정도다. 오늘날의 공식 명칭은 루피나가 아니라, 키안티 루피나임을 명심하자. 특히 발다르노 디 소프라는 오늘날 고급 토스카나 와인들이 많이 나오는 곳이니 유념하자. 
  
토스카나의 2017년 빈티지는 봄에 닥친 무자비한 냉해 영향으로 생산량이 20-30% 감소했다. 하지만 곧 이어진 무더운 날씨로 인해 2003년과 비교가 되는 더운 빈티지다. 2016년 빈티지는 2015년에 이어 키안티 클라시코의 명성을 이어주는 고품질 빈티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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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안티 클리시코의 책임자>

 

키안티 클라시코 조합의 실비아는 이 조합이 해결하지 못한 오랜 숙원과도 같은 한가지를 당부한다. 즉 사람들이 키안티와 키안티 클라시코를 혼동하는 것이다. 키안티는 삼백년 역사의 고품질 와인 키안티 클라시코와 다르다. 우리 시장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키안티와 키안티 클라시코는 마땅히 구분되어야 하지만, 소비자들은 둘의 차이를 잘 모른다. 긴 이름 키안티 클라시코 대신 짧게 키안티라고 부르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실비아가 애태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실비아의 소망이 과연 얼마나 이뤄질지 모르겠다. 독자들은 앞으로 얼마나 또 어떻게 둘을 구분할지 궁금하다. 검은 수탉은 키안티 클라시코의 상징이니, 이렇게 기억하면 어떨까 싶다. 


키안티에는 검은 수탉이 없다. 다만 키안티 클라시코에 있을 뿐.” 

 

키안티와 키안티 클라시코는 다른 와인이다. 오늘날 키안티 클라시코만큼 빠른 시간내에 품질 향상과 정체성 확립을 이룩한 이탈리아 와인이 없다. 이는 마치 부르고뉴의 마을 단위 와인의 품질과 가격이 증대되는 현실과 비슷하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하부 지역 가운데 ‘라다 인 키안티’의 품질 향상이 괄목할 만하다. 섬세하고 우아하며 세련된 라다 인 키안티 출신으로는 몬테라포니, 발델레코르티, 카를레오네, 카파르사, 포제리노 등이 있다.   
스팅도 와인을 만든다. 그의 와이너리 ‘테누타 팔라조’는 키안티 클라시코 안이 아니라 바깥에 위치한다. 따라서 키안티 클라시코는 만들 수 없다. 대신 키안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종종 농장주들은 신통치 않은 키안티 대신에 ‘토스카나 지방’이라고 레이블에 써서 시장에 출시한다. 와이너리들은 이를 통해 양조의 자유재량을 확보할 수 있다. 블렌딩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자신들이 원하는 스타일을 수월하게 표현할 수 있다. 
 
피렌체 산책은 덤이다. 짬을 내어 산책하는 즐거움이 피렌체에서는 예술로 쉽사리 이어진다. 중심지 아무데나 걸어도 그렇다. 표지판 속에 다비드가 있고, 비너스가 있다. 교통 표지판에다 삽화를 그려 넣어 길거리도 미술관으로 변모시킨 클렛 아브라함(Clet Abraham) 덕분이다. 유심히 교통 표지판을 쳐다보면 단조로운 골목조차 달라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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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을 가기 위해 탑마을 산지미냐노를 거쳐간 잉글랜드 순례자들처럼, 우리들도 우선 산지미냐노로 가야 한다. 물론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몬탈치노이지만 말이다. 산지미냐노에서도 키안티를 양조한다(물론 키안티 클라시코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그게 아니라, 씹히는 질감과 개성있는 미네랄 향취의 화이트 와인, 베르나차 디 산지미냐노(이하 베르나차)를 만나는 일이다. 태고적 바다가 융기한 덕분에 석회암 토양이 널리 분포한 산지미냐노는 고품질 화이트 베르나차를 잉태한다. 

 

샤블리, 샬롱, 클라프 등의 이름있는 프랑스 화이트와의 비교 시음을 통해 특유의 맛과 향을 자랑해온 베르나차는 올해는 비교 대상을 자국에서 찾았다. 베르나차가 이탈리아의 다른 유명 화이트와 어떻게 구별되고 비교되는지가 올해 주제였다. 시칠리아의 그릴로, 프리울리의 피노 그리, 베네토의 쿠스토차 와인들과의 비교를 통해, 베르나차는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설명했다. 갓 담갔을 때엔 상큼하고 청량한 맛을 주고, 오래 묵었을 땐 깊은 숙성미에다 복합적인 부케를 주는 게 바로 베르나차다. 레드 와인의 품질에 비해 화이트가 좀 약하다는 이탈리아 와인의 굳어진 평가 속에서, 또 모두들 레드만 찾는 현실 속에서, 베르나차는 가열차게 자신을 좀 봐달라고 외쳤다.

 

몬테풀치아노의 2015 빈티지는 축복을 받았다. 산지오베제의 강한 산미와 타닌이 빈티지의 고운 품안에서 아름답게 녹아들었다. 키안티 클라시코와 몬탈치노 사이에 낀 일정으로 인해, 그리고 높은 알코올과 다져지지 않은 타닌으로 인해 늘 주목을 덜 받아왔던 몬테풀치아노는 2015년 빈티지의 성공으로 인해 많은 갈채를 받았다. 특히 데이, 발디피아타, 빈델라, 아비뇨네지, 폴리차노의 품질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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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종착지 몬탈치노에 다다랐다. 2013년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이하 브루넬로)가 출품되었다. 2012 브루넬로에 이어 별 다섯 평가를 받은 2013 브루넬로는 2012보다 시음하기가 더 수월했다. 타닌은 억세지 않았고, 아로마가 강렬하게 풍겼다.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부드러운 구조감이 전반적인 특징이었다. 시음을 위해 고품질 브루넬로를 제공하는 소믈리에도, 제공받는 저널리스트도 시음내내 즐거운 표정이었다. 육중하고 견고한 조직의 브루넬로가 빈티지의 영향을 받아 섬세하고 유연하며 오묘한 와인이 되었다. 레 포타치네, 살비오니, 우첼리에라, 쿠파노, 파토이, 포데레 레 리피, 포지오 디 소토 등이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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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시음장>

 

몬탈치노에서의 휘날레는 매번 이미지 한컷이 차지한다.  2017년판 브루넬로 명예의 전당에 스팅이 올랐다. 첫날에 이어 마지막날에도 스팅이 분위기를 이끌었다. 브루넬로 협회는 스팅의 연주 기타 이미지를 ‘올해의 타일’에 새겼고, 그 타일을 담벼락에 걸었다(본문 맨 위 사진). 협회는 스팅의 와인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높이 샀다. 이렇게 해서 빈티지 2017은 별 넷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벽에서 ‘메세지 인 어 보틀’ 가락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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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_ 조정용

 

<프랑스와인여행자>, <올댓와인>외에 세 권의 와인서적을 출간한 와인 저널리스트이다. 
2013년부터는 큐리어스와인(주)을 설립하여, 유럽의 소규모 농부들이 생산하는 와인을 국내에 수입하여 주로 레스토랑에 유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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