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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Stephane SON (sonwine@daum.net)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의 매력에 빠져 1999년 귀국 이후 중앙대학교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 한국 와인 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 와인연구소>를 설립,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와인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로서 그리고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옷깃만 살짝 스쳐도 몇 겁의 인연이 전생에 있었다고들 한다. 우연히 스쳐 지나가도, 만날 사람은 결국 그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일까. 필자의 열 번째 인터뷰 손님도 이런 경우다. 2013년즈음 필자가 와인나라 아카데미에 근무할 당시, CEO 코스 종강식에 참가했다가 우연히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악수도 대화도 없었지만, 와인 글라스나 와인 병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는 특이한 이력 덕분에 사람 기억 잘 못하는 내게도 두툼한 뿔테 안경을 낀 그의 모습은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유용상 전시회 (2017.07.02) 04.jpg

<유용상 작가와 그의 작품, The Chosen person (선택받은 사람)>

 

■ 프롤로그

유용상 화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대학교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지금까지 독일 게오르크 뮐러 슈티프퉁 뮤지엄 초대전과 프랑스 89갤러리 초대전 등 개인전 32회, 서울시립미술관과 가나아트센터 전시회 등 단체전 495회의 전시 경력이 있다.


그리고 <2010 대한민국 미술인상> 청년작가상, <단원미술대전 특선> 최우수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을 수차례 수상했다. 한국 예술평론가 협의회에서 시상하는 <2016년 올해의 예술가상>의 ‘주목해야할 예술가’로도 선정된 바 있으며, 최근 동대문 DDP에서 열린 <2017 제10회 아시아프> 공모전에 심사위원을 맡았다.


그의 작품은 국립 현대미술관 미술은행, 토마토 저축은행, 삼성 반도체, 포르투갈 대사관, 코스타리카 대사관, 헝가리 대사관, 독일 갤러리 윈터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후학 양성에 관심이 깊은 그는 16년째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오늘날 와인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벌이는 대표적인 한국의 극사실주의 화가이다.

 

■ 방황하던 중 눈에 들어온 와인

"언젠가 와인 잔에 담긴 와인을 바라보다가 긴장되고 불안정한 감정이 몰려온 적이 있어요. 당시 와인을 마시다 와인 잔을 자주 깨뜨렸는데, 제가 방황하고 힘들 때면 꼭 잔이 깨지더라구요. 약하고 가냘픈 와인 잔이 나약한 나 자신을 닮은 것 같았고, 심리적 불안에 떠는 현대인의 몸짓을 연상시켰어요. 그리고 와인이야 말로 현대인의 감각과 욕망을 가장 잘 반영하고 이끌어내는 음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느낀 감정을 모티브로 삼아 2006년부터 캔버스에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폭염이 내리쬐는 7월 초순, 논현동 와인북카페의 테라스에서 만난 유용상 작가는 태양의 열기만큼이나 뜨거운 호흡을 내뿜으며 '와인과의 첫 교감'에 대해 이렇게 풀어나갔다. 원래 '자연적 물'이란 주제로 그림을 그렸던 그는 2006년부터 ‘인공적 물’을 그리기 시작했고, 와인과 탄산 음료 등이 그 소재가 되었다.


그가 처음 와인을 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작업의 향방을 놓고 방황하던 시기였다. 처음부터 와인 애호가는 아니었지만, 2000년대 중반 와인을 미술로 승화시키면서 와인의 신비스런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시각 예술가답게 와인의 신비스럽고 예쁜 빛깔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와인은 성서에서의 보혈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피처럼 맑고 깨끗한 선홍빛의 피노 누아 와인이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것 같다. 

 

■ 고충과 환희

와인을 테마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는 와인의 색과 향을 어떻게 캔버스에 표현할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향은 그렇다 치고, 와인의 깊고 신비로운 색을 표현하는 것은 와인 작가로서 그리고 화가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색 중에 가장 적합한 색을 발견하는 이른바 ‘컬러 디캔팅’의 과정은 아주 즐거운 작업이었다. 그러나 비싸고 색깔 좋기로 소문난 브랜드의 물감도 와인의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색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했다. 오죽했으면 작품에 얇은 관을 설치하고 실제 와인을 흘려 넣었을까.

 

 

작품사진 Contemporary Man          227.3 X 182.0cm     Oil  on canvas       2012.jpg

<Contemporary Man(현대인) 227.3 X 182.0cm Oil on canvas 2012>

 


와인은 그에게 작품의 소재인 동시에 미식의 대상이기도 하다. 특정 와인의 색을 표현하려다 막히면 작업을 멈추고 그림을 안주삼아 그 와인을 마시는데, 이 때 마시는 와인의 맛과 즐거움은 와인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만약 그 와인이 로마네 꽁띠 라면? 하는 생각을 하니 그가 부러워진다.) 한편, 이 과정은 붓끝으로 표현하기 힘든 와인의 색을 혀끝으로, 가슴으로 음미하고 분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작품의 진정성을 위한 그의 중요한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와인에 컨템퍼러리 아트를 접목해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와인 애호가에 가까워진 것 같다고 말하는 유용상 작가. 다른 애호가들처럼 와인을 많이 알고 느끼는 데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시각적으로는 와인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와인이 오크통에서 잘 숙성이 되어야 명품와인이 되는 것처럼 작가가 작업실에서 잘 숙성되어야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긴 시간 작업실에서의 외로움과 육체적인 고통을 견뎌내고 작품 앞에서 멋지고 당찬 작가가 되는 것, 이것이 그의 목표이고 바램이다.

 

■ 유용상의 작품 세계 I : 순간과 영원을 함축하는, 와인

인터뷰를 하기 전, 전시장을 찾아가 유 작가의 그림을 보며 그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로부터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동안 '극사실주의 기법의 구상화' 라고 생각했던 필자의 선입관은 깨졌다. 정밀하고 정교하게 글라스와 와인을 묘사한 그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에는 구상을 넘어 추상의 세계로 넘어가는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한 그림도 많았다. 그 그림들은 사실적이기도 하지만, 의미와 내용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설명을 들어 보자.

 

"제 작업의 화두는 현대인의 감각과 욕망입니다. 와인은 그것을 가장 잘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현대인의 감각은 어떤 면에서 순간적이지만 또한 영원을 의미하기도 하죠. 와인 역시 순간적 감각과 영원을 함축하는 깊은 향을 담고 있어요. 와인이 지닌 짙은 보랏빛의 신비로움도 마찬가지고요. 다시 말해서, 현대인의 이중적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와인을 그립니다.

 

제 작품이 다른 극사실주의 화가의 그것과 다른 점은, 제가 그저 사진처럼 어떤 물체를 똑같이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그림을 예로 들면, 와인 잔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적인 느낌은 살아 있습니다. 카메라로 흔들리는 와인 잔을 찍으면 초점이 맞지 않아서 어떤 물체인지 정확히 알아보기가 힘들어요. 잔을 살짝만 흔들어도 핀이 맞지 않아 정확하게 찍히지 않거든요.

 

제가 그리는 와인 잔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정지된 순간과 움직임에 담긴 시간 모두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순간적이고 영원한 세계를 표현한 것이죠. 그래서 제가 그리는 것들은 단순히 사진처럼 재현한 극사실주의가 아니라, 사진이 담을 수 없는 순간과 시간 사이에 담긴 현대인의 감각입니다."

 

작품사진 아름다운 구속 - 조우  (Beautiful   Curb)       72.5X116cm             oil  on  canvas          2017 (3).jpg

< 아름다운 구속 - 꿈을 찾아서.. (Beautiful Curb) 72.5X116cm Oil on canvas 2017>

 


유용상 작가가 쉽게 깨지는 와인 잔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렸다면, 부풀려져 있는 와인의 거품과 잔에 뭍은 립스틱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욕망이나 기억의 흔적 그리고 시공간의 발자취이다. 흔들리는 그림에서는 추상적인 느낌이, 물방울과 거품에서는 극사실적인 감각이 살아나게 표현하는 기법이 유용상 작가 작품의 특징이며 표상이다. 그렇다. 그는 단순히 사진처럼 재현한 극사실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담을 수 없는 순간까지도 그려내고자 한다. 


최근 작업의 주제는 '아름다운 구속'으로, 와인 잔 안에 꽃을 그려 넣어 모순적인 인간의 현실에 대한 질문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때 와인 잔은 현실과 이상의 벽이다. 와인 잔 안에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이 들어 있다. 개나리만 유리 잔을 깨고 나와 밖으로 자라는데, 이는 현실의 벽을 뚫고 나오는 것을 상징한다. 병 안에 갇혀 있던 와인의 향이 와인 잔에서 마음껏 향을 뿜으며 자유를 만끽하는 것처럼 말이다.   

 

■ 유용상의 작품 세계 II : 흔들림을 통하여 완성으로

필자가 전시회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음미한 그림은 "Good evening - 비워가다 Go empty" 라는 작품이다(아래 사진). 그림 속 세 개의 와인 잔은 채워져 있거나 비워져 있거나 흔들리고 있다. 잔에 든 와인은, 잔을 흔드는 과정을 통해 향을 분출하고 자신을 드러내며 더 맛있어진다. 흔들림의 과정을 통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인생도 이러한 와인의 숙성 과정과 닮았다는 것이 유용상 작가의 설명이다.

 

 

유용상_good evening.jpg

< Good evening - 비워가다(Go empty) 100.0 X 72.7cm X 3 Oil on canvas 2011 >


"우리 삶에서 30~40대가 채우려고만 하는 시기라면, 40~50대는 한번쯤은 흔들리며 방황하게 됩니다. 흔들리지 않고 완성되고 비워지면 좋을텐데 말이죠. 와인이 흔들림을 통해 더 맛있어지듯이, 우리 인생도 처음에는 깨닫지 못해도 흔들림을 통해 더 풍요로와 질 수 있어요. 이 그림은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말고 즐겨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와인 잔이 채워지고 비워지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그러한데, 양쪽 모두 흔들리는 과정을 통해 그 맛이 더 진해진다. '비워 가다' 라는 작품은, 흔들리는 인생과 와인의 묘미를 이해하며 편안하게 꾸준히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와인 방울의 표현이 매우 뛰어나다. 방울이 겹치는 부분, 부풀어 올랐다가 꺼지고, 크고 작은 방울들이 엉겨 붙어 있는 현상을 정교하고 세밀하게 표현했다. 마치 와인의 세포를 그린 것처럼. 만약 필자가 유 작가의 그림을 한 점 구입한다면, 이 작품이 될 것이다. 


그런데 유용상 작가가 이 '흔들림의 한 수'를 발견하게 된 계기가 흥미롭다. 그는 오래 전 극사실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 무리하게 개인전을 준비하다가 디스크 파열로 두 세 번의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치료를 받던 병원의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마시다가 음료가 떨리는 것을 보는 순간 어떤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과 심신의 고통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던 유 작가는, 이 때 우연히 발견한 흔들림을 포착하여 작품의 큰 특징으로 만들었다. 우리 삶은 늘 위기 속에 기회가 있는 것 같다.

 

■ 와인과 예술, 희망의 메시지

필자는, 작가로서가 아닌 와인 애호가로서 가지는 와인에 대한 그의 관점이 궁금했다. 그는 와인을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국내에서 와인 작가로 알려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아 와인나라 아카데미와 BWS 와인 CEO과정을 수료했다. 시각 예술가라서 그런지, 그는 맛은 좋지 않아도 빛깔이 예쁘면 일단 좋단다. 초창기에는 오랫동안 젊고 탱탱한 보랏빛을 간직하는 보르도 풍의 레드 와인을 그리다가, 지금은 맑고 투명하고 연한 루비빛의 부르고뉴 피노 누아 와인을 즐겨 그린다. 


마지막으로, 그가 생각하는 '위대한 와인'은 무엇일까? 미술 작품도 그러한 것처럼 히스토리가 담겨있는 와인이 위대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모든 와인이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청년 때 모든 청춘과 열정을 다해 만들고 50년이 지난 후 노년이 되어서 세상에 내놓는 장인의 와인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와인이란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2012년 독일 모젤와인협회의 아놀드 슈미트 명예회장이 소유한 양조장을 방문했을 때이다.


이와 함께, 그는 가장 감동적이었던 해외 전시회로 2012년 독일 하텐하임 지역의 게오르그 뮐러 박물관 작품 소장을 기념하여 열린 <갤러리 윈터 개인 초대전>을 꼽았다. 처음에는 와인의 변방 작가가 정통 와인 산지인 유럽에서 전시를 한다는 그 자체가 커다란 두려움과 부담이었지만, 그림을 개봉하고 나서 목격한 독일 언론과 방문객들의 호응에 그는 무척 행복했다고 한다.

 

 

유용상 2012년 독일 뮤즘 소장 기념 전시 비스바덴 신문 기사.jpg

 

 

비스바덴의 2012년 11월 6일자 신문에 “유용상 작가처럼 일관성 있고 성공적으로 와인과 예술을 접목시켜 작품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는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다”고 실렸을 정도로 언론의 반응이 뜨거웠고(위 사진), 이는 그의 작품을 유럽에 성공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늘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와인을 마실 때 잔을 흔들면 와인이 공기와 만나면서 더 맛있어진다고 하죠. 우리의 인생도 흔들려야 그 참맛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이런 위안과 희망의 메시지를 읽어준다면 이보다 더 자랑스러운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국내 유일의 와인 테마 작가 유용상 화가. 그의 두툼한 쁠테 안경 너머로 흔들리는, 이내 번뜩이는 삶에 대한 관조와 사랑의 메시지가 필자의 일상을 흔들었고, 그래서 나는 또 내 와인 잔을 흔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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