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 멀리 예배당이 우뚝 서 있고 주변에 펼쳐진 포도밭 위에 노랑 보랑 자주 녹색의 크고 작은 점들이 그려진 초대장이 하나 도착했다.

 

Dégustation professionnelle à Fleurie.png

 

예쁘다고 생각헀던 이 그림에는 의미가 있었다. 열 개의 크루 보졸레 중 "여성적인 와인"으로 평가 받는 플러리(Appellation Fleurie Contrôlée) 와인은, 마을 주변에 펼쳐진 810 헥타르(약 2백5십만 평)의 포도밭에서 생산되는 레드 와인을 포함한다. 그 지역 산 꼭대기에는 19세기에 세워진 '라 마돈 La Madone' 예배당이 있는데, 지역 주민과 포도 농사를 수호하는 의미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멋진 경치를 선사하는 명소이기도 하다.

 

또한 이 그림은 플러리의 포도밭이 일조량이 좋고 배수가 잘 되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음을, 즉 이곳이 포도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환경임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다섯 가지 서로 다른 색의 점은, 가메이 누아Gamay Noir라는 단일 품종으로 만든 플러리 와인이 각양각색의 모습을 띤다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뒤에 살펴보겠지만, 실제로 필자가 시음한 와인들도 이렇게 다섯 가지 스타일로 정리할 수 있었다.

 

 

FLEURIE.png

 

 

필자의 다른 글 "파리에 물랑루즈가 있다면 보졸레에는 물랑아방이 있다" 에서 소개한 바 있는, 클로 드 라 로와렛뜨 Clos de la Roilette의 알란 쿠데 Alain Coudert 씨가 초대하여 방문하게 된 이 행사는 오전 10시에 시작하여 오후 4시까지 플러리 마을 시청 앞 공터에서 열린 전문인 대상 시음회이다. 행사장은 2015년 빈티지의 40여개 플러리 와인을 선보인 시음장과 매그넘 테이스팅 룸, 오크통 와인생산자 부스, 음식코너로 구성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으면 선택하기가 곤란하다"는 말마따나 어리둥절했던지라, 바로 음식코너로 향했다. 쉐프가 즉석에서 구워주는 스테이크와 해리포터의 루베우스 해그리드를 연상케한 장인이 직접 조리해 준 리옹의 특산품 끄넬(Quenelles 생선포함)은 플러리 와인과도 조화를 잘 이루었다. 도멘에 따라 스타일이 다소 상이하지만, 조화로운 산도, 섬세한 향, 세련된 질감과 풍부한 풍미를 보여주는 플러리 와인은 고기류는 물론 생선, 치즈, 디저트와도 잘 어울리는 사교성 좋은 와인이다. 크루 보졸레와 요리 페어링이 궁금하다면 [여기]를 참조하자.

 

와인을 시음하면서 소믈리에, 레스토랑 대표들, 와인 도소매상 및 협회 관계자들을 만나 "넌 어디서 왔니" 부터 시작해 와인의 적정온도와 적색 화강암 지반의 영향, "왜 이런 맛이 나는지"에 대한 담소를 나누며 그들로부터 산 지식을 배울 수 있었다. 보졸레 산줄기monts du Beaujolais의 중턱에 위치해 있어 때때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하루 종일 서서 방문객을 맞이해야 했던 행사 관계자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프랑스어로 '플러'는 '꽃'이기에, '플러리'는 '꽃이 많은 마을'을 의미하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중세 시대에는 'Floriacum'이라고 불리었다는 기록과 로마 장군 Florus에서 왔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오지만 확실한 근거는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일까. 이름의 기원이 어찌 되었건 간에 플러리 와인은 포도에 꽃향을 담은 듯 하다.

 

플러리는 다른 크루 보졸레의 토양과는 성분이 살짝 다르다. "플러리의 토양은 90%가 적색 화강암이라서 가메이 포도의 가늘고 섬세한 면을 최대한 표현해야 해요. 적어도 내 와인은 그래요." 사토 드 플러리 Château de Fleurie의 와인메이커 필립 바데 Philippe Bardet 씨의 말이다.

 

 

오색으로 표현해 본 플러리 와인

플러리 와인의 적정 음용 온도는 16-18도 정도이다. 이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향은 풍부하게 느껴지나 입 안에서의 감동은 덜하고, 이보다 차게 마시면 향도 줄어들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풍미도 덜하다.

 

이 행사에는 2015년 빈티지의 40여 개 플러리 와인이 등장했는데, 2015년 빈티지는 "경작이 아주 우수한 해"로 평가 받는다. 초대장에 사용된 색상을 인용해 필자가 시음한 와인의 스타일을 다섯 가지로 분류해 보았다. 아래 분류는 필자의 견해와 웹사이트에 공개된 시음 노트를 바탕으로 한다.

 

 

■ 초록: 젖은 풀숲 향이 주를 이루며 민트의 시원한 맛이 난다. 전체적으로 가벼운 무게감과 상큼한 질감이 느껴지고, 타닌이 적어 마무리가 깔끔하다.

 

■ 노랑: 상큼한 들꽃 향, 작은 딸기류의 과일 향이 잔에 가득하다. 한모금 마신 후에는 적당한 무게감과 균형있는 산도 덕분에 신선한 과일 풍미가 길게 이어진다. 타닌이 적어 입안의 얼얼함이 없다.

 

■ 빨강: 장미 향, 체리 같은 붉은 과일의 향이 풍부하고 입안에서 적당한 무게감과 좀더 익은 과일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절제된 산도, 알코올, 타닌이 조화를 이루며 따뜻한 질감과 부드럽고 깊이있는 긴 여운을 남긴다. 전형적인 플러리 스타일이다.

 

■ 자주: 토스트 식빵, 바닐라, 모닥불, 바나나 향 등 오크 숙성의 영향이 드러나며, 다른 플러리에 비해 많은 양의 타닌은 숙성될수록 부드러워지고 둥그런 질감으로 표현된다. 적당한 무게감과 좀더 익은 붉은 과일의 풍미가 드러나고 생산자에 따라 초콜릿이나 커피 맛이 나는 와인도 있다. 부르고뉴 스타일과 비슷하다.

 

■ 보라: 야성적인 향과 동물적인 맛을 지닌, 여성적인 면보다는 남성적인 면이 좀더 강조된 스타일이다. 이는 와인을 숙성시킬 때 오크통에 남아 있는 특정 효모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몇몇 특정 도멘의 와인이 여기에 속한다.

 

 

플러리 와인의 스타일 분포도를 분석해 보면, 대부분이 중간 정도의 무게감을 가지며 순수한 과일과 익은 과일의 풍미를 살린 와인들이다. 또한 오크 숙성을 통한 부르고뉴 스타일의 와인도 꽤 있다.

 

 

FLUERY_WINE_STYLE.png

 

 

한편, 시청 내부에는 2005년~2015년 빈티지를 포함한 35 종의 매그넘 사이즈(1.5L) 와인들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필자는 시간 관계상 그리고 40가지 와인을 이미 시음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매그넘 와인 시음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참고로 지난 15년간 보졸레 빈티지 차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빈티지차트.png

 


일손이 한창 바쁜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이 행사에 직접 참여하여 와인을 소개한 여러 플러리 와인 생산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제,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탱고 음악을 들으며 플러리 한 잔 하는 것은 어떨까.

 

 

리옹댁 추천 와인

 

FLEURIE WINE.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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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_ 원정화 (WineOK 프랑스 현지 특파원)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 후 1999년 삼성생명 런던 투자법인에 입사하여 11년 근무했다. 2009년 런던 본원에서 WSET advanced certificate 취득, 현재 Diploma 과정을 밟고 있다.  2010년 프랑스 리옹으로 건너와 인터폴 금융부서에서 6년 근무하던 중 미뤄왔던 꿈을 찾아 휴직을 결정한다.
 
10개 크루 보졸레에 열정을 담아 페이스북 페이지 <리옹와인>의 '리옹댁'으로 활동 중이며 WineOK 프랑스 리옹 특파원으로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으며 "와인을 통해 문화와 가치를 소통한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  리옹댁 원정화의 페이스북 페이지 <리옹 와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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