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칼럼 “보르도는 까베르네 소비뇽의 천국일까?”에서 필자는 보르도가 천혜의 조건을 갖춘 까베르네 소비뇽의 생산지가 아니며, 이는 기후의 편차가 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기후의 편차는 와인 생산에 있어 위험 요소이다. 새순이 나는 3월, 서리가 내리거나 온도가 낮아질 경우를 대비하여 spur pruning 대신 cane pruning 방식으로 가지치기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후 변화에 따른 위험 요소는 수확기까지 꾸준히 존재하는데, 이에 따른 와인의 잠재적 결함을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블렌딩blending이라는 양조 과정이다.

 

블렌딩은 한 가지 품종만으로는 와인의 특징을 잘 표현하기 힘들 때, 또는 매년 달라지는 기후에 대처하여 와인의 품질과 특성을 균일하게 유지하고자 할 때 시행된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생산 측면에서는 후자의 효과가, 마케팅 측면에서는 전자의 효과가 강조된다.

 

 

보르도와인.jpg

 

 

보르도에서는 품종 블렌딩이 대표적이지만, 샹파뉴에서는 품종 블랜딩 뿐만 아니라 빈티지 블랜딩(Vintage Blending)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도 한다. 올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포도즙에 기존에 생산해서 보관 중이던 포도즙을 혼합하여 양조함으로써 빈티지에 따른 편차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샴페인의 레이블에는 ‘빈티지가 없음’을 의미하는 NV(Non Vintage)가 표기된다. 반대로, 한 해의 기후가 매우 좋아서 그 해에 수확한 포도로만 만든 샴페인에는 빈티지가 표기된다.

 

샹파뉴의 사례처럼 블렌딩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다. 단일 품종이더라도 여러 포도밭의 포도를 혼합해서 양조하는 경우가 있고, 초기의 샤토네프 뒤 파프(Châteauneuf-du-Pape)처럼 특정 포도밭에 여러 품종을 한데 섞어 재배하는 방법도 있으며, 별도로 발효한 뒤 숙성 또는 병입할 때 혼합하는 방법 등이 있다. 그리고 블렌딩 시점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와인 생산자들은 그들의 목적에 맞는 블렌딩 방식을 적용한다.

 

보르도 내에서도 메독은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까베르네 프랑, 쁘디 베르도 품종을 블렌딩하는데, 이러한 블렌딩 방식이 이곳의 기후 편차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살펴보자.

 

포도 품종마다 성장에 적합한 온도가 다른데, 만생종인 까베르네 소비뇽은 온화한 기후에서 천천히 자라고 조생종인 까베르네 프랑과 메를로는 보다 낮은 온도에서 빨리 자란다. 
 

 

포도품종 재배온도.jpg

 


메독보다 온도가 낮은 루아르나 생테밀리옹에서 까베르네 프랑과 메를로가 주로 재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르고뉴와 샹파뉴에서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가, 상세르에서 소비뇽 블랑이 이름을 떨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다시 보르도의 사례로 돌아가, 온도와 일조량이 평년보다 낮은 해에는 까베르네 소비뇽이 잘 익지 못하고 까베르네 프랑과 메를로가 상대적으로 잘 익는다. 따라서 와인 생산자들은 까베르네 소비뇽의 비율을 줄이고 메를로와 까베르네 프랑의 비율을 올려서 블렌딩한다. 반대로 2000, 2003, 2005년처럼 온도와 일조량이 높은 해에는 까베르네 소비뇽의 비율을 높여 와인의 풍미와 품질을 조율한다.

 

이 때, 보르도 블렌딩에서 극소량만 사용되는 쁘띠 베르도 품종은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까베르네 프랑.jpg

출처: https://vinepair.com/wine-blog/wine-grape-family-vine-infographic/

 

 

DNA 분석 결과, 까베르네 소비뇽은 까베르네 프랑과 소비뇽 블랑의 교배종이며, 메를로는 까베르네 프랑의 자연 변이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까베르네 소비뇽, 까베르네 프랑, 메를로의 세 가지 품종은 각기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 그룹에 속하기 때문에 블렌딩해도 자연스러운 결과를 낳는다. 반면, 이 그룹에 속하지 않는 쁘띠 베르도의 블렌딩 비율이 높을 경우 그 특징이 도드라질 수 있어 소량으로만 사용된다.

 

다음과 같이, 페삭 레오냥의 샤토 오브리옹을 제외한 메독의 60개 그랑크뤼 샤토의 품종 블렌딩 비율(정확히 말하면, 품종 재배 비율)을 세부 지역별로 평균을 내보았다. 


 

보르도 블랜딩 표.jpg

출처: http://blog.naver.com/scotthana/50002817577

 

 

오 메독, 생테스테프, 포이약, 생 줄리앙, 마고 중 까베르네 소비뇽의 재배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포이약이며, 가장 낮은 곳은 오 메독이다. 이처럼, 서로 인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도밭의 미세기후에 따라 품종 재배 비율이 다르고 해마다 블렌딩 비율이 달라지는 것이 보르도, 특히 메독 와인의 특징이다.

 

요약하면, 보르도 블렌딩은 기후 편차라는 위험 요소에 대응하려는 와인 생산자의 노력의 결과물이고, 와인 생산에 불리한 조건을 보르도 와인만의 특징으로 발전시킨 결과물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왜냐하면 그 단점 자체도 그 사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보르도 블렌딩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보르도 와인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상철.jpg

 

■ 글쓴이_ 이상철
 
 
경영학과 마케팅을 전공하고 통신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보르도 와인을 통해 와인의 매력을 느껴 와인을 공부하며 와인 애호가가 되었다. 
 
중앙대 와인소믈리에 과정을 수료하고 WSET Advance Certificate LV 3 를 취득하였으며 와인 애호가로서 국내 소믈리에 대회에 출전하여 수상한 경력이 있다. 
 
2004년 부터 현재까지 쵸리(chory)라는 필명으로 와인 블로그를 운영하며 개인 시음기와 와인 정보 및 분석적이 포스팅을 공유하며 생활 속의 와인 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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