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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종 (yoo@wineok.com)
온라인 와인 미디어 WineOK.com 대표, 와인 전문 출판사 WineBooks 발행인, WineBookCafe 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국내 유명 매거진의 와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견디기 힘든 폭염과 장마철 습기에, 우리의 육신과 영혼은 그야말로 “먹다 버린 말라 비틀어진 옥수수 만큼이나” 하찮고 후줄근하다. 오늘은 사람을 집어 삼킬 것 같이 이글거리는 콘크리트 빌딩 숲 아스팔트 지옥길의 열화를 온몸으로 버텨내며 살아온 각자의 하루이거나 어느 여름날이다. 높은 체온 때문에 몸의 생기는 커녕 에너지 방전을 알리는 경고등이 켜진 지 이미 오래다. 빠져나간 땀은 약간의 탈수증세를 동반하며 갈증과 짜증을 유발시키고 혈압까지 오르니, 그야말로 온 삭신이 그로기 상태다.


이럴 때, 집 나간 정신에 얼음물을 끼얹듯 또는 머리 속을 카프카의 ‘도끼’로 찍어 내리듯 온몸에 짜릿함의 벼락을 내릴 만한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우리 영혼을 단박에 구원해 줄 아주 특별한 어떤 것 말이다. 내가 아는 한 그것은 시원하게 칠링된 샴페인 한 병, 그것 밖에 없다. 그것이 즉각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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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좀더 완벽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신경 써야할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샴페인은 온도가 10-12도 사이일 때 가장 맛있는데, 여름철 실온에서는 잔에 담긴 샴페인의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므로 세심한 온도조절이 절대적이다. 한 가지 방법은 얼음과 물을 채우고 샴페인을 담가 놓은 아이스버킷의 온도를, 적정 온도보다 2-3도 낮은 8-10도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샴페인을 잔에 조금씩 따라 마시면 시원한 온도로 오래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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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이 밤 하늘은 푸르고 밤 공기가 습도를 약간 머금은 날에는 드라이하고 산도가 날카로운 샴페인(Brut)보다는 잔당이 살짝 느껴지는 샴페인(Sec)이 나을 것 같다. 그래서 생각나는 샴페인이 있으니, 바로 샴페인 명가 떼땅져Taittinger의 녹턴Noctune 이다. 18g/L의 감미로운 잔당은 지친 심신을 위로하기에 충분하고 말린 살구, 청사과, 구운 아몬드, 갓 구운 빵의 풍미와 함께 농밀하고 부드러운 버블은 안주 필요없이 샴페인 자체로 빛을 발하게 만든다. 


이 샴페인에는 그저, 쇼팽의 피아노곡 <녹턴> 중 ‘Nocturne No. 2 in E-flat, Op. 9 No. 2’와 ‘Nocturne No. 1 in B-flat Minot, Op. 9 No. 1’이면 족하겠다. 이왕이면 ‘샹송 프랑소와’나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숨막히는 듯한 긴장감과 구조적 완결성이 돋보이는 연주면 좋겠다. 흔히 샴페인을 두고 “잔 속의 별을 마신다”고 한다. 한여름 시원한 떼땅져 녹턴 샴페인 한 잔과 쇼팽의 멋진 음악으로 나의 영혼이 녹턴의 우주로 변해가고 있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얼음이 가득 찬 아이스버킷 속에서 시원하게 칠링 중인 샴페인 한 잔, 끊임없이 솟는 청량한 버블에 파묻혀보자. 기분 좋은 산도가 지친 몸을 일깨운다. 구수한 효모 향과 흰 꽃 향, 기분 좋은 꿀 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시원하고 짜릿하게 목구멍을 핥고 내려가는 그 아찔하고 알싸한 투명함이라니… 이런 샴페인을 과연 누구라서 마다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 더 이상 뭐가 더 필요한가. 안주도 필요 없다. 오직 “한 잔 더!”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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