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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렇듯이, 기자에게도 칠레 와인 하면 떠오르는 몇몇 브랜드가 있다. ‘몬테스’와 ‘1865’ 등 국내 와인 시장에서 오랫동안 확고한 지지를 얻으며 최다 판매량을 다투는 대형 브랜드, ‘알마비바’로 대표되는 고급 와인, ‘까사 라포스톨’, ‘코노 수르’, ‘에밀리아나’ 같은 유기농 와인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브랜드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으며, 특히 국내에서 칠레 와인의 전성기를 이끌어온 대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국내에 수입되는 칠레 와인 브랜드(생산자) 수는 100여 가지가 넘는데, 2012년에 이어 2013년에도 레드 와인 수입량에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칠레 와인의 종류와 양은 방대하다.

칠레는 전세계적으로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한 와인을 생산하는 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기본급에서부터 최고급 와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종과 가격대의 와인을 광범위하게 생산하고 있다. 안데스 산맥과 태평양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 환경 덕분에 병충해나 필록세라(포도나무뿌리진디)의 영향을 받지 않아 최적의 포도 재배지가 된 칠레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리적 환경에서 기인한 다양한 기후 아래 다채로운 포도 품종에 대한 실험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칠레의 대표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 시라, 카르미네르,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은 좋은 품질과 가격 대비 뛰어난 맛으로 국내 시장의 베스트 셀링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는 이런 사실은 종종 칠레 와인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져, 품종이나 생산자에 상관없이 칠레 와인이라면 무조건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칠레 와인이라면 무조건 기피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 5월 칠레와 아르헨티나로 와인 여행을 떠나기 전만 하더라도, 기자 역시 여행을 통해 만나게 될 와인이 지금까지 경험했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라 짐작했던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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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수확이 진행되고 있던 칠레의 가을날, 약 2주간 각기 다른 지역에 위치한 포도밭과 개성이 넘치는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동안 머지않아 국내 시장에 다시 한번 신선한 칠레 와인 바람이 불어올 것임을 예감했다. 새로움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던 이곳에서 여전히 와인에 굶주린 것처럼 다양한 실험과 재미있는 모험이 펼쳐지고 있는 역동적인 와인 산업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었고,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칠레가 와인 양조자의 천국"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칠레 와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자의 편견과 얄팍한 지식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제 2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칠레의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무엇보다도, 프리미엄 와인을 향한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테루아와 신품종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설립된 신생 와이너리는 물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명성의 와이너리도 예외는 아니다. 신생 와이너리들은 뒤늦게 시작한 만큼 더 많은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을 선보이고 있으며, 이미 명성을 쌓은 이들 또한 그들이 이룩해 놓은 프리미엄의 기준을 뛰어넘는 “슈퍼 프리미엄”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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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떠오르는 이름 _ 마키스, 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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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베르네 프랑으로, 색다른 칠레 와인의 모습을 보여준 마키스(Maquis) 와인


콜차구아 밸리에 위치한 부티크 와이너리 비냐 마키스(Vina Maquis)는, 재배한 포도를 주변의 와이너리에 팔아오다가 십여 년 전부터 직접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주력 품종이 카베르네 프랑이라는 점인데, 마키스는 칠레에서 이 품종으로 가장 많은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와이너리는 콜차구아 밸리에서도 아주 특별한 테루아를 가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을 둘러싼 두 개의 강줄기는 한여름의 기온을 낮춰주고, 덕분에 와인은 신선한 과일과 꽃 향을 지니며 산도가 높고 알코올이 상대적으로 낮다. 또한 타닌이 견고하고 질감이 부드러우며, 잘 익은 과일 향과 응집력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와인 중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향기로운 풍미와 밝은 산도로 “예쁘다”는 말이 어울렸던 로제 와인(GRAN RESERVA ROSE), 칠레를 뛰어넘는 맛을 선보였던 리엔(LIEN, 카베르네 프랑 블렌드), 그리고 카베르네 프랑만 사용한 프랑코(FRANCO)다. 로제 와인의 경우 전년도 브라질에서 열린 와인 엑스포에서 최고의 로제 와인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프랑코는 칠레의 카베르네 프랑 와인 중에서 독보적인 아이콘 와인이다. (국내 미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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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프리미엄을 꿈꾸며 만드는 단 하나의 와인, 빅(VIK)


빅 와이너리는 칠레에서 세계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려는 꿈을 가진 노르웨이의 한 사업가가 설립하였으며, 최적의 포도 재배지를 찾기 위해 2년간 와인 양조자와 지질학자가 함께 연구를 거듭한 끝에 2006년에 이르러 카차포알 밸리의 밀라후에에 자리잡았다. 이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한 와이너리인 빅은, 최고의 테루아와 그에 적합한 포도품종을 찾기 위한 연구, 실험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어 칠레 와인 업계에서도 '슈퍼 루키’로 불리며 주목 받고 있다.

첫 빈티지가 2009년인 이곳의 와인은 모두 뛰어난 밸런스와 저마다의 독특한 풍미를 드러내는데, 일단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와인의 뼈대를 만들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방식으로 블렌딩해서 만든다. 기자가 시음한 와인들은 신선한 과일 풍미와 벨벳처럼 부드러운 타닌, 결점을 찾을 수 없는 뛰어난 밸런스로 우아한 자태를 뽐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테루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그 품질 또한 더욱 나아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CSR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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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에의 열반涅槃 을 꿈꾸는 명 생산자들 _ 몬테스, 에라주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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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스(MONTES)의타이타(Taita)와인용 포도 재배밭.


자신의 이름을 딴 몬테스 와인을 내놓기 이전부터 프리미엄 와인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던 아우렐리오 몬테스는, 칠레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와인을 선보이겠다는 열정과 꿈 하나로 오늘날의 몬테스를 이룩했다. 국내 최다 판매 브랜드이자 칠레를 세계적인 와인 산지로 각인시킨 일등 공신 몬테스가 칠레를 벗어나 아르헨티나와 미국에서 와인을 만들어 출시할 때까지도, 그들이 칠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2013년 말, 몬테스가 칠레에서 만든 거대한 와인 타이타(Taita)의 출시 소식을 전해 들은 뒤 기자는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이타는 아우렐리오가 여전히 꿈꾸고 있음을 방증하는 또 하나의 걸작이다. 아우렐리오는 콜차구아 밸리의 아주 특별한 테루아가 담긴 마르구치에 지역을 찾아내자마자 또 한번의 도박을 감행했다. 카베르네 소비뇽을 심고 수확량을 극도로 제한하여 포도의 품질에 집중했다. 그 결과 농축미가 뛰어한 열매를 얻게 되었고, 칠레 최초로 6년 이상의 숙성을 거쳐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기자가 와이너리를 찾았을 때는, 이미 모두 팔려버렸기 때문에 타이타를 시음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 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타이타를 만날 수 있었고, 그 와인은 대단한 농축미와 힘을 과시했다. 약 25년 전 칠레의 프리미엄 와인을 향한 열정으로 도전했던 것처럼, 타이타는 프리미엄을 뛰어넘는 슈퍼 프리미엄을 갈망하는 열정으로 탄생한 또 하나의 걸작이 될 것이다.(나라셀라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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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급 와인부터 버라이어탈까지, 최고만을 담는 에라주리즈(Errazuriz)


에라주리즈는 2004년부터 매년 전세계 주요 도시를 돌며, 보르도의 특급 와인과 에라주리즈 와인의 품질을 겨루는 Berlin Tasting을 개최해 왔다. 한국에서는 2008년에 처음으로 열렸는데, 당시 패널로 참가한 와인평론가 스티븐 스퍼리어는 “에라주리즈의 핵심은 바로 균형미”라고 강조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Berlin Tasting에서 에라주리즈의 프리미엄 와인들은 샤토 마고, 라투르, 라피트 같은 특급 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꾸준히 상위권에 올라왔다.

이렇듯 여느 특급 와인에 뒤지지 않는 균형미와 복합미를 자랑하는 에라주리즈의 최상급 프리미엄 와인으로는 로버트 몬다비와 함께 만든 세냐(Sena), 언덕 꼭대기의 포도밭에서 생산된 라쿰브레(La Cumbre), 가장 오래된 포도밭에서 나온 돈 막시미아노(Don Maximiano), 칠레 와인의 전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카이(Kai), 에라주리즈의 아이콘 와인인 비냐도 채드윅(Vinedo Chadwick)이 있다. 기자가 시음한 비냐도 채드윅은 농축미 넘치는 과일 풍미에 시가 박스, 삼나무 등의 복합적인 향이 은은했으며, 부드럽고 우아한 타닌과 긴 여운을 지녀 에라주리즈의 프리미엄 와인 중에서도 최고의 품질을 선보였다. (아영FBC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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