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므롤 지역 와인들>
보르도를 반으로 가르는 지롱드 강의 오른편에 자리잡은 포므롤Pomerol은 보르도의 주요 와인 산지 중 면적이 가장 작다. 이곳에서 150여 명의 와인생산자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강 건너편 메독의 그것보다 훨씬 적은 양의 와인을 생산한다. 이들이 만드는 얼마 안되는 양의 와인은 과즙이 풍부하고 남성적인 스타일로 전세계 와인애호가들을 열광시키며 높은 가격에 팔린다. Chateau Petrus 같은 와인은 포므롤을 대표하는 최정상급 와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메독과는 달리, 포므롤에서는 메를로가 블렌딩에서 척추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메를로는 짙은 빛깔을 띠면서 잘 익은 검은 과일의 향을 발산하는 와인을 만든다. 양조 기법에 따라 훈연향, 삼나무, 바닐라의 향이 한층 더 가미된다. 파워풀하면서도 부드럽고 원숙한 이들 와인은 우아함과 섬세함까지 겸비했다. 숙성 초기에도 마실 수 있지만 병입한 지 5년에서 10년 후에 최고의 맛을 내니,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다.
마침 여러분의 셀러에 2011 빈티지의 포므롤 와인이 있다면 지금부터 슬슬 마개를 열어도 좋다. 작년까지만 해도 수줍음을 타며 자신을 감추던 이 와인이 일년이 지난 지금 뚜렷하고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2011년은 폭염이 내리쬔 봄, 서늘하고 습기찬 여름, 가을에 이르러서야 나아진 날씨 등으로 요약되는, 와인생산자들에게 있어서 매우 힘들었던 해이다. 날씨 때문에 상하거나 덜 익은 포도송이들을 여러 차례 솎아내야 했고, 이로 인해 수확량도 줄었다. 다행히도, 진흙과 석회암 토양에서 자란 메를로를 중심으로 블렌딩한 와인, 카베르네 프랑의 블렌딩 비율이 높은 와인은 이러한 악천후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2011 빈티지의 경우, 보르도 와인 중에서도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을 블렌딩하는 포므롤의 와인이 역량을 발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포므롤에 자리한 샤토 라 파타쉬Chateau La Patache는 홍콩의 거부 Peter Kwok이 소유한 다섯 개 포도원 중 하나다. 다섯 개 포도원은 모두 보르도의 우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메를로 품종에 대한 그의 애착 때문이다. 또한 이들 포도원 모두 보르도의 저명한 와인 컨설턴트 미셸 롤랑의 손을 거친다는 점에서, 그 품질은 100%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2011 빈티지 샤토 라 파타쉬(위 사진)를 유통하고 있는 수입사 와이넬의 김세훈 이사는, 샤토 라 파타쉬 와인을 수입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메독의 와인들은 국내에 이미 많이 들어와 있어요. 게다가 이들 와인 중에는 고평가 된 것들도 더러 있구요. 그래서 포므롤로 눈을 돌리게 된 거에요. 포므롤의 와인 중에서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가격도 매력적인 와인을 찾던 중에 샤토 라 파타쉬를 발견했습니다.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을 블렌딩하는 포므롤의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의 비중이 높은 메독 와인보다 우리들 입맛에도 더 잘 맞아요.“
<2011 빈티지 샤토 라 파타쉬는 디캔팅해서 마시는 것이 좋다. 또는 마시기 1-2시간 전에 마개를 열고 와인 한 잔 분량을 따라낸 후 나머지 와인을 병째 공기와 접촉시켜도 된다.>
연말연시 와인 모임을 앞두고 있다면, 그동안 셀러에 눕혀 놓았던 2011 빈티지의 포므롤 와인을 열어 지인들과 나누는 건 어떨까. 기후가 좋은 해에는 누구나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해에는 생산자의 노고와 실력에 따라 와인의 품질이 극명히 나뉜다. 악천후 속에서도 생산자들이 기지를 발휘하여 어려움을 극복하고 만든 와인인만큼, 몇 년이 지난 지금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2011 빈티지의 포므롤 와인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그 어떤 와인보다 깊은 의미를 지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