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옹의 11월 날씨는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서는 듯하다. 간간히 알프스에서 바람도 불어오고, 휘몰아치는 비바람이 가을 단풍잎들을 매몰차게 날려버리는 이때 왜 프랑스에 가라는 것인가?

 

와인 애호가 뿐만 아니라 현지 문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11월 셋째주 목요일에 그 해 보졸레 누보을 축하하는 샤르만텔Sarmentelles 축제가 5일간 펼쳐지고 둘째, 일요일에 있을 ‘호스피스 드 본 Hospices de Beaune 와인 경매’에 앞서 금요일부터 본Beaune 시내는 장터가 열려 활기를 띠고 구경거리와 먹거리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보졸레와 본은 차로 1시간 거리이므로 일석이조로 즐길 수 있다.

 

이 두 행사의 공통점은 올해 수확하고 알코올 발효를 마친 Primeur, 곧 햇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보졸레 누보는 상품화가 되어 11월 셋째주 목요일부터 만나볼 수 있지만, 호스피스 드 본 와인들은 낙찰 전 매물 샘플을 시음하는 수준이어서 상품으로 만나보려면 적어도 1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보졸레 누보는 원래 일찍 마시려고 과일 풍미를 살리고 떪은 타닌을 줄여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와인이며 소비자 가격은 10-15유로인 반면, 호스피스 드 본 와인들은 보관용 와인으로 병당 공급자 가격이 최하 30유로에서 최고 2000유로에 달한다. 즉 이 둘은 태생부터 확연히 다르다.

 

이 글은 보졸레 누보 행사만 소개하고 있으며, 호스피스 드 본 와인 경매는 다음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잠 못 이루고 맞이하는 11월 셋째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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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Radio Scoop 웹싸이트>

 

 

매년 그러하듯 리옹 시청 앞에서 진행된 보졸레 누보 행사는 화려한 공중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달군 가운데, 관악 밴드의 요란한 연주와 차세대 와인생산자들의 오크통 행진이 뒤를 잇는다. 자정이 되면 와인생산자들은 쏜Saone강에서 시청까지 굴려서 운반한 이 오크통의 아래쪽을 망치로 두들겨 수도꼭지를 장착하고, 화려한 조명을 받은 빨간 빛의 2017년 보졸레 누보가 관중들의 환호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이 뿜어져 나온다. 모두 다 함께 «쌍테!»(Santé !, 건강을 위하여!)를 외치며 보졸레 누보를 마시는 장면은,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우리네 해돋이 장면을 연상시킨다.

 

특히 이번 2017년 보졸레 누보 포스터는 팝가수 마돈나가 입어 화제가 되었던 테디베어 코트의 페션디자이너인 쟝 샬 드 카스텔바작 Jean Charles de Castelbajac이 제작했는데, 심플하고 모던한 그의 스타일이 보졸레 누보 이미지와 조화를 이루며 잘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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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보졸레 누보 포스터, 출처_보졸레 누보 웹싸이트>

 

 

 

보졸레 누보 샤르만텔 축제 

 

올해로 29회를 맞는 ‘사르만텔 축제’는 보졸레 누보 행사 중 하나이며 수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5일간 보졸레의 옛 수도인 보쥬와 타라에서 다채로운 행사와 함께 진행되었다. 대부분 야외에서 진행되는 무료 행사부터 유료 행사(10유로-150유로)까지 선택의 폭이 다양하며, 프레스티지 디너는 수위 낮은 물랑루즈 쇼와 비슷하다.  (http://www.sarmentelles.com). 연극과 음악 공연 등 실내 문화 행사 뿐만 아니라 Citroen 2CV 구형 모델을 타고 포도밭을 누비는 흥미로운 프로그램도 있다. 5일 동안 주로 먹고 마시는 행사 와중에 약 1만6천명이 참가한 변장 마라톤은 이색적이며, 와인 홍보를 넘어선 ‘하나되는 공동체’라는 뜻깊은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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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트로엔 2CV, 출처_sarmentelles.com>
    


필자는 지역 신문 Le progres가 주최하는 행사 전야제에 참석했다. 화려한 건축물을 자랑하는 론 지역 도청에서 천여명 가량이 초청된 가운데, 도청장과 신문사장에 의한 ‘미장 퍼스’를 시작으로 참석자들은 « 보졸레 누보가 왔습니다!»라고 외치며 시음을 시작했다. 2017년은 두 차례의 우박 때문에 수확량이 전년보다 감소했으나, 그로 인해 과실의 풍미는 더욱 농축되었다고 한다. 샤토 드 플러리Château de Fleurie의 필립 바데Philippe Bardet씨가 만든 보졸레 누보 와인을 맛볼 수 있었는데, 보졸레 고유의 붉은 색 과일 향에 균형 잡힌 풍미와 산도의 조합을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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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론 지역 도청장, 필자, 그리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도플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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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드 플러리의 필립 바데씨와 그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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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보졸레 누보 에티켓이 붙은 와인>

 

 

보졸레 누보는, 보졸레 지역에서 한정되어 마셔오던 햇와인이 리옹과 파리를 시작으로 프랑스 내에서 시장을 조금씩 확보해가던 중 1951년에 정식으로 정부로부터 공식 허가를 받았다. 그 당시 와인 출시 날짜를11월 15일로 정했으나, 1985년에 이를 11월 셋째주 목요일로 변경하여 주말까지 행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보졸레 누보는 조르쥐 뒤뵈프George Duboeuf가 이끌어낸 미국, 일본 등지로의 성공적인 진출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이르러 호주 와인 산업에서 발생했던 것과 같은 실수를 하게 되는데, 많은 와인 생산자들이 ‘만들면 팔린다’는 보졸레 누보의 대열에 합세하며 과잉 공급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이후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가격은 점차 하락하고 판매 마진도 낮아졌다. 이는 생산자들이 원가를 낮추기 위해 품질을 등한시하는 상황으로 이어졌고, 품질이 낮은 보졸레 누보 와인을 경험한 소비자들은 더이상 그들의 마케팅 수법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듯이 냉랭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보졸레 누보의 유명세가 오히려 보졸레에서 생산되는 모든 와인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다행히도 이러한 상황을 직시한 보졸레 와인 생산자들과 관련 협회들이 자체적으로 생산량 규제와 품질 관리 방안을 내놓으며 실행하기를 늦추지 않고, 지난 실수를 곱씹으며 품질과 이미지 향상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2017년에 출시된 3천만병의 보졸레 누보 중 절반은 해외시장으로 수출되었다. 이는 우수한 품질의 보졸레 누보는 이를 신뢰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소비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한국 시장에도, 와인의 가격이 아니라 양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량제 과세 제도가 도입되어 소비자들이 품질 좋은 보졸레 누보를 제값 주고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로, 필자의 <한식과 보졸레 10 크뤼 와인의 이색적인 만남> 글에서 다룬 보졸레 와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전체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의 다음 글에서는, 42만 유로에 낙찰된 ‘쿠베 프레지덩’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한 호스피스 드 본 와인 경매를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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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_ 원정화 (WineOK 프랑스 현지 특파원)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 후 1999년 삼성생명 런던 투자법인에 입사하여 11년 근무했다. 2009년 런던 본원에서 WSET advanced certificate 취득, 현재 Diploma 과정을 밟고 있다.  2010년 프랑스 리옹으로 건너와 인터폴 금융부서에서 6년 근무하던 중 미뤄왔던 꿈을 찾아 휴직을 결정한다.
 
10개 크루 보졸레에 열정을 담아 페이스북 페이지 <리옹와인>의 '리옹댁'으로 활동 중이며 WineOK 프랑스 리옹 특파원으로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으며 "와인을 통해 문화와 가치를 소통한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  리옹댁 원정화의 페이스북 페이지 <리옹 와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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