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jpg



국내 시장에 출시되어 있는 칠레 와인의 홍수 속에 파묻혀 있다 보면, 와인을 마셔본 경험과는 무관하게 마치 칠레 와인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기자가 칠레를 방문하면서 지켜본 와인산업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품종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고, 와인생산자들은 고유의 스타일과 철학을 확립하기 위해 모험과 도전을 감행하고 있었다.

특히 칠레에 최초의 포도원이 들어선 16세기부터 수세기 동안 가정용 와인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던 파이스(Pais) 품종의 부활을 위한 프로젝트, 그리고 까리냥 품종을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해 여러 와인생산자들이 모여 창설한 비뇨(VIGNO) 등은 칠레 와인 산업 내에서도 주목 받고 있는 프로젝트들이다. 그런가 하면, 수년간 지질학적 연구를 거듭한 끝에 아주 특별한 품질의 피노 누아 와인을 만들어 내는 와이너리도 있고, 친환경의 철학 아래 유기농 또는 바이오다이나믹 와인을 생산하는 곳도 있다.

이 글에서 살펴볼 ‘코노수르(Cono Sur)’와 ‘에밀리아나(Emiliana)’는 친환경 농법으로 와인을 만드는 대표적인 곳이며, 레이다 밸리의 부티크 와이너리'벤톨레라(Ventolera)’는매력적인 피노 누아 와인을 선보이며 급부상하고 있다.
가로선.jpg


‘칠레 와인의 선구자’미구엘 토레스의 파이스 & 까리냥 프로젝트


미구엘 토레스(Miguel Torres)는 1979년, 외국 자본으로서는 최초로 칠레에 투자한 와이너리이며 최첨단 와인 설비와 기술을 칠레에 소개함으로써 선구자적 입지를 다졌다. 스페인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와인 명가답게 토레스는 칠레에서도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희귀 품종을 연구하고 품종의 다양성을 이어가기 위한 프로젝트를 꾸려나감으로써 전체 와인 산업에 기여하고 와인업계 리더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기자가 미구엘 토레스를 방문해서 시음한 와인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파이스(Pais) 품종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이다. 토레스는 몇 년 전 칠레 정부와 함께, 칠레의 오랜 토착 품종인 파이스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파이스는 칠레에 가장 광범위하게 재배되는 품종으로 특별히 돌보지 않아도 잘 자라는데다 생산량이 많고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토레스는 파이스 품종에 맞는 와인 스타일을 찾기 위해 약 25가지의 다른 와인양조 방법을 적용했고, 수많은 실험 끝에 스파클링 와인이 탄생했다.

미구엘 토레스_파이스100% 스파클링.jpg

토레스의 노하우 덕분에 파이스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파이스 품종을 사용하며 상큼한 체리 향이 돋보이는 산타 디그나 에스텔라도 로제(Santa Digna Estelado Rose, 위 사진)는, 판매 수익이 포도 재배 농가에 공정하게 지급되는 공정 무역 제품이다. 즉 미구엘 토레스의 파이스 프로젝트는 와인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개발을 위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미구엘 토레스가 펼치는 다양한 활동 중 또 하나 주목할만한 것은 까리냥 프로젝트로 불리는 “비뇨(VIGNO)” 활동이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칠레 와인 산업의 보물이라 불리는 마울레 밸리의 까리냥 품종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으로, 여기에는 12개 와이너리가 동참하고 있다. 마울레 밸리에 까리냥을 심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로, 정부가 1939년의 지진으로 황폐해진 이 지역 포도원에 까리냥 품종을 재배하도록 장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은 산도와 색감을 지닌 까리냥은 오랜 세월 다른 품종과 섞여 사용되어 오다가 최근에 와서야 주목 받기 시작했으며, 비뇨의 형성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VIGNO’가 새겨진 라벨을 부착하려면, 수령이 최소 30년 이상인 포도나무에서 자란 까리냥을 65% 이상 사용해야 하며, 출시 전에 2년 이상 와인을 숙성시켜야 한다.(수입사 : 신동와인)

가로선.jpg


칠레의 대표 유기농 와이너리, 코노 수르의 ‘피노 프로젝트’


안데스 산맥과 태평양이 자연적인 경계를 형성하며 북쪽에는 사하라 사막보다 50배 이상 건조하다는 아타카마 사막이 펼쳐지고 남쪽에는 빙하가 무성한 이곳 칠레는, 유기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코노 수르(Cono Sur)는 칠레를 대표하는 유기농 와인생산자로, 포도밭에 꽃과 허브를 심어 동물과 곤충을 유인하고 이들의 먹이사슬로 자연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자연 면역 체계를 형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1년에는 영국의 주류 전문지 로부터 “올해의 그린 컴퍼니” 상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코노 수르는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와인생산자의 좋은 본보기가 되어 왔다. 코노 수르의 대표적인 친환경 정책으로 “탄소 배출 감소 프로젝트”를 들 수 있는데, 대량 생산되는 저가 와인에 무게가 덜 나가는 병을 사용하고, 탄소가 생성되는 과정을 추적하여 탄소 배출량을 줄이며, 약 2천명의 인력이 근무하고 있는 양조장 곳곳에 자전거를 비치해 전 직원이 자전거를 이용하여 일터를 오갈 수 있도록 한 것이 그 예이다.

ocio2008.jpg

코노 수르의 대표적인 와인 품종은 피노 누아다. 코노 수르는 1999년에 부르고뉴의 유명한 와인생산자인 도멘 자끄 프리외르와 함께 ‘피노 누아 프로젝트’를 진행, 품종에 가장 적합한 토양을 찾아 포도밭을 조성했고 부르고뉴의 전통적인 양조 방식에 따라 피노 누아 와인을 생산해왔다. 코노 수르의 20 배럴 피노 누아(20 Barrels Pinot Noir)나 오시오(Ocio) 와인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오시오는 가 주최하고 16개국의 300가지 피노 누아 와인이 경합을 벌인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12년 빈티지의 경우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92점의 높은 점수를 획득하였다.(수입사 : 동원와인플러스)

가로선.jpg


세계 최대 규모의 친환경 와이너리, 에밀리아나의 '바이오다이나믹 프로젝트’


2001년 세계적인 유기농 기관인 IMO(스위스 유기농 협회)로부터 칠레 최초로 유기농 인증을 받고 2006년 남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바이오다이나믹 인증을 받은 에밀리아나(Emiliana)는 모든 와인을 유기농,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으로 생산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친환경 와이너리다. 이러한 성과는 1998년 에밀리아나가 시행한 ‘유기농 & 바이오다이나믹 프로젝트’에서 비롯되었는데, 최고의 포도밭을 만들어 내기 위해 세 지역(카사블랑카, 마이포, 콜차구아 밸리)을 하나의 친환경 포도밭으로 통합하고자 한 이 계획은, 칠레에서 유일했을 뿐만 아니라 남미 대륙을 통틀어도 선구적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모든 와인을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해 온 에밀리아나는 로부터 2012년 "올해의 그린 컴퍼니"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직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미래형 기업으로도 알려져 있다.'자연과 사람을 존중’하는 철학을 바탕으로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고자 하는 에밀리아나는, 포도밭을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하여 화학 약품을 일체 사용하지 않으며, 포도의 경작과 수확은 우주의 리듬을 고려한 바이오다이나믹 달력을 따른다. 또한 포도밭의 균형 잡힌 생태계를 위해 다양한 식물을 심고, 천연 비료를 사용하여 다양한 미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에밀리아나 와인들.jpg

에밀리아나가 소유한 약 950헥타르의 포도밭 중에서 약 930헥타르가 유기농, 바이오다이나믹 인증을 받았으며, 이곳에서 만들어진 와인은 맑고 깨끗한 느낌을 지니고 유연한 타닌과 뛰어난 균형감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특히 프리미엄 와인인 코얌(Coyam)은 독특한 블렌딩과 뛰어난 밸런스가 돋보이며, 가장 오랜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나온 아이콘 와인 지(Ge)는 농익은 과일을 비롯한 복합미 넘치는 풍미와 탄탄한 구조감이 돋보이는 와인이다.(수입사 : 까브드뱅)
가로선.jpg


벤톨레라 피노누아.png
레이다 밸리의 부티크 와이너리 벤톨레라의 ‘슈퍼 피노누아’


칠레의 레이다 밸리는 서늘한 기후 지역으로, 벤톨레라 와인을 생산하는 비냐 리토랄(Vina Litoral)은 이 지역을 개척한 와이너리 중 하나다. 1999년부터 이 지역에서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한 비냐 리토랄은 애초에 수확한 포도를 다른 와이너리에 판매해 오다가, 2005년부터 수확한 포도 중 최고의 품질을 지닌 포도를 선별하여 벤톨레라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2007년, 벤톨레라 와인을 만들기 위해 양조장을 별도로 설립했으며, 이후 벤톨레라 와이너리는 이 지역의 부티크 와인생산자로 자리매김하였다.

벤톨레라를 만드는 스테파노 간돌리니는 칠레의 떠오르는 와인메이커 중 하나로 꼽히며, 포도가 자란 곳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복합미와 섬세함을 지닌 와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특히 해양성 기후와 화강암-석회질 토양에서 비롯된 특징을 고스란히 담은 피노 누아와 소비뇽 블랑은, 칠레의 새로운 와인 트렌드를 이끌어갈 아이콘 와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레이다 밸리 자체가 새로운 와인 산지로 급부상 중인데다가, 이곳에서 생산되는 피노 누아는 복합미와 미네랄, 훌륭한 산도와 타닌의 밸런스로 와인 평론가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벤톨레라는 기본급인 리토랄, 대표급인 벤톨레라, 생산량이 600병밖에 되지 않는 클라로 드 루나(Claro de Luna) 등 세 가지 피노 누아 와인을 생산하는데, 리토랄 피노 누아는 산뜻하고 가벼우며 신선한 산도와 상큼한 과일 향이 돋보이는 와인이며, 벤톨레라 피노 누아는 베리, 허브, 미네랄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풍미와 훌륭한 산도를 지니고 있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에서 이름을 따온 클라로 드 루나는 매우 뛰어난 균형감과 숙성 잠재력을 갖추고 있어, 슈퍼 프리미엄 와인으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미수입)



- 저작권자ⓒ WineOK.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1. [프랑스 와인 여행] 보르도 투어 프로그램 활용하기

    <사진 _ 가론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보르도 市> 보르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바로 관광안내소이다. 도시의 중심, 캥콩스 광장(Esplanade des Quinconces) 근처에 위치한 관광 안내소에는 하루 종일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공항과 역에도 있다...
    Date2017.04.14
    Read More
  2. 프랑스 와인의 엘도라도, 루시옹

    10월 중순, 일주일이라는 짧은 여정으로 다녀 온 프랑스 남부의 루시옹(Roussillon)은 기자에게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과 뺨을 때리는 거센 바람, 그리고 그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키 낮은 포도나무 등의 기억을 심어 놓았다. 하지만 루시옹을 떠올릴 때 가...
    Date2017.04.14 글쓴이WineOK
    Read More
  3. 와인월드에 떠오르는 다크 호스, 그리스 와인

    “그리스의 얼굴은 열 두 번이나 글씨를 써넣었다 지워버린 팰림프세스트이다.” (※palimpsest, 양피지가 귀했던 시절에 원래 문장을 긁어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쓰기를 반복한 것)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에 대해 한 말이다. 일주...
    Date2017.04.14
    Read More
  4. 신화를 따라 떠나는 그리스 와인

    여행자들의 버킷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발상지인 동시에 현대 와인 문화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 역사가 5천년이 넘는 그리스 곳곳에서 신화 속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리스는 육지의 80%가 산이나 구릉지대...
    Date2017.04.14
    Read More
  5. 보르도, 잠에서 깨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보르도는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서자마자 도로와 교량을 비롯해 도시 구석구석을 재정비하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이에 따른 교통체증도 일상이 된지 꽤 된 듯 했다. 포도밭과 샤토, 기껏해야 시내에서 몇 발...
    Date2017.04.14
    Read More
  6. 토스카나의 햇살을 담은 와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10월 말, 포도 수확을 막 끝낸 토스카나의 포도밭은 여전히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포도나무에는 뒤늦게 영근 포도송이가 드문드문 달려 있었고, 와인으로 거듭나지 못한 채 땅으로 사라지게 될 이들의 운명은 포도밭 풍경에 애처로움을 더했다. 하지만 ...
    Date2017.04.14
    Read More
  7. [Wine&Tour][이탈리아]토스카나 빌라 투어

    포도밭의 정취가 그윽한 토스카나 빌라 투어 글, 사진 _ 조정용 고색창연한 중세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탈리아 토스카나로 여행을 한다면 빌라 투어를 추천한다. 빌라마다 자체 양조장이 달려 있어 빌라 투어는 곧 와인 여행이요, 미식 기행이다. 대...
    Date2013.06.11 글쓴이조정용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