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붐이 한참 일었던 2007년 한 인터넷 사이트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3%가 “이름과 맛을 정확히 아는 와인이 2종류 미만”이라고 답할 정도로 와인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와인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43%가 “분위기가 좋아서”, 14%가 “사교를 목적으로” 와인을 마신다고 답했다.
5년이 지난 2012년의 조사결과에서도 응답자의 53%가 “분위기가 좋아서” 와인을 마신다고 할 정도로 한국의 많은 와인 소비자들은 와인 자체의 맛이나 풍미보다는 와인을 마시는 상황과 사회적 관계 형성의 매개체로 와인을 즐긴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떨까? 미국의 경우 와인 소비자의 57%는 스스로를 기초적인 와인 지식을 갖춘 Intermediate 수준으로 간주한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와인 지식을 갖춘 Advanced 또는 와인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을 갖고 있는 Expert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17% 정도다.
그리고 이들은 와인을 마시는 주된 이유로 와인의 맛, 긴장 완화, 음식과의 궁합 등 와인의 본질적인 기능을 꼽는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의 와인 소비자들이 와인을 마시는 목적은 서로 다르다. 그리고 이는 현재 두 나라의 와인 시장과 와인 문화의 차이를 설명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다.
소비자가 와인을 마시는 목적은 다른 사회인구학적 요소들과 함께 마케팅 측면에서 시장을 세분화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여러 가지 와인 시장 세분화 사례 중 호주의 와인 학계와 산업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을 소개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와인 시장에서 소비자는 크게 5개 부분(Segment)으로 세분화된다. 먼저 와인 지식이 풍부하고 입맛이 섬세하며 와인 정보를 탐색하는 “Connoisseur”, 와인을 자신의 이미지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도구로 생각하는 “Aspirational”, 와인을 경험의 대상이 아니라 음료로 접근하는 “Beverage”를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와인을 주기적으로 마시며 와인을 구매할 때 관여도가 높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반면, 와인을 가끔 소비하고 관여도가 낮은 소비자는 “Rare”나 “Social”로 분류된다. Social은 특정한 사회적 상황, 예를 들면 회사 파티 모임 등에서 제한적으로 와인을 마시고 Rare는 와인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이들 각각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미국의 한 연구자료에서 유사한 모델로 시장을 세분화하고 규모를 추정했는데, 2003년도 기준으로 Connoisseurs는 전체 인구의 0.6%인 120만 명, Aspirational 에 해당하는 Aspirants는 5.2%인 1,060만 명, Beverage에 해당하는 Simple wine-drinkers는 1.7%인 350 만 명, 그리고 Rare와 Social에 해당하는 Marginal Drinkers가 46%로 9,360 만 명 정도다.
미국 와인 소비자 세분화가 호주의 그것과 다른 점은 “Newcomers”를 별도로 구분한 것이다. 약 4%에 해당하는 8백만 명의 와인 소비자가, 와인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여 와인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Marginal Wine Drinkers에서 Newcomers로 이동했다. 이들은 학습, 와인 구매 태도 변화에 따라 Aspirants 혹은 Connoisseur가 될 가능성이 있는 소비층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 와인 시장이 급성장한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종류의 술을 마시던 소비자 중 젊은 층이 Newcomers가 되어 와인 시장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즈음 인터넷에 기반하여 형성된 와인 관련 까페, 블로그, 와인동호회, 와인 수입사 및 유통기관이 주관하는 시음회, 그리고 와인강좌 및 와인교육기관 등은 Newcomers가 Aspirants와 Connoisseurs로 진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현재 와인의 종류는 예전보다 더 다양해졌지만 와인 수입량은 2008년 수준으로 회복되는 것에 머물러 있다. 단기 성숙 단계에 진입한 한국 와인 시장의 이러한 현황은, Aspirants와 Connoisseurs에 해당하는 소비자층이 이전보다 두터워지긴 했지만 Marginal Drinkers에서 Newcomers로 새롭게 와인 시장에 진입한 소비자층은 줄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필자가 방문한 <2017년 대전 국제 와인페어>는 여러 가지 면에서 2000년대 Wine Expo와 같은 와인 관련 행사에서 제공하지 못했던 서비스를 제공하여 Newcomers층을 형성하고 Aspirants와 Connoisseurs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 줌으로써 한국 와인 시장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안와인트로피’에 출품된 와인을 자유롭게 시음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참가한 와인 수입사들로부터 소비자가 현장에서 와인을 직접 구매하며 와인과 함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점은 와인 소비자들의 관심과 방문을 유도하기에 충분했고, 와인 교육을 경험할 수 있는 부스와 와인 관련 악세서리 업체의 참여 등은 행사에 색다른 느낌을 더했다. 또한 조만간 시장에 출시될 새로운 브랜드 라인업인 1865 Special Cuvee를 미리 홍보하기 위해 수입사가 아닌 생산자가 참가한 점도 필자의 이목을 끌었다.
앞으로도 와인 소비자, 공급자, 와인 산업 관계자들이 모두 득을 볼 수 있는 행사가 많아지길 바란다.
Free Wine Tasting Zone 에서 자유롭게 시음하는 다양한 와인 소비자들
와인 판매가 가능하여 Wine Expo가 아닌 Wine Fair 로서 기능에 충실한 행사
음식 구매가 가능한 점은 소비자들이 행사장소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와인교육 서비스 체험학습과 다양한 와인 관련 악세서리
신규 브랜드의 Pre-Marketing (또는 Market Test) 중인 San Pedro의 1865
참고자료
- 와인은 분위기로 마신다?
- 수입와인 가격…FTA효과 대부분 못 느껴
- https://www.lakecountywinegrape.org/wp-content/uploads/2017/03/momentum-presentation-liz-thach-march-2017.pdf
- 2016 Preferences of the American Wine Consumer
- Wine & society_the social and cultural context of a drink
- ANALYZING THE US RETAIL WINE MARKET USING PRICE AND CONSUMER SEGMENTATION MODELS
■ 글쓴이_ 이상철
경영학과 마케팅을 전공하고 통신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보르도 와인을 통해 와인의 매력을 느껴 와인을 공부하며 와인 애호가가 되었다.
중앙대 와인소믈리에 과정을 수료하고 WSET Advance Certificate LV 3 를 취득하였으며 와인 애호가로서 국내 소믈리에 대회에 출전하여 수상한 경력이 있다.
2004년 부터 현재까지 쵸리(chory)라는 필명으로 와인 블로그를 운영하며 개인 시음기와 와인 정보 및 분석적이 포스팅을 공유하며 생활 속의 와인 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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