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S

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 랑게와인 앰버서더(Langhe Wines Ambassador)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The International Wine Award Mundus Vini, International Wine City Challenge,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l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1.jpg

 

 

와인을 표현할 때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을 묘사하는 단어를 빌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발랄, 온화, 섬세, 깔끔, 원만, 강직 등이 그 예이며 나와 친근한 지인이나 친구의 성격을 표현할 때 끄집어내는 단어들이다. 와인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 듣는다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와인의 의인화라 할 수 있겠다.


와인과 사람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의 성향은 인간이 문명 발생 시기 때부터 와인을 꾸준히 마셔오면서 무의식화된 습관과 관련이 있으며 이로 인해 와인과 사람의 구분이 모호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애매한 현상은 이탈리아 와인 이름을 보면 쉽게 납득이 간다.


피뇰로(pignolo, 레드 와인 품종명인 동시에 동일 품종으로 만든 와인 명이다. 이하의 품종명도 마찬가지다) 와인을 예로 들어보자. 피뇰로는 고지식한 사람을 빈정거리는 투로 표현한 형용사인데, 다 익은 포도송이가 일말의 공기가 들어갈 틈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양이 마치 융통성 없는 사람과 같기 때문이다. 공손한 사람은 “코르테제(cortese, 화이트 와인 품종)스럽다”고 하는데 코르테제로 만든 와인을 마실 때 입안에 어떠한 거슬림이나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무난한 맛과 관련이 있다. 맛과 향기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끓어오르는 라보소(raboso, 레드 와인 품종) 와인은 불 같은 성격을 주체하지 못하는 화산 같은 사람을 두고 “라비오소(rabbioso)같다”고 한 표현에서 빌려왔다.


와인을 마신 뒤 맛 인식 세포인 미뢰와 와인이 서로 주고받은 느낌이 와인 이름으로 정착된 경우도 있다. 캄파니아(Campania) 주의 아베르사 마을에는 키가 10미터 이상이나 되는 포플러 나무를 타고 자라는 청포도가 있는데 뿌리와 열매가 멀리 떨어져 자라는 연유로 포도의 산도가 매우 높다. 결국 이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신맛(aspro, 아스프로)이 도드라지게 되어 아스프리니오(asprinio)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타제렝게(tazzelenghe, 레드 와인 품종) 와인은 “혀(lenghe)를 베다(tazze)”의 결합어로 혀에 와 닿는 산미와 타닌의 강도가 포도 작명에 일조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와인의 인간적인 속성은 인간과 친근한 동물도 예외는 아니다. 실크가 울고 갈 정도로 부드러운 타닌의 아마로네 와인은 큰 까마귀(corvinone)와 작은 까마귀(corvina)의 뜻을 갖는 품종의 협연인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산조베제의 달콤한 변신인 빈산토는 그 고귀한 맛을 자고새의 눈동자(오끼오 디 페르니체, Occhio di Pernice)에 빗댄 것으로, 아마도 빈산토를 마신 어느 시인이 그 맛에 탄복해 와인의 깊고 풍부한 맛을 자고새의 헤아릴 수 없이 깊은 눈동자에 비유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포도명이 동물명과 일치한 경우는 꽤 있다. 초식동물인 양이 풀은 거들떠보지 않고 탐했을 정도로 맛있던 포도는 페코리노(pecorino, 양, 화이트 와인 품종)란 이름을, 파세리나(passerina, 참새, 화이트 와인 품종)는 다 익은 포도송이가 참새 크기만 했음에 주목했다. 포도의 달콤함이 유난스러워 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베스폴리나(vespolina) 포도는 ‘꿀벌’이란 어원에서 왔다.

 

 

2.jpg

<사진제공: Cantine Olivella와이너리, ‘천국의 넥타르’란 애칭의 라크리마 크리스티 와인은 베수비오산을 이루고 있는 두 봉우리에서 생산된다.>

 


와인과 동물의 상생은 신화에도 흔적이 있다. 천국의 넥타르(Nectar of the Gods) 같은 맛을 숨기고 있다는 그 유명한 베수비오 산이 신화 탄생지다. 타락천사로 알려진 루시퍼는 교만이 하늘을 찔러 신들의 원성을 사 천국에서 추방당하는 벌을 받는다. 추락하는 중에도 본성이 발동해 루시퍼는  천국의 일부를 훔친다. 루시퍼는 베수비오산에 추락했고 그가 훔친 천국 한 줌은 나폴리 만이 되었다. 루시퍼의 소식을 들은 예수는 눈물을 흘렸고 마침 베수비오산에 떨어진 눈물은 포도나무로 피어난다. 이 포도로 만든 와인은 천국에나 있음 직한 넥타르 맛이 났고 포도를 잉태한 눈물(Lacryma)이 예수(Christi)한테 왔기 때문에 라크리마 크리스티(lacryma Christi)라고 부르게 된다. 


이탈리아판 전설의 고향 같은 이 와인 이야기는 원재료인 포도 품종의 뜻을 알고 마신다면 그리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 라크리마 크리스티 와인은 비앙코와 로쏘의 두 종류가 있으며 품종명 둘 다 다 익은 포도송이를 펼쳤을 때 그 모양이 동물의 특정 부위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염소수염을 닮은 까프레토네(caprettone, 염소) 와 황금빛 여우 꼬리처럼 생긴 코다디 볼페(coda di volpe, 여우꼬리)는 화이트 와인을, 포도송이의 꽃자루가 콜롬바 비둘기의 쫙 벌린 발가락 모양과 흡사한 피에디 로쏘(piedi rosso, 붉은 발)는 레드 와인(로쏘)이 만들어진다.
   

 

3.jpg

<사진제공Sorrentino 와이너리, 라크리마 크리스티 비앙코(좌)는 코다디 볼페와 카프레토네 품종을 블랜딩했으며 라크리마 크리스티 로쏘(우)는 피에디 로쏘와 소량의 알리아니코 품종을 블랜딩했다.>

 


베수비오산에서 멀지 않은 카세르타 궁 안에 소재하는 왕실 포도밭 얘기로 본 칼럼을 마치도록 하겠다. 왕실 포도밭 자체도 흥미롭지만 여기서 재배되던 특정 품종이 최근에 이탈리아 품종 등록부에 올라 이탈리아는 토착품종의 왕국으로서 다시 한번 기염을 토했다.


카세르타 궁전은 18세기경 나폴리 왕국의 페르디난도 4세 치하 때 건설되었으며 24개의 건물, 1200여 개의 방과 120여 헥타르의 정원으로 이루어진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왕궁이다. 페르디난도 4세는 자신이 다스리는 남이탈리아와 시칠리아의 와인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궁내부에 접부채 형태의 포도밭(Vigna del Ventaglio)을 조성한다. 포도밭은 접부채의 손잡이 부분에서 반대편에 있는 가장자리까지 열 군데의 소(小) 포도밭으로 구분했으며 개별 포도밭마다 왕이 다스리는 영토를 대표하는 십여 종의 포도나무를 선별해 심었다. 
 

 

4.jpg

<사진: Vigna del Ventaglio, 카세르타 궁 내부에 조성된 접부채 형태 포도밭>

 


그런 후 포도밭마다 부르봉 왕관이 새겨진 석비를 세웠는데 왕관 밑에는 각 포도밭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든 와인명을 음각으로 새겼다. 1790년에 작성된 고문서에 따르면 심어진 포도는 모두 일만 여 그루이며 여기서 80 바릴리 (Barili는 중세 유럽에서 통용되던 액체를 재는 단위, 1 barile는100~200리터)의 와인을 얻었다고 적혀있다. 왕실의 피를 간직한 이 와인들 중, 페르디난도 4세는 팔라그렐라(pallagrella) 품종으로 만든Piedimonte 와인을 각별히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왕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이 품종은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가 1990년 한 민간인의 노력으로 다시 우리 품에 돌아왔다. 팔라그렐라는 ‘작은 공’이란 뜻으로 포도알이 탁구공처럼 팽팽하고 완벽한 구형에다 완숙에 이르면 한 송이의 무게가 150그람 안팎으로 이름에 걸맞는 포도다. 팔라그렐라는 화이트 와인 품종(팔라그렐라 비앙카)과 레드 와인 품종(팔라그렐라 로쏘)으로 나뉘며 그런 이유로 ‘두 얼굴의 품종’으로도 알려져 있다. 사람으로 치면 이란성 쌍둥이에 비견될 수 있는 팔라그렐라 품종은 동일 유전자를 물려 받았지만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
 


- 저작권자ⓒ WineOK.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1. 테레 델 콜레오니 와인을 마시면 행운이 굴러온다.

    이탈리아는 미신의 나라다. 베로나에 소재하는 줄리엣의 집 안뜰에 황금빛의 반들반들한 가슴을 드러낸 줄리엣의 청동상, 그리고 밀라노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의 바닥에 난 음부 부위가 푹 꺼진 황소상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건 필자만이 아닐 ...
    Date2018.11.26 글쓴이백난영
    Read More
  2. 아무도 못 말리는 네비올리스트들의 늦바람

    네비올로는 새롭게 주어진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 낼 수 있을까? 탱글탱글하며 탄력넘치는 붉은빛 과일과 장미, 제비꽃의 차분한 향이 달콤한 감초 향으로 이어지는 잔잔한 감동에 익숙해진 우리를 배신하겠다는 심술인가! 살포시 다가온 타닌이 혀 근육을 살짝...
    Date2018.07.26 글쓴이백난영
    Read More
  3. 너무나 인간적인 와인

    와인을 표현할 때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을 묘사하는 단어를 빌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발랄, 온화, 섬세, 깔끔, 원만, 강직 등이 그 예이며 나와 친근한 지인이나 친구의 성격을 표현할 때 끄집어내는 단어들이다. 와인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 듣는다면 어...
    Date2018.06.12 글쓴이백난영
    Read More
  4. 그리스 품종이  캄파니아에 남긴 자취

    <나폴리에서 30분 거리 내에 있는 카세르타궁은 부르봉 왕족이 나폴리를 다스렸을때 설립되었다. 사진은 궁에 딸린 왕실 정원 ©wikipedia>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오토바이, 만국기 아닌 빨래가 팔랑거리는 좁은 길, 신호등 앞에 방향 잃은 차들의 엉김...
    Date2018.04.30 글쓴이백난영
    Read More
  5. 이탈리아  토양역사의 압축판 북피에몬테

    와인과 과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포도송이가 복잡한 양조과정을 거처 와인 잔에 담기는 순간까지 과학의 여러 분야는 깊은 관여를 한다. 포도 뿌리가 생장하는 토양의 기원과 성분을 알려 주는 토양학, 이를 바탕으로 토양에 적절한 품종을 찾아가는 ...
    Date2018.04.04 글쓴이백난영
    Read More
  6. Mon Amour, Berlin

    한 달 전, 한 유명 와인 아카데미에서 “와인품평회와 심사”라는 제목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주최했다. 각종 와인품평회의 운영방법과 심사기준, 와인 평가 과정, 심사위원의 역할과 자질에 대해 다룬 3시간짜리 미니 강좌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
    Date2018.03.12 글쓴이백난영
    Read More
  7. 에밀리아 로마냐는 항상 배고프다 - 이탈리아의 위장(2)

    (©ENOLOGICA 와인 미디어국) 이전 칼럼 <에밀리아 로마냐는 항상 배고프다 - 이탈리아의 위장(1)>에서는 구트르니오와 람부르스코 와인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두 와인이 에밀리아 가도 서쪽을 대표하는 와인이라면, 이번 칼럼에서는 에밀리아 가도 동쪽...
    Date2018.02.06 글쓴이백난영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2 13 14 15 16 ... 23 Next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