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샤도네이는 와인 품종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리옹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곳에 샤도네이(Chardonnay)라는 이름의 마을이 존재하기 떄문이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라도 있는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샤도네이 품종의 고향이 바로 샤도네이 마을이다.
와인 평론가 Jancis Robison의 저서 <Wine Grapes>와 프랑스의 역사서적 <Chardonnay, Saone-et-Loire: monographie historique, Xe-XVIIe siecle>에서는 그들의 관계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로마 시대의 말기, 갈리아 출신의 카두스(Cardus)는 그 지역의 대지주였다. 참고로 라틴어에서 '영역, 땅'을 의미하는 단어에는 '-아쿰, -acum'이라는 접미사가 붙는데, ‘카두스의 땅’은 따라서 ‘카도나쿰(Cardonnacum)’이 된다. 시간이 흘러 언어가 진화하면서 10세기경에는 'acum'이 'y'로 바뀌었고, 이후 Chardenet, Chardonnet, Chardenay 등 여러 차례의 변형을 거쳐 20세기에 마침내 Chardonnay로 굳어졌다. 1685년 즈음 작성된 문서에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Chardonnet 와인의 평이 좋다” 라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샤도네이 포도 이름이 샤도네이 마을 이름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필자가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된 '샤도네이 데이' 축제의 출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의 샤도네이 마을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이다. 2010년 미국에서 시작한 전문가 대상의 샤도네이 데이는 2015년이 되어서야 프랑스 본토로 금의환향하였다. 피노(Pinot)와 구애 블랑(Gouais blanc)의 자손인 샤도네이가 귀향하여 마을 잔치라도 하듯, 매년 5월 세번째 목요일만큼은 조용하기 짝이 없는 이 마을이 시끌벅적거리며 활기를 띤다.
샤도네이 데이 축제는 방문객을 배려한 듯 햇살이 따가운 오후를 피해 초저녁인 18시에 시작하여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21시까지 진행되었다. 마콩-샤도네이 아펠라시옹(Macon-Chardonnay Appellation) 와인을 생산하는 12명의 와인메이커가 와인을 선보였고, 세명의 스타 쉐프(요한 샤퓌이 Yohann Chappuis, 플로리앙 지호 Florian Giraud, 쟝미셀 카예뜨 Jean-Michel Carette)가 준비한 디너는 올해 축제의 주요 테마였다.
샤도네이 데이 축제는 생산자들이 아담한 마을 광장에 모여 부스를 마련하고, 뮤지션의 음악과 함께 각지에서 찾아온 와인 애호가, 블로거, 동네 주민, 생산자의 친인척과 어린이 등 누구나 참여하는 한마당 동네 잔치였다. 그리고 3유로만 내면, 샤도네이 데이 로고가 찍힌 와인잔을 받아들고 다섯 가지 와인을 시음할 수 있었다.
마을 광장 옆 생하미(Saint Remy) 교회 안에 마련된 일일 주방에서는 스타 쉐프들의 요리를 15유로(한화 2만원)에 만나볼 수 있었고, 나이 든 할아버지가 어린이들을 위해 간식용 와플을 구워 주기도 했다. 전갈, 메뚜기, 번데기를 그대로 튀긴 요리와 '내 안에 전갈 있다' 막대 사탕도 눈길을 끌었는데, 필자는 바삭바삭한 메뚜기 튀김만으로도 충분했다. 혹시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 은행이 없는 작은 시골 마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현금을 두둑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
팔색조 같은 와인, 샤도네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샤도네이 품종은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변화무쌍한 와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팔색조이다. 프랑스에서 재배하는 청포도 품종 중 유니 블랑(Ugni Blanc, 코냑과 아르마냑 생산에 사용되는 품종)에 이어 생산량 2위를 차지하며 프랑스 곳곳에서 재배된다.
과일향과 산도가 도드라진 샤블리Chablis, 마콩Macon, 보졸레 블랑Beaujolais Blanc, 오크 숙성으로 인해 구운 빵의 구수한 풍미와 둥그런 질감을 지닌 꼬뜨 드 본 Cote de Beaune, 섬세한 기포의 샴페인Champagne과 클레망Cremant을 비롯해, 콩떼 치즈로 유명한 주라Jura와 최근 조명 받는 랑그독 루시용Languedoc Roussillon 등지에서도 색다른 모습의 샤도네이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한때 영국에서 ‘샤도네이 걸 Chardonnay Girl’이라는 은어가 유행할 정도로 화이트 와인의 고유명사로 쓰이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샤도네이. 샤도네이가 미국, 칠레, 호주 등 신세계에서도 인기 품종인 것은 재배하기가 비교적 수월하고 생산자의 특성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샤도네이 와인들
샤도네이 축제에서 선보인 '샤도네이 마을의 샤도네이 와인'은 현지에서 7-15 유로면 살 수 있는, 편하게 마시기에 가성비 좋은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들이었다. 16개 와인생산자의 와인 중 특히 흥미로웠던 와인이 있는데 C de C(일명, 친친 와인), Domaine Jean-Marc Boillot(도멘 장마크 보아요), Domaine Talmard(도멘 딸마), Vuillemez Pere et fils(부이예메 페레피스) 그리고 Domaine des Deux Roches (도멘 데 두 로쉬)가 그들이다.
Chardonnay de Chardonnay의 앞글자를 따 이름 붙인 C de C는 검은색 바탕에 금색의 필기체로 디자인한 단순하고 모던한 라벨이 눈에 띠며, 이탈리아어로 건배를 뜻하는 '친친'을 연상시킨다(위 사진). 도멘 클로 공당(Domaines Clos Gandin)에서 생산하는 이 와인은 흠잡을 데 없이 조화롭고, 적당한 향기와 신선한 맛은 생선회나 굴과 잘 어울릴 것이다.
또다른 스타일의 샤도네이는 바로 도멘 장마크 보아요이다. 어린 두 딸과 함께 그들의 부스를 안내하는 젊은 부부는 본의 서남쪽에 위치한 뽀마(Pommard)에서 와인을 이미 생산하고 있다(위 사진). 그들의 샤도네이는 와인에 잘 스며든 오크 향과 긴 여운을 남기는 풍부한 맛을 지녔는데, 열을 가한 생선요리와 닭, 오리, 돼지고기 요리와 잘 어울릴 것 같다.
도멘 데 두 로쉬는 구운 사과향과 입안에 맴도는 살구맛이 인상이 깊었던 와인이다. 조리한 과일 디저트(애플 파이 등)나 과일 소스를 이용한 닭요리와 궁합이 맞을 것 같다(위 사진).
마치 Formula 1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세련된 와인메이커들도 있었다. Vuillemez Pere et fils (부이예메 페레피스)도 그 중 하나인데, 스위스 출신의 시계공인 부이예메 씨와 와인메이커 바데이 씨가 함께 만든 와인이 올해 최초로 선보였다(위 사진). 또다른 주인공인 도멘 딸마는 과일향과 미네랄이 두드러진 맛있는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로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아래 사진). 좋은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기회를 준 12개 와인생산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2017 샤도네이 데이>에 참가한 와이너리
C de C Clos Gandin
Domaine Jean-Marc Boillot,
Cave Talmard Mallory and Benjamin
Domaine des Deux Roches
Chateau Messy
Vuillemez Pere et fils
Domaine Talmard Gerald,
Domaine Saint Denis,
Cave de Lugny
Cave de Manley
Les Cadoles
Domaine Giroud
글쓴이_ 원정화 (WineOK 프랑스 현지 특파원)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 후 1999년 삼성생명 런던 투자법인에 입사하여 11년 근무했다. 2009년 런던 본원에서 WSET advanced certificate 취득, 현재 Diploma 과정을 밟고 있다. 2010년 프랑스 리옹으로 건너와 인터폴 금융부서에서 6년 근무하던 중 미뤄왔던 꿈을 찾아 휴직을 결정한다.
10개 크루 보졸레에 열정을 담아 페이스북 페이지 <리옹와인>의 '리옹댁'으로 활동 중이며 WineOK 프랑스 리옹 특파원으로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으며 "와인을 통해 문화와 가치를 소통한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 리옹댁 원정화의 페이스북 페이지 <리옹 와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