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애호가들, 특히 구대륙 와인으로 와인과 연을 맺게 된 애호가들에게 '끌라레Claret'라는 단어는 익숙하다. 이는 과거에 영국인들이 보르도 레드 와인을 지칭했던 말로, 지금은 일반 용어로 남아 있다.


Claret의 어원은 “연한clean”을 뜻하는 불어 “clairet”이다. 당시 보르도 레드 와인은 색이 연하고 가벼우며 타닌 함량이 적었기 때문에, 내륙 지역의 짙은 와인(예를 들면, black wine으로 불리는 까오르Cahor 지역의 와인)을 섞어서 수출했다고 한다.


보르도 와인이 본격적으로 영국에 수입되기 시작한 것은, 1152년 아끼뗀(지금의 보르도) 공작의 딸 알리에노르와 후일에 영국왕이 된 헨리 2세의 결혼 이후이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와 영국 간 교역이 대규모로 이뤄지고, 영국은 식품, 섬유, 금속을 수출하고 보르도 와인을 수입하게 된다. 이때부터 보르도에 와인 생산 붐이 일었는데, 상당수의 보르도 샤또의 역사가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이러한 두 국가 간 와인 교역의 급증과 연관이 있다.


이후 보르도 와인은 네덜란드, 한자동맹 소속 도시들 같은 새로운 고객이 등장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1855년에는 그 유명한 <그랑크뤼 등급 분류>가 제정되었다. 하지만 보르도 와인의 품질 혁신이 이루어진 것은 20세기 들어서부터이며, 현대 양조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밀 뻬이노(Emile Peynaud) 교수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만 해도 보르도 레드 와인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보다 연하고 가벼우며 타닌도 많지 않았는데, 이런 스타일의 와인을 부르던 용어가 바로 끌라레인 것이다. 그렇다면 끌라레의 맛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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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의 유명 와인 유통업체 BBR(Berry Bros. & Rudd, 위 사진)이 유통업자 자체 상표(Private Brand)를 붙여 선보인 <The Wine Merchant 더 와인 머천트> 와인들이 국내 대형마트 채널을 통해 출시되었다. 이 중에는 ‘TRADITIONAL CLARET (전통 끌라레)’ 와인도 포함되어 있는데, 평소 저렴한 보르도 와인을 즐겨 마시는 필자는 이 와인을 구입하기 위해 당장 마트로 달려갔다.


<The Wine Merchant>에는 ‘RED WINE’과 보르도의 고급 AOC 중 하나인 ‘PAUILLAC’ 와인도 있는데, ‘TRADITIONAL CLARET’가 이들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게다가 프랑스가 아닌 영국의 유통업자가 출시한 끌라레라니, 이 와인이 어떤 풍미를 지녔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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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ITIONAL CLARET’, 홈플러스, 14,900원 >

 

 

사진에서 보다시피, 레이블에는 “Appellation Bordeaux Controlée”라고 원산지가 표시되어 있고, 우리에게 익숙한 “Chateau OOO” 대신 “TRADITIONAL CLARET”라는 글자가 분명하게 쓰여져 있다. 뒷면 레이블에는 샤또에서 병입했음을 뜻하는 “Mis en bouteille au chateau” 대신 “Mis en bouteille a F33360 Cenac pour Maison Sichel”이라고 써있는데, 이 와인이 앙트르 뒤 메르 지역에서 양조된 후 병입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Traditional Claret’는 생각만큼 가볍지는 않은 미디엄 라이트 바디의 와인이다. 보르도 와인 특유의 블랙커런트 향이 좋고, 오크 풍미가 살짝 드러난다. 타닌은 적고 전체적인 밸런스도 좋다. 13%의 알코올도 튀지 않는다.

 

그 동안 필자가 경험했던 3만원 미만의 보르도 혹은 보르도 수페리외 AOC 와인과 비교하면, ‘TRADITIONAL CLARET’ 와인은 타닌과 볼륨감은 작지만 그렇다고 조밀도가 낮지는 않다. 그래서 오히려 밸런스도 좋다. 숙성시켜 마시기 보다는 일찍 마시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동안 일상 와인으로 마시고 싶은 보르도 와인을 쉽게 찾지 못했는데 마음 둘 곳 중 하나를 찾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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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_ 이상철
 
 
경영학과 마케팅을 전공하고 통신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보르도 와인을 통해 와인의 매력을 느껴 와인을 공부하며 와인 애호가가 되었다. 
 
중앙대 와인소믈리에 과정을 수료하고 WSET Advance Certificate LV 3 를 취득하였으며 와인 애호가로서 국내 소믈리에 대회에 출전하여 수상한 경력이 있다. 
 
2004년 부터 현재까지 쵸리(chory)라는 필명으로 와인 블로그를 운영하며 개인 시음기와 와인 정보 및 분석적이 포스팅을 공유하며 생활 속의 와인 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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