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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 중견 와인 수입사의 파산 소식을 접한 후 생긴 궁금증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다.  2000년에 설립되어 18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꾸준히 성장하여 2015년 기준 임직원 155명에 연 매출 200억 이상을 올리던 업계 6위의 중견기업이 무리한 시설투자로 회사사정이 나빠져 몰락했다는 기사는 놀랍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이 글을 쓰던 중 업계 1위 업체의 합병 소식도 들렸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려 국내 와인산업 역시 어려웠던 시기를 제외하면, 2000년대 들어 일기 시작한 와인 붐으로 한국의 와인 수입 시장은 연평균 16%의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개별기업에 대한 공개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와인 수입산업과 수입사들의 이전 10년을 살펴보면 향후 10년의 방향이 엿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I.    분석자료 

분석을 위해 사용한 자료는 전자공시시스템 (Dart, https://dart.fss.or.kr) 에서 조회한 9개 와인수입회사의 감사보고서와 통계청 수입통계자료이며 시장관련 자료와 26개 와인 수입사의 인터넷 정보를 참조하였다.

 

II.    한국 와인 수입 시장 개요

우리나라 와인 시장은 대략 5천억~6천억 원 규모이며, 400여 개의 수입사 중 상위 10개 회사가 전체 시장의 70%~93%를 점유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GAIN 리포트 자료에 따르면 2000년에는 수입사의 수가 약 150개, 2004년~20011년에는 약 300개, 2012년 이후에는 약 500개이며 이 중 10% 정도가 정기적으로 와인을 수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상위 5개 수입사가 70~80%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조사 대상인 35개 수입사 중 규모가 100명 이상인 곳은 5 개, 20~100명인 곳은 6 개, 10~20명 사이는 8개, 5명~10명 사이는 8개이며 나머지는 5명 미만이다. 이외에 조사되지 않은 수입사의 경우도 소규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III.    수입 와인 시장의 주요 특징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이후 현재까지 수입 와인 시장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침체되었던 수요가 2007년 수준으로 회복되었지만 1) 상위기업에 의한 시장 집중이 고착되고 있고 2) 불안정한 재무구조와 3)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으며 4) 대기업 그룹의 전략적 시장진출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중소규모 수입사는 니치 마켓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추세다.

 

 

1. 상위 수입사로의 시장 집중 고착

상위 6개 기업(금양, 신세계L&B, 아영, 나라셀라, 길진, 신동)의 시장점유율은 60% 수준으로, 2008년 이후 시장이 회복되는 과정에서도 소폭 증가하고 있다(점유율은 시장 전체 수입 금액을 6개 기업의 당해 년도 판매원가로 나누어 간접 추정). 롯데주류, 하이트진로, 인터와인, 레뱅드매일 등 연 매출 100억원이 넘는 4개 기업을 포함한 상위 10개 기업으로 확장할 경우 시장 점유율은 85%에 달하며, 패턴은 6개 기업의 경우와 동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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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장 구조는 시장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소규모 수입사가 상품 및 시장개발로 매출규모를 확대하여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져 시장의 역동성은 떨어질 수 있다.

 

 

2. 악화되는 수익성

미진한 생산성 향상 _ 1999년에 1천4백만 달러였던 수입 금액이 18년 동안 연평균 16%씩 성장하며 현재 13배가 넘는 1억8천6백만 달러로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매출액을 직원수로 나눈 일인당 매출액은 1999년 2.5억원 수준에서 오히려 2억원 이하로 하락했다가 2016년 현재 17년 전과 동일한 2.5억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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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관리비용의 지속적인 증가 _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판매관리비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판매관리비용은 2000년대 초반 25% 수준에서 2016년에는 40% 초반까지 상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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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락한 영업이익률 _ 2000년 하반기에 10%로 상승했던 영업이익률은 2008년 이후 하락 추세로 돌아서 2016년에는 3%로 하락하였다. 2008년 대비 시장 규모는 회복되었지만 영업이익률은 회복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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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불안정한 재무구조

낮아진 자기자본 비율 _ 2007년 30%였던 자기자본 비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20%대로 떨어진 후 계속 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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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높은 단기차입금 의존율 _ 총 부채 중 단기차입금의 비율은 2008년에 59% 수준까지 증가했다가 2016년에는 2007년 수준까지 회복된 상태이다. 하지만 부채비율이 80%에 달하는 상태에서 단기차입금 비율이 46% 수준이면 총 자산 중 단기차입금 비중이 약 40%라는 말과 같다. 즉 경기와 금리변동에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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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락하는 매출채권 회전율 _ 기업의 활동성 지표인 매출채권 회전율은 얼마나 빨리 매출채권을 회수하는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2007년 10.4 에서 2016년에는 4.3으로 하락했는데, 평균 한 달이면 회수되던 매출채권이 세 달이나 소요될 정도로 회전율이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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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되는 재고자산 회전율 _ 와인수입 사업은 일종의 유통사업이다. 따라서 얼마나 빨리 수입된 와인을 판매하여 회전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와인을 재고자산으로 가지고 있으면 보관비용과 자본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2007년에 4.0이던 재고자산 회전율은 2016년에 4.7로 약간 개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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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기업 그룹의 와인 시장 진출

2008년 이전에도 대기업의 와인시장 진출은 있었다. 다만 이들은 동아원(나라셀라), 동아쏘시오그룹(수석무역), 일신방직(신동와인), 매일유업(레뱅드매일) 등 중견 그룹이고 와인 수입 사업은 그룹의 주력 사업과는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8년 이후 시장에 새롭게 진출한 대기업은 신세계(신세계L&B), 롯데(롯데주류), 하이트진로(하이트진로), SPC그룹(타이거인터내셔날) 그리고 LG그룹(트윈와인, 2012년 철수)이다. 이들 기업의 시장진출은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기반으로 한 전략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전에도 이런 사업전략 차원에서 진출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2008년 이후는 진출 그룹의 규모나 빈도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신세계와 롯데그룹은 마트와 백화점 등 소매유통 채널과의 시너지 효과를, SPC그룹은 프렌차이즈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하이트진로 그룹은 맥주와 소주 등 기존 주류 상품과의 포트폴리오 시너지 효과를 목적으로 진출한 사례다.

 

이런 현상은 대기업 자본이 와인산업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유통망 확대와 같은 전방산업에 대한 투자뿐만 아니라, 와인 생산자에 대한 투자나 직접생산과 같은 후방산업 진출 역시 대규모 자본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대기업의 와인산업 진출로 인해 와인 전문기업이나 소규모 와인 수입사가 설 자리가 줄어든다는 우려가 있다. 자본력,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대기업은 중소규모 수입사에 비해 사업 경쟁력이 우월할 수 밖에 없고, 이 때문에 중소규모 와인 수입사는 세분화된 니치 마켓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IV.    와인 시장을 위한 제언

국내 와인 시장은 단기 성숙 단계에 들어섰지만 경제 규모, 저도주 선호 추세, 일인당 알코올 소비량과 와인 소비량 등을 감안했을 때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성은 크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 성장 잠재력이 현실화되려면, 산업환경의 측면에서 와인 수입사들의 재무구조와 수익성 개선을 통한 지속가능경영이 이루어져야 하고, 새로 시장에 진입한 대기업 그룹과 중소 수입회사 간의 공존과 공정한 경쟁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1.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개별 수입사의 역할

26개 수입사의 인력 규모와 연 매출액 분포를 살펴보면 일인당 평균 매출액은 대략 2.9억 원 수준이다. 국내 와인 시장이 성장하는 동안 전체 산업의 생산성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개별 기업의 규모는 성장했지만 생산성이 전체 평균보다 떨어진다는 점은 기업의 성장동력을 하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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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 기업의 매출액과 온/오프 시장(On/Off Premise) 매출 비중의 관계를 살펴보면, 매출액이 증가할 수록 On-Premise 시장의 비중은 줄고 Off-Premise 시장의 비중이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매출이 50억원 이하인 수입사가 그 이상으로 성장하려면 Off-Premise 시장 진출이 필수지만, 100억원 이상의 규모로 성장하더라도 On과 Off 시장의 포트폴리오 관리가 필요하다. On 채널에만 국한되면 성장에 제약이 따르고, Off 채널 의존도가 높으면 유통환경 변화에 매우 취약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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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정경쟁과 공존을 위한 대기업의 역할

기업은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조직과 기능의 일부를 아웃소싱하거나 내부화한다. 마트, 백화점, 호텔 등을 보유한 대기업 그룹이 와인 수입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내부화 전략의 하나로 2008년도 한국 와인 시장에서 나타난 뚜렷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런 내부화는 ‘기존 수입사와의 공정한 경쟁’이라는 규칙이 지켜질 때에만 설득력이 있다. 대기업 계열사라고 해서 거래 대상 선정 방식을 100% 수의계약으로 하고, 현금으로 대금을 지급하는 조건은 기존 수입사가 해당 유통채널에 접근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제약하는 것이다.

 

한국 와인 시장은 수입사라는 포도나무로 채워진 일종의 포도밭이다. 건강하고 다양한 포도나무가 식재되고 올바르게 재배되어야 좋은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한국의 수입 와인 산업은 또 다른 성장을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 계열 수입사와 중견 및 중소기업 수입사 간에 공정경쟁의 토대가 마련되고, 개별 수입회사들의 생산성 향상과 재무 및 수익성 구조 개선을 통해 지속적인 시장성장이 이루어지며, 이와 함께 소비자가 다양한 와인을 더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 참고자료

 

"롯데주류ㆍ하이트진로, 와인사업 확대한다" (헤럴드경제, 2017-04-04)

"신세계 와인값 거품 빼기, 성공할까?" (머니투데이,  2009.05.06)

와인나라의 경쟁전략1 (한국전략경영학회)

Korea, Republic of WineMarket Brief 2000 (2000 6 13) ~2016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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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_ 이상철
 
 
경영학과 마케팅을 전공하고 통신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보르도 와인을 통해 와인의 매력을 느껴 와인을 공부하며 와인 애호가가 되었다. 
 
중앙대 와인소믈리에 과정을 수료하고 WSET Advance Certificate LV 3 를 취득하였으며 와인 애호가로서 국내 소믈리에 대회에 출전하여 수상한 경력이 있다. 
 
2004년 부터 현재까지 쵸리(chory)라는 필명으로 와인 블로그를 운영하며 개인 시음기와 와인 정보 및 분석적이 포스팅을 공유하며 생활 속의 와인 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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